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 - 정리가 안 되면 정돈이 안 된다

'정리'는 잘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정리라는 단어와 짝으로 붙어 다니는 '정돈'이라는 건 원래는 적재적소를 의미한단다. 이 두 단어를 병립하여 그 뜻을 헤아리면 결국 버릴 걸 버리고 적절한 곳에 필요한 걸 넣어두라는 게 된다.

기실 이 단어가, 즉 '정리정돈'이라는 말이 과거사를 다룰 때에도 반드시 필요한 말인 듯 싶게 만드는 기사가 눈에 띈다.

뷰스앤뉴스 : 이순자 "전두환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아버지"

전두환이나 이순자에게 통상적인 지각능력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우선 어불성설이다. 이들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민주주의나 공화주의를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력을 가졌더라면 애초 1212사태나 광주학살 같은 걸 자행하지 않았을 터이다. 사람이 배우고 익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통상적인 지각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한한 이야기다. 백담사에서 천일을 쑥과 마늘만 먹다 내려오거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그 정신머리를 고칠 여지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저런 이야기가 나온다. 저 말은 달리 말하면 이거다. "이 땅이, 이 나라가 누구 나란데, 니들이 감히!!!!!"

문제는 저따위 망발이 아니다. 저따위 망발이 지속적으로 주기적으로 터져나오고, 저따위 망발에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이 언제나 일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그게 다 정리정돈을 제대로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전두환 노태우 등 내란 수괴들에 대하여 사면을 했다. '용서'라는 이름으로. 어떤 숭고함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으므로 이 '용서'를 했겠지만, 기실 그것은 한국사회에 아주 좋지 않은 정치적 메시지를 남긴다. 공화국의 시민을 학살하더라도 대통령이 되면 다 용서받는다는 악질적인 메시지.

더구나 전두환 노태우 등에 대한 '용서'는 사회적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했다. 그런데 그 '용서'는 김대중이라는 개인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김대중이 대중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면서 마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듯한 효과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김대중이 전두환을 개인적으로 용서하는 것과 공화국 시민이 전두환을 사회적으로 용서하는 건 전혀 다른 별개의 이야기다. 하지만 대의제라는 이 통치질서체계의 구성원리가 마치 이 둘을 같은 것처럼 묶어내버렸고, 이 모순에 대한 적절한 분석이 없이 그만 전두환은 29만원을 가지고 평생을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까방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날 저따위 망언을 듣게 된 거다. 귀가 썩을라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다시 사형을 시킬 수도 없고.

'용서와 화해'는 전제조건이 완수된 후에야 가능하다. 사건의 진상파악, 책임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보상, 재발방지의 확신과 사회적 기억. 이것이 전제될 때에야 비로소 피해자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용서와 화해'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전두환의 경우, 1212와 518은 물경 30년이 훌쩍 넘어 40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조차 다시 진상규명을 해야 할 정도로 그 실체에 의문이 가득하다. 게다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사형에 처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공화국을 파괴했던 자들이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알량한 보상마저도 '빨갱이, 좌빨'들의 국가전복과 연계하면서 모욕하고 있는 자들이 설치고 있다. 그런데 용서와 화해?

정돈 전에 했어야 할 일이 정리였던 거다. 전두환 노태우 등 반역도들에 대한 공화국 시민의 엄중한 문책이 있었다면, 그 문책으로 결정된 어떤 판단이 실현되었어야 한다. 정 그 실현의 방식이 문제였다면(예컨대 '사형'제도의 본질적 문제) 그에 준하는 다른 엄벌이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생략된 채 오히려 가해자는 떵떵거리며 살고, 피해자는 주눅들어 산 세월이 누적되었다.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채 정돈을 하려 한 죄다.

생물학적으로 잔존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러나 저들이 병풍 뒤에 눕는다고 한들, 저들 부류의 저따위 망발이 멈출까? 지금이라도 '정리'의 과정을 보다 단단하게 밟아야 하지 않을까?

* 정리정돈은커녕 방구석 먼지 한 톨도 제 때 쓸어내지 않는 주제에 이런 글을 쓰니 머쓱하구먼... 아무리 그래도, 대청소는 이사 나갈 때와 이사 들어갈 때만 한다는 내 주의는 변치 않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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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2 11:22 2019/01/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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