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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거리로 전락한 레이펑(뇌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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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봉이 인민영웅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했단다.

'뇌봉'이라는 책을 읽은지 15년이 넘었다. 중국에서는 혁명의 나사못으로서 그의 삶을 거울삼아 ‘뇌봉 따라 배우기’ 운동이 일어났었고, 그 '뇌봉'을 따라 배우자는 의미에서 뇌봉의 전기(?)가 번역되어 나온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뇌봉 따라배우기'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나는 '뇌봉'에 나오는 일부를 홈페이지에 옮겨놓은 적이 있긴 하다.

    

 만약 그대가 한방울의 물이라면 다만 얼마의 땅이라도 적시었는가?
 만약 그대가 한 줄기의 햇빛이라면 다만 얼마의 어두움이라도 밝혀 보았는가?
 만약 그대가 한 알의 씨알이라면 한 소중한 생명이라도 키워 보았는가?
 만약 그대가 하나의 작은 나사못이라면 그대의 일터를 언제나 굳건히 지키고 있는가?
 그대가 만약 자기의 사상을 말할 수 있다면 그 아름다운 이상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는가?
 그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기의 노동을 아낌없이 바치며 힘써왔는가?

 (뇌봉의 일기 중에서, 1958.6.7)

  

특히나 당내에서 모범당원 운운하면 나는 '뇌봉'이 생각난다. 뇌봉은 항상 "삐걱대는 세상 작은 나사로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혁명의 나사못'이 어쩌고 저쩌고 했지만 결국은 당이 먹어주고 입혀주고 교육시켜 주었다고 무뇌아적으로 중국공산당에 헌신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는 과연 사회주의 인간형이었는가? 당 대신 자본이라면?

 

자신의 성장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비판적으로 판단할 인식을 갖출 수 있을 때, 진정 사회주의 인간형이 되지 않겠는가.

그에 대한 인터넷 패러디가 유행하는 것도 사실 예상되었던 것인데... 뇌봉이 22살을 일기로 삶을 마치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http://plsong.com/bbs/box.php?ver=&sanha_out=&sno=3186
소리타래 -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

 힘들땐 힘들다고 얘기하고
 안아달라 솔직하게 내보이고
 더디가도 사람생각 하는 마음
 가슴속에 꼭 담고

 세상과 사람에 지친 벗들
 작지만 소주한잔 건네주고
 아무리 사는게 바빠도
 노래 한 자락 하는거야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어두운 세상 작은 빛으로
 이 세상 살기 위하여
 한번 두번 아니 여러번
 좌절하게 되더라도
 삐걱대는 세상
 작은 나사로
 이 세상 살기 위하여


어제의 ‘인민영웅’ 오늘은 ‘조롱거리’ (한겨레,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2006-11-13)
레이펑·마오쩌둥 등 인터넷 패러디 유행
얼굴새긴 콘돔상자까지…대중 의식균열

  

레이펑(뢰봉)은 중국 사람들에게 가장 살가운 영웅이다. 인민해방군에 투신해 평생을 이웃에 봉사한 그는 중국 공산주의의 이상형으로 추앙받고 있다. 물로 배를 채우며 한푼두푼 모은 돈을 수재민들에게 보냈다거나, 몸이 아파 병원에 가던 도중 공사장에서 일손이 달리는 것을 보고 벽돌을 함께 날랐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한다. 그가 22살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숨지자 마오쩌둥 주석은 친히 “레이펑을 따라 배우자”는 붓글씨를 바쳤다.

   

 

 
» 마오쩌둥, 레이펑 얼굴을 새긴 콘돔상자
 
그런 그가 요즘 인터넷에선 ‘바보’가 됐다. “레이펑이 숨진 것은 사람들을 너무 돕다가 진이 빠졌기 때문이다”는 식의 레이펑 패러디가 한창이다. 그 속에서 그의 전설 같은 의협심과 선행은 어리석고 부질없는 기행으로 둔갑한다. 물로 배를 채운 것은 “밥보다 물을 좋아한 그의 괴상한 건강관리법”일 뿐이다. 마오쩌둥의 교시에 따라 학교와 직장, 군대에서 밤마다 레이펑 학습 열풍이 불었던 때가 무색하다.

  

레이펑만 당하는 게 아니다. 혁명과 전쟁의 와중에서 자기를 희생해 당과 인민을 구한 공로로 후대의 칭송을 받아온 중국의 인민영웅들이 도매금으로 패러디의 놀림감이 되고 있다. 누리꾼들의 손 끝을 타고 바이러스처럼 번져가는 이들 삐딱한 패러디는 마오쩌둥의 얼굴까지 콘돔상자에 새길 정도로 기세등등하다. 중국 공산주의의 권위를 상징하는 이들의 신화는 온데간데없다.

   

“황지광은 전쟁터에서 뛰어가다 넘어지는 바람에 얼떨결에 미군의 총구멍을 막았다.” 한국전쟁 때 미군 토치카의 총구멍을 몸으로 틀어막아 전우를 지킨 전쟁영웅 황지광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목숨을 잃은 덜 떨어진 군인으로 묘사된다. 항일투쟁 당시 다리를 폭파시키려다 폭약을 받칠 데가 없자 손으로 폭약을 든 채 도화선에 불을 붙인 동춘레이는 “폭약을 묶은 테이프에 손이 들러붙어 몸을 피하지 못한 재수없는 군인”으로 전락했다.

       

 

 
» 꼬마영웅 판둥즈의 얘기를 다룬 영화 <빛나는 붉은별>을 노래자랑 출전기로 패러디한 화면.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쓰면서 ‘아버지는 민족창법으로 하면 춘절 만회의 무대에 오를 수 있다고 하셨다’는 자막을 넣었다.
 

 

영웅 깎아내리기 패러디는 최근 플래시로까지 발전했다. 어린 나이에 지주와 맞서 싸운 공로로 홍군이 된 판동즈의 얘기를 다룬 영화 <반짝이는 붉은 별>은 시골뜨기 꼬마의 노래자랑 플래시로 바뀌어 인터넷을 떠돈다.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쓰면서 밑에 엉뚱한 자막을 넣은 이 플래시에서 판동즈는 하루 종일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철부지로 등장한다. 그가 철두철미하게 미워했던 지주는 그의 노래를 심사하는 채점관으로 출연한다. 계급적 적대관계가 이상하게 뒤집힌 것이다.

       

중국에서 영웅들의 얘기는 흔히 ‘홍색경전’(紅色經典)으로 불린다. 후세들에게 지금의 평화와 여유가 피로 얻어진 것임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영웅을 조롱하고, 모독하는 요즘 패러디는 이 홍색경전의 약발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대중들의 의식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최근 이들 패러디가 공산주의 영웅들의 위엄을 훼손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얼마 뒤 저장성 닝보시 공상국은 마오쩌둥 주석의 얼굴을 새긴 콘돔상자를 판매한 사업자에게 가게를 폐쇄하고, 물건을 모두 거둬들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영웅들을 비트는 패러디는 지금도 인터넷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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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3 22:57 2006/11/13 22:57

3 Comments (+add yours?)

  1. molot 2006/11/14 00:51

    실천문학에서 예전에 인민의 나사못, 뇌봉 이 나왔었죠. 같은 시리즈 물 중에 닥터 노먼 베쑨도 있었던 것 같고...둘 다 읽었었는데 그 때도 뇌봉은 좀 황당스럽다싶은데 이상하게 노먼 베쑨은 대단타 싶더라고요. 당시엔 내 계급의식이 이렇게 후져서 그렇다고 반성--;;을 하다가 아니다 재수없는건 없는거다고 혼자서 반발하다가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뇌봉을 읽다보니 어려서 도덕책에서 배운 천리마 운동, 천삽뜨고 허리펴기 운동, 새벽별 보기 운동 등이 생각나서 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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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새벽길 2006/11/14 01:04

    저도 닥터 노먼 베쑨은 잼나게 읽었지요.
    뇌봉은 재수없다기 보다는 조금 황당했어요. 이미 반북의식은 극복한 상태에서 봐서리, 북의 현실이 생각나기보다는 이게 사회주의 인간형이라면 사회주의 안할란다 하는 생각을 했었더랬어요. ㅋㅋㅋ

     Reply  Address

  3. ^^ 2006/11/14 02:23

    이런내가되어야한다 너무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

     Reply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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