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더는 신비롭지도 않을 뿐더러 더 아름답게 변하리라고 생각하기 힘든 시기에 접어 들었다. 벌써 마흔을 훌쩍 넘겼고, 세상도 사람도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나는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념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여젼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사상의 거처

/ 김남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라 네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와 손등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노동자일 터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나는 그 집회가 어떤 집회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집회장은 밤의 노천극장이었다
삼월의 끝인데도 눈보라가 쳤고
하얗게 야산을 뒤덮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추위를 이기는 뜨거운 가슴과 입김이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수만 개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입으로 터지는 아우성과 함께
일제히 치켜든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
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적과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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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0:42 2012/01/08 20:42

정호승의 시는 위안이 된다.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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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0:39 2012/01/08 20:39

한겨레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뭐라고 딱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어떤 정서적 거리감이 느껴진다. 한겨레신문에 대한 나의 인상은 구태의연하다는 느낌. 오랜만에 한겨레신문을 뒤적여 보았다. 아침햇발, 반체제와 반정부, 장석구 논설위원실장. 그 아래 기고, 공선옥 소설가, 누가 우리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가. 공선옥 소설가의 글을 좋아한다. 그런데, 한겨레신문에 실린 공선옥의 글을 선뜻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독한 편견인가.

정석구씨의 "반체제와 반정부"를 읽다 신문을 내려놓았다. 정석구씨는 반체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반체제란 말 그대로 기존의 정치, 사회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국가 체제에 반대하거나 그 체제를 뒤엎기 위한 활동 등을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반체제 활동이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국가 체제에 반대"한다는 그의 말에서 어떤 징후를 느꼈다. 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체념하고 있구나. 힘들어 하는구나. 단어 하나하나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는구나. 이건 자기검열이다. 아니다. 이건 부르주아들의 무의식적인 정신 상태를 보여줄 뿐이다.

만약, 이 사람의 표현대로 특정한 국가 체제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국가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가? 프랑스의 인민들은 어떻게 그들이 합의한 국가 체제를 전복했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의 어둠을 걷어버리기 위해 죽창을 들고 일어섰던 동학 농민들은 왜 그들이 합의한 국가 체제를 전복하려고 했는가? 아마 정석구 씨는 인민들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어떤 형태로든 국가 체제에 합의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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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0:37 2012/01/08 2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