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시봉님의 [집회] 에 관련된 글.

 

 

#1.

어차피 집시법 자체가 위헌이라 그 내부의 조문들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없을 수도 있겠다. 그치만 함 보자. 집시법 조항 중에서 두 번째 손가락으로 꼽으라면 서운할 정도의 독소조항이 바로 그 유명한 '100m' 제한규정이다. 특정 기관의 반경 100m 이내에서는 집회시위도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당연히 여기엔 대사관도 끼어 있다. 미국대사관은 말할 것도 없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11조제3호에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규정에는 미국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할 수도 있다는 구절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별로 기대할 것은 없다. 규정을 그대로 옮겨보면 집회가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그 앞에서 집회시위를 할 수 있다. 법이라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시민들을 약올리는 구절 얼마든지 있다. 휴일날, 다 놀러간 빈 대사관을 향해 욕을 하던 비난을 하던 그 앞에 사람들이 모여서 난장판을 벌이던 대사관에는 아무 일도 없다. 휴일날 대사관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난리 굿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기냥 어디 좋은데 가서 신나게 놀고 오면 월요일부터 아무 이상 없이 근무 가능하다.

 

#2.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한미 FTA반대 '범국민대회'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시청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도 사람들이었지만 경찰의 도로봉쇄를 뚫기 위해 미리 이곳 저곳에 가 있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던 듯 하다. 결의는 충천했고, 분노의 한숨은 여기저기서 들려 나왔다.

 

여러 대오로 나뉜 사람들은 시청에서 광화문쪽으로도 직접 돌파를 시작했고, 일부는 종로3가에서 시작해 낙원상가 옆을 지나 종로서 앞을 통과하여 광화문으로 진출했다. 경찰은 성난 대오를 막을 수 없었다. 경찰 나름대로 '폭력진압'이라는 비난을 고려해서인지 시위대에게 방패를 휘두르거나 진압봉을 휘두르지는 않았는데, 경력들이 방패와 진압봉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시위대를 막을 방법은 없다. 그게 폭력의 한계다.

 

어쨌든 참여연대 앞에서 일단 주춤했던 대오는 다시 저지선을 뚫고 광화문으로 갔다. 얼마만인가? 성난 시위대가 광화문을 점거한 일이. 그런데, 미 대사관 앞까지 진출한 본대오가 광화문쪽으로 진출을 하지 않는다. 확인을 해봤더니 본 행사를 미 대사관 앞에서 치룬 후 정리집회를 한단다. 무슨 소린가?

 

경력들은 청와대 진입로쪽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경복궁에서 청와대로 올라갈 수 있는 양쪽 도로는 순식간에 몰려든 경력들로 새카맣게 뒤덮였다. 광화문 진입을 막고 있는 경찰의 차벽 뒤로 경력들이 계속 줄어들면서 청와대방면 저지선으로 몰려들었다. 얼마든지 뚫고 광화문까지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3.

관계자 한 사람의 말은 충격이었다. 방송차량이 차벽때문에 광화문으로 올라올 수 없기 때문에 정리집회를 대사관 앞에서 한단다. 웃기는 소리다. 방송차량이 없으면 집회를 못하나? 시위를 못하나? 방송차량 연단에 올라가 연사들이 줄줄이 발언을 해야 집회가 되는 건가? 6월 항쟁 때 방송차가 있어서 항쟁 성공했다는 소리 들어본 적이 없다.

 

어쨌든 광화문 대오는 한참을 대치하고 있다가 결국 대사관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기가 막혔다. 맘만 먹으면 청와대 앞을 점거할 수도 있었다. 4.19 이래 대통령 관저 앞에 시위대가 몰려갔던 적이 있었는가? 정권에 대해 분노한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노무현이 중동에 가있건 어쨌건 간에 이건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절호의 기회는 '방송차'의 진퇴여부때문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리고 대사관 앞. "한미 FTA 반대 집회"는 어느새 "반미투쟁" 집회가 되어 있었다. 압권은 마지막 연사로 나선 한총련 의장. 개인적으로 범국본에서는 한총련 의장 교육 좀 시켜서 연단에 올려보냈으면 한다. 지가 그 자리에 올라간 이유 정도는 알고 발언을 해야할 것 아닌가?

 

한총련 의장의 발언수준으로 볼 때, 앞으로 전개될 한-EU FTA, 한-호주 FTA, 한-ASEAN FTA 등등은 반대할 이유가 없게 된다. 미국과 하는 것만 아니면 다 될 수 있는 거다. 이런 앞뒤 없는 발언 들으려고 미 대사관 앞에 자리 잡았던 건가?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반미투쟁의 결의를 다지면 되는 거였나?

 

#4.

반미하는 거 좋다. 당연히 해야 된다. 그런데 그 따위로 하면 안 된다. 한미FTA에 대한 책임은 우선적으로 정부에게 물어야 한다. 정부 수장인 대통령에게 물어야 한다. 미국대사관? 걔들 책임을 모르는 사람 없다. 그러나 미국대사관은 말 그대로 미국의 이해를 위해 움직인다. 한국의 이해를 위해 움직이지 않고 미국의 이해대로 움직이는 한국정부를 타격하는 것이 우선이지 미국대사관은 그 다음이다.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운동은 종국에 반미로 이어진다. 반미는 존재하는 모든 운동의 종착지다. 제국주의 패권국가를 모시고 있어야 하는 전 세계 민중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그렇다. 기왕 그럴 거라면 좀 제대로 해봐라. 이게 뭔가? 그저 "미국반대" "반미"만 외치면, 그거 외치면서 대사관 앞에서 두어시간 집회하면 성공한 집회인가?

 

어제 집회 중에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의미도 있었고 성과도 있었는데, 범국본의 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인해 많은 상실이 있었다. 범국본... 이름을 바꾸던지... 반미투쟁본부로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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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6 14:13 2007/03/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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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갈 수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렀었는데.. 이거 보니 차라리 못간게 정신건강에는 더 좋았을 거 같은;; 쿨럭;

  2. 그런 뒷사정이 있었군요...

  3. 레이/ 시위대의 물결이 청와대 앞까지 진출했다면 아마 어제 신문의 기사들은 모두 논조가 바뀌었을 거에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이제 또 뭘 할지...

    동수/ 반갑습니다. 뒷사정이야 뭐 저거 뿐만이 아니져... 쩝...

  4. 집시법에 따르면 수요집회는 명백한 범법행위였군요; 분명 대사관 근무일일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바로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이 시위에 매번 참가하는 할머니들은 악질적이고 상습적인 범법행위자가 되는 것인가요; 이런 말도 안되는... 새삼스레 욕이나오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