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대학생 할인혜택
네이버블로그에 올리려다 실패한 글이다.
퍼온 글의 태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진보블로그도 마찬가지일까.
얼마 전 내년부터 예비역 대학생들도 군부대에 입소해 2박3일이나 3박4일 동안 전시동원예비군훈련을 받게 된다고 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지금은 연간 8시간 범위에서 학교 등에서 일반 훈련만 받으면 동원훈련에 가름하던 것이 34년만에 부활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학업에 지장이 있다, 등록금이 얼마인데 등의 이유가 있지만, 그것이 과연 대학생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사유가 될 수 있을까.
대학생이 아닌 이들도 그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동원훈련을 받는데 고충이 있음은 대학생이 아닌 이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동원훈련의 형식성, 사회적 낭비 등의 이유라면 동원훈련을 폐지하는 게 옳다.
대학생이라고 해서 할인혜택을 주는 것이 타당할까. 아래 [사람]에 실린 박영희 님의 글은 대학생이 아닌 이의 입장에서 대학생들이 받는 특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물론 내가 이미 그 혜택을 다 누렸다고 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학번은 제발 묻지 말자. 나이를 알기 위해서 몇 년생인지 묻기보다 편하게 학번으로 통성명을 하는 것이라면 - 이 과정에서 나이주의가 나타나는 것도 문제이다 - 차라리 고등학교를 언제 졸업했는지를 묻는 게 낫다. 물론 초등학교 학력 등의 경우에는 제외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대학생 할인혜택까지
박영희 | 시인,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17호 | 2006년 11월
두 해 전이다. ㅈ일보에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면 정서적으로 뭔가 의심스럽고, 중학교 졸업이면 세상을 보는 사고능력과 분별력이 떨어지고, 고졸이면 대충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유지할 수 있고, 대학을 졸업해야 적어도 인격이라는 단어가 형성된다.’라는 어느 신경정신과 의사가 쓴 칼럼을 읽고는 온종일 마음이 편치 못했다. 내 가슴 어딘가에 비수로 박힌 그날 칼럼은 한동안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무슨 잘못이라도 범한 사람처럼 문득문득 나 자신을 점검한 적도 있었다. 의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바로 정서적으로 의심을 받게 될 사람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소위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는 이들의 말과 글, ○○조사 결과를 보면 비웃어주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신빙성은 고사하고 어떤 말이 힘겨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어떤 글이 상처가 되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아서다. 그들은 학문과 조사를 통한 분류작업의 하나라며 변명하듯 늘어놓지만 내가 보기에 그 분류는 견딜 수 없는 차별로 다가올 때가 더 많다.
한 선생님이 영어도 가르치고 생물도 가르치는 재건중학교를 다닐 때였다. 한날은 일반 중학교를 다니는 친구가 집으로 찾아와서는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본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그날 나는 친구의 우정이 너무 고마웠던 터라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 여섯 중에서 나만 비인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열다섯 살 주말 오후, 친구가 일러준 대로 극장 앞에 도착을 해서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서 표를 예매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만 주눅이 들고 말았다. 떨리는 가슴으로 나도 친구와 함께 난생처음 그 엄청난 대열에 합류를 했는데, 어제와 전혀 다른 세계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잠시 후,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내 차례가 되어 매표구 안으로 학생증과 요금을 내밀었으나 어인 일인지 티켓은 나오지 않고 학생증과 돈이 반려되어 나오는 게 아닌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반달 모양의 매표구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다. 그러자 매표를 담당하고 있는 누나의 목소리는 쌀쌀맞기 이를 데 없었다.
대입수능이 다가오면 나라가 온통 들썩한다. 하지만 대학에 가지 않는 학생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은 대단히 심각하다. 사진은 실업계고 현장실습 문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 사진 | 시민의신문 |
“넌 일반학교가 아니잖아? 재건학교는 할인이 안 돼.”
학교와 인연은 그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쫑이 나고 말았다. 그날의 모욕을 감당해낼 준비도 돼있지 않았거니와 무엇보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정규 학교 학생들의 눈빛을 견딜 수 없었다. 때로 사람의 눈빛이 바늘 끝으로 다가온다는 옛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비정규 학교라는 것을. 이처럼 나는 대중교통이나 극장을 앞세워 한국 사회를 평가할 때면 그 엄준한 차별 앞에 늘 숨을 죽여야 했다. 나로서는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는 동안 ‘할인혜택’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재래시장의 에누리, 마트의 할인 정도였다.
열다섯 살 봄부터 시작된 서울에서의 날들은 더 혹독했다. 대중교통은 물론 극장, 이발소, 심지어는 경기장, 도장에 이르기까지 학생과 비학생의 차별 할인은 분노가 치밀 정도였다. 그때마다 나는 죄 없는 밤하늘의 별들을 쏘아보며 혼자만의 한탄을 늘어놓곤 했다.
‘어째서 똑 같은 버스를 타고, 똑 같은 내용의 영화를 보고, 똑 같은 이발소에서 똑 같은 스포츠머리를 깎는데 요금이 다르단 말인가? 제기랄, 학생이 버스를 타면 기름이 덜 닳아지고, 학생이 아닌 비학생의 머리를 깎으면 가위가 더 닳아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사소한 것들 속에서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나는 이편과 저편으로 갈라놓으려는 세상의 잣대를 되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수와 그렇지 못한 청소년의 수가 엇비슷한 시절인데도 세상의 잣대가 부유한 환경 쪽으로 기울어 있다면 어느 누군들 세상이 공평하다고 말하겠는가. 물론 그 잣대가 무섭고 두려울 때도 있었다. 설령 그 잣대가 공평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한번 정하면 평생을 좌우하는 법칙과 같았기에 함부로 대들었다가는 화를 당하기 십상인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친구의 학생증을 빌려 한 달분 토큰을 사는 일이 몹시 괴로웠다. 신문배달을 해서 공부를 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한때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급훈으로 널리 퍼졌던 사진. |
청년기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대학생에 비해 사회에 뛰어든 청년들이 더 많았음에도 세상의 잣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가정환경으로 인해 진학하지 못한 대학은 무슨 원죄처럼 그들의 잘못이고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대학생과 비대학생으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스름새벽 대자보를 붙이다 형사에게 붙들렸고, 친구와 나는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묘하게 나타났다. 친구는 대학생이고 나는 비대학생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수사관은 엄중분리해서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사실이 그렇고 현실이 그러하니까. 문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조사가 끝나자 친구는 훈방조치 되었고 나는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던 것이다. 보아하니 할인혜택은 소위 운동판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서른이 되어서는 나이 대신 몇 학번이냐고 물어오는 통성명 절차 때문에 또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뭐랄까, 제대 후에도 도심의 길목들을 장악하고 있는 해병대들이 기(期)를 물어오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할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통성명을 하자며 학번을 물어오면 육성회비 360원을 내지 못해 퇴학당하자 식모살이하러 상경 길에 올랐던 동무들이 몹시 그리웠다.
지금이라고 해서 어디 크게 달라진 게 있는가. 여전히 세상의 잣대는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으면 끽소리 말라는 듯, 이것이 세상을 움직이는 표준이라도 되는 양 대학생을 위한 혜택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교통, 극장에 이어 여행사, 은행, 성형, 미용, 헬스 등 신문광고에까지 나타나는 실정이다. 유럽여행 대학생 30~50% 할인, 대학생 성형수술 20~30% 할인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청소년 할인혜택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대학생 할인혜택은 여전히 지천에 널려 있다. 대체 그 이유는 무얼까? 대학생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건 조폭세계와 다를 바 없다. 진정한 할인혜택은 가난한 환경(약자)으로 인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비대학생들에게 먼저 돌아가야 함이 그 순서이기 때문이다. 늦지 않았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고 짚어봐야 할 때다. 대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너무 오랜 세월, 너무 많은 혜택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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