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으로 들은 "정치". 하지만 그 얘기는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잊고 있긴 했지만 내가 정치적이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사실 사는게 다, 모든 게 다 정치라고 하지만 "특별히 도드라지는" 정치적인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흠칫 놀라며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에게 충실하지도 못하면서 많은 사람을 알려고 한다.
혹은 한 사람에게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알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배려라는 것은 결국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히 있다.
좋은 인상을 남겼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소홀하고, 무심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소통이 무언지 잘 모른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왠지 무엇때문에 그럴 것 같다는, 몇가지의 가능성으로 넘겨짚기, 지금 얘기되고 있는 포인트를 시공간적으로 어긋나 돌아다니기
그리고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데 아직도 불안해하며 힘이들어감.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주고 많이 받는다. 전혀 치밀하지 않고, 계산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오직 한 시점에, 한 사람과, 단 한문장이라도 제대로 소통하고 싶은데, 대개 그것이 다른 시점이거나, 다른 사람과 있을때라던가, 다른 상황에 있을때야 비로소 무언가가 찾아와 그때, 그 사람, 그말이 이해될때가 많다.
이건 딴 얘기구나. 여튼, 내 정치적 성향은 내 개인 역사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사람들의 동정과 도움을 받고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때, 석간신문을 배달하는데 소나기가 내렸다.
전혀 대비가 없었던 나는 옷과 신문이 흠뻑 젖고 말았다.
3학년때 선생님이 맞춰준 안경도 흘러내리다 떨어졌고, 테가 부러졌다.
자전거를 못타는 나는 등짐을 지고 신문을 돌려야 했는데
반에서 1번,2번 할만한 키에 삐쩍마른 휘청이에게
비에 젖은 신문가방은 너무 무거운 것이었다.
울고 싶은데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비에 젖어 가려진 것이 아니라 정말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터덜터덜... 분명 나중에 다시 들 수 없는 무게와 내 힘이었는데 그냥 그렇게 걸어가며 다음 코스.. 안경점으로 갔다. 신문을 테이블 아래에 넣고는 얼릉 돌아나오려 했다.
그 안경점 주인은 냉정한 사람으로 기억됐다.
신문이 늦으면 항상 뭐라고 그러고 (자전거를 안타다보니 늘 늦긴 했다)
오늘은 비까지 젖었으니 뭐라 할 거 같아서 얼릉..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불러 세웠다. 꼬마야.
천천히 돌아섰다. 또 뭐라고 하려나..
너 안경 어딨니
...
부러졌어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울컥. 뭐가 나오려고 했다.
이리 와볼래 가방은 저기 내려놓고
그때 내가 울었는지 울컥만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울었던것 같다.
부러진 안경테를 보고, 나를 보고, 가만히 있던 그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안경테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튼튼해보이는, 그러나 가벼운 안경테를 골랐다.
그리고는 내 부러진 안경테를 임시로 연결해놓고는
내일 다시 와보렴
그리고 내일 나는 새 안경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눈이 나빴기에, 그만한 안경을 하려면 적어도 5만원(당시 가격이다)은 있어야 했을 것이다.
안경 맞출 돈이 없어 초등학교 3학년때 선생님이 맞춰준 안경이 처음이었고, 그후 눈이 더 나빠졌지만 2년동안 그냥 써왔던 안경이었다. 그걸 생각도 못한 사람이, 생각도 못했을때 나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안경점을 나올때 비가 수그러 들었다. 완전히 그치진 않았지만
그리고 내 눈물도 수그러 들었다. 가방이 엄청나게 무거웠지만 괴로운 느낌의 그것은 아니었다. 다음 코스부터는 왜이리 신문이 "늘상" 늦느냐는 말을 거의 빠짐없이 들으며 신문을 돌렸다.
그때부터였을까
나와 전혀 상관 없어보이는 누군가의
전혀 예측못한 상황에
전혀 보답을 바라지 않은 작은 선행이 얼마나 아름다운건지 알게 된 것
지금 나와 "관계"의 끈으로 얽혀 있는 사람말고, 내가 모르는 저.. 막연한 검은 구름으로 그려지는, 영화의 한장면을 끌어다 기억하고 있는 "일반인" 혹은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선함"이라는 것. 그런 것이 분명히 있음을.
그리고 그런 선행의 덕을 알고 보니 늘상 어디선가 계속 받고 있었다는걸. 더 살면서 알게 됐다는것.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런걸 유도하는 법, 동정을 끌어내는 법도 익혀버리게 됐다는 것이 날 가슴아프게 한다)
그리고 그런 "일반적인 대중"의, 이익을 바라지 않는, 예측 못한 선행이 사실은 언제, 어디에나 있으며, 그런 것이 사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 세상을 지탱해나간다는 것을
F/OSS(자유/공개소스 소프트웨어)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내 생각은 고정이 돼버렸다. 그건 "이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있는 "현실"이다. 이미 지금도 그런 세상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운동을 한다는 건 단지 그걸 밖으로 드러내고, 다시금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게 하고, 아니 만드는게 아니라 지금 그대로를 드러내게 함으로써, 그래서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하고, 핍박하는 소수의 무리가 자연히 힘을 잃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뭘 만드는게 아니다. 이미 있는것이 생생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만든다"는 말에 들어있는 위험성...
비록 일상의,구체적 삶의 현실속에서 난 살아남기 위해 계산적인 면을 익힐 수 밖에 없었고
"도움을 받는 법"의 유용함을 알게 된 후 그걸 더 발전시켜 와버렸지만, 어찌보면 가르침을 스스로 배반한 삶을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역시 그렇다는 것. 내 스스로 어느 정도 안정만 된다면, 더 이상 내 실존이 낭떠러지로 한 걸음 내딛는 그 아득한 느낌에서만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다면, 완전한 안전은 없더라도 누군가가 내게 언제나, 분명히 손을 뻗어줄거라는 확신을 더 가질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나에게 말해왔다.
지금 내 삶은 공허하다.
이건 오직 안전외에는 추구하지 않는 상태.
그래서 뭔가 담으려 하지만 담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닌
결국 내가 뭔가 하려하고, 그게 분명하고, 내가 조금더 세상과 나로부터 자유로워질때
오직 그거 하나에, 자신을 일치시켜 살 뿐이고 내게 남는 것이라는 게 따로 떨어진 무언가가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
하지만 그것을 위한 탐색, 준비 과정이 생각보다 길다. 엄청 길다. 내 자신의 안정은 어느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혹은 어떤 조건이 되면 자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2달 후면 서른. 서른이라는 나이에 의미를 둘 생각은 없지만 돌이켜 봤을때, 어릴때는 "그 나이쯤 되면 뭔가 자리를 잡고.." 라고 생각했다. 이 "자리를잡고.."라는 표현. 그건 바로 "안정"에 대한 강한 욕구다.
이쯤되면 얘기가 많이 샜다. 마무리..
내 정치적인 성향에 대해 또 오버하며 "비판하고", "바로잡고" 뭐 그럴 것까지는 없지만, 그게 왜 생겼는지, 무엇을 위해 갖고 있는건지 잊지말고 가끔 되새겨야겠다. 사람들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최소한의 삶의 유지를 위한 방법을 찾아낸 다음에는, 내가 생각하는, 원하는 세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려 함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