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후견주의와 로스쿨, 그리고 이야기하지 않은 것

행인님의 [로스쿨은 전태일을 조영래로 만들어주나?] 에 관련된 글.

 

트랙백을 걸은 위 포스팅에서 행인은 예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로스쿨 지지자들의 편지'를 인터넷 한겨레에 연재하는 과정에 고려대학교 박경신 교수가 "전태일이라면 로스쿨에 동의했을 것"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전혀 이분의 의견에 동의하지도 않거니와 만일 전태일 선배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아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사가 오마이에 실렸다. 바로 전태일의 동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미안한) 전순옥의 기사다. 박경신 교수께서 이 기사 한 번 꼭 보시기 바란다.

 

사실 전태일 선배와 행인은 만나서 쐬주 한 잔 한 일도 없거니와 그럴 수 있었던 세대도 아니다. 행인이 아장아장 걸어다니면서 말 배울 시기에 전태일 선배는 차디찬 청계천 아스팔트 위에서 뜨겁게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행인이 마빡에 철이 좀 들면서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각인이 되었다. 그이에 대한 그 복합적이고 수많은 감정들은 적어도 살아가는 동안에 행인의 삶에 한 지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더불어 전태일을 이 세상에 알렸던 조영래 변호사에 대한 존경심 역시 전태일 선배에 대한 감정만큼의 무게로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중언부언 개인적 소회를 늘어놓는 것은 로스쿨 논의를 하는 과정에 뜬금없이 전태일 선배의 이름과 조영래 변호사의 이름이 동시에 거론되는 현상이 탐탁치 않아서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재수없다. 그들을 신격화할 필요는 없으되 그렇다고 해서 아전인수식으로 전혀 걸맞지 않은 상황에 인용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로스쿨은 이분들의 삶을 거론하면서 그 당위성을 설명하기에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아무튼 이런 소회를 간직하고 있는 입장에서, 문제가 된 "전태일이라면 로스쿨에 동의했을 것"이라는 글을 쓴 박경신교수가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연달아 올린 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박경신교수의 글은 다음 링크를 따라가면 읽을 수 있다.

 

[경향 시론] 로스쿨 총정원 '변협의 말놀이'

[한겨레 기고] 강자를 위한 국가주의 '로스쿨 정원'

 

경향신문 시론에서 박경신 교수는 "상당수 로스쿨 졸업자들에게 변호사 자격을 주지 못하더라도 많은 변호사 예비군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제든 변호사 업무를 개시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어차피 변호사가 개업해서 송무업무로 먹고사는 것만 제 일로 여기지 않으면 변호사라는 자격을 가지고 진출할 수 있는 사회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변협이 주장하는 것처럼 변호사 늘어나면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는 주장은 창호지 구멍으로 보이는 세상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 시론에서 밝힌 박경신 교수의 주장은 한겨레 기고문에서 그 근거가 밝혀진다. 변협의 주장을 수용해 총정원통제라는 칼날을 휘두른 교육부의 행태를 "국가후견주의의 발로"라고 박경신 교수는 주장한다. 보호되어야할 국민에 대한 국가의 후견주의가 아니라 후견이 필요치 않은 고소득 전문직종의 사람들을 위해 발현되는 이러한 국가후견주의를 박경신 교수는 "왜곡된 형태의 '강자를 위한 복지정책'"이라고 규탄한다. 적절한 지적이며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박경신 교수는 변호사들의 이해를 반영한 이 "왜곡된 형태의 강자를 위한 복지정책"으로서 국가후견주의를 비판하면서 로스쿨법 제정과정 및 로스쿨 정원논란이 빚어진 와중에 각 대학들이 국가에 후견을 요청했던 사실에 대해선 함구한다. 이미 작년에 로스쿨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최순영의원의 답장에서 지적한 바도 있고, 지난 행인의 포스팅에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로스쿨법 제정과정과 로스쿨 정원논란 와중에 각 대학들이 볼멘 소리를 했던 내용 중에는 로스쿨 유치를 위해 투자된 각 대학의 투자비에 대해서 생각을 해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최순영의원의 편지에서는 각 대학의 로스쿨 유치전쟁을 '법학교육판 새만금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즉, 새만금사업이 이미 돈을 들였으니 어쩔 수 없이 물막이를 해야한다는 논리로 끝내 강행된 것처럼 로스쿨 사업 역시 각 대학이 돈을 퍼부었으니 어쩔 수 없이 로스쿨을 설치해야 한다는 논리로 전개되는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 실제로 해당 글이 작성될 당시, 즉 2006년 하반기까지만으로 보더라도 로스쿨 유치를 위해 투자된 각 대학의 투자비가 2000억을 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학은 로스쿨 유치를 위해 이토록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 마당에 로스쿨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결국 대학이 받는 피해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면서 정부와 국회를 압박했다. 해를 넘기자 로스쿨법을 둘러싼 국회의 공방은 사학법과의 딜을 이야기하면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이러거나 말거나 간에 각 대학은 계속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로스쿨 유치를 위한 재원투자를 감행했다. 결국 상반기를 넘기면서 우여곡절 끝에 로스쿨법이 통과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교수유치전쟁과 시설건설을 위해 돈이 쓰여졌고, 상반기를 지나면서 투자총액이 3000억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더니 최근에는 이 돈이 4000억에 이른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대학은 로스쿨 법 제정과정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로스쿨 정원논란이 벌어지자 여지없이 이곳 저곳에 지금까지 대학이 로스쿨 유치를 위해 투자했던 돈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어느 학교는 몇 십억, 어느 학교는 몇 백억을 썼다는 기사가 언론을 장식했고, 대학은 로스쿨 정원논란으로 인하여 대학이 투자한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은 정부의 탓이라고 떠들어 댄다. 박경신 교수가 변협을 비롯한 법조기득권세력의 이해를 반영한 정부의 정원 2000명 안에 대해 왜곡된 국가후견주의라고 비난한 것과 대비될 정도로 각 대학은 국가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요청했다.

 

기본적으로 각 대학은 아직 어떻게 짓겠다는 설계조차 나오지 않은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생돈을 들여놓고 돈 들였으니 빨리 분양하라고 나서는 볼썽 사나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렇게 자기들 멋대로 장래를 예측하고 투자한 것에 대해 국가더러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왜곡된 국가후견주의' 속에 안주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법조기득권 세력에 대한 왜곡된 국가후견주의를 비판하는 박경신 교수는 자신이 속해 있는 대학이라는 집단이 요청하는 왜곡된 국가후견주의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이 없다. 전형적인 이중잣대다. 왜 그걸 국가가 책임져야 하나?

 

이런 주장을 하는 대학 당국은 그동안 자교 출신 중에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청춘을 바치고 있는 고시생들을 위해 국가가 책임질 것을 집단으로 요청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교묘하게 말을 비틀어 이제와서 로스쿨을 설치해야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로스쿨 정원제도를 없애라고 주장한다. 로스쿨을 기왕에 설치할 바에는 정원제가 폐지되는 것이 옳다. 그건 인정한다. 그런데 왜 학부 법학과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하지 않는가? 그래야 로스쿨 정원제를 없애자는 주장에 설득력이 부여될 터인데 어째서 그런 주장을 하는 교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가?

 

지금 각 대학과 교수들은 법조기득권의 밥그릇 부여잡기를 비판할 계재가 못된다. 오히려 그런 비판을 하는 자기 자신들은 얼마나 자기 밥그릇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허구한 날 이중잣대로 본질을 왜곡하는 일은 학자로서 할 일이 아니다. 그 이중잣대의 눈금으로 전태일과 조영래를 들먹거리는 것은 적절한 예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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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6 20:35 2007/10/2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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