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지도부 선거를 보며 드는 생각

(1) 지도부라는 말 안 썼으면 좋겠는데, 마땅하게 대체할 단어가 없다. 그냥 편의상 지도부라는 말을 사용한다.

 

(2) 당게에다가는 큰 일이 나지 않는 한 글을 쓰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냥 여기다가 올린다.

 

당 지도부 선거가 한참이다. 인물 위주의 정치를 지양하는 입장에서 당 지도부 선거가 인기투표가 아닌 그야말로 당의 방향성과 정책을 생산하는 격론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왠지 찝찝하다. 기대가 너무 커서일까.

 

특히 선거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난 2년 가까운 기간 동안의 정책위 활동에 대한 평가와 정책위 의장 후보들이 제시하는 정책위의 상을 보며 많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세 명의 정책위 의장 후보 중 특히 두 사람은 정책위를 당 사업의 실무주체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당원들이 정책위의 위상에 대해 명확한 상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정책연구원들은 뭘 하는 사람들이어야 하는가? 이게 감이 안 잡히기 때문이다. 학위 논문준비하듯 구석에 처박혀 책과 자료를 읽고 거기서 뭔가 그럴싸한 쏘스를 뽑아내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집회시위하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조직화사업을 하고 투쟁 최전선에 몸을 던져야 하는 사람들인가?

 

지난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정책연구원들이 한 사업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진보운동진영과 당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형성사업

둘째, 당헌 및 당 강령과 총선 및 대선과정에서 구성된 공약사항을 구체화하는 사업

셋째, 사회 각 의제를 분석하고 진보적 입장에서 당의 정책방향을 형성하는 사업

넷째, 원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사업

다섯째, 당 정책을 당원들에게 전파하고 당원들의 참여를 통해 실체화하는 사업

 

이 사업들 중 물론 잘 된 부분도 있고 미흡한 부분도 있다. 또한 정책연구원 각각의 능력과 활동영역에 따라 차이도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정책연구원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하나의 합의가 있었다. 그건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일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책임은 진다. 그러나 성과를 내 것으로 하진 않는다. 이것이 정책연구원들의 자세였고,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러한 자세가 지금까지 견지되어 오고 있다고 보인다.

 

정책연구원들은 당의 정책을 그야말로 '추상에서 구체로, 공상에서 과학으로' 다듬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해서 다듬어진 정책은 의원들의 의정활동으로, 각 위원회의 현장활동으로 나타난다. 또한 각 지역위의 정치활동 속에서 나타난다. 정책연구원들은 그들이 빛나기 위한 거름이 되어야지 자신들이 빛나기 위해 노력해서는 안 된다.

 

정책위 의장 후보로 나온 분들 중 일부가 이러한 정책위의 역할에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분들, 그동안 정책위가 뭐했냐는 식으로 힐난한다. 이분들의 공약이나 의견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책위가 매우 반짝 반짝 빛이 나야한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진짜 그래야 하나? 뭐 그렇다면야 정책연구원들도 일은 일대로 하고 한 게 뭐냐는 욕이나 먹는 서러움을 벗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쎄, 그게 바람직한 일일까?

 

묵자(墨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治於神者 衆人不知其功 爭於明者 衆人知之 - 「公輸」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자는 사람들이 그 공을 알아주지 않고, 드러내어 다투는 자는 사람들이 이를 알아준다

 

정책연구원들이 爭於明者가 되어야 한다면, 아마도 나는 그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듯 싶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내 길을 찾아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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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2 01:55 2006/01/12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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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제 어느 당원이 이번 선거에 관심있냐고 묻길래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관심 좀 가져라!고 하더군요.
    음지(?)에서 일하는 정책연구원의 자세는 행인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해요.
    부탁이 있는데요, 이번선거에서 누구를 찍을지 좀 알려주세요,, 이제는 후보자들도 잘 모르는 분들 뿐이라 누굴 찍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ㅎㅎ

  2. 산오리/ 제가 뭐 후보 추천할 계재가 되나요 ^^;;;
    다만, 뭐 당연한 말씀을 드리자면, 당 내에서 심각한 제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낯 두껍게 나온 사람, 일단 한 번 그 무능을 검증받았음에도 당원들을 무시하고 또 나오는 사람,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데 급급하여 현 상황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 공허한 구호로 알맹이 없는 공약을 포장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절대 안 찍을랍니다. ㅎㅎ 몇 분만 투자해서 훑어보시면 산오리님께서 저보다 더 명확하게 확인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

  3. 윤현식 동지 안녕하세요.
    저는 윤영상 선본에서 일하고 있는 선본원인데요.
    이글을 당 게시판에 퍼가도 될런지요...??

  4. 산오리/ 제가 찝어드릴까요? 저야 모 '거대정파'소속이라 신뢰를 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요. ㅋㅋㅋ

  5. 동지 글 확인했습니다.
    제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앞으로도 자주 들르겠습니다 ^^

  6. 윤영상선본// 제가 먼저 퍼가야겠습니다.
    행인님// 퍼가요~

  7. 선거 관련 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보고 느낀바가 많은 중 기사로 못 쓴 것들에 대해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네요--;;

  8. 선본/ 감사합니다 ^^

    동경소녀/ 퍼가셔서 영양가가 있기를 바랍니다. ㅎㅎ 그런데,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호응할지는 의문이네요.

    molot/ 그러게요. 근질근질한 일 많을 것 같군요. 기사로 기냥 질러버리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