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왜 다녀야 하는가? 아마 이제 막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학생에게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나는 실제로, 조카에게 “대학을 꼭 들어가야 되니?” 이렇게 물어보았다. 조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이렇게 대꾸한다. “삼촌 바보가?” 그런데, 이 대답에는 사실 굉장히 함축적인 의미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삼촌이 바보냐는 역질문에 숨어있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말들이 갯벌의 뻘구디기에서 스륵스륵 기어 나오는 게의 집게 발가락처럼 꼼지락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대학을 가고 말고는 자신의 의지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많은 경우 대학에 가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닌 듯하다. 그런데도 반드시 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또 대학이 아닌가? 고등학생에게 대학은 인생의 목적이 아닌데도 한국에서 대학에, 그것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인생의 최종 종착지처럼 간절한 바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간절해서 죽을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어린 학생들이 4월 봄비에 흩어지는 벚꽃처럼 스스로를 허공에 내던지는 것일까?

김예슬에게 대학은 어떤 곳이었을까?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3년이 인생을 좌우한다는데 아마도 김예슬은 대학에서 얼결에라도 인생의 꽃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모진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처럼 김예슬은 경쟁과 억압 속에서 대학이 젊음의 상징도 아니오, 학문의 전당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해 스스로 족쇄를 벗어던진 것은 아니었을까?

한 사람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연결고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 아니 너무나 자주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선택은 나의 의지라는 거짓 내면화의 결과다. 러시아어에서 자유와 의지가 동일한 단어라는 걸 생각하면 나의 자유조차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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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0:51 2012/01/08 20:51

누군가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감정이 마음에서 싹튼다는 것은 분명 삶이 행복한 상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언제나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랑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상호적이지 못한 감정은 영혼을 갉아먹는 질병과 같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감정은 타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의 사랑이 너에게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나의 사랑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나의 사랑은 패배자의 증오와 같은 감정으로 끝날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라고 전제하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너는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하고만 등등으로 교환할 수 있다. 네가 예술을 향유하기를 바란다면 너는 예술적인 소양을 쌓은 인간이어야 한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바란다면 너는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어야만 한다. 인간 - 그리고 자연 - 에 대한 너의 모든 관계는 너의 의지의 특정한 대응에 상응하는, 너의 현실적, 개인적 삶의 특정한 표출이어야 한다. 네가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의 너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너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너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력하며 하나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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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0:49 2012/01/08 20:49

가끔씩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나 손등에 상처가 난다. 어떻게 해서 생긴 상처인지 알 수도 없다.

블로그의 글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일기가 아닌 글을 쓰기가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노예는 단 하루의 자유가 오히려 불안한 법이다. 20년 만에 기형도의 시집을 샀다. 2010년도 벌써 12분의 1이지나갔다. 한 달 동안 나는 자유로운 노예였다는 생각을 했다.

공교롭게도 시집을 펼쳤을 때 이 시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집 앞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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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0:45 2012/01/08 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