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에 해당되는 글 17건

  1. 정체를 밝혀라 2003/06/27
  2. 지하철 2003/06/25
  3. 기형도 2003/06/25
  4. 1995년 12월 8일 금요일 맑음 2003/06/25
  5. 사랑 2003/06/25
  6. 94년 11월 26일 일요일 2003/06/25
  7. 1996년 6월 25일 화요일 흐림 2003/06/25
  8. 1996년 6월 12일 수요일 2003/06/25
  9. 1996년 6월 9일 일요일 흐림 2003/06/25
  10. 책을 훔치다 2003/06/25

정체를 밝혀라

from 사진 2003/06/27 14:23


갈월동 숙대입구 근처에 있는 가게를 발견하였다.
굳게 닫힌 철문 위로
['비상탈출구' - 장사하실 분 상담 환영]이라는 문구와
문의전화번호까지 있는 큰 간판이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허름해 보이지만,
저 철문 뒤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 것일까?

'비상탈출구'라는 문구가 매우 심상치않다.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비교적 작은 글씨로 쓰였지만
사실은, 저 문구에 이 가게의 진실이 숨겨 있는 것은 아닐까?

가설 1.

지구 탐험의 임무를 띄고 온 외계인들이 있다.
이들 중 다수가 취업을 하지 못해 먹고 살기 힘들다.
먹어야 임무도 완수할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외계인이기 때문에 취업이 더더욱 어렵다.
너무 논리적인 그들은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하고
시키는 일에 불만을 갖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일부 외계인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주식에 손을 댄다.
그리고 쫄닥 망해 임무를 완수할 수 없게 된다.
이제 어떻게 할까?
걱정하지 말고 '비상탈출구'에 와서 상담하시라.
합법적인 귀환은 아니나 '장사'할 수 있다.
여기서 '장사'란, '長死', '오랜 죽음'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잠시 죽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잠시라고는 해도 죽은 존재가 되어 있는 시간은
굉장히 길게 느껴지게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시적 표현이다.

슬프다...흑 주르륵...ㅠ_ㅠ
명복을 빈다.

가설 2.

철문을 여는 순간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있고
벽에는 화려한 꽃무늬가 수놓인 비단벽지가 발라진
5평짜리 텅 빈 방이 나타난다.
방바닥의 정 중앙에 발을 디디면
정 중앙 바로 앞에 사람 몸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작은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에는 땅 속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연결되어 있다.
총 4백4십4개의 계단이 나선형으로 좁게 이어져 있다.
게단을 다 내려가면
긴 복도가 있고 그 끝에 여권심사대 비슷한 것이 있다.
긴 복도에는 다양한 행색의 두더지들이 줄을 서있다.
아스팔트로 덮여버려 대체 뚫고 나올 곳을 찾기 힘든 서울을 떠나는 것이다.
주로 당장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한과 중국, 소련 등으로 간다.
돈이 많은 두더지들, 무모한 두더지들은 적당한 곳으로 아예 이주한다.
소심하거나 돈이 부족한 두더지들은 잠시라도 쉴 곳을 찾아 떠난다.

역시 불법이다.
두더지 사회에는 법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법을 따라보자면 검역을 마치지 않은 동물이 마음대로 한국을 떠나서는 안된다.
게다가 북한으로 갈 경우 국가보안법에 딱 걸리는 것이다.
걸리면 죽음이다.
따라서 '비상탈출구'이다.
비상탈출구를 통해 '장(長)기간 이사(徙)하실 분' 상담 환영인 것이다.

역시 슬프다...ㅠ_ㅠ

그만 할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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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7 14:23 2003/06/27 14:23

지하철

from 우울 2003/06/25 16:09
비가 오고 있었다

마치 빛이 아무런 색깔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는 소리가 없었지만
비를 맞는 것들은 제각기 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벽돌은 가로등 불빛에
붉은 색에서 주황색으로 그라데이션되어 보이고
양철 물받이는 덜그럭덜그럭 지껄이고 있었다

그 때,

내 옆자리의 젊은 아주머니는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 짧은 하품을 보이고
내게 진한 고등어 냄새를 남겼더랬다.


꺽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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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6:09 2003/06/25 16:09

기형도

from 우울 2003/06/25 15:49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고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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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5:49 2003/06/25 15:49
.
.

정말 공허하구나
넌 내 이야기가 흘러다니는 공기를
더럽혀서 내보내고
내 감정을 T.V 바라보듯 바라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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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5:43 2003/06/25 15:43

사랑

from 우울 2003/06/25 15:40
사람들은
뜨거운 태양을 마다하고
차가운 달을 녹이겠다고
덤비는구나.

개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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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5:40 2003/06/25 15:40

94년 11월 26일 일요일

from 우울 2003/06/25 15:36
어느 날인가
담벼락에 기대어
초라하고 가느다란 가지가
흐느적거리고

5월이 되자
그 가지로부터
찬란한
흰 꽃이 피어올랐다.
내 얼굴만한 그 흰 장미는
바람이 불 때마다

큰, 커다란 꽃잎을 가차없이 흩뿌렸고,
가차없이 자신을 흩뿌렸고, 가차없이 --------

몇 안되는 그 큰 꽃송이들을 얼마나 동경했던지
그 가느다란 목과 나약함.
작은 고뇌에도 무한히 떨어지던 큰 꽃잎.

일상과 권태와 안주.
그것들에 대한 저항. 그것이 기본이다.
불안정의 추구.
안정과 불안정의 경계를 타고 다니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그것의 유지.

때로는, 한쪽에 잠시 쓰러질 수도 있는 여유?
그건 모르겠다.
작은 부조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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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5:36 2003/06/25 15:36
장마가 시작되어 어제는 비가 많이 왔다.
저녁부터 비가 그치기 시작하여
오늘은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하늘이 무척 예뻤다.
적당히 바람이 불고 쓸쓸하다.

.
.
.
난 매우 힘들었다. 구석에 몰린 쥐같은 기분이었다.
더럽고 치사하고 무섭고 힘들고
영영 못쫓을 곳으로 도망가고 싶은.
잡아먹혀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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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5:20 2003/06/25 15:20

1996년 6월 12일 수요일

from 우울 2003/06/25 15:16
다들 덥다고 한다.
더위는 추위만큼 뼈저리지 않아서,
사람들의 불평이 지저분하게 들린다.
지하철이 자꾸 싫어진다.
수많은 광고의 그림과 글자들, 그에 뒤따르는 생각들,
사람들, 목소리, 표정, 그에 뒤따르는 혐오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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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5:16 2003/06/25 15:16
'자유'를 보러가는 길이다.
그런데 난 매우 자유롭지 못하다.
뼛속까지 깊은 나의 빈곤감.
그 빈곤감은 나를 차갑고 메마른 구두쇠로 만들어버렸다.
물질적 풍족함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해 줄 수 있으리라
나는 누구를 만나야 하나?
나는 가난한 이를 만나야 한다.
나처럼, 가난해서 늘 분노해야 하고
열등의식으로 똘똘뭉친 울화를 가져야 한다.
세상에 적대감을 느끼고 세상에 겁을 먹어
표범처럼 날카롭게 경계하는 눈빛을 지닌 맹수여야 한다.
나는 가난해서 누구를 사랑할 수가 없다.
철저하게 물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인간이란 아무리 반항해도 세계의 일부분이다.
조건부 사랑이란 얼마나 위대한 물질의 힘인가.
누구나 다 조건부 사랑을 하고 있다.
극구 부인하더라도.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나도 행복하고 싶었다.
이제 나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이란 부르주아지들의 언어이다.

결국은 내탓이다.
내가 바다처럼 넓고 깊지 못해서
세상에 적대감을 갖지 때문이다.
내가 못났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이 싫다.

나는 세상이 지겹다.
내겐 자유가 없다.
나는 빈곤한 자로써 열등한 자로써 세상을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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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5:14 2003/06/25 15:14

책을 훔치다

from 우울 2003/06/25 15:09
비어즐리 삽화의 '살로메'를 갖고 싶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

책을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

1996년 5월 10일 금요일 맑음

....
글은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해 쓴다할지라도 자신의 내면에 투영된 세계를 보는 것이므로.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기.
따라서 그의 내면이 풍족하지 않다면
풍족하지 않은 글만이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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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5:09 2003/06/25 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