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왕박사와 황우석박사

유행성 출혈열이라는 것이 있다. 전방에서 군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익히 그 악명을 들어본 바 있을 것이다. 주로 등줄쥐라고 하는 들쥐의 배설물에 의해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병이란다. 보통 2~3주의 잠복기를 거쳐 고열과 출혈 등의 증상을 일으키고 바이러스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치사율이 2~3%에 이르는 등 상당히 무서운 병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이 병으로 인해 미군의 피해가 늘어나자 대규모의 미국 연구인력이 한국으로 들어와 연구를 시작했단다. 그러다가 1960년대를 지나가면서 이 연구는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병에 대한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 이호왕 박사다. 미국의 연구진들이 다 포기하고 떠나버렸던 1969년에 이호왕박사가 본격적으로 유행성 출혈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이후 몇 년 동안 연구는 실패를 거듭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국가적 차원에서 엄청나게 지원을 받았던 수천명의 미국인 연구자들이 포기한 연구였으니까. 그러나 이호왕 박사팀은 등줄쥐 수천마리를 직접 잡아 조사연구를 수행한 후 결국 1976년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만다. 그리고 또 수년에 걸쳐 이 바이러스가 기존에 알려져 있는 여타의 바이러스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임을 입증해냈고, 마침내 그 바이러스의 이름을 "한타바이러스(Hnatavirus)"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한타바이러스는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 속을 총칭해서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이중 한탄강 유역에서 흔히 발견되는 바이러스 종은 특히 "한탄바이러스(Hantaanvirus)"라고 칭한다. 또한 서울 지역에서 발견된 아종을 "서울바이러스(seoulvirus)"라고 한다. 아무튼 유행성 출혈열은 아직까지도 인류를 위협하는 병원균 중 하나로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한다.

 

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발견하였다는 것은 예방과 치료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신을 이용한 예방접종이 가능해지고 치료약이 생긴다는 것은 일정정도 그 병에 대한 대응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많은 변종이 생길 수 있고, 원인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치료제개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원인이 뭔지 모르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다.

 

어쨌든 이후에 유행성 출혈열 예방접종이 가능해졌다. 행인도 물론이려니와 아마도 지난 10년 내 군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유행성 출혈열 예방접종을 했을 것이다. 유행성 출혈열이 심각한 곳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 중에도 예방접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완치 가능한 치료약이 개발되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일정한 효과를 내는 치료제가 공급되고 있다. 각국에서 발견되는 다른 형태의 바이러스에 모두 효과를 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 안에서 발견되는 유행성 출혈열은 조기 치료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이 이호왕 박사가 노벨의학상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가 없다. 아니, 노벨 의학상 후보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질 못했다. 한 사람이 살아 생전에 병의 원인(바이러스)을 찾아내고 백신을 만들고 치료제까지 만들었는데, 그리고 그 병이 어쩌다 생기는 감기같은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병인데, 그 사람이 노벨 의학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좀 의아스러운 일이다.(이호왕 박사의 근황에 대해서는 여길 누질러 보셈)

 

뭐 여기서 노벨상의 메커니즘을 일일이 다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사실 노벨상이라는 거 별로 관심도 없다. 어차피 내가 탈 일은 절대 없을 거고(ㅋㅋㅋ) 그 상 받았다고 해서 중뿔나게 그럴싸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거 잘 알면서 왜 갑자기 노벨상 이야기를 하느냐고?

 

당 자유게시판에 어떤 애국자께서 "민주노동당이 뻘짓을 하는 바람에 노벨상 하나가 날라갔다"는 글을 남기셨다. 민주노동당 때문에 황우석이 노벨상 못받게 되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 글 보면서 배꼽을 잡았다. 어차피 이 사태가 안 벌어졌어도 황우석이 노벨상 받을 일 없다. 황우석이 국내에서는 어떠한 거짓말을 동원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있었을지라도 외국에서까지 그렇게 속임수를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만 봐도 그렇다.

 

이미 몇 해 전부터 황우석의 연구가 반윤리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그런데 그동안 황우석 눈도 깜짝하지 않고 억울하다는 소리만 했다. 민주노동당때문에 연구못하겠다는 뻘소리만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외국에서 문제가 크게 제기되자 기자회견 열고 백의종군 하고 난리를 친다. 도대체 왜 국내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는 몇 년씩 배째라고 버티다가 외국에서 문제제기하자 이렇게 깜빡 죽는 시늉까지 할까?

 

노벨상 주는 곳에서 이런 문제가 있는 황우석에게 상을 줄리가 없다. 그건 황우석의 문제가 국내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그 유수한 연구진들이 황우석의 연구에 어떤 내막이 있는지를 눈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윤리적 하자가 발견된 연구결과에 대해 노벨상을 줘버리면 노벨상의 권위에 치명적인 오점이 남게된다. 그런데 상을 주겠나?

 

이호왕 박사, 그 어려운 연구를, 미국이 10년 넘는 기간 동안 4천만 달러를 퍼부으면서 실패한 연구를 6년만에 단돈 10만 달러로 해결했단다. 그런데 우리 애국자들, 이호왕 박사에게 무슨 치하를 한 적이 있던가? 이렇게 난리를 치면서 이호왕 박사 만쉐이를 외친 적이 있나? 이호왕 박사의 연구에 대해 황우석에게 보낸 것처럼 쯔나미급 호응을 보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도대체 미쳐야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난리를 치면서 급기야 노벨상까지 호출해내는 이 맹목적 애국심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정체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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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6 22:02 2005/11/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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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궁금합니다-ㄴ-;

  2. 동감입니다..저도 개인적으로 이호왕박사님을 정말 존경하는데말이죠..-_ㅠ

  3. J.Min/ Y.P/ 그쵸...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