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없는 세상

가장 간단한 인과관계를 돌이켜보자. 정치가 필요한 이유는 사회에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이미 구성원들 간에 물리적 및 심리적 통합이 있는 것이고, 여기에서는 조정이라는 역할을 할 중간자의 임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에 갈등이 발생할 때 비로소 정치라는 중간자적 역할이 필요하게 되는데, 대중이 아무리 정치인들을 비아냥거리고 욕을 하더라도 갈등구조가 있는 한 정치인에 대한 일반의 기대와 위임은 사라질 수 없다.

 

정치인들은 간혹, 아니 일상적으로 자신의 임무가 사회적 갈등의 해소 또는 타협의 생산이라는 것을 잊는다. 그들은 사회적갈등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권력을 쟁취하는데 이용할 생각은 할지언정, 갈등해소 자체에 주안점을 두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치인으로서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훌륭하게 사회적 갈등을 치유했느냐가 아니라 그 갈등구조를 발판삼아 얼마나 확고하게 자신의 입지를 다졌느냐로 귀결된다.

 

대중의 분노는 이 부분에서 존재한다. 대의제 체제하에서 대중은 자신의 의사를 대리할 대표자를 선출하여 정치의 장으로 보냈지만 대표자로서 임무를 맡은 정치인들은 대중의 의사가 자신의 정치적 욕구에 충족되는 한에서만 대리자로서의 임무를 다할 뿐이다. 물론 대의제라는 체제 자체가 가지는 한계 혹은 대표자를 선출하는 대중들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감성적인지까지도 고려를 해야겠으나, 이건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므로 생략하기로 하자.

 

어쨌든 정치인들이 사회적 갈등의 해소라는 본연의 임무를 부차적인 과실 정도로 생각하는 순간 대중은 이들에게 욕을 하고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그러면서 정치자체가 관심사가 되지 않는 요순시대를 꿈꾸기도 하고, 노자가 얘기했던 상선약수 수준의 인생살이를 희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한 것. 어차피 때가 되면 다시 신분증을 챙겨들고 대중들은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로 향한다.

 

평상시에 가지고 있던 분노나 환멸은 주권자로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선거를 하는 날만큼은 다른 형태의 기대로 전환된다. 물론 그 기대는 로또대박을 꿈꾸는 기대와는 크게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라는 심리상태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찍은 놈이 당선된다는 것이 마치 자기 자신이 당선된 것과 같은 동일감을 준다는 것에 대해 기대할 뿐.

 

이야기를 거꾸로 돌려보면,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때에 모든 정치인은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가 아무런 갈등 없이 돌아가고, 설령 갈등이 생겼다고 할지라도 자발적인 구성원 간의 합의로 인하여 쉽게 해소된다면 정치인이라는 귀찮은 존재를 굳이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있어봐야 세비나 축내고 지들끼리 아웅거리기나 하면서 가끔 TV 카메라 앞에 나와 거들먹거리며 아는 척이나 하는 정치인들은 사실 없는 편이 더 낫다. 쓸데없이 정치인이라는 거 만들어놔봐야 스트레스만 쌓인다.

 

한국개발연구원이라는 곳에서 말하기를 이번 촛불집회로 인하여 국가적으로 2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계속될 경우 7조원에 가까운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명박같은 무개념 불도저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발생한 국가적 손실이 그보다 수배는 더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는 절대로 발표하지 않는다.

 

소의 무병장수와 복지를 생각하던 전 복지부장관 같은 인간을 국무위원으로 앉혀놓고 기껏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암 것도 한 일이 없이 걍 놀다가 내보내는 웃기는 짓거리가 국가적으로 몇 조원의 손실을 발생시키는지에 대해서 한국경제연구원은 앞으로도 절대 계산을 하지 않을 거다.

 

또는 주성영같은 미완성 인류가 국회의원이 됨으로서 발생하는 국가적 손실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조중동 광고사 불매운동을 한 사람들을 출국금지시키고 PD수첩을 조사하는데 검사들을 동원하는 한국 법무부의 닭짓이 얼마나 국가적 손실을 가져오는지, 혹은 시도 때도 없이 불법비리를 저질러 댐으로써 국가차원의 경제활동에 엄청난 장애를 초래하고 있는 족벌재벌들의 처신이 몇조원의 손실을 유발하는지에 대해서 경제연구원이 이야기할 일은 없을 거다.

 

더 재밌는 것은 경제연구원의 덧셈과 뺄셈이 사회적으로 그닥 유용한 연구가 아니라는 거다. 얘들은 지들이 이런 짓 하는 동안에 들어가는 시간이며, 거기 필요한 인건비며, 결과발표로 인해 사회적으로 야기되는 또다른 갈등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이며 하는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정치의 본원적 정의에 비추어볼 때, 이런 류의 촛불집회마저 없다면 사실 정치인들이라는 것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되고 더 나가서는 이명박과 같은 찌질이를 청와대에 앉혀놓을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얘들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연구원이 계산해야할 것은 촛불집회때문에 사회적 손실이 얼마나 되는가 같은 뻘짓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채 갈등구조를 더욱 심화시킨 정치인들로 인하여 발생한 사회적 손실이 얼마나 되는가 같은 좀 더 고차원적인 연구였다. 그 연구 결과를 통해 우리 사회가 정치인이 있어서 더 이익을 보는 사횐지, 아니면 그 반댄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정치인들 중에 가장 사회적 손실을 많이 야기시키는 정치인이 누군지 확인할 수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거다.

 

예컨대, 다음 아고라를 악마와 야차들이 활보하는 "디지털 쓰레기장, "지옥"으로 표현한 주성영 같은 국회의원의 돌대가리가 이 땅의 평균지능지수를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같은 훌륭한 경제적 연구과제가 얼마나 많은가? 아마도 사회적 손실만을 놓고 볼 때, 2달에 걸친 촛불집회가 가져온 손실보다는 지난 4개월 간 정부와 여당이 벌이는 뻘짓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손실이 몇 배 혹은 몇 십배 더 많을 거라는 거, 이건 계산기 두드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다. 왜냐하면 촛불집회 역시 이 닭대가리들의 뻘짓 때문에 발생한 거니까.

 

한국 경제연구원이 좀 더 분발해서 이 땅에 갈등요소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했으면 좋겠다. 그 덕분에 아예 정치인이라는 이 상종못할 인간들이 원천적으로 이 땅에서 축출될 수 있다면, 한국 경제연구원의 위상도 엄청 높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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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14:48 2008/07/1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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