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타기 혹은 허수아비치기
더민당 정성호 의원이 페북에 의원 정수 늘리기보다 당장 일하는 국회만들기가 중요하다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
관련 글 : 정성호 의원 페이스북
얼핏 문제해결의 선후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회의 주 업무인 입법도 지금 제대로 못 하는 판국에 의원을 늘리는 게 국민적 동의를 받기 어렵지 않냐는 문제제기. 그리고 입법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는 해결방안 제시.
짧은 글이지만, 변호사답게 논리적으로 서론 본론 결론, 기승전결 다 갖춰 글을 썼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게 아니다. 이렇게 잘 알면서 왜 그동안 일하는 국회를 만들지 않았나?
이렇게 문제제기하면 정성호의원은 나름 억울하기도 할게다. 국회의원 중 입법활동 열심히 해서 시민단체로부터 상도 받은 전력이 있고, 정량적으로 입법활동을 측정하면 언제나 상위그룹에 랭커되는 사람이니 이런 말 할 자격은 있을 법도 한데, 맨날 "정쟁만 일삼고" 있는 저질의 의원들과 뭉텅이로 묶어서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건 타당치 않으리라는 반론도 할만하다.
과거 정성호의원의 활약상은 이 블로그 어딘가에도 몇몇 글로 올려놓은 바가 있는데, 아무튼 질은 뭐 고사하고 양으로는 이 의원의 입법발의능력이 상당함은 행인도 인정하는 바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성호 의원이 도대체 일하는 국회, 즉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주일에 법안 소위를 한 번씩 일년에 5~60번만 열어도" 되도록 국회 내에서 뭘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일하면 "250명 정도로도 충분하고 남을 것"이라는 주장을 위해 국회의원 정수 줄이기라고 하자고 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모르겠다라기보다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뭘 했다는 기억이 없다.
그런데, 정성호 의원의 말처럼 일주일에 법안소위 한 번씩 열어서 뭘 해보자고 하려면 현재의 소위구조나 법안심사절차를 고려할 때 의원들 과로사 100% 각이 나온다. "250명 정도로도 충분하고 남을" 수준이 아니라 일년에 몇 명씩 과로사로 사망한 의원들의 자리를 채울 보궐선거 치뤄야 할지도 모른다. 의원들 안 죽이고 그 일 다 커버치려면 보좌관들이 죽어나거나 보좌관을 늘려야 한다. 의원실의 비대화가 불가피해진다.
정성호 의원의 말처럼 국회의원의 본연의 업무는 입법이다. 그런데 정성호 의원이 주장하는 대로 입법을 하려면 의원들이 죄다 국회에 짱박혀서 마치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책상머리에 대가리를 처박고 법안을 따지는 일에 임기를 바쳐야 한다. 그런데 그러라고 국회의원 뽑아놓은 거 아니고 국회의원더러 그런 식으로 책상머리에서 입법하라고 요구하는 거 아니다.
입법은 현장에서 나오며, 따라서 직업으로서 정치인인 국회의원들은 현장의 정치적 갈등에 개입하여 그 갈등 속에서 정치적 결과를 도출하고 그 결과를 제도화하라고 국회의원 뽑는 거다. 그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맨날 싸움박질, 정성호 의원 표현으로는 '정쟁'이 벌어지는 거다.
이렇게 볼 때, 진짜 문제는 지가 뭘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수시로 착각하는 정성호 같은 의원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정성호 의원이 말하는 그런 식의 입법을 하기 위해서라면 그냥 국회 없애고 공무원들에게 법안 만들어오라고 시키고 국무회의에서 법 정하면 된다. 법 기술자가 필요한 분야라면 굳이 유권자들에게 공약 싸질러가며 의회구성을 한답시고 선거를 할 이유가 없다.
실은 지금 의원을 늘리라는 건 비례성강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의원들이 지금 수준에서는 자기들끼리 경쟁하지 않는다. 오로지 당선을 위한 경쟁만 있을 뿐 의정활동에 있어서 경쟁이 없다. 왜? 그냥 "우리는 the 300!" 이러고 있으면 되니까. 한 번 당선되면 4년의 밥그릇이 안정적으로 제공되는데 뭐하러 경쟁을 하나?
그렇다면 원내 활동에서 국익과 인민을 위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고, 그 구조를 위해 현재보다는 더 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 동력을 채워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례성 강화나 의원정수 확대는 다른 방향에서 이런 효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비례성 강화가 정수확대와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처럼 이야기할 것은 아니다.
요컨대 정성호 의원의 저 말은 문제해결을 위한 단계적 해법의 제시가 아니라 그냥 물타기다. 그런데 이따위 물타기 혹은 허수아비치기가 나오는데 이걸 또 무슨 대단한 문제제기인 냥 호들갑을 떨고 박수를 치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환장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