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잘 좀 해봐라
다함께가 다시 논의의 중심에 섰다. 김강기명님이 참세상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이 논란에 불을 붙였지만, 이번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집회에 이어 거리행진에서 나타난 다함께의 행태는 집회 및 시위 과정에서 별로 두드러진 역할을 하지 못한 다른 운동권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서도 외면을 받고 있다.
다함께는 최근 공식적인 민주노동당의 활동에서 거리를 두면서 지역단위의 독자적인 소모임을 꾸리는 등 독자적인 조직활동을 강화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번 촛불집회에서 자신들의 기관지인 맞불을 팔고 서명을 하면서 특히 청소년을 중심으로 많은 회원들을 확보하였다.
이들은 사실 촛불집회에서 많은 역할을 하였다. 보수언론에 의해 매도되긴 했지만, 집회를 하면서 '반란을 시작하자'는 내용의 '무료'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하고, '이명박 OUT' 등이 찍힌 종이 피켓을 대량을 만들어 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또한 행진에 나서면서는 자신들의 대오와 확성기 등을 가지고 행진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다함께는 자신들 외의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다음에서는 다함께 퇴출을 위한 서명이 벌어지고 있으며, 진보블로그나 다음 아고라에서는 다함께의 행태를 비판하는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여기에 게시판을 통해서는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다함께 홈페이지의 폐쇄성도 지적되는 등 낡은 쟁점들까지 터져나온다.
한마디로 그들은 대중의 활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집회를 주도하지 못한 다른 운동권들의 질시에서 나온 것은 아님을 누구나 안다. 나 또한 집회나 행진 행렬을 좀더 조직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이들이 있었으면 하지만, 다함께스러운 방식은 아니다.
집회나 행진에서 나타난 대중들의 새로운 양태에 기존의 운동권들은 상당히 당황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다함께는 자신들이 항상 해오던 방식대로 대중을 끌고가려고 했지만, 무능함의 표출이든,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는 것이든, 대중의 뜻에 따르면서 활력을 제고하는 것이든 다른 좌파들은 이와는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대열에서 조금 물러나 지켜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열에 함께하면서도 자신들을 조직의 성원이라기보다는 대중의 일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맞는지 아직 모른다. 다만 다함께의 행태는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함께는 스스로의 활동에 대한 냉철하면서도 신속한 평가를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발견해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다함께가 해온 것을 봤을 때 그들이 그럴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참세상에 실린 김강기명님의 글 일부를 발췌한다. 링크를 따라 여기에 딸린 댓글을 읽어보면 촛불집회 및 거리행진에서의 다함께의 행태에 대한 운동권들의 시각을 알 수 있다. 김강기명님의 글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함께의 문제를 지적함에 있어서 여기에서 시작할 수는 있으리라. 그런데 이런 류의 글이 오마이뉴스나 다음 아고라 같은 곳에서 읽혀지는 것은 조금 우려스럽다. 거기에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다른 방식의 토론이 필요할 텐데 말이다.
마리신님이 전복님의 글에 단 댓글이 정확하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다.
"'지도'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문제는 지도는 고사하고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소통의 방법도 모르는, 무기력한 좌파 일부 조직이 구태의연하게 지도랍시고 나대는 태도를 보이니 비판하는 겁니다.
현재의 활동가니, 운동가니 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상황 파악도, 소통의 방법도 모르는, 아무 원초적인 무능력 상태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지도하는 게 아니라 지도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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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가 대중의 지도를 받으십시오 (참세상, 김강기명, 2008년05월28일 14시55분)
[기고] 대중의 활력을 "관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마도 "다함께"를 비롯한 소위 "운동권"분들은 이런 대중의 반란에 꽤나 놀라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어찌할 줄 모르고 방관하다가 몇 주가 흘러서야 하나둘씩 개인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결합하는 것 같습니다. 또 시위가 촛불 '문화제'에서 가두 행진으로 "진화"(보수 언론은 '변질'이라고 하지만)할 때 역시도 "권"들은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이토록 지도부 없는 대중이 질서정연하게, 또 마치 하나의 생물체처럼 자율적으로 진로를 정해 빌딩숲을 누비며 경찰들을 애먹이는 모습은 경찰들뿐만 아니라 "관리"와 "지도"에 익숙한 운동권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대중은 꼭 학습과 지도, 규율을 통해서만 성장하지 않습니다. 자율적 움직임에서 나온 "정서"들이 한 몸 되어 공통성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저절로 배우고 성장하기도 합니다. 요 며칠 간 대중은 마치 평화/인권단체의 "비폭력직접행동 워크숍"이라도 수강한 사람들처럼 멋지게 권력과 비폭력으로 맞섰습니다. 대중은 스스로 비폭력과 직접행동의 힘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중은 자라고 있습니다.
왜 다함께는 터져 나오는 대중의 활력의 정서를 다시금 "지도"와 "관리" 속으로 끌고 들어가 힘을 빼려 하시는지요.
이미 대중은 그 자리에서 정서를 통해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천천히! 앞으로!"였습니다. 그리고 "비폭력!"이었고, "폭력경찰 물러가라!"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지도를 받아야 할 건 대중들이 아니라 바로 앞에서 있던 다함께였지요. 결국 뒤에서 외치는 대중에 밀려 슬그머니 일어서서 행진을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행렬 중에 있었던 "다함께"의 방송차는 시민들의 항의를 받고 밖으로 나가야만 했지요.
노조가 앞장설 필요 없습니다. 옆에 서서 힘만 보태줘도 됩니다. 노조가 앞에서는 순간 대중의 활력은 사라지고 운동권의 "관리근성"이 되돌아 올 겁니다. 그리고 관리된 집단만큼 권력이 잘 조절할 수 있는 집단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관리"와 "규율"과 "지도"에 능하기 때문입니다.
다함께는 최근 공식적인 민주노동당의 활동에서 거리를 두면서 지역단위의 독자적인 소모임을 꾸리는 등 독자적인 조직활동을 강화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번 촛불집회에서 자신들의 기관지인 맞불을 팔고 서명을 하면서 특히 청소년을 중심으로 많은 회원들을 확보하였다.
이들은 사실 촛불집회에서 많은 역할을 하였다. 보수언론에 의해 매도되긴 했지만, 집회를 하면서 '반란을 시작하자'는 내용의 '무료'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하고, '이명박 OUT' 등이 찍힌 종이 피켓을 대량을 만들어 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또한 행진에 나서면서는 자신들의 대오와 확성기 등을 가지고 행진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다함께는 자신들 외의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다음에서는 다함께 퇴출을 위한 서명이 벌어지고 있으며, 진보블로그나 다음 아고라에서는 다함께의 행태를 비판하는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여기에 게시판을 통해서는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다함께 홈페이지의 폐쇄성도 지적되는 등 낡은 쟁점들까지 터져나온다.
한마디로 그들은 대중의 활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집회를 주도하지 못한 다른 운동권들의 질시에서 나온 것은 아님을 누구나 안다. 나 또한 집회나 행진 행렬을 좀더 조직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이들이 있었으면 하지만, 다함께스러운 방식은 아니다.
집회나 행진에서 나타난 대중들의 새로운 양태에 기존의 운동권들은 상당히 당황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다함께는 자신들이 항상 해오던 방식대로 대중을 끌고가려고 했지만, 무능함의 표출이든,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는 것이든, 대중의 뜻에 따르면서 활력을 제고하는 것이든 다른 좌파들은 이와는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대열에서 조금 물러나 지켜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열에 함께하면서도 자신들을 조직의 성원이라기보다는 대중의 일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맞는지 아직 모른다. 다만 다함께의 행태는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함께는 스스로의 활동에 대한 냉철하면서도 신속한 평가를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발견해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다함께가 해온 것을 봤을 때 그들이 그럴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참세상에 실린 김강기명님의 글 일부를 발췌한다. 링크를 따라 여기에 딸린 댓글을 읽어보면 촛불집회 및 거리행진에서의 다함께의 행태에 대한 운동권들의 시각을 알 수 있다. 김강기명님의 글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함께의 문제를 지적함에 있어서 여기에서 시작할 수는 있으리라. 그런데 이런 류의 글이 오마이뉴스나 다음 아고라 같은 곳에서 읽혀지는 것은 조금 우려스럽다. 거기에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다른 방식의 토론이 필요할 텐데 말이다.
마리신님이 전복님의 글에 단 댓글이 정확하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다.
"'지도'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문제는 지도는 고사하고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소통의 방법도 모르는, 무기력한 좌파 일부 조직이 구태의연하게 지도랍시고 나대는 태도를 보이니 비판하는 겁니다.
현재의 활동가니, 운동가니 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상황 파악도, 소통의 방법도 모르는, 아무 원초적인 무능력 상태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지도하는 게 아니라 지도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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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가 대중의 지도를 받으십시오 (참세상, 김강기명, 2008년05월28일 14시55분)
[기고] 대중의 활력을 "관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마도 "다함께"를 비롯한 소위 "운동권"분들은 이런 대중의 반란에 꽤나 놀라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어찌할 줄 모르고 방관하다가 몇 주가 흘러서야 하나둘씩 개인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결합하는 것 같습니다. 또 시위가 촛불 '문화제'에서 가두 행진으로 "진화"(보수 언론은 '변질'이라고 하지만)할 때 역시도 "권"들은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이토록 지도부 없는 대중이 질서정연하게, 또 마치 하나의 생물체처럼 자율적으로 진로를 정해 빌딩숲을 누비며 경찰들을 애먹이는 모습은 경찰들뿐만 아니라 "관리"와 "지도"에 익숙한 운동권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대중은 꼭 학습과 지도, 규율을 통해서만 성장하지 않습니다. 자율적 움직임에서 나온 "정서"들이 한 몸 되어 공통성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저절로 배우고 성장하기도 합니다. 요 며칠 간 대중은 마치 평화/인권단체의 "비폭력직접행동 워크숍"이라도 수강한 사람들처럼 멋지게 권력과 비폭력으로 맞섰습니다. 대중은 스스로 비폭력과 직접행동의 힘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중은 자라고 있습니다.
왜 다함께는 터져 나오는 대중의 활력의 정서를 다시금 "지도"와 "관리" 속으로 끌고 들어가 힘을 빼려 하시는지요.
이미 대중은 그 자리에서 정서를 통해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천천히! 앞으로!"였습니다. 그리고 "비폭력!"이었고, "폭력경찰 물러가라!"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지도를 받아야 할 건 대중들이 아니라 바로 앞에서 있던 다함께였지요. 결국 뒤에서 외치는 대중에 밀려 슬그머니 일어서서 행진을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행렬 중에 있었던 "다함께"의 방송차는 시민들의 항의를 받고 밖으로 나가야만 했지요.
노조가 앞장설 필요 없습니다. 옆에 서서 힘만 보태줘도 됩니다. 노조가 앞에서는 순간 대중의 활력은 사라지고 운동권의 "관리근성"이 되돌아 올 겁니다. 그리고 관리된 집단만큼 권력이 잘 조절할 수 있는 집단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관리"와 "규율"과 "지도"에 능하기 때문입니다.
솥 2008/06/02 15:39
다함께의 방식에 대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김강기명씨나 새벽길씨 같은 분들처럼 토론의 쟁점을 던져주는 거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단은 방어해주셨으면 해요. 다함께는 굉장히 악의적인 논쟁에 휩싸여 있습니다. 적어도 다함께가 프락치라거나 뉴라이트의 알바(-_-)라는 논쟁들이 이렇게까지 퍼지고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지 "사람들의 지도에 대한 불만"을 통해서만 나오고 있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뭐, 최근에는 "지도적 위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거 같긴 합니다만. 어떤 식으로 자율적 운동을 끌어갈지에 대해선 좀 더 고찰이 필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