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쯤의 만남.
그냥 모든 것이 짜증스러웠다.
아침 해가 뜬 뒤에야 잠든 탓에 좀체 눈도 떠지기 전이었다.
10시쯤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 차가 고장나서 카센터에 있으니 들러서 데려가라는 거다.
우리집에서 벽제 추모공원으로 바로 가면 30분, 일산 그의 집 앞으로 들렀다 가면 한시간.
추모공원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한 시간은 11시인데 말이다.
난 아직 눈도 안떴는데.
추운데도 나이드신 선배가 나와있겠다 하니 어쩌겠는가.
만나기로한 곳에 갔는데, 역시 나이드신 선배는 내 수고를 덜어주겠노라고 내 차 진행방향을 되짚어 갔고,
결국 길은 어긋났다. 한참 후 백밀러에 뛰어오는 선배가 보인다.
마음이 급한 나는 선배가 타자 마자 기다린 생색을 내며 기어를 넣었고,
2단으로 바꾸려는 순간, 그 선배는 기어를 잡고 있는 내 손을 붙들고 반갑다고 너스레를 떤다.
"놔! 운전하잖앗!"
이런저런 안부를 물어온다.
일하기 힘들지는 않느냐, 별일 없느냐,,,
별 말 하고싶지 않던 내가 슬슬 짜증나던 차에
"거긴 주5일근무 하고 있니" 정말 경우없는 질문이다.
"주5일? 그냥 상황대로 하는거지 뭐" 그 형이 다시 하는 말이 허걱이다.
"주5일근무를 하도록 해. 주5일근무가 좋아."
으이그.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추모공원에 도착했다.
8년 전 이맘때 목숨을 끊은 선배 앞에 섰다.
선배가 죽기 전, 어린아이였을 때만 보았던 형의 아이들이 와 있다.
벌써 중2와 초5가 됐다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내 앞에 선 그녀는 나보다 한두살 아래다.
그녀는 서른도 채 되기 전에 남편을 잃고서,
혼자 두 아이를 저토록 이쁘고 착하고 씩씩하게 키워낸 거다.
아이들은 깍듯하게 우리에게 인사하고,
엄마가 제사상 차리는 것을 돕고,
눈치없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한마디씩 건네는 것에 공손하게 대답한다.
여전히 철없고 내멋대로인 내 눈에도 그녀는 위대해 보인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선배에게 "어쩜 아이들이 저렇게 잘 자랐을까..." 진심어린 감동을 뱉어냈다.
내 말을 들은 선배는
"어렸을 적에 힘들 일을 겪은 아이들이 조숙하고 올곧게 자라는 것 같더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은 힘든 일을 당해도 저렇게 된다. 사랑하고 베푸는 방법을 배우고 자란 거다.
사랑을 못받고 자란 아이들은 간혹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 선배는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너도 살아온 걸 보면 사랑하고 베풀 줄 알아야 하는데, 왜 안 그러지?"
나도 진정어린 대답을 했다.
"난 받고만 자라서 받을 줄만 알고, 베푸는 법은 몰라~"
아이들과 헤어지며, 중학생 딸아이 손에 만원짜리 몇 장 쥐어주고 돌아서는데,
아이들 엄마가 내 손을 꼭 쥐고 "꼭 집에 한 번 오세요. 밥 해드릴께요~" 라 한다.
가슴이 찡한게, 그녀는 여신임이 분명하다...
저런 그녀가 키워낸 아이들이니 올곧을 수밖에...
아침에 후배의 온갖 패악질을 감내하고 내 차를 얻어탔던 선배.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시간을 내서 날 만나고,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우울할 때는 이런 책을 보라며 책을 주고, 명절 땐 불러서 선물꾸러미를 챙겨주던 선배...
오늘 아침에 난 그 선배에게 또 그렇게 패악질을 부린 거다.
형 때문에 길을 돌았고, 형 때문에 늦었노라고 투덜거리는 나에게 그 선배는
"그냥 좋은 일 한다 쳐~"라며 웃기만 했었다.
저녁에 열네살짜리 딸아이 지원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감사했어요^^ 아침부터 수고하셨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차가 막혀서 지금 도착했어요 ♥지원♥"
난 부끄러워서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