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이라는 말이 없는 사회
왈왈님의 [[펌]경상대 정진상 교수, '교육개혁' 2200km 자전거 대장정 나서] 에 관련된 글.
정진상 교수. 대단한 일을 준비하셨다. 원로에 고생하시겠는데 건강에 조심하시기 바란다. 아무튼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정진상 교수께서 활동하시는 민교협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력위조 사태와 관련하여 입장을 발표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이 웃기지도 않은 일련의 일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체제에 있다는 지적과 함께 그 대안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정진상 교수의 용기와 민교협의 문제지적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분들의 행동을 보면서도 못내 찝찝한 것은 지적되고 있는 바, '학벌'이 문제의 핵심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이분들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서 아는 동생의 일화가 생각났다. 이 녀석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집에서 노는 거 하나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재주를 발휘하며 재밌게 세상살던 놈이었는데, 어느날 덜컥 대학입학을 했다. 해서 행인과 대학 동기가 되었다.
하루는 술 한잔 진하게 빨면서 저 먼 옛날 안드로메다에서 단세포 생물로 살아가던 전생이야기까지 하던 중 왜 대학에 왔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바구를 깠겠다. 이넘 저넘이 진실인지 아니면 개구란지 모를 그넘의 '이유'에 대해 썰을 풀었는데, 그 중 오늘 갑자기 생각난 이 친구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이녀석이 하루는 초등학교 다니는 지 조카의 가정환경조사선가 뭔가 하는 것을 지 형님이 쓰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었더란다. 그런데 거기 보니까 부모의 학력을 기재하는 난이 있더란다. 그 순간 갑자기 이 담에 자기 자식이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해 가야하는데 거기다가 아버지 학력으로 '고졸'이라고 써야한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단다. 지가 고졸인 거는 뭐 별로 쪽팔린줄 모르고 살았는데, 자식이 친구부모들은 다 대졸인데 아부지는 왜 고졸이냐, 쪽팔려서 학교 못다니겠다 이런 이야기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나.
행인, 솔직히 고백컨데 이 말에 동의하다못해 똥꼬끄트머리까지 절절히 울리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었다. 어릴적 가정환경조사서에 시시콜콜한 항목까지 기재를 하면서 이 따위 것을 왜 작성하나 하며 분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올라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넘 지금 보험설계사 하면서 잘 먹고 잘 산다. 어차피 대학졸업이라는 학력 없어도 그 일 잘 해치울 능력이 있던 녀석이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세칭 명문대학 졸업장 가지고도 닭튀겨 파는 사람들 많다. 그 닭이 대졸자가 튀긴 것이라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 성심성의껏, 닭 한마리에 우주가 담겨있다는 심성으로 정성스럽게 튀긴 결과로 오늘도 손님들은 생맥 500 한 잔과 튀긴 닭 한 마리를 맛있게 먹는 거다.
배움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오죽하면 제사지낼때 올리는 지방에 '학생부군신위'라는 말을 쓰겠나? 인간은 죽어서도 학생인 거다. 그런 차원에서 대학에 간다는 거 이건 말릴 일이 아니라 장려할 일이다. 문제는 오바질이다.
학교를 다녔건, 초등학교만 나왔건, 고등학교 중퇴를 했건 간에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하등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선결조건은 그거다. 그런데 이 문제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없다. 특히 학력이라는 것이 계급형성의 기본축이 되어 있는 남한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정진상 교수나 민교협의 주장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선 별로 언급이 없다. 정진상 교수의 슬로건은 "△학벌 학력 간판을 부수자 △학벌 철폐로 차별 세상 끝장내자 △입시 폐지로 아이들을 살리자 △대학평준화로 사교육비 없애자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 결정나는, 미친 세상 갈아엎자"이다. 이 분의 관심사는 오직 대학이다. 대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은 있으되 대학 안 가도 사는데 지장 없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는 약소하다.
민교협 역시 마찬가진데 민교협의 입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서울중심 대학서열체제 타파 △공직자 지역균형선발제도 도입 △입사원서에 학력기재란 삭제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평가되는 사회적 관행 정착". 입사원서에 학력기재란 삭제하는 정도가 들어있을 뿐이다.
이 분들의 발언 자체가 가지는 학력차별해소에 대한 의지가 매우 미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분들의 평소 보여주시던 행태와도 무관하지 않다. 민교협 교수들 상당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문대학원제도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04년부터 촉발된 로스쿨과 관련하여 민교협은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이 대학교육을 정상화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경천동지할 아메바풍 교육개혁의지를 보여준 바 있다.
프랑스 교육체제가 어쩌구 하면서 남의 나라 제도까지 동원하여 옹호되었던 이 '전문대학원제도 도입' 찬성론은 까놓고 이야기 해서 명바기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비견되는 삽질이다. 한국 사회의 이 기형적인 교육풍토에서 '전문대학원'이 대세가 되면 대학교육은 전문대학원 입시교육으로 전락한다. 게다가 '전문대학원'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특정분야 전문기능인력을 양산하기 위한 체계다. 그 본질은 파묻은 채 '전문대학원' 진학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대학공부 열심히 함으로써 대학교육 정상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치원 원아들에게 눈깔사탕을 빨게 함으로써 칫솔질에 대한 메리트를 키워 충치를 예방하겠다는 말과 같다.
정진상 교수와 논쟁을 벌이던 중 '전문대학원 도입'이 결국 교수들의 밥그릇을 키우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나마 솔직한 정진상 교수, 그게 그렇긴 하다는 답변을 하시더라...
학력우대풍토에 대한 정진상 교수와 민교협의 비판에 대해선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와 동시에 바라는 것은 보다 진정성 있게 '대학'이라는 교육단계에 함몰된 연구분석보다는 '대학'이라는 것을 논외로 놓고 논의를 전개해줄 수 없겠는가 하는 거다.
'입시'문제의 해결은 '대학평준화'라는 시스템 도입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만 18세에 치루는 수능시험의 성적이 평생을 좌우하는 마빡이 골때리는 상황을 깨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문턱도 못가본 사람일지라도 먹고 사는데 하등 지장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진상 교수의 자전거 전국 순회와 민교협의 강력한 입장표명이 이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금석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학력'이라는 말 자체가 그닥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하길 바라며...
피에쑤 : 요즘 논문준비한다는 핑계로 남아도는 시간에 신문지들을 꼼꼼이 보게 되는데, 그넘의 칼럼은 죄다 무슨 교수며 한 자리 하는 인간들이 쓰고 있더라. 왜 이넘의 신문지에선 청소부나 버스기사 같은 사람들이 고정칼럼을 쓰는 꼴을 볼 수 없을까??? 아, 물론 TV도 마찬가지겠지만 TV는 보질 않아서리...
행인의 [학력이라는 말이 없는 사회] 에 달린 덧글에 관련된 글. (덧글에선 존칭을 사용했지만 본문에서는 그냥 쓰기 쉽게 평어체로 씁니다.) 요 직전 포스팅이었던 "학력이라는 말이 없는 사회"에 '음'이라는 분이 덧글을 주셨다. 평소 블로그에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응?)는 신조를 가지고 살던 행인이지만 손꾸락이 항상 가던 자판 위로만 가지는 않는 일이라 간혹 이렇게 심각한 포스팅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옛말에 이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