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씨잘데기 없는 철학자 나부랭이(?) 브루디외가 죽었을 때도 난리가 났었던 '좌익' 공화국이 위대한 아메리카의 이데올로거 역할을 하던 포드 전 미국대통령의 서거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는 것에 대해 조갑제 기자, 매우 갑갑했던가보다. 해서 글을 떡 하니 올렸다.
고백하건데, 사상의 지향을 떠나 조갑제의 글을 읽는 맛은 그가 글을 참 잘 쓴다는데 있다. 조갑제는 정말 글을 잘 쓴다. 그것도 매우 기자답게 쓴다. 문제는 자기가 쓰는 글 안에 스스로 자기논리를 부정하는 내용을 올린다는 것인데, 조갑제는 이 문제점을 휘황찬란한 글쓰기 재주를 통해 마치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포장한다는 것이다. 이게 조갑제가 가진 뛰어난 장점이다.
생각해보면 그 장점은 조갑제 스스로가 자신의 논리적 모순을 잘 모르기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만일 알면서도 조갑제가 그러한 능력을 보이는 것이라면 그건 조갑제가 천재라는 얘기가 된다. 아깝도다, 이런 천재가 그 뛰어난 문장력을 이토록 천박한 곳에 이용하고 있다니...
최근들어 조갑제 기자의 글빨이 많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절절했던 행인, 다시 그의 신통방통한 재주를 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그러더니 결국 그 뛰어남, 그 천박함이 묘하게 어우러진 글재주를 다시 한 번 발휘한 글이 떴으니, 바로 포드서거에 즈음하여 쓴 글, "타계한 포드 대통령과 헬싱키 선언"이 그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헬싱키 선언은 황우석 파동때 논란이 되었던 그 헬싱키 선언이 아니라 1975년 유럽안보회의가 채택한 선언을 말한다.
기자답게 글 쓸 줄 아는 그의 실력이 잘 드러나 있는 글이다. 지금은 조갑제의 글 내용이 가지고 있는 골때리는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그의 문장제조실력을 감상하는 중이므로 이 링크를 타고 글을 읽더라도 이 점을 십분 감안하시기 바란다.
조갑제는 헬싱키선언이 동구권에 '인권'의 파고를 일으켜 결국 20년 후에 동구권이 몰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면서 여기에 7.4 남북공동선명과 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대입시킨다. 그리고 결론은? 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는 항변.
이 항변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옳다. 사실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615선언이라는 거, 이걸 가지고 목숨걸고 달려들면서 615정신이니 뭐니 하는 꼴을 보면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는 생각을 한 두번 한 것이 아니다. 뭔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하는데, 615 이후 그닥 뭣이 나온 건 없다. 되려 남북기본합의서에 의거해 마련되었던 교류협력법이 오늘날 남북교류의 근거가 되고 있다. 615는 그저 그렇게 하자고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조갑제의 이러한 비판은 다른 목적의식에서 출발한다.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는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를 한 주체의 성격때문에 조갑제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바로 박정희 정권과 그 아류였던 노태우정권. 그는 그들을 찬양하고 싶은 거다. 헬싱키선언이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인권신장에 특정한 기여를 했다고 분석하고 있는 조갑제는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실제로 북한의 '인권'신장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고, 이를 통해 동구권이 붕괴했던 것처럼 북한정권도 붕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데, 어째 불균형한 비교가 되고 있다.
헬싱키선언은 조갑제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국경보장과 안보보장은 물론이려니와 인권관련 합의들이 포함되어 있다. 조갑제가 서술하듯 헬싱키선언은 소련과 동구권 내에 인권에 대한 사고를 불어넣게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인권조항(서명국 내에서 기본적 인권의 보장, 이동의 자유와 사상 교류의 자유 보장 등)에 근거한 지속적인 작업들이 결국 구 동구체제를 붕괴시키는 과정을 연출했다. 그래서 흔히 이 과정을 '헬싱키 프로세스(Helsinki Process)'라 부를 정도다.
하지만, 조갑제가 은근슬쩍 끼워넣은 7.4남북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는 물론이려니와 615선언까지도 그 내용 중에 국경선의 인정이나 인권관련 내용은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다. 이 대목에서 남북관계와 관련된 각 성명과 선언, 합의문들에는 조갑제처럼 선언무효니 뭐니 할 껀수가 없는 거다. 그러니 헬싱키선언을 운운하면서 군사정권의 업적을 교묘하게 끼워넣고자 하는 조갑제의 서술이 그닥 설득력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의 조갑제가 누군가? 행인이 반한 논술의 실력자 아닌가 말이다. 본문에다가 다시 글 한편을 더 만들어 넣은 조갑제는 2부순서에서 바로 '헬싱키 프로세스'같은 순차과정에 대해 제안을 하고 있다. 행인 멋대로 명명한 '갑제 프로세스'는 이렇다.
대북경제제재 강화 -> 북한의 대화테이블 참석 -> 인권조항이 삽입된 의제강제 -> 북한 내부의 인권상황 변동 -> 협상내용을 기반으로 한 김정일 정권 감시 -> 북한 붕괴
그럴싸하지 않은가? '갑제 프로세스'는 '헬싱키 프로세스'를 그대로 원용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붕괴된 다음에 뭘로 북한주민들을 먹여살릴지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이 없는 조갑제의 한계를 염두에 둘 때, 그 머리로 이런 프로세스를 만들어낸 것에 대해서는 그닥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조갑제가 저지른 실수는 바로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대목에서 발생했다. 조갑제가 주장한 '갑제 프로세스'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북한', 다시 말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 헬싱키프로세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는 동서독을 서구와 동구 양측 모두가 각각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갑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온 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김정일을 인간취급한 적도 없다. 통일은 '주석궁을 땡끄로' 밀어 붙일 때 완수되는 것이며, 김정일은 인간 백정이며, 북한은 반군이 점령한 미수복지라는 논리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조갑제였다. 그런 조갑제가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고, 김정일을 정부의 수반으로 인정하는 '프로세스'를 제안하는 것인가?
예컨대, 헬싱키선언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소련내부에서 논쟁이 발생했을 때, 즉 인권과 관련한 외부적인 견제가 내정간섭이냐 아니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을 때, 소련의 외무장관이었던 그로미코는 "무엇이 내정간섭인가 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소련정부뿐이다. 우리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라고 했고 브레즈네프는 이를 지지했다. 브레즈네프의 판단이 현명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동서세력균형의 파열을 자초한 실착이었는지는 평가하는 자마다 달리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인권법'이라는 법을 미국이 만들고 이를 근거로 북한에 대해 '내정간섭'을 할 것이라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는데, '내정간섭'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을 정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순리다. 따라서 북한을 정권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조갑제는 그동안 일부 세력들이 주장하던 북한내정간섭 운운에 대해 결코 이를 내정간섭으로 인정하지 않아왔다.
그런 자세라면, 사실 6자회담이라는 구조 역시 조갑제의 입장에서는 웃기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6자회담은 기본적으로 6개 '국가'가 함께하는 회의 테이블인데, 여기에 북한이 주권을 가진 국가의 자격으로 참석한다는 것은 6자회담의 '격'을 떨어트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갑제 프로세스'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그동안 조갑제가 취해왔던 자세와는 상당히 다른 차원에서 만들어진 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을 회의장으로 나오게 하고, 여기서 인권관련내용이 들어 있는 합의를 종용하고, 이후 그 합의이행에 관한 감시를 함으로써 종국에 북한정권을 붕괴시키자는 이 주장은 처음부터 북한을 국가단위, 즉 회의장에서 대등한 입장으로 이야기하고 합의를 할 수 있는 주체로 보지 않는 조갑제의 입장에서는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장제조실력을 보자고 해놓고 왠 내용분석이냐고? 실제 그 의미를 분석해보면 자기정체성마저도 헷갈리는 조갑제지만 문장자체만 보자면 아주 그럴싸하게 꾸며낸다는 점에서 점수를 좀 주기 위해 말이 길어진 거다. 군사정권에 대한 끊임없는 향수를, 그 간단한 사고의 편린을 이렇게 외국 사례를 끌어들이면서, 외국의 인물을 끌어들이면서 복잡하고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는 이 논술실력. 대단하지 않은가?
이토록 뛰어난 문장력을 자랑하는 조갑제지만 요즘 먹고 살기 힘든갑다. 책장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게다가 뭐 또 노무현을 고발하겠다고 설치고 있다. 내란죄와 외환죄로 고발하겠다는 것인데, 이 쇼맨쉽이 별로 먹히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래 그림을 보라. 멋지지 않은가? "진정한 애국은 지갑과 손발로 표현됩니다"
애국도 돈 없으면 할 수 없음을 몸으로 실천하는 "실천하는 우익의 브레인" 조갑제, 과거 그의 문장력을 보며 감탄했던 그 시절로 좀 돌아왔음 좋겠다. 그래야 까도 재미가 있지, 이건 뭐 맹숭맹숭 해서...
우익의 무기, 많이 녹슬었다...
대체 공력이 단전에 어디까지 차오르면 형님처럼 갑제의 또라이글을 참고 다 읽을 수 있는겝니까. 까딱 잘못눌러 갑제 페이지가 열려도 전 심장이 벌렁거려서. ㅡㅡ;; 게다가 도저히 손대기 드러버서 처다도못보겠는걸 이렇게 장문의 글로 대꾸할 수 있는겝니까.
형님의 하드코어적 취향이 놀라운 따름임다. ㅡ.ㅡ
왼쪽날개/ 내 취향이 좀 독특하지. 뭐 새삼스럽게. 그 독특한 취향 덕분에 왼날하고도 만나고 그런 거 아니겄어? ^^;;;
왼쪽날개님의 말씀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_-;
조갑제는 우익 중에서도 가장 대가리 안굴러가는 나부랭이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저도 조갑제글은 너무 하드코어 코미디같아서 적응이 잘 안되더라구여
지각생/ 헉...
피에로/ 우익집단에서는 조갑제가 '브레인' 내지는 우익이데올로기의 전파자 정도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0^
적응까지는 안 하셔도 되고, 굳이 뭐 읽어보실 필요도 없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