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번묻는 사회
이름없음님의 [위조학력논란. 그 속의 음모를 밝힌다.] 에 관련된 글.
"몇 학번이세요?"라고 묻는 물음만큼 짜증나는 일이 없다. 그거 알아서 어디다 써먹을라고? 소위 '386'이라는 이 양아치스러운 단어가 가지는 폭력성은 60년대에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배제를 통해 나타난다. 먹물의 우월성을 글로 실어 펴지 못하는 쪽팔린 주제를 학벌의 과시를 통해 해소하려는 이 강박증. 운동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농담조로 남한 3대 조직이라 일컬어지는 '호남향우회, 해병전우회, 고대동문회'. 호남향우회가 똘똘 뭉치는 거야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들의 피해의식을 유발시켰던 수많은 사건 사고, 정치모리배들의 치졸한 망나니짓, 518 등을 고려하면 이해할만할 정도다. 해병전우회,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살을 부딪치며 만들어낸 전우애가 사회까지 이어져 발현하는 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모여 자신들이 간직한 트라우마를 서로 치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역사적 고찰이나 물리적 환경에 대한 분석의 틀을 벗어나 존재하는 이 강위력한 고대 동문회의 끈끈한 조직력은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몇 해 전, 서울대 나와 유학 중인 어떤 인물과 메신저를 주고 받다가 서울대 폐지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행인은 서울대 폐지론에 대해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서울대 폐지해봐야 어차피 그 역할할 다른 대학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백날 서울대 폐지론 외쳐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여하한 이야기는 별론으로 하고, 아무튼 이 사람에게 어찌되었든 간에 서울대라는 학벌이 가지고 있는 이 사회의 기득권이라는 것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만은 분명한 거 아니냐고 질문을 했더랬다. 그랬더니 이 사람 왈, "나 서울대 나왔다고 덕본 거 별로 없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재밌는 것은 운동진영 내에서 평소 구조적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과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였던 사람들조차 학벌에 대한 문제가 자신의 개인사와 오버랩되는 지점에서는 이를 구조적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아프가니스탄 선교활동 중 납치된 사람들의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공교롭게도 "납치"라는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제기와 더불어 기독교에 대한 범 사회적인 공격이 있었다. 논란의 여지가 여러 각도에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격에 대응하는 기독교 신자들 중 상당수는 "일부의 문제를 전부의 문제로 환원하지 말라"는 주장을 되풀이한 바 있다.
야훼의 은사를 통해 세상의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이 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선 "일부"만이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식으로 문제를 비켜나간다. 종교인들이 자기 종교의 보위를 위해 동원하는 이 논리가 학벌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것은 조금은 어색한 아이러니다. 요는 학벌이고 뭐고 간에 그것이 남의 문제일 때는 구조적 문제가 되고 나의 문제일 때는 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편할 때만.
대학이라는 곳. 말 그대로 큰 학문을 배우는 곳이다...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미 대학은 통계적으로 청년실업률을 낮추는 장치로 전락한 채 예비사회인들을 기능인력으로 양산하는 취업센터로 변질된지 오래다. 당해년도 고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이 현상이 진실로 정상적인 것인지 우리 사회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수능 성적에 맞춰 학교와 학과를 설정하는 것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관행으로 정착했다. 동네 골목길에서 통닭장사를 하더라도대학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적성이고 나발이고 관계 없이 졸업장만 얻으면 된다. 다만, 그 졸업장에 찍히는 학교가 저 어디 지방에 붙어 있는 이름도 모르는 대학이 아니라면 더 좋을 뿐이다.
왜 학번을 묻는가? 상대방의 학번을 확인함으로써 어떤 위계의 형성을 도모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보다는 상대방의 학번을 물음으로써 은연중 자신도 역시 학번을 물을 수 있는 일정한 학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그럼으로써 공히 이 사회 안에서 일정정도 대우받아야할 위치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는 행위가 아닌지.
"라따뚜이"라는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음식평론가 "이고"는 파리 최고의 요리사가 경영하던 음식점의 존폐를 결정할 정도의 권위를 가진 사람이다. 이고의 타이프라이터는 음식점의 살생부였던 거다. 그런데 한 마리 쥐가 만든 음식에 감동한 이고는 그 음식을 만든 요리사가 '사람'이 아닌 '쥐'라는 사실을 알고도 오로지 음식에 대한 평가를 한다. 그에게는 학벌도 아니고 경력도 아니라 오직 음식의 '맛'만이 평가의 기준이었던 거다.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학력위조사태의 근간은 어떤 이의 활동과 행위 자체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보다는 그 활동과 행위를 한 사람의 학벌과 경력을 먼저 염두에 두는 요사스러운 행태가 원인이었다. 음식은 맛으로 평가하고, 연극은 연기로 평가하면 된다. 예술작품은 그 예술성만을 가지고 평가하면 그만이고, 음악은 그 음악이 주는 감흥만을 가지고 평가하면 된다. 거기에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이 남잔지 여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학위를 가지고 있는지, 유학파인지 국내파인지가 전제될 필요가 없다.
실제 이 사회를 개판으로 만든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최고학벌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던 사람들이었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편법을 동원해 학력을 위조하고 활동했던 사람들 중 이 사회를 개판으로 만드는 악역을 담당했던 사람이 누가 있었나? 이들은 상도덕을 위반했을지언정 다른 사람들의 고혈을 빨지는 않았다. 도대체 누가 죄인인가?
흠흠흠. 전인권씨 남자의 탄생인가 하는 책에서도 그 학번이랑 나이 묻는거에 대해서 나오더군요. 의도하지 않고 뱉는 말이더라도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자신의 위치와 소속, 그리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묻고 그 안에서 각자의 위계 포지션을 찾는 아주 짧게 압축된 한 마디라고.
개인적으로 이번 학력논란의 제일 코미디로 꼽는건 말입니다, 사회가 이 지경이 되도록 실제 전문가로서의 능력과 무관하게 학벌 명패 하나 갖고 호강하며 분에 넘치는 사기질 하고 댕긴데 대한 비판이 아니라 '왜 명패가 가짜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엔 짭퉁 명패를 가진 애덜과는 달리 진퉁에 '명품'인 명패를 가진 연예인/사람들을 추켜세워주면서 끝끝내 진짜 문제는 옆으로 다 피해가고 아니나다를까 학벌사회의 틀만 오히려 확고히 다져주며 끝내더군요.
처음 영상작업할 때 하도 출신학교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떨 때는 배시시 웃기만 하고 어떨 때는 안다녔다고 하고
어떨 때는 맞춰보라고 하고, 아주 생쇼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쯤이면 이런 질문 안하고 안받으면서 살게 될까요
학력위조에 관한 한, 죄인은 일차로 그것으로 기득권 얻은 사람들
이차로 언론, 삼차로 교육정책인 것 같은데...거 참...
7살에 학교 들어와 동기보다 한살 어린 나도 학번 물어보면 당황한다오 ㅡ.ㅡ;;; 30년 동안 늘 그랬어.
satry/ 가장 무시무시한 부분이죠. 진짜 학벌사회를 위한 구축작업. 그리하여 기득권을 보유한 네트워크 안에 포섭될 수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되는 새로운 계층의 형성. 무시무시한 한편 뒤집어 보면 아주 웃기고 자빠진 짓이죠. 죽어서 학벌따라 천당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ㅎㅎ
현현/ 가끔 저는 신경질이 나면 초등학교 입학학번을 대줍니다. ㅋㅋ
삼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여... ㅡ.ㅡ+
조선일보에서는 이번 사건이 학벌을 위조한 '개인의 문제'이지 우리 사회의 '학벌문제' 자체는 아니라고 떠든다더군요.
무위/ 그게 조선일보의 장점이죠. 그 맛도 없으면 조선일보 볼 거 정말 없지 않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