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쩜셋을 기다리며...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학문적 노력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를 하지는 못할망정,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면서 영 엉뚱한 소리를 한다면 이건 비판받아 마땅할 죄악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행인은 지식인 하기 싫다... 지식'즐(KIN)'이나 하면 모를까...

얼마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 정당을 대상으로 정책비교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 결과가 나왔다. 각 정당별로 세부 정책사안에 대한 각각의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열우당,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민주노동당 각 5개 정당의 정책대안들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해당 사이트로 들어가보면 일단 표에 찬성이냐 반대냐 혹은 조건부 찬반이냐를 단답형으로 기재해놓고 있다. 그리고 그 표의 해당 정책분야를 클릭하면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질문 자체가 좀 거시기한 것들이 많아서 답변하기가 껄끄러운 부분도 있지만 각 정당의 정책 대강을 훑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학문하시던 어느 분께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해당 사이트 첫 화면의 단답형 문항만을 근거로 각 정당의 진보성과 보수성을 평가하셨다. 그 결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대한민국 주요정당들이 모두 진보에 가깝다는 또는 좌파에 가깝다는 놀라운 결과를 밝혀내시고야 말았다!! 자민련조차도 중도에 가까운 경악할만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다음 표를 보자.

이 표를 보면 "아니, 한나라당이 이렇게 진보적이었단 말인가?"하고 놀라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한나라당의 진실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만드는 결과다. 열린우리당이나 자민련에 대해서도 별반 다를바 없는 놀라움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예를 들어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한 부분을 보자. 한나라당의 경우에도 물론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나라당만의 전제조건이 있다. "사학운영의 자율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거다. 한편 열우당의 경우에는 "학교법인의 운영과 학사운영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은? "공공성과 민주성 제고를 위해 개방형 이사제 도입, ... , 학교운영위원회 심의기구화"를 주장하고 있다.

눈에 확 띄게비교하면 이렇다.

한나라당 : 사학운영의 자율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방향

열우당 : 학교법인의 운영과 학사운영을 분리

민주노동당 : 공공성과 민주성의 제고를 위한 객관적 제어장치 강화

한나라당의 경우에는 사학재단에 계속해서 전권을 맡기고 될 수 있는 한 국가 또는 외부의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열우당은 법인운영과 학사운영을 분리하여 법인의 경우에는 재단에 맡기고 학사는 외부의 개입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경우에는 사학 자체를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재의 성격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학자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진보성과 보수성을 판단하신 걸 보면 3당이 모두 사립학교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전부 가장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2점을 주고 있다. 이거 학자가 조사연구했다는 포장지만 벗겨내면 초등학교 학생들이 재미삼아 점수 매기기 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걸 또 건수 났다고 기사로 올리는 찌라시들이 있다. J일보라고 하는데, 이 신문사가 얼마전 전 사주의 검찰출두과정에서 기자들이 보디가드로 출동되었던 전력을 가진 신문사라는 것은 비밀이니까 밝히지 않도록 한다. 아무튼 제대로 재미있는 학자님과 제대로 재미있는 신문사가 만나 온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장하다!

쪽팔리지 않나? 이걸 무슨 연구결과인냥 분석을 하고 경향을 따지고... 할 말이 없다. 그냥 그렇게 하면서 평생 행복하게 사시라고 할 밖에는... 벽에 X칠하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