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의 비판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유로울까?
근래 최장집 교수의 행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다. 노뽕환자들의 경우, 그간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평가해왔던 태도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최장집은 졸지에 기득권으로 치부된다. 이와 더불어 최장집에게 왜 수구 또는 보수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고 엄한 노무현만 때려잡으려 하느냐며 뾰루퉁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막무가내로 그래, 나중에 박근혜가 정권 잡으면 너 어떻게 할지 두고 보겠다는 식의 협박을 날리는 사람도 있다. 나중에 최장집을 "민노 찌질이"로 만들어 버린다.(혹시 링크 따라가 보시면 알겠지만 이 글들 죄다 "서프라이즈"에 올라온 글들이다. 정신건강을 위해 일독을 권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최장집의 발언들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노리스도의 한숨소리만으로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노뽕환자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로 최장집의 발언들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장집이 그 발언들을 한 1년 전쯤에만 해줬어도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만시지탄을 이야기하기에도 너무 늦은 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계속 든다.
최장집의 발언에 대한 세세한 분석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해당 기사만 읽어 봐도 그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노구라당 열혈 지지자들이 보이는 저 과민반응은 첫째, 최장집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었거나 애초부터 이해할 생각이 없기에 나타난 것이고, 둘째로 노무현의 실패를 곧 자신들의 실패로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공동체"적 집단의식의 발로일 뿐이다. 이에 대해 최장집의 발언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리고 노뽕환자들의 반발에 반응할 가치는 별로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최장집이 비판한 바, 노무현 참여정부와 소위 '386' 정치인들의 무능과 실패에 대한 그의 견해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유로울 수 있는가이다. 최장집이 집권여당과 참여정부를 향해 겨눈 칼날은 사실 민주노동당에게도 언제든지 똑같이 겨눌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그 칼끝이 우리를 향해 놓여있지 않다보니 마치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인 것처럼 관망의 자세를 취하고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대목에서 "똥줄"이 타는 듯한 심정이 들어야 정상인 거다.
최장집은 정당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통해 구현하려는 일련의 정책들에 대해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열우당이 이야기하는 전면적인 오픈프라이머리와 같은 논의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다. 이것은 소위 "대중" 또는 "민중"을 적들이 내세우는 "국민"이라는 추상적 집합체에 대한 대당으로서 구호의 전면에 세우고 "전체"의 요구로 승화시켜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했던 "운동권 스타일"이 정치활동에 있어서도 전혀 변함없이 승계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에서 민주노동당 역시 전혀 자유로울 수 없다. 헤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으나 당 사무총장이 한 언론에서 여러 형태의 오픈프라이머리제도 도입을 이야기한 것도 그 중 하나다. 사실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의 그러한 발언이 과연 열우당만큼의 고민 끝에 나온 것인지도 의문이다. 문제는 헤프닝으로 끝난 오픈프라이머리도입 운운 말고 실제 진행되는 민주노동당의 사업 중에도 최장집의 칼날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미 FTA 국민투표" 운동이다.
"올인"까지 이야기되는 마당에 이 국민투표 운동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한 신뢰인지, 아니면 정치적 공세의 일환으로 세간의 주목을 이끌기 위한 전술에 불과한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한미 FTA에 대한 저변의 인식을 끌어올리기 위한 특별한 대책이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골육지책으로 나온 전술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주장의 과정이나 배경이 너무 단순하다.
최장집의 논의 중 또 하나 유념해서 바라봐야 할 것은 인적역량에 관한 것이다. 최장집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요인 중 하나로 인적역량의 구축이 부진했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물론 최장집의 관점은 노무현 정권이 성립한 이후로 한정되어 있는데, 이는 동의하기 어렵다. 인적역량의 구축이라는 것이 단지 정권을 잡은 후 몇 년 만에 가능한 사안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있는 사람 중에 뽑아 쓰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노무현 정권만 예를 들어 보더라도 노무현이 자기 인적 풀(pool) 안에서 끌어다 쓸 수 있는 사람은 불과 1년 만에 바닥이 드러났다. 그만큼 정책과 비전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인적자원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소위 말하는 코드인사니 돌려막기니 하는 인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결과적으로 정부수장의 주변에 인의 장막을 치는 정도로 인사인선이 끝나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어떤가? 올 초 지도부선거가 끝나고 신임 정책위 의장이 최초 회의를 개최했을 때,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하면서 2012년 집권을 이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적어도 6년 후 집권을 이야기할 정도면 이미 "섀도우 캐비닛"에 대한 구상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과연 우리에게 그러한 구상조차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이 때, 신임 의장의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저는 여기 있는 (40명의) 정책연구원들이 섀도우 캐비닛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원들의 사기진작용 발언이었는지, 정책연구원들 모두가 각각 정치활동가로 선언하고 밖으로 나가라는 이야긴지, 아니면 "섀도우 캐비닛"의 의미를 모르고 한 말인지 그 진의가 지금도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소위 지도부의 인식이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인적 역량의 확충이라는 것은 어느 자리에 대충 앉혀놓을 수 있는 사람 몇 명을 확보해 놓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책역량과 행정실무역량을 모두 겸비한 사람들을 찾아내거나 교육시키는 것과 동시에 진보에 대한 견고한 전망과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러한 요건이 구비되어 있는 사람을 한 둘도 아니고 수백 수천명을 만들어 놓아야만 집권이 가능한 것이고 참여정부와 "386"들이 벌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거다. 지금 이를 위해 당이 하고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
노뽕 환자들이 최장집을 집중구타한다고 해서 우리가 굳이 최장집을 옹호하고 나설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장집의 발언은 노뽕환자들만 반응할 수 있는 진통제가 아니다. 그건 진보운동한다는 자부심 속에서 자기 자신의 문제점을 간과하고 지나가는 민주노동당 구성원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의 비판이 되기 때문이다. 최장집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집권은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아니, 그렇게만 된다면 굳이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보다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담론이 상식적으로 통용되고 있을 테니까.
'섀도우 캐비닛'의 의미를 몰랐다는데 한표.
육아를 포기하고 '헌신'할 연구원을 찾는 것 같은디요? ㅎㅎ
실은 제 생각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