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주민등록번호가 탐나니?

민변 1~2월호에 올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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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천여통의 스팸메일을 지우다보면 가끔은 팔목에 경련이 일어나거나 어깻죽지가 심하게 저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가 자칫 확인해야할 메일이라도 지웠다 싶으면 휴지통을 일일이 찾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거의 ‘노가다’ 수준이다. 그런 노고를 통해 지웠던 메일을 다시 복구하면 다행인데, 휴지통에 버렸는지도 모른 채 ‘휴지통 비우기’라도 실행해버리고 나면 나중에 메일을 보낸 사람으로부터 어떤 욕지거리를 들을지 모른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스팸메일과 씨름을 하다보면 입에서 쌍시옷 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필터링이 되는 메일에서도 하루 2~30개는 족히 스팸메일을 손수 지워야 하는데, 그나마 필터링 기능마저 없는 어떤 사이트의 메일을 주로 쓰는 입장에서는 스팸메일을 보내는 인간들이 미워 죽을 지경이다.


메일 뿐만 아니라 휴대폰도 말썽이다. 걸핏하면 들어오는 문자메시지. 무슨 외로운 여인네가 그리 많은지. 게다가 필시 생판 본적도 없는 여인네일 터인데 난데없이 오빠는 왜 찾는데? 그리고 그 망할 문자메시지의 발신처는 하나같이 060 번호를 가지고 있다. 지난 1월 한 언론사에는 고층건물 유리창 청소를 하는 노동자가 작업 도중 이런 류의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다가 추락해서 사망했다는 제보도 들어왔단다. 생명을 부르는 문자메시지였던 것이다. 경악스러운 사태에 직면하는 종종, 도대체 이 스팸메일과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X들은 내 메일 주소나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의문마저 가지게 된다.


개인정보가 쏠쏠한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몇백만명 개인정보 유출’ 같은 제목의 기사를 언론매체에서 보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실명과 주소, 주민등록번호는 기본적인 개인정보로 분류되며, 금융거래내역과 같은 고급스러운 정보가 고가에 거래된 사실도 자주 밝혀지고 있다. 요컨대, 무지막지한 스팸메일의 공세와 문자메시지의 공습은 나도 모르게 빠져나간 내 개인정보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내 정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내 자신인데 정작 내 정보를 이용하여 덕을 보는 인간들은 따로 있다. 개인정보를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업체들, 그리고 이러한 업체들에게 일정한 개인정보를 제공하여 이익을 향유하는 개인정보 수집 업체들, 이들은 정보주체인 나에게 1원 한 푼의 사용료도 제공하지 않은 채 멋대로 내 정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진 현재, 국회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이 발의되어 있다. 그것도 물경 3개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그런데 이 법률이 제정될 움직임이 보이자 인터넷 기업협회 등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영업이익을 추구하던 업체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노회찬 의원 발의안과 정부혁신위원회 발의안이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번호 사용규제조항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체들의 주장은 신원확인 및 결재 등에 반드시 필요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실 업체들의 이와 같은 주장은 스스로의 게으름을 드러내는 것임과 동시에, 고객의 불편이나 인권침해는 어찌되는 간에 남의 정보 이용해서 돈벌이나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생트집에 불과하다. 주민등록번호 없으면 아예 영업을 할 수 없다고 엄살을 피우는 업체들이여, 그럼 주민등록번호 없는 다른 나라 인터넷 기업들은 신원확인 하려고 가정방문 하는가? 음란사이트 등에 청소년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성인인증을 위해서라도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단다. 성인군자 납셨도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기업들 돈 좀 모아서 청소년 성교육 교양강좌나 좀 마련해라. 청소년의 선도는 사실 핑계에 불과하다. 평소에는 애들 정보까지 빼돌려 장사밑천으로 사용하기에 바쁜 어른들이 꼭 이럴 때만 청소년 운운하는 것은 왠지 보기 안스러울 정도다. 댁들은 청소년 안 거치고 바로 어른으로 점프했나?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회원가입 조건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고 사이트를 운영하면서도 영리를 추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여러 업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포털사이트 다음과 EBS이다. 이들이라고 해서 주민등록번호의 효율성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민등록번호사용을 자제함으로써 이 업체들은 고객으로 하여금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안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결재를 어떻게 하느냐는 볼멘소리를 하는 분들 여럿 있다. 걱정하지 마시라. 어차피 그 결재라는 거, 결국 신용카드로 하던 계좌이체를 하던 핸드폰이나 전화결재를 하던 그 과정에서 본인여부 확인되게 되어 있다. 회원가입하는 순간부터 주민등록번호 받아 챙길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자기 노력은 하나도 들이지 않고 쉽게 돈 벌려고 하는 거, 그거 상도덕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행위이다. 이렇게 남의 돈 날로 먹으려는 심뽀가 만성화되다 보니 불법복제된 유령핸드폰으로 노동자 위치추적을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뻔히 용의자가 있는데 수사도 되지 않는 희한한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개인정보를 이용하고 싶으면 그만큼의 투자를 해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데도 앞장서야 한다. 법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장사하는 사람의 양심과 도덕에 관한 문제이다. 유럽은 이미 개인정보보호의 정도가 기업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정보통신기술과 시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 대한민국의 기업가 여러분이 아직 정보통신분야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유럽의 기업가들보다 떨어지는 정보인권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야 어디 체면이 서겠는가?


수년간에 걸쳐 사회 각 분야의 논의와 연구를 통해 마련된 개인정보보호법이 이제 겨우 그 태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 기회에 기업하는 여러분들도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을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① “개인정보 최다 수집 기업! 주민등록번호 다량 입수 사이트!” ② “개인정보보호에 충실한 기업!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지 않는 사이트!” 2지선다형이라 좀 어색하다만, 자, 어느 쪽으로 고객이 발을 돌리겠는가, 아니면 문을 열고 들어오겠는가? 잘 알아서 판단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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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8 03:06 2005/03/2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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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학 동문회에서 결혼중매업체에 졸업생의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것이 갑자기 기억나는군요. 그러한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는 것이 참 신기했었죠. 그걸 팔아먹고 얼마를 받았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 PassMan/ 거의 모든 학교가 그렇습니다. 대학이던 초중고등학교던 학교 관계자들이 또는 학생자치조직이 졸업앨범 찍으면서 수집한 자료, 동문회 명단 정리하면서 만든 자료 등등을 영리목적으로 유출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죠. 이게 무슨 관행처럼 계속되고 있는데, 한번은 모교 동문회에 항의를 했더니 동문회 발전을 위해서 그정도는 참아야하는 것 아니냐는... ㅎㅎ

  3. 조금 다른 얘긴데요 저번에 어떤 블로그에서 인권위에서 도서관에 주민번호 쓰는 거 하지 말라고 해서 어디 도서관은 시정조치를 취했다는데 제가 다니는 인천의 세 군데 도서관은 왜 계속 민증번호로 자리를 배정받아야 할까요? 부끄럽지만 저는 귀찮아서 그냥 민증 사용하거든요-ㅂ-;; 근데 도서관에 올 때마다 번호 입력하는 거 짜증..

  4. 뎡야/앗! 그런 일이??? 어떤 도서관인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알려주시면 되는데여~~!! 개별 도서관들에게 현장지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서 지도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알았더라도 쌩까는 수도 있죠. 인권위에 질의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구요, 정 뭐하시면 제게 연락을 주셔도 되겠슴돠~!

  5. 으음.. 좀 바쁘지만-ㅅ-; 제가 인권위로 알릴께요. 고마워요~ 저는 가만 앉아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뎅;;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