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지역정당을 고민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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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 이재명 "이번 대선 노동 퇴행세력과의 한판 승부"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노동위원회"의 면면을 보자. 노동존중사회를 위해 반노동 친자본적 후보를 견제하면서 노동 있는 대선을 만들겠다는 취지만 보면 그럴싸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슈를 어디서 풀어내려고 하는지를 보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에서 한다고?
이 더민당 선대위 노동위의 중심축은 누가 보더라도 민주노총의 전직 주요 간부들이다. 아무리 '전직'이라고 할지라도, 이들이 민주노총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상당하다. 그런 사람들이 제시하는 정치적 입장은 곧장 민주노총 자체의 정치방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과 운동의 역사를 같이 했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정치의 주체세력이 아닌 더민당으로 발길을 돌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한편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민중경선에 의한 진보단일후보를 뽑자고 민주노총이 나서고 있다. 절차적인 조정이 얼마나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바깥에서 보면 영 매끄러워보이질 않는다. 그건 어차피 추진하는 세력들 간의 협의를 통해 결정될 문제니 내가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닌데, 민주노총 일부 전직들은 더민으로 달려가고 조직의 공식적 입장은 단일 민중후보 지지로 갈리는 걸 보면 헷갈리지 않을 수가 없다.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역할분담인지...
아무튼 이러한 상황에서 정작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당위만 남고 알맹이는 사라진다. 보수양당의 갈라먹기 판으로 전락한 대선판을 뚫고 노동정치가 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단일후보노선을 또다시 펼치는 것이지만, 그 절박함과는 별개로 민주노총의 행보, 그리고 독자후보전술을 주장한 한상균 전 위원장의 행보는 준비된 정치방침에 따른 것으로 보기엔 그 무게감이 빈약하다.
특히 평상시 "선거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던 사람들이 단일후보를 주장하면서 각 정당들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 진보정당의 이합집산 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내세워졌던 알리바이가 지역과 현장이었는데, 정작 지역과 현장에 가장 강력한 근거를 두고 있는 노동조직을 평상시에 얼마나 정치세력으로 창출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노력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그동안 민주노총이 실효성 있는 정치방침을 내주지 못했다는 전력이 자리잡고 있다. "진보정치의 다양성"을 보장한다며 민주노총 후보에게 투표할 것을 권장하는 수준에서 제시되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사실 실질적으로는 조합원들에게 그냥 알아서 투표하라는 이상의 의미가 없다. 적어도 내셔널센터로서 민주노총은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중장기 대책과 이를 근거로 한 각 시기별 정치대응방침을 조합원들에게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여러 당으로 분리되면서 민주노총은 배타적 지지방침을 세울 수 없었고, 그러한 한계를 대중조직이 특정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건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는 희안한 논리로 변호해왔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태도는 애초 민주노총의 창립 이념을 제대로 견지하지 못하는 것이라 비판할 수밖에 없다. 산별건설,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민주노총 창립의 양대 이념 중 하나를 스리슬쩍 뒷전으로 흘려버리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왜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에게 지금 바로 현장에서, 지역에서 정치세력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하라는 방침을 내주지 못하는가? 사실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진보정당이 단일정당으로 있다면 그냥 그 정당을 배타적 지지하는 것으로 방침을 돌리면 되겠으나, 정의당을 밀어주자니 진보당이 울고 진보당을 밀어주자니 정의당이 돌아선다. 거기다가 노동당과 변혁당 등 군소정당이 또 민주노총에 발을 걸치고 있는 상황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게 지금 민주노총의 상황인 거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지역정당이다. 각 조합은 자신의 지역에서 지역정당의 결성과 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라는 방침을 낼 수 없는가?
예를 들어, A라는 지역을 가정해보자. 이 지역은 규모 있는 사업장에 민주노조들이 결성되어 있으며, 조직노동자들의 수가 A지역 경제에 상당한 파급을 미칠 정도로 확보되어 있다. 한편, 사업장의 편재로 인해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도 상당수 존재하며,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과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이 같은 사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비중이 높은 동시에 그만큼 갈등도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도심이나 수도권보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어 있는 덕분에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의 같은 주거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편 이 지역엔 철강, 조선, 화력발전 등 산업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 산업체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로 인해 지역경제가 돌아가는 반면, 이들 산업체가 내뿜고 있는 유해물질로 인해 해당 지역은 물론 인접지역의 환경 및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온난화 등 문제 때문에 탄소저감정책이 강화되면서 지역경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특히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화력발전소를 폐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문화적으로 이 지역은 인접지역보다 학교, 도서관, 공연장 등 문화시설이 열악한 상황이며, 대규모 지역개발 사업, 대형 토목사업 등으로 인해 갯벌, 습지와 녹지 등 자연환경이 계속해서 훼손되는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노동, 환경, 젠더, 기타 각종 사안들에 노동자들이 직접 개입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초창기에는 일련의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잖아도 이익집단화되어 있는 노동조합이 아예 정당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해를 지역정치차원에서 관철하는 부작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이러한 부작용을 예방하고 실질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이끌 수 있는 힘이 바로 민주노총에 있다. 민주노총이 정확하고 원칙적인 지역정치의 방안을 제시하고, 지역의 노동자들이 지역차원에서 정치세력화된다면, 공장 담벼락 안쪽으로 한정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인식이 공장 바깥의 세계와 연결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정치적 태도로 발전할 수 있을 거다. 예를 들어 A지역에서라면, 이제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은 안정된 노동환경을 유지하고 지역에서 같이 살아가기 위해선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과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구성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왜 화력발전소 폐쇄가 필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지역차원에서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의 재조직화 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학교와 도서관과 문화시설을 건설하고 관리하는 방안을 만듦으로써 지역 전체를 실질적으로 자주관리하는 방향으로 구성할 수 있으며, 이렇게 될 경우 사업장 자체를 자주관리하는 방향까지 모색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런 사업들은 결코 거대 양당이 할 수 없다. 거대양당뿐만 아니라 전국정당은 한계가 있다. 전국정당은 지역의 노동자들이 아무리 주체적으로 참여한다고 할지라도 대리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주요한 정치적 의제와 정책이 전국단위로 포진하기에 지역에 고유한 사안을 지역에서 해결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발생하기 마련이며, 지역 주민들의 폭넓은 협조를 구하기도 곤란하다. 이때 지역주민에게 피부에 와닿는 의제와 정책을 제시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공동의 이해를 같이 한다는 의식을 주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조직이 바로 지역정당이다.
난 하루속히 민주노총이 지역정당의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주기를 바란다. 지역정당을 잘 검토하면 거기엔 반드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길이 놓여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이 더 늦지 않기를 바라고...
지역정당 깔대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