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중요한 것
오마이가 주최한 '10만인 클럽' 강연에 두 번째 강사로 출강한 사람은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강연회에서 조국이 말한 것 중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법학교수 조국이 "법"이 아닌 "밥"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조국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권이 밥 먹여 주냐, 민주주의가, 진보가 밥 먹여주냐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진보진영의 답은 '밥보다 중요한 게 있다'였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이것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답입니다. 진보가 밥을 먹여준다고 답을 해야 합니다. 진보는 어떻게 밥을 만들고 나누는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아주 긴한 이야기인 듯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행인의 기억에 진보가 "밥보다 중요한 게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행인이 기억하는 한, 진보는 언제나 "어떻게 밥을 만들고 나누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항상 "진보가 밥 먹여준다"고 이야기해 왔다. 진보가 "밥보다 중요한" 무엇이라고 한 것들이 뭘까? 민주주의? 공화국?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비판? 아닌 말로 이 가치들, 진보가 그토록 떠들어왔던 이 가치들은 밥하고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들이었나? 이 가치들이야말로 "어떻게 밥을 만들고 나누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니었던가?
소위 이 땅에서 '진보'라고 자칭하면서 정치를 하는 그룹들이 가지는 한계는 오히려 조국이 지적하는 것과는 반대로 "밥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니었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혹은, 밥을 '만드는' 것보다 밥을 '나누는' 것에 대하여 정확하게 자기 입장을 보여주지 못했던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부자 되세요'라는 주문과 '부자 아빠'라는 환상으로 대변되는 '성공신화'의 한 귀퉁이에서, "월급으로 10억 만들기" 같은 돈 불리기가 일종의 가치지향으로 세태를 규정하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진보'의 활동이 그간 어땠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상 '진보'는, 특히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해온 '진보' 그룹들은, 민노당이고 진보신당이고 간에, 보수진영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이라는 전제를 항상 깔고 논의를 진행해오지 않았던가?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더 벌어야 잘 살 수 있다는 보수진영의 구호 앞에서 진보진영은 지금 있는 것만 나눠도 잘 살 수 있다는 구호를 전혀 내보인 적이 없다는 거다. 아닌 말로, 우리에게 경제성장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주장은 단 한 번도 '진보' 정치세력으로부터 나온 적이 없다. 이건 당연한 건데, 자본주의체제라는 현존 경제질서를 부정할만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틀거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국은 어쩌면 이 한계를 무의식적으로라도 인식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반MB연합에 대해 비판하면서 "민주연합론은 생존의 프레임이지 승리의 프레임은 될 수 없습니다"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이명박으로 대변되는 경제성장신화의 프레임과 구분되는 경계가 인식되지 않는 한, 활로를 찾기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의 생존이며, 그 순간 모든 전략은 경직된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어떻게 밥을 만"드느냐에 귀착되는 순간 경계는 흐려진다는 것. 왜냐하면 밥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선 적어도 돈벌이에 귀신같은 재주를 보이는 개발론자들과 그들의 떡고물로 주머니를 채우는 보수집단이 진보진영보다는 훨씬 더 능수능란한 비기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프레임이라는 것이 나올 수가 없다. 따라가기만이 남게 될 뿐이다.
이 문제가 조국의 강연에서 어찌할 수 없는 한계로 남는다. 조국은 "어떻게 밥을 만들고 나누는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이제는 사람들은 쫀쫀하게 까다롭게 따집니다. 진보적 가치, 정책에 대해 그것이 맞는지, 현실성이 있는지, 예산은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 끊임없이 묻습니다. 그런 까도로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진보적 가치가 국민적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품이 아무리 좋다고 외쳐도 사지 않습니다."
최소한 "밥을 어떻게 나누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측에 있었던 입장에서, "설득"이라는 것은 자신에 대한 한계를 끝없이 느끼게 하는 고통이었고, 지금도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화두이다. 그 고민의 원천은 바로 내가 "설득"하고자 했던 대상들이 조국의 말과는 전혀 반대로 "쫀쫀하게 까다롭게 따"져주질 않는다는 현실이었다.
어떤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을 때, 그 대안에 대하여 "그것이 맞는지, 현실성이 있는지, 예산은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 끊임없이" 물었던 사람들은 조국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극소수의 일부 반대진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미시적인 차원에서 "그것이 맞는지, 현실성이 있는지, 예산은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를 따지는 동안, 조국이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뉴타운 개발이라는 호재에 눈을 돌려 버린다.
결론적으로 말해, 소위 '진보'는 그동안 조국이 말한 "오답"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데는 매우 주저해왔다. 그 덕분에 오늘날 한국의 '진보'는 언제나 개발론자들의 뒤를 따라가는데 급급한 처지가 되었다.
성찰과 연대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조국의 강연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이유는 없다. 되려 정치세력들에게는 경청할만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리라. 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그리고 있는 사람들, 혹시 조국이 이야기한 '진보'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거나 그 '진보' 중에서도 좌측에 서 있는 사람들에겐 그닥 영양가가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오히려 조국의 강연은 '진보'연 하는 사람들에게라기 보다는 그가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더 필요할 수도 있겠다. 좀 더 "쫀쫀"하게, "그것이 맞는지, 현실성이 있는지, 예산은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 끊임없이" 물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될 때, '진보'가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쪽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불어 '진보'는 이제 "어떻게 밥을 만들고"라는 프레임 자체를 버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발전주의의 환상에 대한 논박을 "세력?" 차원에서 한 적이 전혀 없는거 같단 생각이 드네요. 말씀이 맞는거 같네요; 집단 차원에서 상대의 프레임에 포섭된 상태에서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하는게... 음 @_@;; 그냥 고민거리네요 ^^
조국 교수의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기댈 것은 선거밖에 없는 것이 되버립니다. 그런데 그 틀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는 것이 지금의 한계죠. 많이 고민해보자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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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셔요,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시국광장'이라는 곳에 이 글을 옮기려고 합니다.
그곳의 닉네임은 '파릇포실' 입니다. 옮기면 안되는 글이라면, 말씀해 주시면 바로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제 블로그에 있는 글은 무한카피펌질이 가능합니다. ^^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