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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조기대선: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부르주아 선거는 ‘그들만의 리그’
12.3 비상계엄 선포 후 123일 만인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되었고, 6월 3일에는 ‘조기대선’이 치러진다. 윤석열이 물러가고 대선이 다가왔지만, 우리에게 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세계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윤석열 자본가정권은 그동안 아무런 책임이 없는 노동자민중에 일방적으로 위기를 떠넘기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물가는 폭등하고 실질임금은 하락하고 가계부채는 늘어 생활 수준이 계속 악화했고, 이제는 생계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민중의 삶과는 무관하게 부르주아(자본가) 정치세력은 자신들이 차린 조기대선 운동장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다.
친위쿠데타 수괴인 윤석열 무리는 국면이 바뀌어 세력이 약화했지만, 여전히 극우 세력과 국민의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가 구성한 자본가 정부는 지난 3년과 같은 기조로 대선 때까지 이 나라를 통치할 것이다. 설령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형식적으로 윤석열과 단절한다고 해도 그들의 본질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경제성장, 애국주의, 반공 이데올로기 등으로 노동자민중을 무참히 탄압하고 죽이고 착취했던 이승만-박정희-박근혜-이명박의 충실한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한편, 집권 가능성이 가장 큰 이재명의 민주당은 ‘내란’에 맞서 싸웠지만,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그들은 자본의 편에서 정리해고제, 비정규직 제도 등 반(反)노동 법·제도를 마련하고, 빈부 격차와 사회 불평등을 강화한 장본인이다. 민주당은 집권이 가까워지자, ‘보수’ 표방에 이어 경제 기조를 공정에서 ‘성장’으로 바꾸며 자본에 먼저 손을 내밀고, "기업이 앞장서고 국가가 뒷받침해 다시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면서 더욱 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자본가정당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조기 대선은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위기 상황을 끝내고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안정화하는 과정이라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노동자민증의 삶을 개선할 수 없고 세상을 바꿀 수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윤석열과 같은 통치자를 갈아치울 수 있고, 이 체제의 모든 제도권 정당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면 자본가정당인 민주당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오로지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 권력을 무너뜨리고, 다수 계급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 가능하다.
대통령 선거는 ‘자본의 경쟁 영역’
그런데 이러한 부르주아(자본가) 선거 서커스에 ‘진보정당’ ‘사회대전환’의 이름으로 참여하여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했던 세력과 함께하는 이들도 많다. (민주당과 끊임없이 연대하고 협력해 온 진보당은 민주노총 내 다수 정파임에도 불구하고 명백하게 부르주아 정치에 속해있다) 더욱이 그들이 내세우는 ‘사회대전환’, ‘체제전환’ 등은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와 고통의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지 않고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다.
그들은 노동자 정치를 노동계급의 영역인 일터와 투쟁의 현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 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표 구걸하는 것을 ‘선거 투쟁’으로 미화해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선거는 자본주의 미디어가 선거 자체를 완전히 지배하고, 강력한 힘으로 다수의 노동자민중을 ‘자본의 경쟁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선거에서 노동계급이 자신의 후보를 출마시킨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거대한 물량 공세 앞에 작은 선전의 효과도 초라해진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환상만 강화할 뿐이다. 부르주아 선거에서 우리가 누구에게 투표하든 노동계급의 요구가 아닌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유지하는 정책만이 승리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물도 선거를 통해 얻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는 부르주아 정치에 기대었던 투쟁이 어떠한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투쟁으로 지켜내지 못한 권리가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지는지를 수없이 경험해 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수 양당과의 선거 경쟁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이다.
선거 거부를 넘어 어떻게 할 것인가?
부르주아 선거와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유지해 주는 제도라서, 이 체제를 전복하거나 착취와 억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선거는 누가 자본가계급을 대신하여 국가를 통치할지 결정하는 제도일 뿐이다, (국회와 헌재가 윤석열을 내란 혐의로 탄핵하고 파면했지만, 자본주의 국가와 체제를 넘어서려는 노동계급 권력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고 이용당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 거부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계급투쟁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가 통제하는 직접민주주의
노동자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선거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우리의 삶과 투쟁에 직접 도움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다. 노동자민주주의는 선출자를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어 선출한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고, 모든 대표자의 특권을 폐지하여 위임받지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아래로부터의 직접 민주주의’다. 노동계급은 위대한 투쟁의 역사에서 파업위원회, 대중총회,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독립적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
노동계급은 특히,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수백만, 수천만 명이 자기 삶의 수준과 일상을 스스로 결정하고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1871년 파리 코뮌은 노동계급 대표자를 직접 선출할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1905년에 이어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만들어진 소비에트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실제로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전 세계 노동계급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 나라와 지역에서 노동자평의회를 만들었다. 이러한 조직들은 노동자들이 투쟁의 물결 속에서 자주적으로 투쟁을 조절-통합하고 자기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냈다. 일단 선출되고 나면 유권자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통령, 국회의원과 달리, 노동자의 대표는 노동자평의회에서 위임받은 내용에 반드시 따라야 하며, (헌재가 아닌) 유권자가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각 대표와 함께 ‘대체 대표’를 선출했고, 탄압 시기에는 대표가 체포되었을 때 역할을 대신할 대체 수단이 되기도 했다.
미래에 노동자 투쟁이 대대적으로 확산하고 계급의식이 발전하여 세계적인 계급투쟁이 벌어진다면, 세계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계급투쟁이 혁명적 절정에 이르고, 마침내 지배계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노동계급은 자신의 조직인 노동자평의회를 통하여 생산과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노동계급은 처음으로 자기 권력을 갖게 되며, 사회는 계급 철폐와 인간해방을 위한 자유로운 인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민주주의로 대체될 것이다.
노동자민주주의 아래에서 노동자는 단지 투표를 위한 일회성 유권자가 아니다. 일터의 노동자평의회만이 아니라 주거-공동체 평의회, 소비자 평의회, 학생평의회, 스포츠-취미평의회와 예술평의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풀뿌리 조직의 적극 참여자가 되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조선소의 주인은 전체 조선산업 노동자가 되고, 자동자 회사는 자동차산업 노동자가, 호텔은 호텔산업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 운영할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은 지자체와 공사 관료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운수산업 노동자, 장애인, 승객이 평의회 협의회를 구성해 전(全)사회적으로 보장해 나가고, 장애인 탈시설도 장애인 당사자와 지역평의회, 주거 평의회, 사회서비스 평의회 등이 협의하여 안전하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지역공동체 삶을 보장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민주주의는 전문 정치인, 소수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이다,
선거가 아닌 대중총회, 파업위원회
노동자민주주의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이 대중총회와 파업위원회에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대중총회>는 모든 노동자와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열려있는 투쟁의 공간으로, 대중총회 참여자들이 토론을 통해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고 공동으로 책임지는 방식이다. 대중총회에서는 흩어져 있던 노동자의 개별적인 요구를 모으고 집중하여 공동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작업장/업종/부분을 넘어 진정한 계급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파업위원회>는 파업 투쟁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모든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고,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는 대표단을 선출해, 파업 노동자 스스로 투쟁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파업 투쟁만이 관료주의, 조합주의를 넘어 계급투쟁을 확산할 수 있다.
노동자 정치는 투표소나 선거 운동이 아니라 바로 대중총회와 파업위원회와 같이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노동자민주주의는 자본가정당이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 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 실현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최근의 무역전쟁)은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그동안 세계 지배계급은 체제 유지를 위해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 왔다. 그 결과, 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세계 자본주의는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건강 등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면서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평화로운 선택지가 바닥난 세계 지배계급은 점점 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미제국주의는 경쟁국을 희생시키는 것은 물론 동맹국에도 위기를 떠넘기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을 끝내고 야만의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계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뿐이다. 아직은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이고 국제적 계급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지만, 투쟁의 물결이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 계급 고유의 투쟁으로 진전되고 있다. 이제 한국 노동자들도 함께 일어나야 한다.
심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위기 속에서 치르는 대선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기본 생존권조차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동안 참고 당하기만 했던 노동자들이 더는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지 말고,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켰던 선거주의, 조합주의, 관료주의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하고 계급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다가올 조기대선에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선거에 끼어들어 이용당하지 말고, 계급의 요구를 내걸고 대중총회와 파업위원회를 건설해 투쟁하자! 투표소가 아닌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면서 파업을 위한, 저항을 위한 행동을 준비하자.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대중총회, 파업위원회 건설! 생존권 투쟁 전면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
혁명을 통한 노동자민주주의 챙취!
2025년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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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위원회(NWBCW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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