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료

행인[경기지방경찰청장의 법 질서] 에 관련된 글.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과잉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촛불과 용산 그리고 쌍용을 지나오면서 경찰의 도를 넘어선 폭력행위가 도마에 오르고 있지만, 이건 이명박 정권 특유의 현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완전 비무장에 옷까지 벗어 젖히고 그저 길바닥에 드러누웠을 뿐이었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을 육시처참에 가까운 수준으로 짓밟은 것은 김대중 정권 때이고, 부안 촌로들의 머리를 깨놓거나 평택 대추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것은 노무현 정권 때이다.

 

경찰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비판은 단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발생한 초유의 현상이 아닌 것이다. 물론, 비판을 쏟아붓고 있는 당사자들 중 상당수가 "옛날엔 안 그랬는데"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분들 보면 실소가 터진다. 착각은 자유지만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경찰의 행보가 과거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이 이번 쌍용차 강제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노조에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전례가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너무 대충 찾아서인가 아직까지 확인을 하진 못했다.

 

일단 5억 4800만원을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인데, 앞으로도 더 소송을 걸 수 있을 듯한 분위기다. 장비등 피해와 경찰관 치료비 등이 4800만원인데, 거기에 더해 경기지방경찰청은 위자료 5억을 더 걸었다. 경찰이 공무집행 중에 발생한 손해, 그것도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응한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노조에 배상하라고 하는 것이 어느 선까지 타당한 것인지는 앞으로 법률해석을 통해서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볼 일이다.

 

하지만, 법률적 검토는 차치하고라도 경찰이 공무집행 중에 발생한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고 손해배상을 건다는 것은 왠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아닌 말로 흉악범을 체포하다가 칼부림 당한 경찰관이 범죄피의자에게 위자료 청구했다는 사례는 들은 바가 없다. 예컨대 신창원을 체포하려다가 도리어 주어 터진 경찰이 나중에 신창원이 잡혔을 때 신창원에게 위자료 청구소송했다는 이야기 들어본 바가 없다는 거다. 조폭들이나 마약사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생명과 신체에 위협을 받았다손 치더라도 이들 조폭들이나 마약사범들이 체포된 후 얘네들에게 위자료 청구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애초 경찰 등 위험한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에게는 그 위험을 감수할 책임이 부여된다. 그리하여 소방공무원이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하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업무상의 위험이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회피할 수 없는 거다. 현행 국가배상법 제2조제1항 단서가 직무 중 발생한 공무원의 생명 신체에 대한 피해에 대해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연금 등의 보장을 대신하는 손해배상을 국가에 요구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구나 민법 제750조에 규정되어 있는 불법행위의 요건이 직무집행 중의 공무원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인지 문제다. 이 요건이 성립되어야만 손해배상청구소송 그리고 이를 통한 위자료 배상이 이루어질텐데, 경찰공무원이 부닥치는 위험상황이라는 것이 이 민법상의 불법행위에 따라 손해를 입은 '타인'이 되는지 문제다. 사인과 사인 간의 문제라면 모르되 공무집행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공무원이 민법 제750조의 손해를 입은 타인이라고 한다면, 공무집행이라는 행위의 성격은 뭐라고 판단해야 하는 건가?

 

아직 법률적 검토가 면밀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하긴 이 손배소를 추진하면서 경찰은 나름대로 법률적 검토를 최대한 꼼꼼히 했을 터이지만, 경기지방경찰청의 이번 손배소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짙다고 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사업주에 의한 손배가압류도 어이가 없는 상황에서 경찰이 이따위 노동탄압의 선봉에 선다는 것이 상식 밖의 일이라는 거다. 도장 2공장 진압과정에서 보여준 경찰의 폭력은 일반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은 쌍용차 노조원들이 경찰폭력에 대해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할 판이다. 적반하장도 이정도면 안드로메다급이다.

 

당장 5억이나 되는 위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경찰은 노조집행부에 대해 가압류까지 신청한다고 한다. 노조탄압을 위해 사측이 사용했던 전형적 방식을 경찰이 직접 나서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지방경찰청장이 보여준 법치질서확립에 대한 숭고한 의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구사대를 가장한 용역깡패들에 대해선 단 한 번도 법의 잣대를 들이밀어본 적이 없는 경찰, 당연히 사측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선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할 경찰이지만,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 노조에 대해선 폭력을 불사하기도 하거니와 이젠 아예 돈으로 명줄을 죄어버린다. 한국 경찰, 보면 볼 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좀 남아 돌면 이 손해배상에 대해서 법률적 검토를 좀 하고 싶다만, 워낙 어이가 없는 일인지라 신경질이 나다보니 법률적 검토고 나발이고 귀찮아진다. 어차피 법원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 형편인데다가, 지금 상황에서의 법이란 것이 결국 경찰이 손해배상을 받건 받지 않건 관계 없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넘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자료라... 참 내... 니들이 쌍용차 노조랑 합의이혼이라도 하는 거냐, 지금... 앞으로 경찰공무원들의 월급은 세금으로 줄 것이 아니라 위자료로 해결하라고 해야할 판이다.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의 경찰이 노조탄압에 앞장서는 일대 장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게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 경찰의 수준이다. 이명박 정권의 경찰폭력이 앞선 정권의 경찰폭력과 구별되는 지점이 여기 있다. 이제 경찰폭력은 진압봉 끄트머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뒷골목 생양아치들이 채무추심하려고 돌아다니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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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0 15:31 2009/08/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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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건 아니고, 그냥 기억나는건데;; 박종태 열사 관련 노동자대회에서 경찰차 박살난거 등등 해서 경찰에서 민노총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살짝쿵 납니다만서도... 그냥 그렇다구요 @_@;;

  2. 이번 청구를 보면 손해배상은 4000억 정도이고 위자료를 5억원 달라는데..
    저도 보고선 깜짝 놀랐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그동안 경찰이 범인 잡다가 다치고 희생당한 적 많지만 '정신적 위자료'를 물어내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서요.
    다음 경찰청장 자리를 위한 제스처인 듯합니다. '파업전야' 영화가 생각날 정도로 심하게 진압한 것도 그렇고요.

  3. 니 똥이나 먹어라! 개새끼들!

  4.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811008022
    MB정권의 참시한 시도라기 보다는 그렇게 변해왔던거 같습니다.
    "정부가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은 2003년 669건에서 2005년 755건, 2006년 759건, 2007년 964건, 2008년 828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물리적인 진압 뿐 아니라 민사소송(손배소)를 통해서 압박하는 경향은 지난 정권부터 불법파업이라는 미명아래 적극적으로 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지난 정권에서부터 경찰이 직접 손배소를 진행한 것은 맞습니다. 즉, 전 정권들과 비교해서 이번 정권이 "물리적 폭력"적인 측면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구요, 노정권에서는 DJ정권과는 달리 손배를 시작했다는 거구요, 명박정권이 들어서니까 이젠 "위자료"까지 달라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거죠. 법원도 미친 거지, 시위진압 중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하면, 범인 체포하느라 발사된 총알값도 범인에게 손해배상을 받을 일이지, 벌금은 왜 때릴까요? 내 참...

      아무튼 좋은 기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5. http://news.donga.com/fbin/output?n=200901140320
    개인적으로 한것인지 경찰청이 용인한것인지 불분명하지만 2007년 시위을 진압하다 다친 의경이 위자료 소송을 낸적이 있었네요.

    • 이 사건은 국가가 원고가 되어 구상권을 행사한 것이네요. 하긴 상황이 다르더라도 본질은 같은 사건입니다. 보니까 이쪽으로 판례분석한 사례가 별로 없네요. 저도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