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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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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어제 군산 새만금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했다는 기사를 보고, 4.3 위령제에도 가지 않았던 그가 단지 준공식에 참석하려고 그 행보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역시나 1타2피로 귀경길에 현충사를 들리셨단다. 아마 이러한 방문계획 역시 그의 머리에서 나왔을리는 없고, 전날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서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참배하는 쇼를 보여준 후 후속타를 기획한 측근의 발상일 터이다. YS의 방문 이후 15년만에 현직대통령이 방문한 셈인데, 누리꾼들은 이를 보도한 미디어다음의 연합뉴스 기사 댓글에서 그 쇼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건대, MB는 향후 되도록 언행을 하지 않는 게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이순신장군 영정에 참배하면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글을 남기자, 누리꾼들은 댓글에서 '죽어야할 사람은 살고, 살아야할 사람은 죽고'란 뜻이라고 하고, (정치적으로는 썩 바람직하진 않지만) '군필즉생, 미필즉사'가 타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http://j.mp/cXogTJ

 

예전 군사정권 때는 매년 4월28일을 충무공탄신기념일로 정하고 이를 기리도록 했다. 그리고 그날에는 "보라 우리 눈 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 거북선 거느리고 호령하는 그의 위풍~"으로 시작하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세뇌교육의 흔적... 그로 인해 이순신장군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조금 중화되었다.

 

사실 나에게 4월 28일은 김세진, 이재호 열사가 산화한 날로 기억된다. 벌써 20년이 지났고, 그 현장에 있지도 않았지만, 한국사회에서 미국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던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지 않나 싶다.

 

이 글과 관련하여 예전에 네이버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다. 

 

을님의 블로그인 을의 놀이터에 갔다가 불멸의 이순신에 관한 글이 있어서 덧글을 달고 김에 엮인글을 쓰게 되었다.

 

나 또한 불멸의 이순신 매니아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보다가 재미 없어서 보지 않았는데, 이순신이 함경도에서 근무할 때부터 다시 보게 되었다. 지금은 거의 빠짐없이 보고 있는데, 주말에 보지 못하면 화요일 KBS드라마채널에서 재방송을 할 때 보게 된다. 하지만 김훈이 이 드라마를 씹었다는 게 생각나서(참고, 김훈과의 인터뷰) 외부로는 이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내색을 별로 하지 않고 있었는데, 글을 약간 길게 쓰려다 보니 밝히게 되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김훈의 [칼의 노래]와 김탁환의 [불멸]을 원작으로 한다고 한다. 전자는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많이 다루었고, 이순신의 어린시절 얘기에서부터 함경도 경험 등은 김탁환의 [불멸]에서 가져온 듯 하다. 헌책방에 있길래 둘다 사두었는데, 드라마를 보다가 그 다음 장면이 궁금하면 꺼내보곤 하였다. 저번주 토요일에는 [불멸]을 아예 1권 마지막부터 3권까지 한번에 읽어버렸다. 전지적 관점에서 각 인물들의 입장에서 서술을 하고 있는데, 그럴싸하다. 김탁환의 불멸은 재작년엔가 6권짜리 다시 나왔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이순신과 원균에 대해 다르게 묘사했을지 궁금하다. 초판에서는 이순신을 깎아내리고 원균을 지나치게 높게 본다고 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 참조된 글에서 소설가 송우혜님은 드라마도 그렇지만, 원작소설들도 만만치 않게 이순신을 폄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탁환의 [불멸]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원균 올리기와 이순신 깎아내리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나는 그래서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감동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니고 무엇이랴. 솔직하게 위 엠파스 블로그에 연결된 송우혜님의 글은 문구 하나하나에 얽매어 너무 꼬투리를 잡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역사가 왜곡되어 전달되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그렇게 왜곡을 했는지는 다소 의문이 들며, 아직 확실한 판단은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이순신을 비하한다기 보다는 인간으로서 이순신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는 데 한 표를 주고 싶다.

 

우리들은 교과서를 통해, 위인전을 통해 어느 정도 이순신에 대해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순신 열풍이 불어 이에 관한 각종의 책들이 출간되었고, 사람들도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그렇게 심하게 왜곡을 하는 것이라면 아마 시청거부운동이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오히려 나같은 이들을 드라마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위에 시청자들이 꽤 된다.

 

나만 하더라도 내일을 여는 역사 2004년 겨울호(제18호)를 사서 거기에 '시대에 비춰진 이순신'이라는 기획글을 보았다. 거기에는 오종록, [보통 장수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 조선후기 이순신에 대한 평가], 이덕일, [일본 축출의 영웅에서 군사정권의 성웅으로, 다시 인간 이순신으로], 장학근, [군사전략가 이순신이 우리에게 준 교훈] 등의 글이 실려 있다. 이만하면 최소한 드라마를 보면서 균형을 잃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자격은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드라마에서 지적할 것은 동인들 중에서 유성룡을 너무 높게 평가하고, 윤두수로 대표되는 서인을 깔아뭉개는 것이다. 송강 정철도 정치협잡꾼으로 그려진다. 이런 흐름이 최근 역사학계에서 제시되고 있다손 치더라도, 율곡이 서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약간 지나치지 않은가 싶다. 다행히 가면 갈수록 윤두수 또한 나름대로 사려 깊은 인물로 그려지더라. 사실 세상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별된다는 것은 동화책에나 나오는 소리이고(요새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ㅇㅇ 동화], 이런 식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도 꽤 나온다), 지나치게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 것 아닌가?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항상 정당화되고 옳을 수는 없는 것처럼 성웅 이순신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을님의 블로그 관련글의 덧글에서도 말했지만, 지금의 이순신 열기는 과거 군사정권 때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그 때는 초딩들도 4월 28일인가 '이충무공 탄신 기념일'이 되면 기념식을 하고 노래를 외워야 했다. 그렇게 어릴 때 주입된 노래들의 가사는 여전히 다는 아닐지라도 머리 속에 남아 있다. 세뇌라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노래"(제목이 맞나? 너무 긴데... 당시에는 옛날 사람들은 다 충무공식으로 이름이 두개인 모양이다 했다.)의 가사는 대충 이러했다.

 

보라 우리 눈 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

거북선 거느리고 호령하는 그의 위풍,

일생을 오직 한길 정의에 살던,

그이시다 나라를 구하려고 피를 뿌리신 그이시다.

충무공 오 충무공 민족의 태양이시여, (북쪽에서 떠받드는 그 분이 생각난다. ㅋㅋㅋ)

충무공 오 충무공, 역사의 면류관이여... (맞나?)

 

정확한 가사인지 모르겠지만, 대충이라도 생각해내는 이 대단한 기억력을 보라. 왜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못하고 쓸데없는 것만... ㅡ.ㅡ;; 역시 세뇌란 무섭다.


참, 김완이라는 사람의 캐릭터에도 관심이 많다. 이순신 장군의 휘하 장수들 중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 사용하는 인물로 나온다. 요새 한참 뜨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와 관련된 사건들이 많이 드라마에 나온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우리 집안은 양반집안이여. 너는 김수로왕의 몇대손이고, 김유신 장균의 몇대손이며, ㅇㅇ김씨 사ㅇ파인데, 큰집은 영암 화소에 있으니 나중에 제사 모실 때 가봐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에 덧붙여 집안의 인물 중에 김 완 장군을 언급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 김 완장군이 [불멸의 이순신]에 나오는 그 김완인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니까 더 재미나게 다가온다. 다음회는 3월 12일 (토요일) 9시 반이다. 보완: 불멸의 이순신에 나오는 김완은 내 선조와는 동명이인이었다. 네이버 등의 온라인백과사전 검색에 걸리는 사람이 내 할아버지뻘되는 이인 듯하다. 드라마의 김완은 본관이 경주이다.

 

내일 2006년 4월 28일은 김세진, 이재호 열사가 신림4거리에서 “반전반핵 양키고홈” “미제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반대”를 외치며 분신하며 쓰러진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이번 주 한겨레21에서는 특집으로 두 열사의 뜻을 기리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두의 열사가 아닌 반미 자주 통일을 외치는 그들만의 열사로 전락하였는지 모르겠지만, - 아래 한겨레21 기사의 89년 4월 28일 열렸던 분신 3주기 추모집회에 걸렸던 만장에도 보이듯, "열사의 시신 안고, 가자! 축전의 도시 평양으로"라는, 되도 않는 구호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물론 여기서 열사는 이철규, 이내창 열사였다 - 두 열사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지금도 유효하지 않을까.  

   

이성지 작사, 작곡으로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의 [메아리 A Tribute to 1977~1996] 앨범에 윤선애의 목소리로 실린 <벗이여 해방이 온다>는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추모곡이다. 사실 같은 윤선애의 음성이지만, 민문연의 음반에 실린 곡보다는 더 낯설게 느껴진다. (2006. 5. 21. 추가. 연세대 총학생회에서 만든 [한열아 일어나라!!] 음반에서도 윤선애의 목소리로 실려있다.)

 

한열아 일어나라!! - 벗이여 해방이 온다
 

그 날은 오리라 자유의 넋으로 살아
벗이여 고이가소서 그대 뒤를 따르리니
그 날은 오리라 해방으로 물결 춤추는
벗이여 고이 가소서 투쟁으로 함께 하리니
 

그대 타는 불길로 그대 노여움으로
반역의 어둠을 뒤집어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그 날은 오리라 가자 이제 생명을 걸고
벗이여 새 날이 온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  

그대 타는 불길로 그대 노여움으로
반역의 어둠을 뒤집어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그 날은 오리라 가자 이제 생명을 걸고
벗이여 새 날이 온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
벗이여 새 날이 온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 

  

그리고 지금은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 20년이 다된 노래를 지금까지 부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 두 열사를 떠올리고자 한다면 <반전반핵가>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 곡은 박치음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북핵문제와 연결되어 의도적으로 기피된 노래가 되었다. 아래 노래는 광주지역의 노래패였던 [친구]가 부른 것인데, 가사 뒷부분의 가락이 지역마다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전국적인 공동투쟁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대적 산물의 결과로 보이는데, <동지가>가 80년대 후반 제각각이었던 것과 비슷하다.
   
친구8집 - 반전반핵가
 
반전 반핵! 양키 고 홈!
제국의 발톱이 이 강토 이 산하를
할키고 간 상처에 성조기만 나부껴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
이 땅의 양심들아 어깨 걸고 나가자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이 목숨 다 바쳐
해방의 함성으로 가열찬 투쟁으로
반전 반핵! 양키 고 홈!
    
한겨레21의 기사가 왜 오늘 내 눈에 띄었을까. 쩝... 
 

 

김세진·이재호는 아직도 묻고 있다 (한겨레21 2006년04월26일 제606호, 정인환 기자)
1986년 4월 28일 아침 9시 불꽃처럼 던져진 의문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들이 분신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평택의 농민들은 변함없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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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8 03:14 2010/04/28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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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왜 필요한가 - 사주 횡령 밝혀낸 보람상조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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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하는 이웃들이나 진보블로그를 사용하는 이들 중에 상조서비스 이용자가 얼마나 될까? 연령대의 문제도 있고, 굳이 상조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나름의 연줄(?)이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아마 내 주변에는 거의 없는 듯하다. 하지만 갑작스레 장례를 치르는 게 부담스럽고, 개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상조서비스가 없는 서민들은 티브이에서 자주 광고를 때리는 상조서비스에 가입하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없는 넘들만 당하는 세상이다.

 

요즘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케이블방송에서 보험, 대출, 핸드폰 광고 다음으로 많았던 것이 상조회사 광고였다. 지금도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는, 상조회사 광고는 꾸준히 나오고 있고...

 

그런데 장례비가 부담스러워 월 몇 만원씩 할부로 납부해두면 장례를 대행해주겠다는 상조업체의 약속을 믿고 가입한 서민들의 장례치를 돈을 빼먹는 넘들이 있었다. 바로 상조업체 1위인 보람상조이다.

 

물론 이걸 고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200억원이 넘는 보람상조 사주형제의 횡령혐의가 밝혀지고 부회장이 구속되기에 이른 검찰수사의 계기가 바로 보람상조 노조의 고발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함이다. 열악한 근무조건을 개선해보고자 설립된 노조(부산지역일반노조 보람상조 현장위원회)는 사측의 악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내부비리를 폭로해왔고, 이번 보람상조 사주의 비리횡령을 밝혀내기에 이른 것이다. 노조가 사주의 비리횡령을 고발하거나 보람상조에 가입한 서민들의 돈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것은 아닐 터이나, 결국 노조의 활발한 활동이 다수 서민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이걸 보고 있노라니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애용해왔던 고전경제학파 이론을 여기에 대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돈을 벌고자 노력하는데, 이것이 결국은 사회의 이익이 되고 공익에 이바지하게 된다"는 이론 말이다. 사실 삼성의 이건희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여 과연 그게 사회의 이익이 될런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 그리고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보람상조 노조의 경우는 고전경제학파의 논리가 거의 들어맞는 사례가 아닐까. 반드시 남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노조의 활동이 확실하게 공익에 이바지했으니 말이다. 상당히 많은 노조들의 활동이 그러하다. 물론 나는 노조가 자기이익 중심적인 활동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의미가 있음을 보람상조 노조의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궤변이려나... 생각나는 대로 걍 써봤다.

  

아무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장례의 특성상 휴일도 없이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해야만 하는 상조업계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티브이에 상조서비스 광고가 나올 때마다 노동자들을 다시한번 생각했으면 좋겠고...

  
사주 횡령 밝혀낸 보람상조 노조 (일터 / 2010년04월27일 11시52분)
장례 치를 돈까지 빼먹은 파렴치한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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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7 14:21 2010/04/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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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의 고전, 『프랭클린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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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굴뚝을 만드는 것보다 한 개의 아궁이 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하려면 분명한 직업을 선택해서 그 직업에 전력을 쏟으라.” “성공하기 위해선 자기 힘을 측정한 후 무리하지 말고, 뜻한 일에서 한눈팔지 말고,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
“시간이 돈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나에게 꿈이 있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시간은 인생을 구성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출발했는데, 세월이 지난 뒤에 보면 어떤 이는 뛰어나고 어떤 이는 낙오되어 있다.”
“돈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올 줄로 생각하지만 사실 돈은 아무런 행복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은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더욱 큰돈을 벌려고 한다. 돈은 공허를 메우기보다는 또 하나의 공허를 낳을 뿐이다.” “돈은 바닥이 없는 바다 같은 것. 양심도 명예도 빠져서 떠오르지 않는다.”
“돈의 가치를 알고 싶으면 나가서 얼마든 돈을 빌려 보라.” “빚을 진 채 내일 일어나지 말고, 오늘밤 먹지 않고 잠자라.” “둘째 가는 악이 거짓이라면, 첫째 가는 악은 빚지는 일이다.” “돈을 빌리러 가는 것은 자유를 팔러 가는 것이다.”
“작은 지출을 삼가라. 작은 구멍은 거대한 배도 침몰시킨다.”
“사람은 필요 없는 물건을 사지 말고 또한 필요한 물건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잘 사는 길이고, 훌륭하게 되는 방법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들이게 되면, 결과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팔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죽음과 세금 외에는 확실한 게 없다(In the world nothing can be said to be certain, except death and taxes).”
“현명한 사람은 남의 실패를 자신의 교훈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리석은 이는 자신의 실패에도 교훈을 생각할 줄 모른다.”
“핑계를 잘 대는 사람은 큰일을 해내지 못한다.”
“거짓은 한 다리 위에 서 있음으로 쓰러지나 진리는 두 다리 위에 서 있으므로 안전하다.”
“활용되지 않은 강점을 ‘그늘에 놓인 해시계’다.” “삶의 진정한 비극은 우리가 충분한 강점을 갖지 못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나이 먹고 어려울 때를 대비해 저축할 수 있을 때 저축해라. 아침 해가 하루 종일 가지는 않는다.”
1776년 첫 미국 대사로 파리에 온 가 ‘세상은 불의와 비참함으로 가득하다, 이런 세상에서 선언이 제대로 지켜지려면 사법적, 군사적 제재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미 독립선언서에는 그게 없지 않느냐’는 조르주 당통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한 말. “우리 선언서에는 막강하고 영원한 권력이 버티고 있다, 바로 수치심의 권력(the power of shame)이다.”
“아버지는 보물이고 형제는 위안이며, 친구는 보물이자 위안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장 최상의 방법은 오래된 개와 아내, 준비된 돈이다(There three faithful friends - an old wife, an old dog, and ready money).”
“세상의 어느 것도 그대의 정직과 성실만큼 그대를 돕는 것은 없다.”
“사람은 신뢰를 잃었을 때 가장 비참해진다.”
“하나의 오늘은 두개의 내일만큼 가치가 있다.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지금 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자를 돕는다.” “하나님을 위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거다.”
“맥주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는 증거이다.” “와인은 일상의 생활을 편하게 하고, 침착하게 하고, 긴장하지 않게 하고 인내를 준다.”
“인생은 정해진 시간이다. 그리고 문제의 연속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의무이며, 또한 사회에 대한 의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은 건강하고, 부유하고, 현명하게 만든다.”
“모든 사람에게 예절바르고 친절한 사람은 아무에게도 적이 되지 않는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욕망을 줄이든지, 소유물을 늘리든지 둘 중 하나만 하면 된다.”
“당장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근본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자들은 자유와 안전, 어느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
“먹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되, 입는 것은 남을 위해서 입어야 한다(Eat what you like, but dress for the people).”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뜨시오. 그러나 결혼 후에는 한 눈은 감으시오.”
“세 사람이 완벽한 비밀을 지키려면 두 사람이 죽어야 한다.”
“너무 온건한 법은 거의 준수되지 않으며, 지나치게 엄격한 법은 거의 시행되지 못한다.”
“독서는 정신적으로 충실한 사람을 만든다. 사색은 사려깊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논술은 확실한 사람을 만든다.”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바라는 것을 무엇이든 이룩할 수 있다.”
“지식에 투자하면 그 어떤 은행보다 더 높은 이자를 받는다.”
“좋은 전쟁이란 없다. 그리고 나쁜 평화란 없다.”
“어떤 사람들은 25살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살에 치른다(Some people die at 25 and aren’t buried until 75).” “진심으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절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비록 나이 때문에 죽을지는 모르나 그들은 젊어서 죽는 것이다.”
“태만은 천천히 움직이므로 가난이 곧 따라잡는다.”
“빈자루는 똑바로 설 수 없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배운다.”

 

자기계발을 촉구하는 이 많은 글귀들은 어떤 사람이 말한 것이다. 사실 이 중에는 평범하거나 당연한 말들도 있는데, 단지 다른 이들보다 먼저 했다고 해서, 그리고 자신이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글과 책으로 남겼다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자꾸 인용된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이다. 
 
[자서전 읽기](9) 벤저민 프랭클린의 ‘프랭클린 자서전’ (이권우 | 도서평론가ㅣ경향신문, 2008-11-07-17:08:17)
ㆍ검소와 성실함 지독하게 지킨 습관
ㆍ성공한 ‘美 건국의 아버지’ 만들었다

 
‘뜬금없이 웬 『프랭클린 자서전』!’이라고 할 이들이 많겠지만, 위의 이권우의 소개글 때문에 시간이 되면 이 책을 한번 읽어봐야지 라고 생각했고, 이 책을 헌책방에서 발견했을 때 망설임 없이 사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책장 구석텅이에 장식용 책의 하나로 쳐박혀 있었는데, 그 책을 끄집어내어 읽게 된 것은 얼마 전 4월 17일이 그가 사망한 날이었고, 경향신문에 그의 관련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위의 프랭클린이 남긴 금언들은 사실 자서전 관련기사를 찾다가 본 것인데, 이것들이 실린 곳이 대부분 경제신문이나 보수적인 신문들에서 자기계발을 촉구하는 칼럼들이었고, 인용한 이들이 자본주의 만만세를 외치는 이들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워서 시간은 좀 걸렸지만 옮겨왔다.)

 
[어제의 오늘]1790년 벤저민 프랭클린 사망 (경향, 임소정 기자, 2010-04-16 23:25:11)
ㆍ시간을 금으로 여기며 자기 관리
 
그는 뛰어난 인쇄공이자 1729년 ‘펜실베니아 가제트’를 만든 신문발행인이었으며, 1731년 미국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필라델피아 도서관과 필라델피아 대학을 설립했다. 전기의 원리를 확립했고 벼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1749년 피뢰침을 발명한 과학자였으며, 프랭클린 난로, 이중초점안경, 시계에 초침을 끼워넣는 것을 연구해낸 발명가였다. 양초를 절약할 수 있는 방안으로 생활습관의 변화를 제안하여 서머타임제의 시초가 되었고, 우체국 소포제도와 의용소방대를 창설했으며, 세계 최초의 화재보험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영국 식민지의 시민으로서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치인이 되었으며,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의 기초위원의 한 사람으로 임명되기도 하였고, 1783년 파리조약의 미국 대표로 파견되는 등 외교관이기도 했고, 군사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학교 교육은 2년이 전부였지만 독학으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라틴어를 익혀 구사할 만큼 자기계발에 철저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에서 그를 ‘르네상스형 인간’으로 추앙하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인 스티븐 코비 박사가 벤자민 프랭클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워싱턴이나 링컨보다 더 존경을 받으며, 100달러 지폐의 모델인 이유도, 토마스 칼라일이 벤자민 프랭클린을 ‘모든 미국인들의 아버지(The Father of all the Yankees)’라고 부른 것도 이 자서전을 보면 나름 이해가 된다. 한마디로 자기계발서의 고전이랄까.
 
이 자서전은 많이 불완전하다. 프랭클린 생애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것들은 자세하게 나와 있으나, 과학자, 발명가, 정치가로서의 그의 면모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에 대해 프랭클린은 전쟁 와중에서 자서전 집필을 위한 자료들을 분실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권우가 언급한 것처럼 베버가 『프랭클린 자서전』을 분석하면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자본주의 정신을 보유한 전형적인 인간으로 내세운 이유를 자서전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실제 그가 위인전의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는 내용들은 『프랭클린 자서전』 안에 잘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13가지 덕목과 규율은 압권이다. 그 부분을 길게 인용해본다.
 
나는 도덕적으로 완벽해지고자 하는 무모하고도 어려운 계획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한치의 잘못도 없는 완전한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른 것을 피하고 옳은 것만 행하는 것이 쉽게만 보였다. 그러나 곧 이것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완벽하게 덕스러운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속의 신념만으로는 실수를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늘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행동을 하려면 반대되는 습관을 깨부수고 좋은 습관을 익혀야 한다. 이런 목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우선 그때까지 읽은 책에서 보았던 수많은 덕목들을 열거해 보았다. 각 덕목의 항목이 많은 것도 있고 적은 것도 있었다. … 나는 명확함을 기하기 위해 더 적은 덕목에 규율을 길게 붙이는 것보다는 덕목을 조금 더 늘어놓고 각각의 덕목에 수반되는 규율을 자세히 붙이기로 했다. 덕목과 거기에 따른 규율은 다음과 같다.
1. 절제(Temperance): 배부르도록 먹지 말라.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
2. 침묵(Silence): 자신이나 남에게 유익하지 않은 말은 하지 말라. 쓸데없는 말은 피하라.
3. 질서(Order):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정돈하라. 모든 일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라.
4. 결단(Resolution): 해야 할 일은 하기로 결심하라. 결심한 것은 반드시 이행하라.
5. 검약(Frugality):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유익한 일 외에는 돈을 쓰지 말라. 즉, 아무 것도 낭비하지 말라.
6. 근면(Industry):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언제나 유용한 일을 하라. 하지 않아도 될 활동은 끊어버려라.
7. 진실함(Sincerity): 남을 일부러 속이려 하지 말라. 순수하고 정당하게 생각하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하라.
8. 정의(Justice):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응당 돌아갈 이익을 주지 않거나 하지 말라.
9. 온건함(중용, Moderation): 극단을 피하라. 상대방이 나쁘다고 생각되더라도 홧김에 상처를 주는 일을 삼가라.
10. 청결함(Cleanliness): 몸과 의복, 습관상의 모든 것을 불결하게 하지 말라.
11. 침착함(Tranquility): 사소한 일, 일상적인 일이나 불가피한 일에 흔들리지 말라.
12. 순결(Chastity): 건강이나 자손 때문이 아니라면 성 관계를 피하라. 감각이 둔해지거나 몸이 약해지거나, 자신과 다른 이의 평화와 평판에 해가 될 정도까지 하지 말라.
13. 겸손함(인간성, Humility): 예수나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 (155-158쪽)
한 가지가 완성되면 다음 항목으로, 또 그 다음 항목으로 옮겨가는 방법으로 열세 가지를 다 내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위의 순서대로 늘어놓은 것도 앞의 어떤 항목들을 이루었을 때 다음 항목의 습득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매일매일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점검하는 방법을 짜냈다. 우선 조그만 수첩을 하나 만들어서 한 페이지에 한 덕목씩을 할애했다. 각 페이지마다 가로로 7칸을 만들어서 일주일치를 만들고 세로로 13줄을 만들어서 각 덕목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그날에 행한 덕목을 생각해서 잘못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해당 칸에 까만 점을 그려 넣었다. 나는 한 주일에 한 덕목씩 실천하기로 했다. (158-159쪽)
나는 자기 반성을 위한 이 계획에 뛰어들었고 중간중간 끊기기도 했지만 얼마 동안 꾸준히 지켰다. (163쪽) 어딜 가든 수첩은 꼭 가지고 다녔다. 무엇보다도 ‘질서’에 관한 규율을 지키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이 부분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고 실패하고 또 시도하고, 이러기가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거의 포기할 지경에까지 이르러 결점이 하나 있더라도 그냥 만족하고 지낼까 하는 생각도 했다. … 가끔씩은 내가 나 자신에게 강요한 그런 극단적인 완벽함이 도덕적 허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들이 알면 비웃을지도 모른다. 또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질투와 증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은 빈틈도 약간 있어야 친구들을 무안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순전히 핑계였다.
사실상 ‘질서’에 관한 한 나는 구제 불능이었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나빠진 지금은 ‘질서’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욕심내어 도달하려 했던 완전한 경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서 훨씬 나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165-167쪽)
몹쓸 행동들은 금지된 것이어서 해로운 것이 아니라 그 행동 자체가 해롭기 때문에 금지된 것이고, 여기에는 인간의 본성만이 고려된다. 그러므로 내세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덕스러워지는 것이 이익이다. 부유한 상인들, 귀족들 등은 정직하게 자신들의 일을 처리해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아주 드문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젊은이들에게 성실함과 청렴이야말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성공을 확실히 보장하는 자산이라는 확신을 주고 싶었다. (169쪽)
사실 우리 인간이 가진 감정 중에 ‘자만심’만큼 굴복시키기 힘든 것도 없다. 감추려 해도 때려 눕혀도 숨통을 막고 눌러도 자만심은 살아남아서 여기저기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쓰는 이 글에서도 그것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완전히 극복해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겸손하다고 하는 자만이니까. (171쪽)
 
이걸 읽고 있노라면 숨이 막힌다.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오는 ‘완전한 인간’을 보는 느낌? 연대순으로 따지면 프랭클린이 먼저이니 체르니셰프스키가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고 ‘완전한 인간’을 고안해냈을 수도...
200년도 넘은 『프랭클린 자서전』이 여전히 읽히는 데는 그의 13가지 덕목이 언급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13가지 덕목은 워낙 유명하니까.
그런데 이 덕목과 규율은 이후의 자기계발서들에서 인생의 성공원리로까지 격상된다. 많은 경영학 서적들이 이러한 덕목과 규율을 삶에서 성공하기 위한 원리로 제시한다. 보편적으로 삶의 철학으로 삼을 만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을 강제하기 위한 근거로서도 훌륭하겠다. 세상에는 이런 덕목대로 살더라도 프랭클린과는 달리 전혀 행복하지 않은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프랭클린이 하라는 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그가 달성한 만큼의 성취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덕목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비난하거나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
 
아래에 나머지 자서전 상에서 생각해볼만한 대목만을 옮겨오고 간단하게 코멘트를 달아본다. 
 

  

○ 프랭클린이 자서전을 쓴 이유, 그리고 자만심에 대하여
프랭클린은 자신의 아들이 자신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궁금해 할 것이라 생각해서 시골에서 일주일 동안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이 글은 쓴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아들에게 보일 목적으로만 쓴 것은 아니며, 자신의 삶이 모범적이고 행복했음을 밝히고, 자신의 자만심도 충족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음을 비춘다. 여기에서 그의 솔직한 면모가 드러난다.
누군가가 나에게 똑같은 삶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렇게 하겠느냐고 물어 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럴 거라고 대답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누려 온 행복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작가가 개정판에서 초판의 오류를 수정하듯이 나도 내 삶에서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기는 하다. 실수한 일을 고치는 것은 물론이고 불행한 사고나 사건들을 좀더 좋은 일들로 바꿀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 설사 이것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다시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다시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법. 그러니 그에 버금가는 일은 그 삶을 재조명하고 글로 써두어서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리라. (14쪽)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생 역경을 얘기하는 좋아하는 여느 노인들처럼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 어쩌면 나 자신의 자만심을 만족시키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클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그 자만심을 어느 정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자만심은 견디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는 자만심이 그것을 갖고 있는 이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꽤 생산적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자만심이 강한 사람과 마주치면 편견 없이 대하려고 애쓴다. (15쪽)
 
○ 그는 어려서부터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켜 오고 있었는데, 채식주의와도 관련하여 합리적인 인간이 되는 것은 아주 편리한 것임을 언급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그렇지 않다면 그게 고집 수준이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는 것은 아무 이유 없는 살생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물고기들은 우리에게 죽임을 당할 만큼 우리에게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으며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을 원칙과 식욕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갑자기 생선 배를 갈랐을 때 그 뱃속에서 작은 생선이 나왔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도 서로 잡아먹는데 나라고 너를 못 먹을 이유는 없지.” 그래서 나는 대구를 아주 맛있게 먹었고, 그 뒤로도 채식을 할 때는 해도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생선을 먹었다. ‘합리적인 인간’이 되는 것은 아주 편리한 일이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 그에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거나 만들어 낼 수가 있다. (72쪽)
 
○ 프랭클린의 책읽기는 유명하다. 그는 10살까지밖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적은 돈이라도 손에 돈이 들어오기만 하면 책을 사서 읽었다. 이런 그를 보고 있노라면 환경만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도 그의 책벌레 기질을 알아보고 보스턴에서 인쇄업을 하고 있는 친형에게 보냈다. 그는 활자를 다루면서 좋은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저녁에 책을 빌려와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이를 읽고 아침 일찍 갖다 주었다.
그는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식비를 아껴 책을 샀고, 형과 다른 견습공들이 식사를 하러 간 사이에 간단하게 식사를 해치우고 책을 읽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면 으레 그렇듯이 머리가 훨씬 맑아지고 이해도 빨라져서 내 공부는 나날이 발전해 갔다.’ (38쪽) 이와 관련하여 그가 자기 생각을 자신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기술을 익히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어느 잡지에 실린 글들은 문장이 아주 뛰어나서 가능하면 흉내를 내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몇 페이지를 골라서 각 문장의 요점만을 간단하게 적어 놓았다. 그리고 그대로 두었다가 며칠이 지난 뒤에 책을 보지 않고 그 요점에 적합할 것 같은 단어들을 떠오르는 대로 집어넣어 자세하게 표현해서 가능한 한 예전의 원래 문장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 정작 내가 원한 것은 풍부한 어휘 실력과 언제든지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 어떤 때는 간추린 요점들을 마구 뒤섞여 놓고 몇 주 뒤에 그것들을 최선일 것 같은 순서대로 맞춘 다음 완전한 문장으로 되살리거나 글 전체를 완성시켰다. 이것은 생각을 조리 있게 배열하는 방법을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35-36쪽)
공공도서관 덕택에 나는 내 자신의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 매일 한두 시간씩은 꼭 책을 읽었고 그래서 옛날에 아버지가 해주시려다 못 해주신 교육을 어느 정도 보충했다. 독서는 나 자신에게 허락한 유일한 오락이었다. (150쪽)
 
○ 프랭클린의 논쟁술
프랭클린은 자신이 논쟁에 자신 있었다는 것을 자서전의 여기저기에 쓰고 있다. 물론 이러한 토론능력도 독학으로 익힌 것이다. 그가 토론에서 ‘꼭’이나 ‘틀림없이’ 같은 자기 의견에 단정적인 색채를 나타내는 단어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것인데도 한참 대화나 토론을 이어가게 되면 이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논쟁을 너무 좋아하는 것은 나쁜 버릇이다. 논쟁을 하려면 무조건 상대방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워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상대방은 아주 불쾌해진다. 그래서 대화를 망치거나 흥을 깨버릴 수도 있거니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자리에서 오히려 혐오감과 증오만 남기게 된다. (34쪽)
나는 소크라테스식 논쟁법에 홀딱 반해서 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남의 의견을 뚝 잘라 반대하거나 독단적으로 내 의견을 밀어붙이기보다는 겸손하게 남의 의견을 묻고 의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이 방법이 내게는 가장 안전하고 상대방은 꼼짝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몇 해 동안 이 방법을 사용하다가 점차 그만두었고, 나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습관만은 그대로 지니기로 했다. 이를테면 논박의 여지가 있는 어떤 의견을 낼 때 ‘확실히’, ‘의심할 여지없이’ 같은 독단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이런 식으로 말했다. ‘제 생각에는 이러이러한 것 같은데요’, ‘저는 여차여차한 이유로 이렇게 생각하는데요’, ‘그럴 거라고 짐작이 갑니다만’,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건 이럴 겁니다’. 이런 습관은 내게 아주 이득이 되었다고 믿고 있는데, 특히 내 의견을 관철시키거나 내가 추진하고 있는 일에 사람들을 납득시킬 때 큰 효과가 있었다. 우리가 대화를 하는 주된 목적은 서로간에 정보를 주고받거나, 서로를 즐겁게 하거나, 설득하는 데에 있다. 아무리 똑똑하고 선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거만하고 독단적인 태도로 나오면 그가 하는 선한 일은 그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법이니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란다. … 네가 정보를 제공하면서 독단적이고 단호하게 감정을 내보인다면 상대방은 반발심이 생겨 진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이의 지식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자신의 발전을 이루기를 바라면서도 네가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만 고집하면 안 된다. 신중하고 분별 있고 따지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네 잘못을 알아채더라도 굳이 짚어 주지 않을 것이다. (영국 시인) 포프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가르치지 않는 듯 해야 하며 그들이 모르는 것은 잊어버린 것으로 취급해 주어야 한다. 확실한 것일지라도 얌전부리며[겉으로는 망설이는 척하면서] 말할지니.’ (39-41쪽)
나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반대하거나 나 자신의 생각을 독단적으로 단언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또 단호한 의견을 나타내는 말, 즉 ‘확실하게’, ‘의심의 여지없이’ 같은 표현은 쓰지 않고 그 대신 ‘내가 알기로는’, ‘나는 이렇게 보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이 일은 이러이러하다’, ‘지금 내 생각은 이렇다’라는 식의 말을 썼다. 다른 사람이 내가 보기에는 틀린 것을 우길 때에는 당장에 반박하고픈 유혹을 참고 그의 주장에서 부조리한 점을 들춰내는 일을 삼갔다. 그리고 대답은 “당신의 주장은 어떤 특정한 경우나 상황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좀 다른 것 같네요”라는 식으로 했다. (170쪽)
 
○ 설득의 기술
공공도서관의 회원들을 모으려고 참 많이도 돌아다녔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예 거절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싫은 기색을 보였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점은 아무리 유익한 계획이라도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그가 자신들보다 약간이라도 더 유명해질까봐 돕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꾸었다. 가능한 한 나 자신을 숨기고, 이 계획은 ‘몇몇 친구들’의 계획인데 그들이 당신은 분명히 책을 좋아할 거라고 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방법은 잘 먹혀 들어갔고 나중에도 모금을 할 일이 있으면 이 방법을 썼다. 잘난 체하지 않고 당장에는 조금만 참으면 나중에 더 큰 보상을 받게 된다. (150쪽)
 
○ 기능주의적 사고
나는 행복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함, 성실함, 완전함으로 맺어진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내 결심을 적어 놓았고 평생 실천하기로 했다. 성경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경이 금한다고 해서 악한 행동이고 성경이 명한다고 해서 선한 행동인 것은 아니다. 어떤 행동이 금해진 것은 우리에게 해롭기 때문이고, 하도록 명해진 것은 우리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은 그 행동 자체의 본질과 주변의 모든 상황에 따라 이루어진다. (111쪽)
이 글에서 프랭클린의 기능주의적 사고가 엿보인다. 하지만 세상이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현상이 아니라 구조와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 검소함
나는 천성적으로 검소했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이 부귀영화를 차지하는 길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나만큼이나 부지런하고 검소한 여자를 아내로 맞은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우리는 꼭 필요한 하인만 두었고 식사도 검소하고 간단하게 했으며 가구는 값싼 것만 들였다. (150쪽)
그런데 무엇을 위한 검소함이었을까? 검소함을 통해 부가 쌓이면 그것으로 되는 것일까. 프랭클린 자서전에는 그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다.
 
○ 인간관계
“당신이 친절하게 대해 준 사람보다 당신에게 한 번이라도 친절을 베푼 사람이 당신에게 또다른 친절을 베풀 것이다.” 적대적인 관계를 되씹고, 보복하고, 그런 관계를 지속시키기보다는 신중하게 접근해서 풀어 나가는 것이 더 이롭다. (190쪽)
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잊거나 착각하기 쉽다. 인간관계를 넓혀나갈 때 명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 특허에 대하여
프랭클린은 많은 발명을 했고, 이를 수익으로 연결시킬 기회가 꽤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서전 상으로는 요즘 말로 공공성, 공익을 더 높은 가치로 삼았던 것 같다.
1742년에 나는 방을 더 따뜻하게 덥히는 난로(프랭클린 스토브)를 발명했다.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나는 팜플렛을 만들었다. 토머스 지사는 그 팜플렛을 읽고 이 난로의 구조를 몹시 마음에 들어 했고 몇 년의 기한 동안 이 난로를 독점 판매할 수 있는 특허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고수해 온 원칙에 따라 이를 거절했다. “우리가 다른 이의 발명품으로 커다란 이익을 누리고 있으니 우리도 우리의 발명품으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보수를 받지 않고 아낌없이 해야 한다(돈벌이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214쪽)
하지만 프랭클린의 이런 언급이 인용된 것을 본 적은 없다. 프랭클린 또한 아담 스미스와 같이 자본친화적인 면만 편향적으로 부각해서 편의적으로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프랭클린 자서전』의 내용을 발췌해서 옮겨놓고 보니 이 책이 확실하게 자기계발서의 고전임을 알 수 있겠다. 그 때문에 자본가들이나 경영자들이 이 책을 선호하여 추천하고 그가 언급한 말들을 ‘명언’으로 여기면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일 테고...
물론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얘기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금언으로서 그의 말들이 새겨지는 과정에서 그 속에 내포된 이데올로기가 은폐되고 있다는 점 아닐까. 실제 이를 언급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알고 보면 ‘과학적 관리법’을 고안한 프레데릭 테일러의 ‘시간연구ㆍ동작연구’와 그리 다른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권우의 『프랭클린 자서전』 서평글에서 아래의 요약 부분이 책의 핵심을 짚고 있다.
 
가난한 탓에 정규교육은 2년 밖에 받지 못했다. 누구나 꿈꾸는 그의 인생역전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근원적인 힘은 철저한 근검절약의 실천이다. 13가지의 덕목과 규율을 정하고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갖기 위해 덕목표를 만들어 스스로 게으름을 채찍질했다. 결국 밑바닥 인생에서 시작해 오직 노력만으로 자수성가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고용 없는 성장을 경험한다. 사람들은 고용불안에서 벗어나려고 자기 계발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그러나 프랭클린의 신화는 따라만 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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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3 03:34 2010/04/23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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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의 '영구 빈곤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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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사들을 보면 그냥 내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다. 난 도대체 뭐하고 있었나 자책이 들기도 하고, 기사 속에 나오는 이들에 비하면 나는 참 복받은 넘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도대체 세상이 왜 이럴까 분노가 치민다. 기사를 보고 이들의 얘기를 듣는 정말 괴로운데, 당사자들은 또 어쩌랴 싶다. 행복이란 게 뭘지... 아래 발췌한 기사보다 발췌하지 않은 기사내용, 즉 개별 빈곤층들의 현실을 말해주는 기사가 더 눈물겹다.
 
영구임대주택, 영구임대아파트가 나름 괜찮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래 기사들을 통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영구임대주택 쟁취!' 이 따위 구호를 외치고 다녔는데... 이에 대해서는 에필로그에서 남기철 교수도 지적하고 있다. "영구임대주택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주거복지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다른 사회보장 체계와 연결되지 못해 슬럼과 낙인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역시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빈곤에서 탈출하고 행복해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행복이 운에 좌우되는 세상이 과연 바람직할까.
 
우파 학자들은, 아니 정부 복지정책담당자들은 빈곤 문제를 꺼내면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고, 영국 등의 복지국가가 가져왔던 복지병이 한국에도 도래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런데 복지가 병으로 도질 만큼 서비스된 적이 있었던가. 아래 기사들에 나오는 대부분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람들의 처지처럼 이 사회의 가난은 그들의 나태함이나 게으름에 있지 않다. 성실하고 노력해도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사회구조 자체가 그들이 빈곤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번 기사에 등장하는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한겨레21에서 2009년 하반기에 다루었던 비정규 노동자들보다 더 막장에 있는 이들 같다. 적어도 기사의 내용을 통해 내가 받은 인상은 그러하다.
 
에필로그의 남기철 교수의 결론내용. "빈곤과 사회적 배제의 문제에 대응하려면 공공성 확보에 투입되는 자원의 양을 늘려야 한다. 지체된 저발달의 복지체계를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 기본적 공공성의 확충은 전제조건이다.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영역별로 분리된 접근이 아니라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복합적 고립과 빈곤이 만연한 상황에서 지금의 정부 정책과 같은 파편적이고 분리된 프로그램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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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고 가난하게 죽는다 (한겨레21 2010.03.26 제803호)
[영구 빈곤 보고서 ①]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한국 빈곤계층의 역사… 6주에 걸친 121가구 방문 조사 보고서
 
가난한 사람들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서울 청계천 판자촌, 난곡 달동네, 서초동 비닐하우스촌, 가리봉동 쪽방 등을 전전했다. 한국 빈곤층 집단 주거지를 대표했던 이들 지역은 옛 모습을 잃었다. 2010년 현재 대부분 재개발이 완료됐거나 진행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갔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는 다르다. 가난한 사람들의 오랜 둥지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난이 중첩한 현장이다. 꼭 20년 전인 1990년, 서울 번동·중계동·면목동 등에 국내 최초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착공되거나 완공됐다. 정부는 수도권 일대의 영세민·철거민·무허가주택입주민 등을 이곳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저렴한 임대료만 내면 ‘원할 때까지’ 계속 살 수 있다고 정부는 선전했다. 서울 2만2천여 호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19만 호의 영구임대아파트가 생겼다. 그러나 1992년을 마지막으로 영구임대아파트 건설은 중단됐다. 그리고 그들은 잊혀졌다. 잊혀졌지만 그 곳에서 지난 20년을 가난과 함께 살았다.
 
<한겨레21>은 2010년을 사는 한국 빈곤층의 현실에 주목했다. 한국 최초의, 그리고 최후가 되어버린 대규모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주민들을 찾아가 만났다. 1990년 무렵에 건설된 서울 강북의 한 단지를 집중 취재했다. 그들의 삶이 지난 20년에 걸친 한국 빈곤계층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남기철 교수 연구팀의 자문과 도움을 받아, 지난 2월부터 총 6주에 걸쳐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2개 동 360가구를 방문해 이 중 121가구와 면담했다. 이 가운데 20가구는 다시 2회 이상 심층면접했다. 그들은 빈곤을 증언하고, 빈곤에 대한 무관심을 증언했다. 그들은 가난하게 태어났으며, 여전히 가난하고, 앞으로도 가난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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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절대 빈곤’은 사라졌다 (한겨레21 2010.03.26 제803호,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사회복지학)
[영구 빈곤 보고서 ①] 탈빈곤 정책의 실패를 목격하게 한 조사 결과… 사회 통합의 붕괴 양상 직시해야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는 이제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 밥을 굶는 극빈의 상황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있다. “지금은 가난해도 열심히 일하고 자식 교육을 잘 시켜 나중에는, 혹은 내 자식들은 잘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희망의 절대 빈곤’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나중에도, 혹은 내 자식들도 남들처럼 잘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절망의 상대 빈곤’이 자리잡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빈곤을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경제적 결핍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빈곤층이 주류 사회와 분리돼 사회적 참여를 제한당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의 문제를 제기한다. 빈곤층의 사회적 고립과 주변화는 그 사회의 기본적 통합성을 해친다. 유럽연합(EU)과 회원국 정부는 이를 핵심 정책 문제로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한국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는 그런 ‘사회적 배제’의 현장이다. 우리 국민 모두 영구임대아파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다. 영구임대주택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약 19만 호가 건설된 뒤 중단됐다. 빈곤층에게 저렴한 주거를 제공하고 적절한 사회복지 안전망과 자활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중요한 복지 증진의 수단으로 보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는 빈곤층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가? 빈곤 문제에 잘 대처해 정책목표를 달성했는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는 평가에 더 무게가 두어진다.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빈곤 문제에 대한 언론과 학계, 시민단체 등의 접근에 협조적이지 않다. 오히려 적대적인 상황이다. 빈곤층의 특성상 조사 거부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모든 가구를 2회 이상 접촉하는 ‘전수조사’ 과정을 통해 121 가구에 대한 면접조사, 20여 가구에 대한 심층면접이 이뤄졌다. 공공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언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 현장 자료 수집이다.
 
그만큼 조사 결과는 무거운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조사 결과 밝혀진 점들은 우리나라 빈곤 문제의 심각성, 빈곤 정책의 취약성을 다시 확인해주었다. 이번 조사 결과, 주거비를 부담스러워하고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민들은 사회적·심리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낙인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단지의 슬럼화도 진행되고 있다. 전 국민의 의료보장 체계가 구축되었다는데도 의료의 문제, 심지어는 사망까지도 계층화 현상을 보인다. 빈곤의 장기화를 막아내기는커녕,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빈곤 세습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대책 없는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심각한 사회적 배제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통합성 위기가 이제 아슬아슬할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탈빈곤 정책의 실패를 목격하게 된다. 영구임대주택 프로그램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프로그램은 확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 빈곤 정책의 파편성과 비연속성은 짚어야 한다.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배제에 대응하려면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영구임대아파트 사업만 봐도 처음 몇 년간 건립 사업을 진행하다가 내팽개치다시피 중단됐다. 매번 이전 정부와 다른 ‘선전용’ 프로그램을 내놓다 보니 정책의 연속성도 떨어지고 일관성도 없다. 
 
극히 일부에서 나타나는 복지 의존의 모습을 침소봉대할 것이 아니라 사회 통합의 붕괴 양상에 이르고 있는 빈곤과 사회적 배제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이 무거운 문제를 보는 정부의 책임의식도 더 진중해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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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도 죽는 것도 너무 힘들다” (한겨레21 2010.03.26 제803호, 임지선 안수찬 기자)
[영구 빈곤 보고서 ①] 일찍 사별한 배우자, 먼저 보낸 자식, 비극적 사고, 치명적 질병, 오래된 장애…
비슷한 사연 1만여 개가 희뿌옇게 모여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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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 미만 소득으로 3명이 생활 (한겨레21 2010.03.26 제803호, 임지선 안수찬 기자)
[영구 빈곤 보고서 ①] 일일이 방문한 360가구 중 121가구 통계…
무직 48.9%, 장애인 47.1%, 노동력 상실 45.8%, 사실상 ‘영구 빈곤’의 상태
 
<한겨레21>은 1989~1992년 조성된 전국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가운데 초창기에 건설된 서울 강북의 한 단지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밀집한 수십 동의 아파트 중에서도 가장 오래전에 지어진 2개동을 골랐다. 입주민의 상당수가 15~20년 동안 이 단지에서 살아왔다. 지난 2월부터 6주에 걸쳐 2개동 360가구를 일일이 방문했다. 이 가운데 121가구의 승낙을 받아 1시간가량씩 면담조사를 했다. 가구현황·이주과정·주거환경·가족배경·사회의식·경제생활·복지현황 등에 대한 54개 항목을 물었다. 적극적으로 응답한 20가구는 다시 심층면접해 생애사를 취재했다.
 
면담조사에 응한 121가구는 가족 중에 중환자나 장애인이 적고, 생계 해결에 그나마 여유가 있는 경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조사 결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구 총소득이다. 전체 응답 가구의 72.7%가 한 달 1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50만원 미만의 소득은 33%였다. 9.9%는 월 20만원 미만의 벌이를 가졌고, “소득이 아예 없다”고 답한 가구도 2.5%에 이르렀다. 이 액수는 기초생활급여, 자활근로 임금, 자식·친지가 주는 용돈 등을 모두 합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3명이 사는 가구가 한 달 100만원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영구임대아파트 주민의 ‘평균치’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현재 정부가 발표한 2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85만8747원, 3인 가구는 111만919원이다.
 
한계선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주거비였다. 가구당 월 20만~30만원에 이르는 관리비·임대료가 가장 큰 지출 항목이라고 답한 경우가 74.4%였다. 실제 면담조사 과정에서 거의 모든 주민이 “제발 관리비·임대료가 낮아지도록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앞으로 개선되길 바라는 사항을 물었는데, 68.6%가 ‘보증금·임대료·관리비의 인하’를 꼽았다. ‘차별적 시선·사회적 소외’(4.1%), ‘범죄 단속’(5.0%), ‘주택 개선’(3.3%) 등에 비해 월등한 수치다.
 
가구주를 포함해 모든 가구원의 직업을 물었는데, ‘무직’인 경우가 48.9%에 이르렀다. 무응답자가 5.8%였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도 뚜렷한 직업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직업이 있다 해도 단순노무직(10.0%), 단기직 아르바이트(5.4%), 공공·자활근로(6.4%) 등 비정규직이 많았다. 무직, 단순노무직, 단기직, 자활근로 등을 더하면 70%가 넘는다.
 
조사 대상 121가구 가운데는 ‘노인 단독’(14.9%), ‘노인 부부’(19.0%) 등 65살 이상 노인을 중심으로 가구가 구성된 경우가 많았다. 나이 분포를 봐도 조사 대상 가구원의 50.2%가 60살 이상으로 나타났다. 가구 총소득 100만원 미만인 88가구 가운데 ‘노인 단독’ 또는 ‘노인 부부’인 경우는 30%였다. 사실상 노동능력을 잃어가는 빈곤 노인 가구에 대해선 기초생활급여를 늘리는 것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장애와 질병은 이들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올무다. 가구 구성원 가운데 장애인이 있는 경우가 47.1%였다. 장애 등급별로 보면 중대 장애로 분류되는 1~3급 장애가 전체 장애인의 57.6%를 차지했다. 이들에겐 취업이 아니라 돌봄과 치료가 절실하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살펴본 바로는 중증 장애인의 대부분은 사실상 돌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상태였다.
 
거의 모든 가구 구성원이 각종 만성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노동력 상실과 직결되는 ‘허리·관절 질환’(31.3%), ‘신체 손상에 따른 거동 불편’(6.5%), ‘암’(5.0%), ‘정신질환’(3.0%) 등이 많았다. 빈곤층의 질병은 평생 지속된 가난의 결과이자, 남은 인생까지 가난하게 살게 될 원인이다. ‘현재 가난의 원인’을 물었더니 34.7%가 “질병과 장애 때문”이라고 답했다. ‘가장 절실한 복지 서비스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25.6%가 ‘의료비 보장’이라고 답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면담 과정에서 살펴본 바로는 빈곤층의 질병은 그냥 방치될 뿐, 치료되지는 않는다. 주거비 등의 부담이 큰 상태에서 아파도 그냥 참는 것이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빈곤층은 사실상 ‘영구 빈곤’의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121가구 가운데 59.5%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1989~90년에 입주했다. 입주민의 상당수가 빈곤 탈출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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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은 더 진하게 대물림된다 (한겨레21 2010.04.02 제804호, 임지선 안수찬 기자)
[탐사기획-영구 빈곤 보고서 ②] 가난·폭력·방치 속에 자라 직업도 없이 텅 빈 잠에만 빠져드는 영구임대아파트 2세대 청년들
 
4천여 세대, 1만여 명이 모여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는 방에만 웅크린 젊은 사람들이 많다. 평생 공사판에서 철근 구부리는 일을 했던 김형성(69·가명)씨의 아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나간다. 밤마다 어디를 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아이가 자고 있어요. 집에 사람을 들일 수 없네.” “지금 자는 사람이 집에 있어서…. 나중에 오세요.” 기자의 면담 요청을 거절한 영구임대아파트 사람들은 방에서 자고 있는 누군가를 이유로 들었다. 문을 열어주는 것은 언제나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였다. 노부모는 낮잠을 자는 자식을 어려워했다. 그들을 세상에 내보이는 일을 꺼렸다.
 
자식은 미래다. 평생 가난했지만, 내 아들딸은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가난을 이겨내게 만든다. 그러나 그 믿음이 배반당한다면? 면담 조사한 121가구 가운데 노부모와 성인 자녀가 함께 사는 65가구가 있다. 이들은 독거 노인과 노인 부부만 사는 41가구보다 미래를 더 비관했다.
 
세상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가? ‘노인+성인 자녀 가구’의 23.1%가 ‘그렇다’고 답했다. ‘노인 가구’ 가운데는 14.6%만 ‘그렇다’고 답했다.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노인+성인 자녀 가구’의 58.5%가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응답을 한 ‘노인 가구’는 48.8%였다. 성인 자녀와 노부모가 함께 사는 집을 지배하는 것은 무능력이 아니라 무기력이었다.
 
20대의 이영호·박선영씨에겐 공통점이 있다. 잠만 잔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 뭘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본보기’가 가족 가운데 아무도 없다. 그런 역할 모델은 이웃집에도 없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통틀어 별로 없다. 그들의 부모는 돈 버느라 바빴다. 하루라도 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가끔 자식을 마주칠 때면 때리거나 윽박질렀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탓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집집마다 그런 일이 다반사다. 그런 이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이제 돈 버는 일조차 심드렁하다. 늙은 부모는 일을 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되고, 젊은 자식은 일을 하기 싫은 무기력자가 된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희망 자체를 꿈꿔본 적이 없다.
 
성실하게 살아온 경우가 없진 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또 다른 추진 로켓이 필요하다.
 
매일처럼 마주치는 무력한 사람들 말고, 영화건 소설이건 따라 배울 만한 모범을 찾아 자신의 꿈을 키워야 한다. 눈높이를 낮춰 취업해야 하고, 배우자를 만나면 함께 벌어야 한다.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나라가 베푸는 복지제도에 기대지 말고, 혼자 힘으로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빈민의 낙인을 벗고 서민의 얼굴로 세상의 밝은 햇볕 아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술병이 나뒹구는 좁은 방에서 꾀죄죄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23살의 이영호씨를 직접 만난다면, 당신에겐 이런 의문도 들 것이다. 꿋꿋이 살아내라고 격려하는 것조차 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주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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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에서 길을 잃다 (한겨레21 2010.04.09 제805호, 임지선 안수찬 기자)
[탐사기획-영구 빈곤 보고서 ③] 어른들의 방치 속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10대들
 
한 교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중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다. “아이들이 밥 먹으러 학교에 와요. 그러니 급식이 맛있을수록 아이들이 학교에 더 애착을 느끼겠죠. 아이들은 놀기 위해서도 학교에 와요. 수업이 끝나면 달리 할 일이 없거든요. 방과후 수업에서 여러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더 좋겠죠.” 그러나 지난해부터 교육 방침이 바뀌고 있다. “방과후 수업을 교과 학습 위주로 변경하라”는 게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침이다. 성적을 끌어올리라는 이야기다. 학업성취도 평가의 후폭풍이 이곳에도 불어닥쳤다. 밥 먹고 어울려 놀고 다른 세상도 경험할 수 있었던 학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국·영·수 중심의 방과후 교실에서 영구임대아파트 아이들은 이내 지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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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은 빈곤, 구멍 뚫린 복지 우산 (한겨레21 2010.04.16 제806호, 안수찬  임지선 기자)
[탐사기획-영구 빈곤 보고서 에필로그] 가난한 노인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하고 아픈 사람이 건강보험 혜택 못 받는 사회…
무기력한 한국의 복지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는 한국 복지정책의 대표 격이다. 올해로 제도 도입 10년이 됐다. 사람들은 이 제도가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고 지레 짐작한다. 그 혜택을 받으려면 까다로운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노인의 경우, 기초생활보장제 혜택을 받으려면 자녀가 사실상 돈을 벌지 않아야 한다. 부양의무자 가구의 최저생계비와 피부양자 가구의 최저생계비를 더해 그 액수의 130% 이상을 부양의무자 가구가 번다면, 피부양자 가구는 기초생활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법에 정해져 있다.
 
2009년 2월 현재 약 86만3390가구, 146만830명(전체 인구의 2.9%)이 기초생활보장제 혜택을 받고 있다. ‘400만 명의 사각지대 빈곤층’에 비해 운이 좋은 경우다. 그러나 한국 사회 평균치와 비교하면 그렇게 평가할 수 없다. 2008년 한국 4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98만원이다. 4인 가구 최저생계비 105만원은 극빈 상태를 유지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는 “현재 기초생활급여는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생존을 유지하게 지원하는 것일 뿐”이라며 “생존 유지만으로는 빈곤에서 탈출하는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사회적 참여가 가능한 수준과 내용으로 소득보장을 구축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사회적 부담을 더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2006년 현재, 한국인 전체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 계층 비율)은 16.5%이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의 2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은 월 304만원 정도다. 따라서 16.5%의 빈곤율 수치는 전체 가구의 16.5%가 150만원 미만을 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장애인 가구의 빈곤율은 더하다. 34.6%에 이른다. 전체 빈곤율의 2배가 넘는다. 현행 장애연금은 국민연금 가입자에 한해 지급된다. 가입 중에 발생한 질병 또는 부상으로 장애인이 된 경우에 한해 지급된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즉 비정규직이었거나 아예 직업이 없었다면 장애연금을 못 받는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생활비가 더 필요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7년 조사를 보면, 지적·정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려면 교통비·의료비·간병비 등으로 월 105만9607원이 더 든다. 이 때문에 장애인 식구가 있는 빈곤층은 더 깊은 가난을 겪는다. 누군가 돈을 벌어도 장애인 몫의 비용을 제하면 나머지 식구의 생활은 더 열악해진다. 나라로부터 장애수당을 받으려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가족 가운데 누구도 많은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여 장애수당을 받는다 해도 기초생계급여에 월 최고 7만원의 돈을 추가로 얹어줄 뿐이다. 한국의 복지제도는 절대로 가난한 사람의 편이 아니다.
 
국민연금제도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함께 한국 정부가 마련한 또 하나의 중요한 안전망이다. 2009년 현재 경제활동인구의 93%가 국민연금 또는 공무원·군인연금 등에 가입해 있다. 하지만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입해야 은퇴 이후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현재 60대 이상 노인 세대의 대부분은 국민연금 혜택자가 아니다. 비정규직은 ‘저임금-해고-저임금’으로 이어지는 불안정 노동을 거듭한다.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입해야 하는 국민연금제의 특성상 앞으로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구직 활동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는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여성이다.
 
다만 국민연금 가입자라 해서 빈곤의 덫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다. 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이 많다. 이태수 교수는 “전체 가입자의 27%에 이르는 468만 명이 실직 등으로 인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6개월 이상 미납자는 250만 명, 25개월 이상 미납자는 100만 명이다. 다시 취업해 남은 보험료를 채우지 못한다면, 이들 역시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다. 남성 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된 국민연금 제도가 보편적 사회보험 역할을 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제도는 한국 복지제도 가운데 그나마 조기 정착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건 중산층에게만 진실이다. 빈곤층이 체감하는 것은 다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치료비의 상당 부분을 환자에게 떠넘긴다. 2007년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4.3% 수준이다. 나머지는 당사자가 부담한다. 유럽 선진국의 보장성 수준이 85~90%인 것과 비교된다. 본인 부담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가난하면 중대 질환에 걸려도 치료를 받을 수 없다.
 
김철웅 충남대 교수가 2005년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상위 20% 소득계층보다 식도암은 3.3배, 간암은 2.3배 더 많이 발생했다. 발병 이후 사망에 이르는 비율인 ‘치명률’에서는 하위 20% 소득계층이 상위 20% 소득계층보다 위암은 2.3배, 유방암은 2.1배 더 높게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월소득 100만원 이하 가구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46.5%. 300만원 이상 가구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19.1%였다. 가난할수록 더 많이 병에 걸리고 더 빨리 죽어버리는 것이다. 박형근 제주대 교수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85% 수준까지 높인다면 암·중풍·심장병 등 중증 질환까지 무상의료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질병·사망의 불평등’을 막지 못한다.
 
아무리 아파도 비바람을 막을 집이 있다면 최악은 면할 것이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지 못해 퇴거명령을 받은 김종택(62·가명)씨는 최악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김씨가 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4천여 세대의 20%가 임대료·관리비를 체납하고 있다. 만나는 주민마다 “제발 관리비를 낮춰 달라”고 호소했다. 공공재정 부족 등이 주된 이유겠지만,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오려고 대기중인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배경을 이룬다. 김씨가 나가도 금새 들어올 사람이 수두룩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만한 집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발표된 서울시 뉴타운 개발계획을 보면, 2010년 말까지 주택 13만6346호가 사라지고, 6만7134호가 새로 지어진다. 단순 증감만 따져도 7만여 주택이 그냥 사라진다. 사업 이전 83%를 차지한 전세 4천만원 미만 주택은 사업 이후 한 채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전체의 13%인 206만여 가구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은 1%, 영국은 2.4%, 일본은 4.4%만이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다. 가난한 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공공임대주택이다. 2009년 현재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주택 재고 가운데 3~4% 수준이다. 영구임대주택은 2%에 불과하다. 선진국에선 공공주택 비율이 20~30%에 이른다.
 
국가가 돌보지 않으므로 빚을 질 수밖에 없다. 2005년 현재, 과중채무자는 300만 명에 이른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과중채무 원인으로 생활비를 꼽은 경우가 29.3%였다. 가난한 사람은 정상적인 은행 거래를 할 수 없으므로, 필요한 돈을 카드로 돌려막거나 사채로 메운다. 이들이 스스로 구제할 유일한 방법은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이런 제도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지만, 알게 된다 해도 다른 문제가 있다. 갚을 길 없는 빚을 져도 파산신청할 비용이 없어 구제받지 못한다.
 
남기철 교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빈곤을 예방할 수 있는 더 보편적인 소득보장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수 교수도 “직업·소득·성·혼인 여부 등에 상관없이 일정 연령이 되면 일정 금액을 정부가 지급하는 ‘기초연금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기초연금제는 현행 기초생활보장제의 사각지대 대부분을 메워줄 것이다. 여기에 경제활동인구 은퇴 이후를 보장하는 현행 국민연금제를 덧붙인다면 빈곤층의 근로 의욕까지 높일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당장 돈을 줄 수 없다면 마음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돈을 마련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마음은 지금 당장 꺼내어 표현하면 된다. 성인의 경우엔 복지관, 청소년의 경우엔 학교가 그런 마당이 될 수 있다. 복지관에는 사회복지사가 있고, 학교에는 교사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일상을 돌보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가족 구성원과 상의해야 하고, 피상담자의 학업·숙식·취미·진로 등을 모두 보살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김 복지사는 말했다. 사회복지사의 낮은 임금도 문제다. 대부분 월 150만원 정도를 받는다. 이직이 잦다. 실태 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주민들은 자신의 형편을 몰라주는 복지관을 찾지 않게 된다. 더 많은 복지사를 채용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복지관 예산이 늘어나야 한다. 복지관은 구청에서 예산을 받아 집행한다. 구청 예산은 세금에서 나온다. 마음을 주는 일이 다시 돈 문제로 돌아오는 것이다.
 
초·중등학교에 배속된 상담교사의 대부분이 계약직이어서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사귀는 게 쉽지 않다. 정부가 내놓는 청년실업 대책도 대부분 대졸자에 초점을 둔 ‘인턴 제도’이므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다. 학교 밖에서 진로를 준비하는 ‘청소년 직업 자활센터’ 등이 유일한 대안인데, 이 또한 예산 문제와 부딪힌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돈을 주는 게 싫으면 사람을 주면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런 배려와 지혜가 없는 나라에 태어난 죄로 한국의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그들을 만나면 두 가지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그들의 삶에 과연 인간의 존엄이 남아 있나. 그것을 외면하고도 우리 삶은 과연 존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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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만 고도화된 ‘복지지체’ 세상 (한겨레21 2010.04.16 제806호,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사회복지학) 
[탐사기획-영구 빈곤 보고서 에필로그] 정규직 가장 중심의 파편적 사회보장 체계, 비정규 시대에 맥을 못 추네
 
빈곤 문제는 복합적이다. 이번 <한겨레21> 탐사기획에서 볼 수 있듯 주택, 의료, 노령, 장애, 교육, 가족구조, 지역적 고립과 낙인, 공공보장 체계와의 괴리, 심지어 비극적 사망 등 다양한 요소가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빈곤에 얽혀 있다. 그런데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빈곤 상황에 비해 우리의 빈곤 대책은 역동적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의 정치적 민주화 과정은 우리나라 사회복지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회복지 서비스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주택·보건의료 등 ‘집합적 소비재’에 대한 공공체계가 구축됐고, 지역사회 복지체계도 등장했다. 빈곤지역에 대한 사회복지관 설립, 영구임대아파트의 건립 등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 복지국가 모형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전면화됐다. 남성이 혼자 생계를 부양하는 핵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사회보장 체계가 도저히 포괄할 수 없는 ‘신사회위험’(New Social Risk)이 광범위하게 나타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의 양과 질이 현저히 나빠졌고, 가구주 한 명이 일해서는 나머지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됐다. 반면 여성이 일하기에는 보육과 돌봄이 사회화되지 않았다. 교육의 계층화 현상은 빈곤층에게 빈곤 지위가 세습된다는 자괴감을 더욱 증가시켰다. 빈곤층이 다면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시장 논리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빈곤 정책에서도 근로 연계가 강조된다. 빈곤층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서비스 선진화 계획’ 등을 살펴보면 기존의 공공서비스를 시장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여러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홍보하지만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자원을 실질적으로 확대 투입하지는 않는다. 사회복지 분야의 효율화가 주된 관심이다.
 
빈곤 문제에 대처하려면 적절한 수준의 공공성이 필요하다.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영역에 전체적으로 시장 논리를 결합시키는 것은 타당하다고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근로 의욕이 높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주민 사례를 살펴봐도, 게으르고 일을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적절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거나 일할 수 없는 제약조건에 갇힌 경우가 많다. 이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서 일하게 하여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임무다. ‘우선 열심히 일해라. 일하면 지원해주겠다’는 현 정부의 입장으로는 일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우리 사회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세 번째 ‘탈부양’ 시기의 요인에 의한 빈곤이 만연하고 있다. 근로자 가운데 빈곤자, 그리고 빈곤자 가운데 근로자 비율이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 가구주의 노동이 가구 전체의 빈곤을 막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빈곤 상황은 ‘구사회위험’에 의한 빈곤과 ‘신사회위험’에 의한 빈곤 문제가 중첩돼 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체계는 두 번째 ‘사회적 부양’의 단계도 완결하지 못했다. 첫 번째 사적 부양 단계의 비공식적 원조나 자선적 관점도 아직 팽배해 있다. 빈곤 문제의 진전에 비해 사회복지 발전이 지체돼 있는 것이다.
 
만연한 빈곤과 사회적 배제의 상황을 사실 그대로 펼쳐 보이고 공론화해야 한다. 이번 <한겨레21>의 기획은 우리 사회 영구임대아파트의 상황이 탈빈곤 과정이 아니라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절망의 과정임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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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1 18:12 2010/04/2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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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세계 바다를 지배할 북한의 친환경 웰빙어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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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나 전투 관련 글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건 옮겨와도 될 듯 하여...

물론 천안함 침몰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이에 부수된 여러 의혹들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에 올려본다.

이제 정부와 언론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계속 북한 어뢰 쪽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왜 이에 딸린 의문은 간과하는지 모르겠다.

아래 글은 "시신상태 대부분 양호"라는 4월 16일자 다음(daum)의 뉴시스 기사에 달린 보안관 장고님의 댓글이다. 이런 글이 유머에 속할런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데는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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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바다를 지배할 북한의 친환경 웰빙어뢰.. 보안관 장고님 |20:29 |

 
01. 군함만 반토막 내는 어뢰
02. 부유물이나 죽은 생선이 없는 어뢰
03. 무기장치 탄약 기름등에 전혀 피해가 안가는 어뢰
04. 물기둥과 폭음이 전혀 없는 어뢰
05. 생존자도 물기둥이나 뻘을 뒤집어 쓰지 않는 어뢰
06. 화약냄새도 전혀 안나는 어뢰
07. 수심 20m의 바다에서 처박히지 않고 항주하는 어뢰
08. 스크류에서 터지지 않고 정확히 중심에서 터지는 어뢰
09. 대잠 초계함 3척에 탐지 되지않는 어뢰
10. 까나리 어장 그물사이를 통과하는 어뢰
11. 충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거의 없는 어뢰
12. 초소형 어뢰이나 폭팔력은 엄청 강력한 어뢰
13. 단독으로 십수km 항주가 가능한 인공지능 어뢰
14. 급기동하는 군함을 추적할 수 있는 어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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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8 21:25 2010/04/1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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