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잡기장
행인님의 [엎친데 덮치기...] 에 관련된 글.

지각생은 심각한 근시와 난시를 갖고 있다. 안경을 벗으면 안그래도 산만한 주의가 더 분산되고
정신이 몽롱해지며, 아주 배고프거나 춥지 않은한 10분 후면 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다.
지금 상상했겠지만, "병든 닭"처럼 보인다.

짜증도 는다. 그리고 위험하고. 눈이 네개여도 곳곳에 부딪히고 다닌다 (지금도 이마엔 상처가 -_-)

농구하다 안경 무지 깨먹었다. 농구할 때 내 포지션은 파워포워드. 놀랍게도 삐쩍마른 지각생이 슬램덩크의 "강백호" 포지션이라니! 하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키마저 작던 중학교때부터, 시작부터 그 포지션이다.

그 포지션이 된 건, 보통 단신이 갖고 있는 스피드 혹은 드리블 능력, 그런게 없고 어리버리 어부버 ~
슈팅 능력도 별로였으며, 게다가 팔힘, 손목힘 다 없어 조금 떨어지면 슛도 못쏘는데, 오직 갖고 있는게 있으니, 그게 바로 위험 불감증과 공 밝힘증이었기 때문이다. 슛~ 노골! 그 순간 키큰넘들 사이로 언제 파고 든 지각생의 점프! 그러나 키큰넘이 팔 뻗은 만큼만 오를 뿐. 하지만..

 혹 슬램덩크 보신 분 그 장면 기억하시는가? 산왕공고에게 20점차 이상으로 깨지고 있다가 강백호가 팀 분위기 살릴때, 신현철과 장신 한명이 한번씩 뛸 동안 두번 점프해서 공을 쳐내 결국 잡아내고, 그걸 정대만이 받아 3점슛을 넘는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녀석은 팀을 신뢰하고 있다.."
그거 한번 하고 나니 입이 벌어지는 사람들.. 하지만 난 그걸 매 경기마다 했던 것이다 -_-;

오직 점프할때는 내 머리위로 보이는 공만 보고 두 손을 뻗으며 ㅤㅅㅗㄷ구치는데, 내가 이미 점프를 시작했지만 아직 그 높이가 누군가의 팔꿈치 위로 올라가지 못한 상황에 그마저 하늘을 보고 있었다면 나는 이마를 부딪히기 일쑤였고, 심각한 경우는 눈을 "뻐억!" 소리 나게 맞은?(박은-_-) 적도 있었다. 한번은 그러다 팔꿈치가 안경알을 박살내며 그게 내 눈을 스치고 갔다. 안과에서 꼬매고 나니 의사가 조금만 위로 스쳤으면 실명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고도 지각생은 게의치 않고 다시 농구를 하곤 했다.

그래서 내 안경테는 멀쩡한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많거나 비슷했는데, 도저히 응급처치가 안돼 안경점에 맡기거나, 새로 맞췄을 때는 별 수 없이 안경 없이 다닐 수 밖에 없다. 비상용 안경은 내 근시와 난시가 계속 심해져서 쓰고 있으면 머리 아프다. 그래서 길을 다닐때(자전거를 안탔을때)는 안경을 벗고 다니고, 뭘 들여다 봐야할때만 꺼내 쓰고 다녔는데

가끔 안경을 벗고 길을 다니면, 느낌이 좋다. 나와 마주치는,스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는 것, 그 사람이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내게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아예 보이니 판단할 수도 없고, 그러니 내 맘도 편해지는 것이다. 잘 보이는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실을 정확히 본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두려움의 원인이자 결과일지 모르겠다. 내가 미술은 못하지만 비유하면 "사실주의"적으로 보고, 생각하며 사는 것 같은데, 난 사실이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다. 책으로 보고 말로 듣고 해서.

뿌옇게 보이는 건물, 나무, 길, 사람, 개천, 하늘, 구름, 신호, 쓰레기, 마치 그림을 그린 것 같은. 그러면 이게 진짜 모습 아닐까? 안경 안쓰면 이렇게 보인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이렇게 보는게 자연스러운건데 인위적으로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보고 있는 거 아닐까? 사실 다칠 위험만 없다면, 이미 길은 익숙하고, 지나는 사람은 대개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 안경을 계속 쓰고 다닐 필요는 없는디.

학교에서 자연인인양 생활할때, 벤치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보고 그랬는데(전에 얘기했나?) 안경을 쓰고 보면, 참 멋대가리 없다. 안경을 벗고, 잠시 멍하게 있으며 초점을 흐리면, 그 나뭇잎 사이가 둥그런 불빛처럼 되고, 더 있으면 반짝반짝 거린다. 그 상태에서 눈에 힘을 뺀채로 살짝 시야를 넓혀보면 나무 전체가 반짝반짝 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는 깜깜해진다. zzz

요즘에는 그렇게 여유부리며 지내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일하다가 한강에 자전거 타러 가는 것도 최근엔 거의 못했다. 뭔가 계속 할 일이 있는데, 다 자업자득이다. 눈에 보이는 걸 어떡하나. 프로그램 짜듯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기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꺼풀 들여다 보고 살다보니, 사람들과 뭔가 같이 하다보면, 굉장히 좋은 구상이고, 그거 꼭 됐으면 좋겠어서 시작을 했고, 거기 살짝 결합을 하려고 하는데, 가끔 보면 빈 구석들이 보인다. 그러면, 저걸 누군가 해야 일이 되는데 싶지만 할 사람이 없다 싶으면, 가만히 있지 못한다. 아, 저거 저거, 그것만 하면 되는데, 아놔..

안경은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는데, 꼭 고생거리만 찾아서 보는 이 불량한 안경은 맘대로 조절이 안된다. 쩝, 할 수 없지. 짱나고 억울해도 어떻게든 해치워 보자. 조금만 더 버텨보자. 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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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4 00:36 2006/11/2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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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느 2006/11/24 00:43 URL EDIT REPLY
와..몇분만에 쓰신 건가요
지각생 2006/11/24 00:51 URL EDIT REPLY
시간 안쟀는데요 ㅡㄴㅡ?
쥬느 2006/11/24 01:01 URL EDIT REPLY
와..몇분도 안걸렸나봐..
지각생 2006/11/24 01:05 URL EDIT REPLY
새로운 시도임 -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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