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도올의 글 한편이 또 세인의 구설에 올랐다. 장문이다. 하여튼 이 돌은 글을 써도 간단히 끝을 내지 않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천하의 돌이 글을 썼으니 한 번 봐주는 것이 '예의'인지라 스크롤 압박을 굳굳이 견디면서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것도 여러번.
글을 읽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은 '쓰레기'라는 느낌. 탄핵과 신행정수도 논란 중에 두번에 걸쳐 돌은 헌법재판소를 두들겨 패는 글을 썼다. 한 번은 인민이 헌법이라는 취지로, 다른 한 번은 성문헌법을 수호해야한다는 취지로... 휘황찬란한 언변에 눌려 많은 사람들이 그 때마다 환호했지만, 돌의 행보는 말 그대로 갈지(之)자다. 역시 이번 글도 마찬가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교원평가제, 문제 투성이다. 이런 식의 교원평가제 한다면 그건 당연히 중단시켜야만 한다. 당위에 대한 전제는 동의. 그런데 반대의 논거가 되는 각론들을 들여다보면 돌의 이야기는 예의 변죽을 울리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돌 정도 되면 교원평가제라는 제도가 나오게 되는 대한민국 교육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하고 들어가야 한다.
물론 돌도 대한민국 교육체계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대안이라는 것을 하나 주장하고는 있다. 서울대 학부폐지와 타 국립대학교 네트워크. 이건 민교협 등 단체에서도 예전부터 주장해온 터라 새삼스럽지가 않다. 그럼 또 뭘 내놓았는가? 없다...
최근 부각이 되고 있는 쟁점사안 중에 '전문법학대학원 설치' 논란이 있다. 쉬운 얘기로 Law School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이미 YS 정권 초기부터 나왔던 논의라 벌써 구체적인 논의과정을 거친 기간만 10년이 된 이야기다.
작년 연말과 올 초 이 문제 때문에 여러 '진보적' 교수님들과 충돌한 일이 있다. 민교협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분들인데, 이분들 입장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면이 있어서다. 이분들 의견을 들어보자면 우선 전문법학대학원 설치가 대학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전문법학대학원 설치는 각 학문분야가 전문대학원체제를 갖추어 나가는데 부응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또 몇 가지가 있는데 그건 생략하기로 하고...
대학교육 정상화를 주장하시는 여러 교수님들에게 반대의견을 제시하다가 약간 감정적 언사까지 내뱉고야 말았다. "어떻게 교수라는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라거나 "결국 전문대학원 체제는 교수들 밥그릇 늘려놓자는 이야기와 뭐가 다른가?"라는 등등의...
대학교육이 정상화되기를 바란다면, 가장 중요하게는 학벌사회부터 깨트려버려야한다. 대학교 나오지 않더라도, 아니 학교교육을 일체 받지 않았더라도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는 사회를 만들지 않는 이상 대학교육이라고 하는 거, 이거 정상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부모세대, 당신은 굶더라도 애들 대학 보내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였다. 지금은? 지금은 대학원 나와도 먹고 살기 힘들다. 그래서 유학보내고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이게 뭐하자는 짓들인가??
대학은 말 그대로 살다가 공부하고 싶어지면 그 때 갈 수 있어야 한다. 정말 필요해서 학문을 하게 되면 교육정상화, 이거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는 학벌로 똘똘 뭉쳐 그거 없으면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기 힘들어진다. 당에 있다가 보면 가장 당황스러울 때가 학번 물어볼 때다. 그거 왜 물어보는데? 차라리 몇 살이냐고 물어보던가.
전문대학원은 현행 학제에 또 한 층의 학제를 더 얹어놓는 것이다. 3~4년의 전문대학원체제가 지금의 대학처럼 보편화된다고 가정해보자. 이거 끔찍하다. 대학 4년, 전문대학원 3년, 도합 7년을 공부하느라고 쏟아부어야 사회 나가서 좀 배웠다고 할만한 정도가 된다. 그러면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인가? 한국 남자들 군대가서 2년 있다 와야하는데 그거까지 치면 나이 30이 되어서야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30먹도록 배우고 익히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누가 대나? 자본이 대주나? 국가가 대주나? 국가가 대준다고 치더라도 그 돈 국가가 조폐공사에서 찍어서 퍼붓나? 담뱃값 올리고 소주값 올리고 그렇게 해서 없는 사람들 등골 휘게 만들어 거기서 나온 세금으로 충당할텐데. 어차피 지금 정치권에서 너나 할 거 없이 감세정책 내놓으면서 돈 가진 사람들 입맛만 맞추고 있는 현실을 보면 부자에게 세금 걷어서 교육재정 확충할 생각은 애초부터 눈꼽만큼도 없는 것이 지금 정치권의 사고구조다.
결국 나이 30이 되어서야 사회활동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부모들은 뼈가 빠지게 일해서 학교에 돈 퍼부어야 한다. 무슨 캥거루 새끼도 아니고 어떻게 하라는 이야긴가?
교수들도 문제지만 교사들도 문제다. 전교조, 나름대로 '인간화 교육' 위해 열심히 투쟁한 거 인정한다. 그런데 인간화교육 한다고 하셨던 전교조 선생님들, 중고등 학교 커리큘럼에 노동권 교육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기본권교육이나 인권교육 어느 정도까지 하고 있나? 실업계 학생들이나 장애학생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했나?
대한민국 교사들의 관심사는 오직 애들이 대학에 몇 명이나 가는가에 집중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교육문제를 이야기할 때 그 대부분은 대학입시과정에 대한 논의이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교사들에게 '학생'이라는 존재는 대학가려고 입시준비하고 있는 인문계 고등학생들, 또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일 뿐이다. 그 외에 '인간화 교육', 통일교육 빼고 뭐가 있었지?
교수와 교사들이 교육의 정상화를 진실로 원한다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놓을 각오도 해야한다. 대학 가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 없는 사회가 되면 많은 대학이 문 닫을 수도 있다. 그럼 교사고 교수고 자기 자리 없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그거 감수해야한다. 그런데 아무도 그거 감수하려는 의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학제 늘리고 자리 늘려서 기득권 강화하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교육주체인 교수와 교사가 이렇게 남이 펴 놓은 자리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사이에 돌같은 사이비들이 지식인냥 하고 기어 나와 요설을 편다. 돌이 거부하고 있는 것은 물론 교원평가제이다. 그리고 돌은 이미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돌은 한편으로는 일정한 방식의 실질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면서 근본적으로 스승에 대한 평가라는 것은 그 자체가 불온한 사고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의 글 안에서조차 자신의 논지가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돌은 자신의 글 어느 한 군데에서도 대학 나오지 않고서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서울대 학부 폐지하면 대학교육 정상화 되고 입시문제가 해소되나? 그러면서 지 하버드 나오고 대만유학간 이야기는 왜 하는데? 침묵하는 대중이 훌륭한 부모라고? 말없는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조선일보냐? 개뿔...
물론 교육문제, 이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난감한 문제란 것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학교 교육현장은 물론 정치권에서, 정부에서, 사회단체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적어도 적어도 사회적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돌 정도 된다면 대학 나오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구체적인 내용은 정책을 만드는 관료들과 정치인들에게 맡겨되 된다. 대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도 되는 것이다. 당위만이라도 알려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이야기가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당위만 이야기해도 그게 너무나 센세이션 하게 느껴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뱀발 : 돌이 글 중에 "多言數窮"이라는 노자의 말을 사용했다. "多言數窮 不如守中"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돌이 스스로 잘 새겨야할 말이다. 노자는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大巧若拙 大辯若訥"
도덕경 강론까지 했던 돌이니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길 거다.
행인님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에 관련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