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덕에 집에 들어가길 포기하고, 다시 돌아와 그동안 미뤄놨던 것을 손대기 시작.
혼자 밤에 작업하는게 싫어 집에 가려고 했던건데.
그래서 비 맞고라도 갈까 했는데 형이 전화를 다했다. "지하철 역까지 와서 전화해. 우산들고 나갈께."
집에 가고 싶은게 맞고, 누군가 가까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게 맞다.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싶"었다는 것. 대답을 망설이다 애매하게 말했다. "자전거 타고 가는 중이야".
요즘 계속 밤늦게까지 돈안되는 일하고, 사람들 만나러 다니고, 토요일은 전날 밤새고 와서는 씻고 밥먹고는 바로 MT간다고 나선 그런 아들/동생을 걱정하는 가족. 가족주의는 싫지만 이럴땐 살짝 뭉클하다. 무심하고 매정한 내가 약간 미안하다. 우산들고 나오겠다는 형의 호의를 사실상 거절한셈. 형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준다. "그럼 조금 거기 있어보고 비 그치면 오고, 아니면 거기서 자고 와". 땡큐다.
-------
자전거 타고 싶었다. 마침 낮에는 같이 탈 사람도 있었다. 얼마전까지라면 조금 망설이는 시늉하고 자전거타러 갔겠지만, 이번엔 쓰고 싶은 글과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그걸 선택했다. 쓸 글은 두갠데 그 중 하나가 더 쓰고 싶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살짝 미안한 거다. 더 쓰고 싶은 것과 안 써주면 조금 더 미안한 것을 모두 고민하다 둘다 안됐다. 한번에 하나씩만 하자고 해도 그렇게 안된다. 결국 다른 기술 작업을 했다. 사실 글쓰는 것보단 지금 이걸 더 하고 싶다.
그 동안 대충 관리한 서버를 제대로 돌보고, 미디어문화행동(http://gomediaction.net)과 서울번역모임(http://seoulidarity.net)이 쓸 서버를 돌려야한다. 계속 방치해두고 있는 Sun 420R. 리눅스에 익숙하다보니 솔라리스가 낯설어 지금까지 손놓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알아서 잘 돌아간다고 신경 안쓰고 있는 FreeBSD 메일 서버가 있다. 거기엔 메일링 리스트 운영 프로그램을 깔고 정보통신활동가 메일링을 그리로 옮기려 한다. 솔라리스와 FreeBSD는 설명서가 아주 상세히, 방대하다. 그것도 하나씩 하는게 아니라 번갈아 동시에 읽으며 조금씩 하고 있다. 그렇게 밤을 샜다.
한 6시쯤 잔 것 같은데 회의 준비하러 일찍 온 사람이 있어 9시쯤에 깨 문을 열어줬다. 머리맡에는 Sun 서버가 거친 숨소리와 열기를 내뿜고 있고, 방을 빌려쓰는 처지라 흉한 꼴 안보이려고 문을 닫고 잤기에 방은 후끈하다. 창문을 열어놨지만 별로 효과는 없다. 침낭 하나를 깔았는데 땀차서 안까느니만 못하다. 결국 맨바닥에서 뜨거운 열기 속에서 세시간을 잤는데 몸이 개운할 턱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설사. 요즘 계속 술마시고 몸을 축낸 탓일까.
--------
VMware 를 처음 써봤다. 한 OS안에 다른 OS를 돌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하지만 난 싫어했다. 왜냐면 학교 다닐때 리눅스를 퍼뜨리기 위해 나름 애썼는데, 결국 사람들이 윈도우를 버리지 못하고 VMware로 살짝 리눅스를 설치만 하고는, 필요할때만 쓰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OS두개를 같이 깔고 처음 부팅할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 열심히 소개하고 다녔는데.. 컴퓨터 전공한다는 학생들도 역시 대개 그러하다. 운영체제론을 공부하는 학생만 그나마 관심을 가지고, 그 중 대부분이 사실 저런 식으로 가볍게 사용할 뿐이었다. 전공 과목에 리눅스를 활용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맘에 안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vmware 를 쓰게 된 것은, 진보넷 웹진(http://webzine.jinbo.net)에 쓰고 있는 리눅스 강좌때문. 리눅스를 설치하는 과정이라던가, 몇몇 상황에서는 자체 캡처가 안될 때가 있다. 관리자 비밀번호를 묻는 등 화면에 Lock이 걸릴때 등이 그렇다. 그런 상황을 캡처하기 위해 vmware 를 깔았고, 그 안에서 리눅스를 돌리며 원하는 모든 것을 캡처할 수 있었다. 어제 삽질한 것중 가장 눈에 띄는 소득이라면 이것이다. 그런데 그 글은 역시 오늘 안에 나오긴 힘들겠다. "미안한" 글이 오늘 마감이니까. 그거 쓰고는 잠 좀 자고, 자전거타고 몇시간은 달리련다.
-------
취직 올인 모드로 들어가기전에 뭔가 흐름을 만들어보고 싶어 조금 무리하는 중이다. 그런데 재미있다. 깔깔 웃을 수 있는 그런 재미는 아니지만 분명 이것도 재미있다. 이 재미를 다른 사람들의 "재미"와 섞어보기 위해 지금껏 그리 노력한 거나 다름없다. 지금껏 썰을 풀어댄 것도 사실은 그런 목적이었다. 이 봐, 이 세계에 이런 신기한 것들이 있다고. 당신의 작품에 반영해봐. 하지만 그렇게 잘 됐는지 모르겠다. 결국 나도 현실의 요구에 부응하다 재미없고 "의미만 가득한" 얘기만 한 건 아닌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것과 접목시켜 보려는 건데, 글쎄 그러면서 시간이 계속 가는 탓인지 점점 감각은 무뎌지는 것 같고. 습득한 기능이 많아지는 만큼 창의력은 떨어지는 건 아닌가 생각되고.
밤새 서버와 씨름하고, 코드를 수정하고 하는게 일로서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하는 활동이기에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잊어버렸던 것을 다시 떠올리고, 그동안 몰랐던 것을 새로 배우는 것은 역시 나를 자극하는 것들이고. 그동안 만난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에 매료되서, 나도 그런 것을 해보려고 계속 밖으로만 돌아다닌 것 같다. 물론 그런 걸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할 거다. 그러면서, 역시 나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컨텐츠를 더욱 발전시켜 공유하는 것을 잊지 않고 같이 하고 싶다. 그리고 그걸 또 나누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