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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주의 정파’를 넘어서자 (장석준, <전진> 창간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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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의 조합주의 경향을 비판하면서 노동조합주의 정파를 넘어설 것을 주장하고 있는 장석준 동지의 글이다. <전진> 창간2호에 실린 이 글의 내용에 대해 많은 동지들이 공감을 나타냈다.

 

사실 조합주의의 문제는 단지 <전진>만의 문제는 아니며, 현장파, 국민파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노동운동 조직이 직면해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전진>이 한계는 있으나 그래도 이 조합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노동조합주의 정파’를 넘어서자
 

장석준 (서울 회원)

 
1. 그렇소, 우리는 아직 사회주의자가 아니요?!
- 직선제 문제에서 드러난 <전진>의 오늘
  
<전진>의 길지 않은 역사를 새삼 돌이켜보자. <전진>은 당 활동가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당운동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게 그 만남의 이유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진>의 등장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당권을 잃은’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들과 ‘중앙에서 밀려난’ 옛 민주노총 중앙파들이 뭉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한 마디로 당과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모인 조직이라는 것. 간부 중심의 조직이라면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조직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주의적 정치 활동을 펼쳐 보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런 질시와 의혹을 한 몸에 받으며 출범했다.
  
우리 자신 항상 이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2005년 1기 활동을 평가할 때도 이 점을 <전진>이 극복해야 할 주된 한계로 지목했다. 작년 말 비정규직 입법 수정안(기간제 사유제한 조항의 수정 문제)을 둘러싼 논쟁에서 의견그룹다운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상당히 혹독한 자기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의 자기비판으로 모든 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또 다른 중요한 쟁점을 놓고 다시 한 번 <전진>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민주노총 직선제 문제였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조합원 직선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혹은 그것이 지금 노동운동 혁신의 주된 쟁점인가 등등은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직선제가 마냥 좋은 것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결사 반대해야 할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좋은 처방이 될 수도 있고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를 놓고 보인 <전진>의 행보가 영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작년 말 민주노총 지도부 보궐선거 때 <전진>이 한 축을 맡은 김창근·이경수 후보 조는 직선제 찬성 입장을 천명했다. 비록 <전진> 외의 다른 그룹·경향들과 함께 선거연합을 구성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대중에게 직선제 찬성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셈이었다. 어떤 심오한 논리로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올해 민주노총 혁신안을 둘러싸고 직선제가 다시 쟁점이 되자 <전진>은 이 문제를 사실상 원점부터 재논의했다. 그리고 조직 내부에서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물론 직선제에 대한 우리 내부의 찬반 의견은 모두 나름의 진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작년 보궐선거 때 이미 민주노총 70만 조합원들에게 약속한 것을 이제 와서 다시 갑론을박하다니, 이건 뭔가 아니었다.
  
마치 보궐 선거 시기의 <전진>과 최근의 <전진>이 서로 대립하는 격이다. 그렇다면 둘 중의 어느 하나는 분명 잘못이다. 선거 때 공약을 놓고 이제 와서 딴 소리 하는 게 잘못이든가, 아니면 선거 전술만 염두에 둔 채 앞 뒤 안 재고 섣부른 공약을 내걸었던 게 잘못이든가, 둘 중의 하나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 이면에는 <전진>의 태생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전진> 회원들이 여전히 사회주의 조직의 활동가가 노동조합 간부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돌이켜보자. 조직 내에 이견이 잠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선거 때 그렇게 쉽게 직선제 주장에 동조한 것은 결국 당장의 선거 결과만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일단 총연맹 지도부를 교체하는 게 중요하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이제 직선제가 막상 조직 현안으로 닥치자 이번에는 <전진> 내부에서 저마다 다른 목소리들이 돌출했다. 작년에 <전진>이 취한 입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이 속한 연맹의 상황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모 연맹의 회원 동지들 사이에서는 직선제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 다수인가 하면 다른 연맹에 속한 회원 동지들은 대부분 목소리 높여 반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1년 전에는 총연맹 집권을 중심에 놓았고 1년 후에는 각 연맹 상황을 중심에 놓았다는 차이는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 내의 당면 현실이 주된 판단 준거가 됐다는 점은 똑같다. <전진>이란 조직의 정치적 책임성, <전진>이 내건 이념과 노선, 그리고 그러한 이념·노선에 바탕한 노동운동의 장기 전망 등은 논란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사실 노동운동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당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 쪽에서는 작년 비정규직법 수정안 논란 때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었다.
  
말하자면, 지금 <전진> 회원 대부분은 자신이 몸담아온 조직(그게 대중정당이든 대중조직이든)의 관성과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아직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이 아니다. 여전히, 그러길 꿈꾸는 당 간부, 노동조합 간부들일 뿐이다.
 
2. 사회주의 정파와 노동조합주의 정파
  
2-1. 컬러 유인물의 아련한 추억
  
노동조합 같은 대중조직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어떤 식으로 활동해야 하는지 무슨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교과서로 여기던 코민테른의 공식들도 지금 돌아보면 시대적 한계가 뚜렷하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미 사회주의 정파 활동의 경험이 있다. 그것의 성과와 한계를 한 차례 몸으로 확인한 바 있다.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전진>이나 <노동자의 힘>보다 훨씬 큰 규모의 비합법 조직들이 노동운동에서 맹활약을 했었다. 인민노련 등에서 출발해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로 모인 흐름도 있었고, 그 이름도 유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도 있었다. 그 외에도 숱한 조직과 서클들이 있었다.
   
<전진> 회원들 중에도 이런 조직 활동을 경험한 분들이 많이 있다. 필자도 가두 투쟁 때마다 예외 없이 핸드 마이크를 들고 나타나서 생경한 말들을 부르짖다가 컬러 유인물을 공중에 흩뿌리고는 사라지던 도깨비 같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때가 지금보다 확실히 나았던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학습 분위기였다. 가방 안에 ‘불그스름한’ 사회과학 서적 한 권만 있어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가던 시절이었음에도 버젓이 ‘사회주의’이니 ‘혁명’이니 내건 비합법 잡지들이 나돌았고 그런 걸 함께 읽는 학습 모임들도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노동자대학’이란 간판을 내걸고 맑스주의 이론을 강의하는 곳까지 생겼다. 이 방면에서 최소한의 학습이라도 하지 않으면 단위 노조 간부 노릇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 마디로 ‘노동해방’의 이상에 대한 집단적인 공감과 고민, 긴장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뿌듯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당(혹은 당 건설의 주역을 자임하는 비합법 조직들)과 대중을 이어주는 ‘전달 벨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과거 코민테른의 전통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자동차에서 엔진의 동력을 바퀴에 이어주는 게 바로 전달 벨트다. 그처럼 노동조합은 당 혹은 정치조직의 방침을 실현하는 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동조합 내에서 활동하는 비합법 조직 회원들이 노동조합의 현 상태를 무시하거나 그 발전 수준을 넘어서는 조직 방침 때문에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이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유쾌하지 못한 경험은 사회주의 조직 활동 전반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요즘만 ‘정파’가 문제된 게 아니었다. 이때도 ‘정파’가 입방아에 올랐었다. 그리고 그 때도 “정파들 때문에 대중조직이 제대로 안 된다”는 볼 멘 소리들이 있었다. 이때의 정파는 사회주의 정파이고 지금의 정파는 대개 노동조합주의 정파라는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2-2.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는 한 뿌리다?
         
어찌 보면 90년대는 그 반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을 계기로 비합법 사회주의 조직들이 하나 둘 지리멸렬하게 사라지는 동안 민주노조운동은 전노대를 거쳐 민주노총으로 세를 불려갔다. 그러면서 ‘대중조직 중심주의’라고나 해야 할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났다. 87년 이후 등장한 민주노조들을 어떤 식으로 교통 정리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사회주의 조직들이 사라지고 난 빈자리를 이러저러한 노동운동 연구소들이 메웠다.
    
지금도 이어지는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의 뿌리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 무렵, 90년대 중반 즈음이었다. 한때 이 세 계파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오로지 기존의 민주노조, 즉 현재의 조직 노동자들의 시각에서 노동운동을 바라보았다는 점에서는 사실 일치하는 면이 많았다. 즉, 노동조합주의를 공유했다는 것이다.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는 노동조합주의 정파들이었다.
  
그럼, 이전의 사회주의 정파와 90년대의 노동조합주의 정파가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들은 무엇인가?
    
첫째, 사회주의 정파들은 한국 사회 전반의 혁명을 중심에 놓았고 노동운동도 이 혁명운동의 일부로 바라봤다. 반면 노동조합주의 정파들은 철저하게 노동조합운동의 전망을 중심에 뒀다. ‘노사정 협상’과 ‘산별노조’와 ‘총파업’의 차이가 있었지만, 어느 것도 사회 전체의 ‘변혁’과는 거리가 있었다. 
  
둘째, 사회주의 정파들의 경우는 자신들의 혁명노선에 바탕을 둔 정치방침이 먼저 있고 여기에서 노동조합운동의 과제들을 뽑아내는 식이었다. 굳이 말하면 노동조합운동의 안보다는 그 바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미래를 그려나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노동조합주의 정파들은 대개 노동조합 간부들이나 현장 활동가로 구성되었고, 이들이 연맹이나 현장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모여 그 정파의 성향이나 정책을 만들어냈다. 노동조합운동 외부보다는 그 내부의 경험과 전망이 중심을 이뤘다.
    
<전진>의 한 뿌리인 중앙파도 이런 흐름의 일부였다. 중앙파는 노동조합주의 정파 중의 하나이면서도 국민파, 현장파와는 다른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였다.
    
첫째, 노동조합운동의 발전 전망으로서 산별노조 건설을 강조했다. 이것은 적어도 노동조합의 조직 형식 문제에 관한 한 기존 노조운동과 선을 긋고 새롭게 발전할 것을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산별노조를 ‘건설’하기보다는 기업별노조가 산별노조 지부로 ‘전환’을 결의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따라서 산별노조를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운동과의 단절보다는 연속에 더 무게를 두는 결과가 나타났다.
   
둘째, 이러한 입장은 중앙파의 인적 구성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중앙파에는 국민파에 비해 몇몇 대형 연맹(금속, 공공 등)의 활동가들이 많았고, 현장파에 비해 연맹 간부들이 많았다. 기존 민주노조운동의 주력군을 이루는 연맹의 간부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점에서는 가장 넓은 시야와 긴 안목을 자랑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기업별노조의 연합체인 연맹의 간부라는 점에서 ‘현실성’이라는 이름 아래 기존 노조운동과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대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 다시 막대를 구부리자, 반대 방향으로
  
90년대식의 노동조합주의 정파들도 그 시대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것 자체만으로 옳다, 그르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정세의 변화에 있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지금까지 우리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한 걸음 전진(아니 전진이라기보다는 일단 버티기?), 두 걸음 후퇴’를 거듭해왔다. 특히 두 가지 점에서 그랬는데, 이것들이 모두 노동조합주의 정파들이 보일 수밖에 없는 한계들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첫째, 이념적 수세다. 신자유주의는 이념 차원의 공세들을 퍼붓는데 노동조합은 실리주의의 틀 안에서 방어전에 매달릴 뿐이다. 그런 가운데 민주노조운동의 그나마 긍정적인 전통들, 즉 투쟁과 연대의 가치가 훼손되었다.
  
둘째, 노동‘조합’과 노동‘계급’의 괴리다. 기업별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이 노동계급의 극히 일부만을 대변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노동조합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노동계급은 더욱더 파편화됐다.
  
3저 호황 직후의 몇 년 동안은 잘 조직된 대기업 부문의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에도 유리한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없었다. 또한 정부의 무차별적인 폭력 탄압 덕분(?)에 최소한 지역 수준에서는 민주노조들 사이의 연대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대기업 부문의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확보가 다른 노동자들(중소기업, 비정규직, 여성)에게 ‘남의 일’로만 다가오는 형편이다. 자본과 보수 세력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노동계급의 각 분파들 사이의 균열과 질시, 반목을 부추긴다. 노태우 정권 때 같은 전반적인 폭력 탄압도 없는 상황에서(대신 특정 부문에 대해 잘 계획된 집중 탄압이 자행된다) 계급연대는 이제 보다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과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노동조합주의 정파의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고서는 이 모든 밀물들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사회 전체의 변혁과 대안을 고민하지 않고서는 신자유주의의 이념 공세에 반격의 일타를 날릴 수 없다. 또한 기존 노조 조직이라는 좁은 우물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노동‘계급’의 운동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한 마디로 노동조합주의 정파는 그 역사적 시효가 다 됐다. 이제는 다시 한 번 막대를 반대 방향으로 구부려야 할 때다. 좀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다시금 사회주의적 정파 활동의 때가 됐다는 이야기다.
  
물론 과거 비합법 조직 시대의 향수를 되살리자는 말은 아니다. 그때의 기억이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시대가 변했다. 하지만 좀 과도하리만치 90년대식 노동조합주의 정파 활동의 반대쪽을 지향해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점에서 <전진>의 출발은 확실히 옳았다.
  
그러나 그 올바름을 우린 아직 몸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몸은 여전히 당권파, 중앙파 수준에 머물러 있다. 머리는 사회주의를 꿈꾸지만 몸은 노동조합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게 지금 <전진>의 현실이다.
  
3. 노동조합운동의 ‘안’에서 그 ‘바깥’이 되자 
    
다시 사회주의적 조직 활동을 모색한다고 하더라도, 옛날처럼 노동조합운동의 바깥에서 그것을 ‘지도’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될 것이다. 과거에도 이게 제대로 먹혔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노동조합운동의 안에만 틀어박혀서는 노동운동 자체가 죽게 생겼다. 21세기의 사회주의 정파 활동이 과거의 변증법적 지양이라면, 우리가 취해야 할 새로운 방향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노동조합운동의 ‘안’에서 그 ‘바깥’이 되자!
  
‘바깥’이 되자니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인가?
첫째, 항상 눈을 ‘바깥’으로 향하자. 현재의 노동조합, 그러니까 지금 조직돼 있는 노동자들의 ‘바깥’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거기에는 1,400만 중에서 100만 조금 넘는 수를 제외한 천만 이상의 미조직 노동자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급’을 말하는 것은 자기기만이거나 허장성세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은 절대 다수가 몸도, 마음도 모래알과 같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노동계급은 여전히 ‘未-來의’(즉, 아직 오지 않은) 존재인 셈이다.
 
이제 우리 이 함정에서 벗어나자. 현재의 조합원만이 아니라 미래의 그 노동계급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의 실천을 기획하자. 우선 새로운 장기 전략부터 짜보자. 금속산별이 드디어 꼴을 갖추었으니 ‘중앙파’의 프로젝트(기업별노조의 산별 전환)는 일단 한 매듭을 지은 셈이다. 이제는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해보자.
  
필자는 여기서 <전진> 노동위원회의 당면 과제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지금처럼 민주노총의 급박한 현안들에 <전진>의 입장을 마련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노동계급의 형성을 위해 노동조합운동이 무엇을 해야 할지, 그 전략을 다듬는 작업에 착수하자. 이것은 몇몇 교수들에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전진> 회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새로운 필생의 과제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마땅히 당 쪽 회원들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둘째, 한 동안 ‘바깥’으로 밀려날 각오까지도 하자는 것이다. 스스로 광야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오래된 요새에 무작정 버티고만 있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게 요새만 붙들고 있다면 그 요새가 무너졌을 때 아군은 전멸하고 만다. 병력을 빼서 새로운 진지들을 구축하고 외곽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유격전도 할 수 있고, 그래서 다시 전면전에 나설 아군의 힘을 비축할 수도 있다.
     
87년 이후의 기업 단위 민주노조는 우리의 요새였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조합원들의 정서가 이러저러하다는 이유로 할 일을 늦추거나 포기하지는 말자. 우리가 노동조합의 간부이기만 하다면 그런 알리바이에 계속 머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서 노동운동을 해나가기로 결의한 게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조합원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들(중소기업·비정규직 중심의 임금연대전략이나 조세개혁을 전제로 한 소득연대전략 같은 것)을 가감 없이 해야 한다. 그게 설령 당장은 공조직의 방침이 될 수 없다 할지라도 줄기차게 우리의 주장을 떠들어야 한다.
  
이것 때문에 당분간은 소수 세력으로 몰릴 수도 있다. 기존의 노동조합 구조에서 주변으로 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남보다 앞장서서 미래를 개척하려면 이렇게 야당이 될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기업별노조의 관행 속에서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다가 야당으로 밀리는 것보다는 노동운동의 미래를 과감히 대변하다가 명예롭게 야당의 길을 선택하는 게 낫다.
   
더구나 지금은 과거와 달리 또 다른 진지가 있다. 대중정당, 민주노동당이 있다. 노조 쪽에서 일정 기간 질서 있는 퇴각이 필요하더라도 그저 광야로 내몰리기만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다. 당이라는 제2진지를 발판으로 충분히 새로운 반격이 가능하다. 하지만 당 활동가들도 그렇고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그렇고 이제까지 이런 가능성을 활용할 생각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 하나만 들면, 학습운동이 있다. 90년대에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고리 중 하나가 바로 학습과 토론의 분위기다. <전진>이 정말 진지하게 사회주의 의견그룹 활동을 지향한다면, 무엇보다도 이 이념적 학습·토론의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당장 평조합원 수준에서부터 이것을 시도하기 힘들다면, 아주 좋은 우회로가 있다. 민주노동당이다. 당을 그야말로 선진 노동자들(너무 고풍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른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아 이렇게 표현하겠다)의 정치학교로 만들어야 한다.
 
몇 가지 실마리 정도를 제시했지만, 사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전진> 회원으로서 자신감부터 되찾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어쨌든 90년대부터 하나의 이상(산별노조 건설)을 부여잡고 그것을 관철시켜나간 경험을 갖고 있다. 90년대에 제시된 목표치 중에 그래도 끝내 제 꼴을 갖춘 것은 이것뿐 아닌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이제 그 경험을 새로운 이상을 향해 쏟아붓길 결의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지혜와 열의를 모으면 조합원들과 미조직 노동자들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우리 세대의 공통 목표들을 제시할 수 있다. 그 일을 <전진>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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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1 03:13 2006/10/01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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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eoScrum 2006/10/02 11:19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Reply  Address

  2. 새벽길 2006/10/02 20:29

    저는 장석준 동지가 쓴 글을 담아온 것 뿐인걸요. 잘 읽으셨다니 오히려 제가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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