求同存異 vs 求同化異
求同存異 vs 求同化異
"통 큰 단결"이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려졌던 시대가 있었다. 당시 이 말은 "비판적 지지"라는 말과 거의 같은 수위에서 이야기되었다. 97년, 02년, 07년 대선시기에는 물론이려니와, 04년 총선에서 귀가 따갑게 들었던 이야기다. 간단히 말해서 대선시기에는 '정권교체'를 위해서, 04년 총선에서는 탄핵세력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 말이 횡행했다. 거기에 말 께나 한다는 사람들이 얹었던 말이 바로 "구동존이(求同存異)"였다.
다른 부분은 서로 인정하되, 같은 부분에 힘을 합치자는 말이었지만, 실은 이게 통 큰 단결과 이어지면서 다른 부분에 대한 인정은 팽개치고 오로지 명분에 거스르지 않는 단결대오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 요구가 요구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강압적인 분위기, 즉 대동단결하지 않는 자는 죄다 반동이라는 은근한 협박이 컸다. 여기에 더하여, 같은 것은 무엇이고 다른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한 서로의 입장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을 같이 할 것이며 무엇을 인정할 것인지를 도대체 알 수 없었다는 내용적 문제도 있었다.
기실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분당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그 다름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확인하고자 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의 재구성을 이야기할 때, 그 재구성을 위한 전제는 바로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서로 분명히 하고, 이를 통해 같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놔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이러한 시도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피아의 구분을 위해 단선적인 구획만 몇 차례 진행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지금도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통 큰 단결"과 맥락을 같이 하는 "구동존이"가 이후에도 남발되었다. 예컨대 2011년 진보통합론이 갑론을박을 하는 가운데, 당장의 선거에 목을 매단 측에서 또다시 이 말을 비장의 무기로 꺼내 들었다. 당시 합당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로 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걔들도 변했다"는 것이었다. 소위 연합계열이 이제는 과거의 '종북'에서 입장을 바꿨다는 것인데, 이거야말로 "구동존이"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북한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때까지도 그들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입장이라는 것은 진보진영에서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 이상의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진보신당 창당과정에서 구 민주노동당을 비난했던 그 맥락적 함의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입장의 변화는커녕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통합을 명분으로 하는 측에서는 그들의 '종북'이 바뀌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고 부당하게 공격받는 것에 대해 공동대응을 하되, 그들이 일정하게 가지고 있는 경향에 대해서는 인정한다고 했을 때 "구동존이"의 올바른 의미를 관철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 크게 단결하고 구동존이해야 한다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말과는 달리 그들이 변했다고 강변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해서 어영부영 몸을 합쳤지만 그 결과야 뭐 다들 아는 스토리고.
박근혜가 시진핑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구동존이"에 대해 "구동화이"를 주장했다는 언론기사가 보인다. 말이 좋아 "구동화이"지 이건 자칫하면 힘의 논리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구동화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측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측이지 칼날 앞에 서 있는 측이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다. 기사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던 건 박근혜의 경박한 몸부림이 어이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과거에 "구동존이"를 내세웠던 사람들이 보여줬던 행태가 생각나서이다.
그들은 입으로는 "구동존이"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단 한 번도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의 우위를 등에 업고 "구동화이"를 요구했을 뿐이다. 같은 걸 구하고 다른 건 조화를 시키자는 이야기는 말은 그럴싸하지만, 정치적 맥락에서는 약한 자에게 굴복을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이다. 힘의 우위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박근혜의 어설픔과 힘 없는 너희들이 굽히고 들어와야 하지 않겠냐던 패권그룹의 모습이 이렇게 겹쳐지기도 힘들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