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의 사망
공중파 TV프로그램 중 거의 유일하게 고정적으로 찾아서 보던 프로그램이 '폭소클럽'이라는 코메디였다. 코메디중의 코메디, 개그중의 개그는 역시 스탠드 업 코메디인데, 아마도 본격 스탠드 업 코메디를 보여주었던 프로그램은 이거 하나 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이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물론 시청률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 잘난 시청률때문에 이런 고급 코메디프로를 폐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블랑카를 통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단편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장애인 개그맨의 결코 웃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슬랩스틱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초창기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사물흉내개그도 기억에 남고, 도올강의를 패러디한 돌강의, 성에 대한 담론을 새롭게 구성했던 과학강의, 최근의 떴다 김샘 강의까지 강의형태로 사회의 일상을 꼬집었던 프로그램은 무척 신선한 프로그램들이었다.
폭소클럽이 배출한 걸출한 개그맨들은 왕성하게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중견 코메디언이나 개그맨들이 출현하기도 했지만 신인 개그맨들로 하여금 연기에 대한 관객의 평가를 직접 받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 이 프로그램 덕분에 훌륭한 코메디 연기자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개그맨으로 시작해서 연기자로 전업하거나 전문 MC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코메디를 전문적으로 연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징글징글한 세상에 일정한 활력을 얻은 것은 비단 행인 뿐만은 아닐 거다.
최근 각 방송국들이 진행하는 코메디 프로그램들에 아쉬운 것은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유행어를 만들어 내는 것에 혈안이 된 듯한 말장난의 연속, 그저 한 번 웃기고 마는 인스턴트 코메디의 범람. 거기에는 웃음은 있으되 웃음을 통해 유희로 전화하는 삶의 진득한 깊이가 없다.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경향이 그러하다는 측면에서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 와중에 희화를 통한 비판과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던 프로그램이 폐지된 것은 아쉽기 그지 없는 일이다.
구라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김구라가 어느 언론에서 토로했듯이 스탠드 업 코메디의 쇠퇴는 웃음이 가지는 정화능력의 일정부분을 제한하는 현상일 것이다. 특히 그동안 코메디를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처럼 되어 있던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웃음을 통한 비판이 절실하다. 비판이 항상 근엄할 필요도 없거니와 근엄함만으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한다는 것 역시 사회를 딱딱하게 하는데 일조할 뿐이니까.
예를 들어 한나라당이 목숨걸고 지키겠다고 설레발이를 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같은 경우, 이건 그냥 코메디거리일 뿐이다. 얼마나 웃기는 일이 많은가? 연전에 문근영이 북한에 연탄 보낸다고 했을 때, 국가보안법의 잣대를 들이밀었다면 어땠을까? 완전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얼마전 김문수가 북한의 위폐를 입수했을 때, 이건 완전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 아닌가? 김문수도 웃기는 짓을 한 거지만 그걸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고 하면 이거 역시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기 충분하다.
사실 이런 경우에 한국의 코메디언들, 정치풍자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게 불가능하다. 아직도 코메디언들이나 개그맨들이나 이런 류의 정치풍자를 공중파를 통해 시도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방송은 권력과 유착되어 있고, 지들 목에 칼날 들어올만한 일이라면 될 수 있는 한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속성이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는 이상하게 코메디언이나 개그맨들을 단순히 '웃기는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식으로 보는 성향이 있다. 그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면 건방지다고 생각한다. 지들이 뭘 안다고 그러는가 하는 비아냥이나 나오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런 비아냥 하시는 고명한 분들, 술 한 잔 들어가면 안주 대신 정치인들 씹어대는 분이 한 둘이 아니다. 그분들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가 딱 이거다. 댁들은 정치에 대해 뭐 아슈?
어차피 뭐 알아야 떠들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모르는 거 있으면 포털사이트 검색창 두드리면 대충 알 수 있다. 문제는 얼마나 그 내용들을 설득력 있게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하는가이다. 근엄하게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걸 희화시킬 사람도 있어야 한다. 주장하고 싶은 거, 한국 코메디언들에게 정치를 풍자할 자유를 줄 것. 정치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도록 보장할 것. 이게 다다.
이 분야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사람이 있다. 적어도 구라계에서만큼은 그 공헌을 높이 살만한 사람인데 다름 아니라 김형곤이다. 일전에 한 번 얼핏 이 분에 대한 평가를 한 적이 있다. 한참 '엄혹한' 시절에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란 코메디를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세상물정 잘 모르던 그 시기에도 이 "회장님..."이 정권에 대한 신랄한 풍자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을 정도였다. 꼭지 말미에 항상 걱정 근심 다 안고 있는 푸짐한 회장님 김형곤이 자기 턱을 주먹으로 때리며 "잘 될 턱이 있나"라고 했던 것이 당시 영부인을 풍자한 것임은 다들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많지 않은 연륜임에도 온갖 풍상 다 겪은 김형곤. 정치판에도 잘못 발을 들이밀었다가 욕을 본 적도 있고, 가정사 역시 평탄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형곤이라는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어려운 현실에서도 자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했고, 자기 몸과 자기 생활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꾸준한 행동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공포의 삼겹살'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살이 쪘던 그가 30Kg이나 빠진 몸매로 나타났을 때, 큰 병이라도 걸렸는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정치풍자코메디의 맥을 잇기 위해 극단을 만들고 꾸준히 자기 색깔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에서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가 공연한 내용 전체가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러한 그의 모습은 또 다른 측면에서 '용기'를 생각케하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행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군면제 받으려고 살을 찌웠는데 결국 평발때문에 면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이 사람들을 웃기려고 하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진실이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신체적 약점 및 사회적 약점에 대해 웃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그가 멋있었다. 공연할 때마다 관객을 웃기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이마가 언제나 땀에 흥건히 젖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구라계의 한 획을 그었던 김형곤이 돌연 사망했다. 이제 그는 구라계의 전설로 남을 것이다. 구라다운 구라가 아쉬운 오늘날, 온갖 개구라가 판을 치는 오늘날, 진정한 뻥구라의 사표가 된 김형곤. 항상 웃음 가득한 곳으로 가서 행복하시라...
라디오헤드, 핑크플로이드, 에미넴, 다이어스트레이츠, 자니 카슨... 외국에는 흔히 보이는 사회현안에 적극적인 연애인들이 유독 우리나에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저들의 모국보다 우리나라는 더 좃스런 현상들이 많은데 참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좀 알려진 연애인들의 그 면면을 살펴보면, 예술성이나 자신만의 개성이나 장인정신으로 승부하기 보단 시류와 유행에 편승해서 대충 한몫 잡아보려는 인스턴트 라면스프와 같은 부류들이 대부분이다. 원더걸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