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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소련 경제에서의 축적

인간과 계획 총명한 유물론 2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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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경제에서의 축적

 

노동의 결실은 어떤 경로들을 거쳐 오고, 소련은 어떤 수단들을 통해 축적이 이루어지도록 보장하는가? 축적의 경로들은 스탈린이 공업화 계획 초기에 축적이 일어날 수 있는 원천에 대해 언급했을 때와 대체로 비슷하게 남아있다. 혁명에 따른 지주와 자본가[의 재산]에 대한 몰수를 언급한 후 스탈린은 계속해서 말한다:

“현재 공업의 추가적인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정량의 순소득[사회주의하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복구되었으며 발전 중에 있는 우리의 국영 공업이 축적의 또 다른 원천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국유화된 대외무역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는 일정 수준의 순소득을 제공함으로써 축적의 원천이 된다. 나는 순소득을 어느 정도 제공함으로써 축적의 원천으로 되는 다소 조직화된 우리의 국내 거래(home trade)를 들 수도 있다. 나는 순소득을 어느 정도 제공하고, 우리의 공업을 할 수 있는 한 부양하는 우리의 은행제도와 같은 축적의 도구를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국가예산을 작성하고 우리의 국민경제 전반과, 특히 공업의 추가적인 발전을 위해 상당량의 자금을 조달하는 국가라는 도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내부 축적의 주요한 원천이다.”1

일반적으로 스탈린이 1926년에 말한 내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축적의 이러한 원천이 기대하는 바를 실제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축적이 공동체의 수중에 들어가는 경로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이는 다시 소비에트 경제에서 개별 관리자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책임과, 그가 창발성과 재능을 발휘케 하는 광범위한 기회를 보여준다.

 

축적의 주된 경로는 세 가지이다: 첫째로 가장 비중이 적은 것은 공업에서의 감가상각비를 통한 경로이다. 공업이 6년간의 전쟁이 남긴 폐허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축적 과정의 초기1922년부터 1925년까지에 감가상각비는 새로운 건설에 필요한 자원 대부분을 조달했다. 신규 건설사업에 들어간 총지출 7억 1,400만 루블 중에서 5억 9,200만 루블은 감가상각비를 통해 조달됐다. 오직 1925-6년이 돼서야 공업 순소득으로부터 발생한 축적이 그 중요도에서 감가상각비에 기반한 축적을 추월했다. 두 번째 원천은 소련의 공업 자체에 한하여 그 해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국가경제 순소득이었다. 제1차 5개년 계획 직전(1927-28) 무렵에 공업축적의 3분의 2(12억 2,300만 루블 중 8억 루블)는 이러한 원천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1925-6년부터는 국가예산을 통한 공업건설자금의 조달이 축적의 한 원천으로서 공업 자체 내에서 별도로 마련된 자금을 그 중요도에서 능가하기 시작했다. 1925-6년도 예산축적이 산업 내부 축적을 1억 500만 루블 가량 상회했다면, 제1차 5개년 계획의 두 번째 해 무렵에는 그 차이가 이미 약 10억 루블을 상회했다.2 소비에트 경제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던 이후의 시기에서, 이러한 두 가지 원천의 상대적 비중은 다음과 같았다.3

 

축적의 원천

1929-32년

1933-37년

경제기관별 내부 축적 비율

30%

23.2%

국가예산 축적 비율

70%

78.8%

 

이러한 체계가 함의하는 바와 개인의 주도성에 관해 그것이 부여한 책임은 소련 공산당 제15차 대표자회를 통해, 국가의 산업설비의 급속한 증대를 핵심적인 특징으로 삼는 것과 함께 “새로운 고도의 기술에 기반하여 소비에트 경제를 재구축”하는 첫 번째 단계에 관해 방향성을 제시한 결정서에서 일찍이 명시되었다. 결정서는 사실상 1년 후 (앞서 언급된) 제15차 당 대회(1927년 12월 2~19일)4의 제1차 5개년 계획에 관한 지령들의 채택을 위한 길을 닦았다. 1926년 11월의 대표자회는 선언했다:5

“기본자본의 성장률은 a. 사회화된 공업을 통한 축적의 크기에; b. 국가예산을 통해 국민경제 기타 부문들로 들어오는 수입의 활용에; 그리고 c. 주민의 저축액을 협동조합 운동과 저축은행, 국내채권, 신용제도 등으로 유입시킴으로써 이를 활용함에 달렸다. 공업에서 확대재생산의 과정은 첫째로 가장 무엇보다도 공업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창출된 새로운 양의 잉여생산물을 공업에 투자함으로써 보장되어야 한다. 공업 내부 축적의 규모를 증대하기 위한 주요한 조건은 간접비용의 과감한 감축과 기금회전율의 가속화, 최신기술성과 도입,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산업을 합리화(rationalisation), 노동생산성과 노동규율을 증진함에 있다. 그럼에도 공업 내부에서 축적의 증가가 이루어지건, 그렇지 않건, 그것이 앞으로 곧 다가올 시기에 필요한 공업발전의 속도를 보장하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공업의 추가적인 발전은 반드시 공업의 건설로 향하는 그러한 보조적인 원천들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한다. 국민소득을 재분배하기 위한 주된 수단 중 하나는 국가예산이다. 연방의 국가예산에서 국가의 공업화에 관한 이해관계는 완전히 실현되어야 한다. 예산의 지출부문은 공업과 전기화 등을 위해 충분한 기금을 반드시 조달해야 한다. … 공업화에 관한 이해관계는 수출과 수입 계획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생산수단의 수입을 늘림으로써, 그리고 소비재의 수입을 줄임으로써)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국가의 공업화는 엄격하고 확고한 절약 정책 실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전 당과 모든 소비에트 기관은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지출을 근절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1927년 12월에 열린 제15차 대회는 이러한 원칙들을 적용하여 “국민경제 5개년 계획 작성을 위한 지령들”에서 생산원가의 절감이 “공업의 핵심 문제이며 다른 모든 과제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종속되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은 “생산의 사회주의적 합리화에, 즉 노동일을 단축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신규 장비의 도입과 노동의 조직화에 대한 개선에, 그리고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증진하는 데”에 있었다.6

 

후속 지면에서 [나는] 소련 공산당 제15차 대회 이래로 지난 20년 동안 이러한 강령의 적용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특히 소련의 산업, 무역, 재정을 관장하는 이들작업반장과 공장장부터 거대 기업소의 지배인과 전체 산업 혹은 무역 부문을 관할하는 장관에 이르기까지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해명하고자 할 것이다. 사례들은 최대한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장 최근에 입수된 자료들로부터 가져왔다. 독자는 세계 역사상 그 어느 때도 개인소유가 아닌 국가 전체에 귀속된 공장들과 무역기구, 신용기관들의 광범위한 조직망을 관리해야 했던 남성들과 여성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끊임없이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소련의 지도자들이 계획을 실현계획의 완수라는 측면뿐 아니라 계획의 초안을 짜는 데서도하는 과정에서 항상 개인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적절하다. 레닌은 최초의 경제 재건 계획이 논의됐던 1920년 12월 제8차 소비에트 대회에서 그것을 “제2의 당 강령”에 비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물론 그것은 오직 최초의 방법론으로서 채택된 계획일 뿐이다. 당의 이 강령은 오직 당 대회에서 수정의 대상으로 되는 우리의 실제 강령처럼 불변적인 것이 아니다. 이 강령은 모든 작업장에서, 모든 농촌 지구에서 날마다 개선되고, 보다 구체화되며, 완벽해지고 다양화될 것이다.” 스탈린은 1930년 소련 공산당 제16차 대회에서 이 발언을 인용하며 전년도에 채택된 5개년 계획에 적용했다. 그는 말했다:7

“어떠한 5개년 계획도 우리 사회제도의 심장부에 내재한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할 수 없으며, 그것은 오직 작업의 경과에서공장과 작업장, 집단농장, 국영농장, 지구 등지에서 계획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계획사업이 계획서의 작성으로 끝난다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관료주의자들뿐이다. 계획서의 작성은 단지 계획의 시작일 뿐이다. 진정한 계획적 지도는 오직 계획서의 작성 이후에, 현장에서 검증된 후에, 그것의 적용 과정에서, 수정과 정교화를 가일층 거친 후에 비로소 발전한다.”

그다음 해에, 소련 경제기관책임근로자 대표자회(1931년 6월 23일)에서 스탈린은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 즉 자본가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책임이 전적으로 근로자들에게 떨어진 사회에서 개인의 역할에 관해 훨씬 더 많이 강조하며 지적했다. 그는 말했다:8

“생산계획이 단순히 수치와 과업의 나열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사실상 생산계획은 수백만 인민의 생동하고 실천적인 활동의 구현이다. 우리의 생산계획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수백만의 근로자들이다. 우리의 계획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 바로 우리와 여러분들이요, 노동하려는 우리의 의지이며, 새로운 방식으로 노동하기 위한 우리의 준비성이고,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우리의 결심이다.”

15년 후, 제4차 5개년 계획을 채택한 최고소비에트 회기에서 계획의 형태뿐만 아니라 그것의 달성에 관한 최종적인 책임은 여전히 개개 시민들에게 놓여 있었다. 니콜라이 보즈네셴스키 국가계획위원회 의장은 논쟁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9

“소련 최고소비에트의 이번 회기에서 심의 중인 5개년 계획에 더하여, 우리는 해마다 5개년 계획을 확장해 나갈 국민경제발전 연간계획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국민경제의 특정 분야에서, 그것이 무엇이 됐건 자본건설에 관한 5개년 계획이 예정보다 빨리 수행우리는 모두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된다면, 5개년 계획의 초과 달성을 촉진하기 위해 국민경제의 그러한 부문들에 추가적인 자본투자가 제공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 우리 소비에트 연방 최고소비에트의 대의원 전원은 일상생활에서 스탈린적 5개년 계획의 달성과 초과 달성을 위해 모든 공장과 도시, 마을의 노동자들과 농민들, 지식인들의 사회주의적 경쟁을 확대하는 과업에 전념할 것이다.”

더 나아가, 소비에트의 경제에서 계획의 실행과 개선은 사적 소유 하에 있는 곳에서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됐고 계몽됐다고 해도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노동자들 스스로의 능동적인 감독과 불가분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 문제에 관한 소련 지도자들의 수많은 발언 중(이는 제3장에서 추가로 검토될 것이다.) 1937년 2월-3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토론에서 스탈린이 한 다음의 발언은 전형적인 예이다:10

“옳게 지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결코 사무실에 앉아서 지령서를 써 내깔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옳게 지도한다는 것은: 첫째, 문제를 옳게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옳은 결정은 우리 지도의 모든 결과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 군중의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지을 수 없다. 둘째, 옳은 결정을 집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군중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셋째, 이 결정 집행에 대한 검열을 조직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군중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번역: 김의진 | 사무위원

 

2025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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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 V. Stalin, “Report on Plenum of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C.P.S.U.”, 13th April, 1926.; in Ekonomicheskoe Polozhenie Sovetskogo Soyuza, 1926, 9-10.텍스트로 돌아가기
  2. Buzyrev, Vosstanovitelnye Raboty i ih Finansirovanie, 1945, 29-30.텍스트로 돌아가기
  3. Rovinsky, Gosudarstvenny Biudzhet SSSR, 1944, 10.텍스트로 돌아가기
  4. 소련 공산당 대회는 당의 최고권력기관으로 정책수립과 중앙위원회 선출 등에 관한 권한을 가진다. 공산당 대표자회의는 자문적 성격을 가지는 대표자회의로, 그 결정사항은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5. XV Konferentzia VKP(b), 1927, 776-7.텍스트로 돌아가기
  6. Rezolutsii, etc., 58-9.텍스트로 돌아가기
  7. J. V. Stalin, Political Report to the XVI Congress, London, 1930, 142-3.텍스트로 돌아가기
  8. Leninism, 1944, 387.텍스트로 돌아가기
  9. Zasedania Verh. Soveta SSSR, I Sessia, 1946, 245, 315.텍스트로 돌아가기
  10. 〔역자 주〕 J. V. Stalin, 『스딸린 선집』, 제3권, 東京: 학우서방, 1964, 287-8. 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