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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세계의 논리를 향하여

미시세계의 논리를 향하여 총명한 유물론 2 여름


“Toward a Logic of the Microworld”, ​Soviet Studies in Philosophy, 9 (3), 1970: 212-7.


R. A. Aronov | 구 소련 논리학자


AA AB AC AD AE AF AG AH AI AJ AK AL AM AN AO AP AQ AR AS

미세세계의 발견은 인류가 가진 많은 관점 체계(systems of views) 및 그 논리까지도 포함하는 것들에 대해 심각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이 세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고형체(固形體), 불변의 입자들과 그것들 사이의 상호 관계가 불충분한 것임이 밝혀졌는데, 이는 어떠한 식으로든 거시세계의 논리를 반영한 것이다. 미시세계에서 입자 물리학이 마주친 것은 비논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입자의 정지 질량은 0이라는 것; 전체보다 작지 않은 부분; 회절 실험에서 파동처럼 움직인 입자; 그리고 입자들의 특성에서 흔하지 않고 이상한 다른 많은 것들. 이 특성 중 하나는 실지 물리학자들에 의해 기묘도(strangeness)라고 명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의 결여는 단지 겉보기에 그럴듯했을 뿐이다. 물리학의 발전은 실지 그 안에 비논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냈다. 입자들의 정지 질량이 0이라는 사실은, 얼핏 보기와 달리 아무런 질량을 갖지 않음을 전혀 뜻하지 않으며, 다만 이 입자들은 오직 운동 상태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정지 상태에 있을 수 없음을 뜻할 뿐이다. 전체보다 작지 않은 부분은 더 자세한 검토로써, 다양한 기본 입자들이 서로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오직 가상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므로, 그 용어의 거시적 의미로서 전체의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다. 마지막으로, 파동처럼 운동하는 입자는 거시적 물체가 아니며, 반드시 입자이거나 파동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통일체로서, 입자도 파동도 아니다. 기본 입자가 입자인지 파동인지의 질문은 단순히 잘못 제기된 것이다: 미시세계에서는 “입자이거나 파동이거나”가 적용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미시세계는 논리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실제로 미시세계가 갖고 있지 않은 거시적 물체의 특성이 어떤 식으로든 미시세계에 귀속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 비논리성은 미시세계에 대한 추론에서 거시적 논리를 따름에 있는 게 아니라, 물질적 사물들과 그들 사이의 상호 관계에 대한 통상적인 거시적 개념들이 미시세계로 이어져 들어오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만약 그 비논리성이 극복되고 미시세계가 그 자체로 간주된다면, 그 논리는 거시세계의 논리와 동일하다는 것이 증명된다.

 

미시세계의 논리가 거시세계의 논리와 달라야 함은, 미시세계의 특징적인 사실인 물리적 변수인 ab-ba≠0이 교환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으로써 입증되는 양 보인다. 실제로 이러한 변수들에 대한 해당 진술들의 결합예를 들어, a. “q는 시간 t1에서 측정된 입자의 좌표이다”와, b. “p는 시간 t2에서 측정으로부터 도출된 동일 입자의 운동량이다”라는 유형의 문장들, 여기서 t1=t2일 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거시세계의 논리가 미시 현상에 관한 판단의 논리로 기능할 수 없음을 뜻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단지 외견상에서만 그렇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거시세계의 논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한 판단의 논리로 기능할 수 없음이 밝혀진다. 이러한 변수들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들이 근본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미시 현상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 현상이 그 특성을 동시적으로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입자의 위치 좌표와 운동량에 대한 명제들의 결합이 의미를 지니지 못함은, 입자가 좌표 q와 운동량 p를 동시에 지니면서도 거시세계의 논리가 그러한 명제들에 적용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미시 입자가 좌표 q와 운동량 p를 동시에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논리는 이와 전혀 무관하다. 미시세계의 논리가 거시세계의 논리와 다르다는 환상은, 실제로는 미시 입자들의 특성이 아닌 거시적 물체의 속성들을 미시 입자들에 귀속시키는 결과로써 발생한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논리적 차이는, 겉보기에, 미시세계에서의 인과 관계의 독특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피상적으로 보자면, 거시세계에서 원인이 결과를 야기하는 것과 달리, 미시세계에서는 원인이 결과를 야기하지 않는 것마냥 여겨진다. 여기서 방사성 붕괴는 기본 입자들이 퍼텐셜 장벽을 투과하기 때문에 발생하며, 분자 내 원자들의 동극성(homopolar) 결합[비극성 공유 결합]은 원자 전자들의 파동 함수가 교차한다는 사실의 결과로 발생한다. 이러한 각각의 경우들에서, 원인은 결과를 야기하지 않고 단지 그것을 조장할(facilitate) 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단지 표면적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러한 차이가 미시세계에만 국한된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은, 기본 입자들이 서로 변환을 일으키며 결과적으로 특정 입자들이 다른 입자들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입증된다. 방사성 붕괴나 동극성 결합과 같은 현상들에 관해서도, 자세히 탐구하면, 이것들이 원인으로부터 결과가 발생한다는 개념에 전혀 위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소위 기본 입자들의 퍼텐셜 장벽 투과 현상은 방사성 붕괴의 실제 원인이 되는 내부 상호작용(강력, 전자기력, 약력)의 표현 중 하나일 뿐이며, 이 상호작용들은 단순히 현상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생시키기까지 한다. 원자 전자들의 파동 함수 교차 또한 분자 내 원자들의 동극성 결합을 양자역학적으로 기술한 것일 뿐이며, 이는 그 결합을 발생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원인도 아니다. 이 경우 동극성 결합의 진정한 원인은 (서로 다른 스핀을 가진) 전자들 전기적 상호작용이라는 내부적 상호작용이다. 바로 이것이 결합을 조건 짓고 발생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미시 인과율과 거시 인과율의 차이는, 입자성과 파동성의 특유한 통일성을 특징으로 하는 미시 현상의 고유성과 관련이 있으며, 거시세계에서 인과 관계가 구현되는 고전적 궤적들이 미시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는 논리와는 전혀 무관한 문제다. 미시세계에서는 원인에서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고전적인 공간·시간·운동 개념을 미시세계로 부당하게 확대 적용한 데서 비롯된 것이며, 입자 물리학에서의 인과 관계에 대한 현상론적(phenomenological) 기술과 동역학적(dynamical) 기술을 동일시한 데서 기인한다.1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논리 차이는 겉보기에, 물리적 변수의 비가환성(noncommutativeness)과 미시세계의 인과 관계 특성이 보통이치(二値)논리보다는 다치(多値) 논리적어도 삼치(三値) 논리의 언어로 더 적절하게 처리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걸로 보인다. 거시세계의 논리가 이치적이므로, 다치성이 바로 미시세계 특유의 논리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단지 표피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치 논리와 보통 논리(이치 논리)의 차이는 전자가 미시세계의 논리고 후자가 거시세계의 논리라는 점에 있지 않음이 밝혀진다. 두 논리 모두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에 대한 추론에 적용될 수 있다.

 

그들 사이의 차이는 다른 데에 있다. 이치 논리는 명제의 이치성, 즉 참 또는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반면, 다치 논리는 명제가 불확정적-, 개연적- 그리고 가능적- 등 여러 값을 반영한다. 그러나 불확실성, 개연성, 가능성 등의 값들은 미시세계에 관한 명제들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다. 참과 거짓의 경우와 동일하게, 이들은 우리가 아는 객관적 현실의 모든 영역에 대한 명제들이 공통으로 지니는 특성이다.

 

이 모든 게 다른 (비거시적) 논리에 대응할 현실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미시세계가 그러한 영역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미시세계의 논리가 거시세계의 논리와 다른 정도는 미시세계에 그것의 특성이 아닌 것거시세계의 특성들을 귀속시킬 때에 한한다. 미시세계가 실재로서 취급하는 한, 하나의 논리는 그와 다른 논리와 다르지 않다.

 

미시세계의 논리 존재에 대한 개념은 물론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확실히 인식론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상기한 바와 같이, 문제의 논리적 측면과 존재론적 측면을 식별하는 데서 비롯된다; 둘째는 논리와 기하학 사이의 유비를 철저히 심화한 것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다른 맥락에서 기하학적 규약주의(geometric conventionalism)A. 푸앵카레, H. 버코프 등의 인식론적 근원 중 하나였다. 물론 객관적 실재의 속성들은 다양한 기하학과 논리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반영된다. 둘 다 본질적으로 후험적(a posteriori)이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에서 서로 다른 기하학들은 물리적 의미를 가지는 반면, 서로 다른 논리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서로 다른 기하학들이 기술하는 객관적 실재의 속성들은 각기 다르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유형의 물질적 상호작용들은, 시공간의 질적으로 다른 속성으로서 현상한다: 전자기적 상호작용은 유클리드적 시공간 속성에 대응하는 반면, 중력 상호작용은 비유클리드적 속성에 대응한다. 논리에 대해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서로 다른 논리들이 기술하는 명제들의 다양한 측면들과 그들 간의 상호관계들은 우리가 아는 객관적 실재의 모든 속성에 관한 명제들에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다.

 

현대 논리들의 적용 가능 영역의 한계, 즉 그 너머에서 이들이 다른 ‘비거시적’ 논리들로 전환되는 지점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열려 있다. 이러한 유형의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 역시 오직 구체적인 맥락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일반적으로 모든 전환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어진 전환을 그 주변 환경과 발전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으로써” 말이다.2<>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5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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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에 대해서는 Voprosy filosofii, 1, 1969.에 실린 논문을 참조하라.텍스트로 돌아가기
  2. V. I. Lenin, Poln. sobr. soch., Vol. 30, p. 6.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