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이제 서른 둘이었단다. 남겨놓고 출근하기가 망설여질만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도 있었단다. 이렇게 단란한 한 가족의 일원이었던 동시에 그는 직분에 충실하고 명령에 충성하면서 살던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하루 아침에 불에 타 숨졌다.
경찰과 언론은 이 죽음에 대해 "순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안타까운 젊은이의 "순직" 앞에 그를 순직케한 명령을 내렸던 어떤 이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다. 순직한 부하의 영정을 목전에 두고 흘리는 안타까운 눈물?
"순직"이라는 것은 소정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사망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언뜻 봤을 때, 이번에 사망한 경찰은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그래서 순직이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순직일까?
아수라장의 현장, 과잉진압.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누가 죽느냐, 얼마나 죽느냐의 문제였을 뿐. 제정신이 박힌 지휘자라면 현장의 상황을 숙지하고 그곳에 병력을 투입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여부를 먼저 확인했어야 한다. 적어도 이 사건에 있어서 경찰은 사건의 현장에 경찰력을 동원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부터 판단했어야 한다. 어차피 보상과 관련해 벌어진 문제. 일차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 당사자들은 재개발 조합이었고, 개발이익을 노려 뛰어든 건설사였고, 이들의 이해를 적절히 조절해야할 서울시와 용산구였다. 경찰은 원천적으로 개입할 이유가 없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한국 경찰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오로지 불법과 위법을 분쇄해야한다는 독수리 오형제식 지구방위의 사명만이 있을 뿐이다. 아, 정확히 말하면 경찰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경찰의 수뇌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경찰, 아니 정권의 입맛에 맞춰줌으로써 한 자리 하고 싶은 경찰 수뇌부들의 머리속에는 상황에 대한 판단, 개입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
그리하여 떨어진 명령. 대 테러진압을 담당해야 할 테러진압부대를 철거용역깡패들이 하는 짓에 투입했다. 한국 경찰이, 그 경찰 중에서도 정예 대 테러진압부대의 위상이 철거용역깡패들의 수준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상추락을 아무 의심도 없이 경찰의 수뇌부가 결정한다. 권력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물론 명령을 내린 당사자는 전혀 물리적으로 피해를 입을 이유가 없다.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위축을 받을 이유가 없다. 현장의 몸빵은 저 밑에 보이지도 않는 끝자락에 있는 어느 쫄따구가 때울 것이고, 지구방위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미천한 철거민들 몇 명의 몸에 피멍이 든들 어떠하랴? 지휘권을 가진 그는 명령만을 내리면 그뿐이다. 그 이후에 사태가 어떻게 되든 그건 알 바가 아니다.
부하가 죽으면? 눈물 한 방울 흘려주는 센스만 발휘하면 된다. 폭도에 의해 "순직"한 그에게는 일계급 특진과 국립묘지 안장으로 모든 보상이 끝난다. 철거민이 죽으면? 법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태라고 한 말씀 해주시면 끝난다. 죽은 사람에게 살짝 애도의 한 마디 던져주고 앞으로도 엄정한 법집행을 하겠노라고 안면 근육 굳혀가며 단호한 목소리로 기자회견을 마치면 그뿐이다.
손해볼 거 없는 장사 아닌가? 그래서 명령했다. 진압하라! 그 명령에 따라 애꿎은 부하경찰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철거용역깡패들에게나 적절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조차할 여유도 없이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고공침투를 감행한다. 그리고 옥상에는 불이 붙었다. 옥상바닥을 따라 흘러가는 불붙은 시너 위로 물대포를 쏜다. 시너는 더 빨리 더 넓게 퍼지면서 좁다란 건물 옥상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철거민 5명이 죽고 경찰 1명이 죽었다.
이거 순직인가? 지휘관의 잘못된 상황판단과 무리한 작전명령으로 죽어간 그 경찰은 과연 "순직"한 것인가? 명예로운 경찰의 임무를 수행하던 것이 아니라 기껏 철거용역깡패의 대리인 노릇을 하다가 죽은 것이 "순직"인가? 적절한 보상을 통한 합리적 해결의 방법을 팽개치고 경찰을 동원한 공권력으로 철거민들을 쫓아내기에 혈안이 되었던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이 "순직"인가?
일반적으로 이런 죽음을 두고 "순직"이라는 표현을 하기 보다는 "개죽음"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이 개죽음을 당한 그이에게 영예로운 "순직"의 화관을 둘러줌으로써, 그리고 그 앞에서 살짝 눈물을 찍어내 줌으로써 지휘관은 책임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물론 현장에서 "순직"만 있었더라면 아마도 살아남은 자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던 그는 책임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을 우아하게 달성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과잉진압명령으로 인해 5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죄과를 물어야 하는 동시에, 그는 부하경찰을 개죽음으로 몰아간 데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이런 지휘관이 있는 한, 그 밑에 부하들은 언제든 개죽음을 당할 수 있다. 명예라는 것 하나를 긍지로 삼고 사는 그들의 목숨값을 단지 개값에 불과하도록 만드는 자는 지휘관의 자격이 없다.
이런 자를 경찰수뇌로 임명한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이명박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가장 고통스러운 형집행 방법이 화형이라던데,,
사망한 철거민은 물론 경찰도 화형당한 셈이죠.
그들이 정말 명예라는 것 하나를 긍지로 삼고 살까요? 롯데호텔 생각나네요. 우리의 경험은 그들은 그냥 옷 맞춰 입은 깡패들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지 않나요? 아니, 그 명예라는 것부터가 자발적 충성과 흔들림 없는 무자비함을 이끌어내기 위한 세뇌 체계 아니던가요?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힘없는 사람들일수록, 잘 안보이는 곳일수록 더 잘 패고 다니던 놈들 중에 한 놈이고, 잘봐줘야 지 업보를 치른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의 두목들에게 줄줄이 내려져야 할 처분이야,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겠죠.
세어필/ 죽음은 같은데 경찰은 순직이고 철거민은 진압이죠.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정말?/ 어디 롯데호텔 뿐입니까? 용산참사 뿐만 아니라 저 울산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만 보더라도 경찰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죠. 하지만 지휘계통에 따라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하급직 경찰공무원을 도매급으로 "옷 맞춰 입은 깡패"라고 규정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상명하복을 복무규정으로 정해 놓고 택도 아닌 명령을 내리는 정권의 앞잡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고, 더 나가서는 권력을 이용해 경찰을 자신들의 수족으로 부려먹고 있는 정권에 책임을 물을 일이죠.
현장에서 개념없는 경찰관들 많이 봤습니다. 그럴 때는 상급자고 하급자고 간에 구분 없이 '경찰 개XX'라는 욕도 나옵니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서 벼라별 욕을 다 들어가며 일하고 있는 경찰(형사)들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명예심이라는 거, 이거 존중해줘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정권과 상관으로부터 오도된 명예심을 세뇌받은 점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만, 이런 부분은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해소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자발적 충성과 흔들림 없는 무자비함을 이끌어 내기 위한 세뇌체계"로서의 명예심이 현재 경찰이 가지고 있는 오도된 명예심이라면, 이를 "민중의 지팡이"라는 본연의 자세에 걸맞는 명예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겠죠.
죽은 경찰에 대해 "지 업보를 치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경찰 방패에 찍히고 곤봉에 맞아 혹이 산처럼 부어오른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경찰이 잘못된 지시에 의해 사망한 것을 두고 "업보"라고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네 술먹고 진압 들어가서 임산부 배를 발로 차고, 여성조합원들 무릎 꿇려놓고 먹겠네 어쩌네 지들끼리 히히덕거리고, 경찰특공대 대원들 참 명예롭죠. 양주 처먹고 진압하라 하면 술냄새 풍기면서 들어가서 조져놓고 명령인데 따라야지 어쩌나요.
이번에 죽은 놈. 그동안 투입된 작전들에서 어떻게 해왔을까요. 자근자근 밟아주라는 명령 어겨가며 절대 농성자들 안건드리고 필요 최소한도의 물리력만 사용해왔을까요. 아니면 압도적인 진압 기술 과시하며 남루한 노동자들 철거민들 벌레 다루듯 해왔을까요. 전 예외의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대충 안봐도 비디오 같은데요.
하급직 강조하면서 정당성 부여 말았으면 하네요. 똑같은 하급직이라도 일반 치안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들까지 굳이 욕할 생각은 없습니다(옮기면 어차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하지만 공안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은 어떤 놈이든 도매급으로 "옷 맞춰 입은 깡패" 맞습니다.
설령 자기만 깨끗해서 자긴 절대 안그랬다 해도 별로 다를 것 없습니다, 그런 집단 속에서 그런 "임무"를 수행해온 이상. 그러다 타죽어도 업보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 말릴 생각 없습니다. 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님의 생각을 돌리도록 노력할 이유도 없구요. 님은 저들 하나 하나를 모두 "옷 맞춰 입은 깡패"로 보시고, 그들이 설령 잘못된 명령을 수행하다 죽더라도 "업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저는 그럴 수 없다는 걸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건 님이 받은 고통과 제가 받은 고통의 질과 양이 달라서가 아니라는 점만 말씀드립니다.
이상하군요. 그들은 잘못된 명령을 수행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해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발적으로, 잔인하게 그 명령을 수행하는 걸 "명예"로이 여기는 자들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서 행인님이나 제가 겪은 고통의 질과 양 이야기가 왜 튀어 나오나요?
반항적인 한 놈들 자근자근 밟아주는 걸 명예로이 생각하는 놈이든(많죠), 양심에 좀 거리끼긴 해도 그놈의 밥줄 때문에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명령을 수행하는 놈이든(없진 않죠), 심지어 자기 양심에 반하는 일이라서 괴로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소수죠), 일단 그런 깡패짓을 계속 하는 이상 언젠가 자기도 피볼 것을 각오해야 하는게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요?
저도 님의 생각을 굳이 돌릴 생각은 없지만 하급직이라고 그리도 쉽게 면죄부를 발행하는 님의 글에 화가 나서 댓글 남겼습니다.
정말?/ ^^;;; 제가 중세 교황도 아니고 무슨 면죄부씩이나 발행하겠습니까? 게다가 하급직 경찰들에 대해 면죄부 발행할 정도로 통 큰 사람도 못됩니다. 님도 말씀하시다시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명예"의 관념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고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구요.
그들의 깡패짓에 대한 분노는 님이나 저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고통의 질과 양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쓸데없는 부연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제가 님의 글을 읽는 과정에서 오바한 것임을 인정합니다.
다만, 님 말씀처럼 면죄부 부여할 생각도 없고 본글이 그런 면죄부성 양식으로 작성된 것도 아닙니다. 제가 말하려던 것은 그의 죽음이 "순직"이 아니라 개죽음이었다는 것이고, 부하를 개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선 인식하지 못하는 수뇌부를 비판하려는 것이었죠.
더불어 세상의 이치가 님의 말씀대로 순리처럼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 각오를 할 정도로 세상돌아가는 이치가 잘 되어가는 세상이라면 아마도 저런 짓에 부하를 집어넣는 상관도 없을 것이고, 애초부터 저런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재개발의 방식도 달라졌겠죠.
아무튼 님이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생각과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 자체가 다르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급직 경찰이 명령체계를 거부하고 잘못된 명령에 항거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죽음 당한 한 젊은이에게 그게 네 업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제가 잘나지도 못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