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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20
    삶이 가르쳐준 지혜
    하루

삶이 가르쳐준 지혜

대학시절의 어느 날, 오빠는 나를 보며 한숨 섞인 한탄을 했다. 아버지의 타계로 너무 일찍 가장이 되어버린 그는 다섯 동생의 보호자이자 안내자였다. 

“어쩌면 너희들은 그렇게 똑같니?”

20대의 환희와 질풍노도, 좌절과 상처, 방향선회까지 언니들로부터 나를 거쳐 동생으로 이어지는 동어반복같은 삶의 양태가 안타까웠을 것이다. 20대의 나에게 그 한탄이 들렸을 리가 없다. 나는 누구와도 같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였고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나만의 빛나는 길이었으므로. 하지만 서른이 넘은 어느 날, 오빠의 그 한탄을 인정하며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 아는 걸 그 때도 알았다면…….’

그랬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 인생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 때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에 빠져 우울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위해 얼른 머리를 흔든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그 길을 다 거쳐 왔기 때문에 지금 여기 서 있는 거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위로를 던진다. 그래야만 하는 게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나인 라이브즈>는 이런 나에게 위로를 던지는 영화이다. 사랑,이별,상실…아홉 여성의 삶의 조각을 놀랄 만큼 섬세하게 그려내는 이 영화의 감독은 로드리고 가르시아, 뜻밖에도 남자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2000년에 소리없이 개봉했던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하 <그녀를…>)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00년에 나는 <그녀를…>을 보았다. 수많은 영화 마니아들이 ‘최고의 영화’라고 추천하는 말들 사이에서 나는 의아했다. 뭐가 좋다는 건가? 그리고 6년 후 다시 그의 영화를 만났다. 6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여성들의 지친 삶에 눈을 두고 있었고 그 사이 옴니버스라는 동일한 형식 안에는 다섯 편에서 부쩍 늘어난 아홉 편의 단편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6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그의 영화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그건 감독의 변화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나의 변화 때문인 것같다. 그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런 저런 좌절과 부침 속에서 인생의 쓴 맛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인 라이브즈>의 그녀들은 특별하지 않다. 산드라, 다이아나, 소니아, 사만다…. 특별하지도 않은 이름들 아홉 개가 제목이 되고 그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들이 10분 내외의 롱테이크 속에서 삶의 한 순간을 보여준다. 여성이라는 이름이 역할하는 삶의 양태는 다양하다. 딸, 어머니, 아내, 연인…. 아홉 명의 여성들은 살아온 이력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 없이 한 순간의 강렬함을 선사한다. 

 

이른 시일 안에 형기를 마치려는 모범수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딸과의 면회가 엉망이 되어버리자 이성을 잃는 순간을 그려낸 산드라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공감도가 달라질 것이다. 히스패닉계 죄수인 산드라와 평범한 한국 주부인 나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 모든 차이를 일거에 날려버릴 공통점이 존재한다. 딸을, 그것도 어린 딸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어 만삭이 된 몸으로 10년 전 옛 애인을 만난 다이아나의 흐느낌, 아버지를 증오하는 홀리의 격렬한 감정 변화, 병든 아버지와 병수발에 지친 엄마 사이에서 ‘집안의 심장’ 역할을 하느라 일찍 꿈을 접어버린 사만다의 글썽임, 유방 절제 수술을 앞둔 카밀의 짜증과 불안감 등은 놀랄만한 강렬함으로 불쑥 찾아왔다가 불현듯 사라진다. 10분 내외의 원 씬 원 컷(한 번도 카메라를 끊지 않고 찍는 방식)에 담긴 단조롭고 격렬한, 그러면서도 애틋한 삶의 스펙터클. 그리하여 저물어가는 햇살 속, 웬지 모를 슬픔이 묻어있는 한적한 교외 묘지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늙은 엄마와 어린 딸의 손장난, 삶에 지친 엄마에게 무릎을 빌려주는 어린 딸의 속깊은 배려, 그리고 카메라가 한 바퀴 팬을 하면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던 슬픔의 정체가 밝혀진다. 

 

살아가는 일이란 찻잔 속의 태풍처럼 격렬하면서도 고요한 것. 인생역전, 인류구원, 혁명완수와 같은 드라마틱한 상황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평범하다 못해 초라하게까지 느껴지는 아홉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내가 평생을 두고 그려내고 싶은 삶이 보인다. 누군가의 삶의 단지 몇 분, 비록 순간이지만 그 인생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이 펼쳐져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그 시간 안에서 얼마만한 가치를 건져내는가는 연속성의 문제이다. 그녀와 당신이 얼마만큼 연결되어 있는가. 낯선 거리, 낯선 얼굴, 평생을 살아도 한 번을 마주치지 않을 그녀이지만 어느 날 밤, 당신이 보는 보름달을 그녀도 볼 수 있다. 그 달은 예수나 마호메트가 보았던 달이기도 하지만 내가 걸으면 나를 따라오는 달이다.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삶의 짐을 지고 타박타박 걷고 있을 뿐이다. 때론 비틀거리고 때론 넘어져서 눈물 흘릴지라도 그런 식의 좌절은 달이 뜨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을 법한 삶의 한 순간이다. 그리하여 괜찮다고, 대단하지 않고 훌륭하지 않아서 더 위대할 수 있는 삶이 있을 수 있다고 조용히 위로해준다. 내가 미숙해서 내가 현명하지 않아서 바닥을 쳐야했던 그 시간들. 그 시간들을 함께 공유하고 있기에 영화 속 그녀들과 나는 행복하게 만날 수 있다. 질척거리며 걸어왔던 내 비틀거리는 발자국은 내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주었다. 그런 나의 삶을 사랑한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준 영화이다. (200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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