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를 끄고, 구호를 외치자 / 노정태

-->이 글 정말 동의 한다.
정말 , 방송차는 없어지고 자유발언은 더 많아져야 한다. 토론이 필요하다.
대책위가 뭔가 해야 했다면 오프라인 아고라를 만드는 것이어야 했다.
정말, 이렇게 궁시렁 대면서 빌빌대지 말고 뭔가를 해야 하는데!!
오프라인 아고라 만들기
미친소에 갇힌 구호들 풀어놓기.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반대 구호도 좋지만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것은 단지 "그것들을 안하는것"인가 아님 그것 너머의 "무엇"인가를  확인해봐야 할때가 아닐까?  쥐를 잡자를 넘어서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어떤 가치를 원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공유해야 한다.
자유발언의 내용을 좀더 다양하게 ㅡ
구호를 낙서를 좀 더 레디컬하게 ,
6월 10일이 탈진하는 기점이 되지 않도록.
상상력이 필요하다. 관성이 아니라.




우리는 과연 이길 준비가 되어 있나/ 허지웅

'축제와 탈진'을 넘어/ xenga

촛불시위에 있는 것과 이끌어 내야 할 것 / 한윤형

폭력,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 공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6/09 16:48 2008/06/09 16:48

어제 집회 ..

from 너에게독백 2008/06/08 23:21
7-8 집회  겸  엠티  후  이것저것 아무렇게나 메모.

#
아래 포스팅한 "안전합니다" 전시에 다녀왔다.
가는 동안 불심검문 2회 당하고 제지당하고 ,
전시는 한 20분 정도 둘러봤는데 가는길이 험난했다.
블랙 코미디.
청와대 난생 처음 봤다.  으흠.



#
G8반대 고양이 페스티벌에도 갔다.
노래 연습좀 한다고 달라질거 없다는거 아는데.
그래도 기타는 좀 열심처서 나도 즐겁게 연주 하고 싶다.
멋지다.  그대들.
 


#
폭력 / 비폭력...
모르겠다.

전경버스를 밀어야 하나,
전경을 밀어야 하나.
그렇게 해서 청와대로 가면 우리는 뜻을 관철 시킬 수 있나.
서로 지도 해야 한다면 어떤 방향을 우리는 이야기 해야 하나.

청와대로 가는 길을 어떤 식으로든 열어야 한다.
라고 집중하는게 어떤 의미로 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제 조금 늦게 도착한 집회는,
나에게 또 이전과 달랐다.
시청 광장쪽으로는 장터 축제 엠티.
이순신 동상쪽으로 갈수록 매캐하고 긴장되고 지루한 싸움
그리고 그것을 중계해서 대형 화면으로 볼 수있게된 후미.
싸움을 관전한다.

왜 저들은 저기서 전경과 싸우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나.
저기로 가야 하나?
가면 무엇을 할수 있나?
그럼 여기서는 무엇을 할까?

그렇지만 폭력- 그게 대항폭력이든 뭐든 . 힘으로 힘을 막는것은 아닌거 같다.
힘으로 공격하는것도 아닌거 같다.
나는 그런 방식의 싸움은 하지 않겠다고 말할수 있을거 같다.
점점 확실해진다. 
예비군 논쟁을 겪으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다른 방식의 싸움이 필요하다.
모두가 함께 할수 있는거.
이 시위는 그런 것들을 계속 실험하고 발명해 냈다.
사람들의 재치넘치는 구호에서,
전경차나 지하철에서 만나는 낙서에서 ,
패션에서 , 피켓에서
자극을 받고 공감을 하는 순간..
너무 너무 좋다. 뭔가 배우고 얻고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걸 어찌 받아서 발산하지  못하는 체력? -_-

이제 똑같은 길목에서 전경과 싸우는 것 말고
다른길을 또 만들어야 하는게 아닐까.

방송차는 정말 해악이다.
사람들의 자율성을 마비시킨다.
어느 한곳만 바라보고 구호가 떨어지길 기다리도록 만들어버린다.
이전까지는 누구나 구호를 선창하고 주위사람들이 따라주면 점점 크게 갈수 있고
아니면 말고 였는데... 어제 내가 본 광경은 그게 아니었단 말이지..


그러나 저러나
뭔가 내 기술을 활용해서 할 일을 생각해 봤어야 하는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뭘 하면 좋을까?
어제 언니들 액션은 어땠나 궁금.




음 글 이따구로 계속 써도 되나.  자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흑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6/08 23:21 2008/06/08 23:21


이랜드 300일 블로그 액션 준비하면서 인연이 닿게된  분이 전시를 하고 있어요.
완전 멋있어요.  (사실은 이번달부터 다니게 된 화실에 스승님)

전시장이 삼청동 청와대가는 길이라는데 전시장 외벽에 이명박 마스크쓴 사진같은거 붙여놨더니 떼라 그러질 않나 전경차들이 이 게릴라전도 딱 가려 버리고 있답니다. 완전 멋지지 않아요?
집회 가시는 분들 살짜쿵 들려서 같이 게릴라 액숀좀 해보고 그럴까요?
아래는 전시소개 글입니다.


 


안전합니다.


촛불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린 여고생들과 예비군 아저씨들과, 유모차를 앞세운 주부들마저 거리로 나섰다. 기획자, 작가, 비평가로서 한 마디 보태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촛불을 통한 익명의 지지보다는, 미술인다운 분명한 방식이 당당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전시를 기획해 작품으로 발언하고 비평으로 증폭시키려는 의도가, 갤러리 특유의 패쇄적 공간에 갇힌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미술계 사람 ‘그들만의 잔치’로 그치지 않을까 꽤나 우려가 됐다. 하여 우리는, 청와대 진입로와 수평으로 놓인 인큐베이터의 입지적 특성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경찰병력에 차단돼 좀처럼 전달되지 않는 민심을 가득 담아, 극장 간판식 게릴라 전시를 강행하며 청와대를 정조준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게릴라전(展)은 정권의 참회가 있기 전까지 무기한 진행될 것이며, 뜻을 같이 하는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발언들로 연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도를 우리는 작가 연미의 작품 ‘국민여러분 안전합니다’와 함께 한다. 그는 신문 지상에 노출된 다양한 정치인들의 사진 위에 마스크, 방독면, 헬멧을 덧씌우는 작업을 하며, 그들의 가식과 이기주의와 보신주의에 대해 고발해 왔다. 또한 신문지 위의 리페인팅이라는 기법을 통해 보도 내용을 재조합함으로서, 일부 언론의 그릇된 보도행태와 권위주의를 희화해 왔다.


그가 보아온 신문은 진실을 거짓이라 말하고, 거짓을 진실로 말할 수도 있는 미확인 비행(非行) 물체다. 지구인의 상식으로는 좀처럼 감당할 수 없는, 그들만의 미스테리한 세계에 작가는 당최 적응할 수가 없다. 그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에 의하면, 미의회의 배후에 축산협회라는 압력단체가 있고, 그들을 음지에서 조정하는 건 한국의 양초제조업 협회일 것 같다. 또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여당 정치인들에게 L.A 갈비로 불법향응을 제공하도록 권유할 것도 같다.


하지만 그의 비판의 궁극적 대상은 바로 인간이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환경에 SRM(특정위험물질)적 존재가 바로 우리다. 태고부터 ‘소’라는 이름 없이 존재하고 진화해온 생명체에 ‘미친’이라는 수식어마저 부여한 게 인간이다. 또한 우리가 임의로 그들을 분류하며 30개월 이상이냐 미만이냐를 논할 때, 그 지점에 생명체로서의 존엄성이란 추호도 없다. 대형 마켓에 산적한 소비재 중 극히 일부로서, 말끔하게 포장된 고깃덩어리로서만 우리 곁에 존재할 뿐... 


따라서 작가 연미는 이번 촛불 시위를 계기로 지구인적 각성을 요구한다.

저지만이 다가 아니다. 저지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이 거부하면 또 다른 약소국에 미친소가 강요될 것이며, 판로가 확보되면 미친소를 낳는 시스템에 대한 최소한의 개선의지마저 사라진다.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지구인으로서 미국의 패권에 대해 연대해야 하고, 동등한 생명체로서 인간이 아닌 다른 종들에 대한 무분별한 학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우리 모두가 지탄하는 연미의 작품 속 인물과 다를 게 뭔가? 세상에 잠재된 위험 속에서 홀로 방독면을 쓴 채, 내가 안전하면 모두가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그를, 우리가 과연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따라서 작가는 이번 촛불시위가, ‘지구 생태계는 안전합니다’라는 대답을 이끌어낼 전지구적 단결의 첫 단추가 되기를 희망한다.


대한민국만으로는 부족하다!



   인큐베이터



연미_내용을 몰라서_신문지위에 아크릴_2008



연미_왠지 통할 것 같다_신문지위에 아크릴 후 디지털프린팅_2008


연미_공구자랑_신문지위에 아크릴_2008


재보도 Re-report

미시적인 개인사에서 거시적인 정치까지 일상의 정보를 채집, 편집, 가공하는 신문은 마치 객관적 사실을 수식어 없이 설명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신문은 일상의 사건, 사고를 취재하고 편집하고 인쇄하여 배부하는 전 과정에서 현실과 환타지를 교접함으로써, 독자들은 현미경으로 신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진실을 분간하기 힘들게 되었다. 정치면은 보도일자와 인물의 얼굴만 교체할 뿐 같은 내용의 무한반복을 보여주고, 광고는 현실 불가능한 이미지로만 꾸며지며 텔레비전 채널수와 증권시세, 스포츠 경기 순위등과 같은 의미 불명한 숫자만을 끝없이 나열한다. 그런 신문에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을까? 머릿기사만 읽고는 애완견 배설물받이로 쓰면 가장 유용할 신문으로, 현실을 재보도하는 작업을 인큐베이터의 1층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연미_cattle blue_혼합재료_2008



연미_cattle_혼합재료_2008



연미_cattle-top_혼합재료_2008


이미테이션 애니멀

도시인에게 동물이란 애완용과 식용으로 나뉜다. 애완용 동물은 인간의 공간에서 인간의 삶을 공유하고 식용의 동물은 포장되어 유통된다. 대량으로 포장된 고기들에 너무나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동물에게 생명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작업한 것이 이미테이션 애니멀이다.

조악한 동물인형은 그저 한덩어리의 플라스틱 이지만, 그 동물머리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움으로써 관람자는 감정이입을 하며 플라스틱인형이 아닌 관자와 동일한 생명체로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모두 가축사육장에 가서 끔찍한 환경을 직면할 수는 없지만, 인큐베이터의 자하 전시장에 놓인 저 작은 동물인형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연미


원문 : http://www.velvet.or.kr/inc/Incubator/Exhibition/Entries/2008/6/3_Entry_1.html
연미씨 블로그 :http://blog.naver.com/artyunmi

줄은 제가 친거고. 음 훌륭해요.
대한민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구인적 각성. 오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6/04 16:32 2008/06/04 16:32
누가 연행되었을때, 수사관이
"너도 아고라단체 회원이냐?" 라고 물어봐서 
"형사님, 한메일쓰세요?"
"응"
"그럼 형사님도 아고라당인데요." 라고 했다는 소리를 듣고 폭소했는데....


나에게도 그런 질문이. 크크크
"고...고아라? 고아라?( 긁적긁적) 회원이야?"
"네? 고아라요?(뭐여 이게?)..... 혹시 아고라?"
"아.. 아고라, **씨도 아고라 회원이냐?"
"다음 안쓰세요? 몰라요? 회원아닌사람이 거의 없을건데?"
"...."
"(어이, 이해는 하신거삼?)"

매뉴얼인지,
모든 수사관이 "아고라"와 연행자와의 관계를 묻더라. 푸흡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6/04 11:56 2008/06/04 11:56
 

진보넷 집들이를 일찍 마치고 어제 집회에 나갔다.
경찰 차벽으로 완전히 통제된 광화문 4거리. 무수한 사람들이 종각쪽에서 광화문쪽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들 돌아와서 광화문 우체국앞 대로에서 차벽을 앞에두고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놀거나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거나 차벽에 피켓을 장식하는 등 제각각 무언가를 하면서 거리를 점거하고 있었다. 두번째 달, 길바닥 평화행동 사람들..이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공감의 울림들은 기분좋게 퍼져나갔고 아주 즐거웠다.

잠시뒤, 경찰이 차벽 뒤에서 나타나 조여오기 시작했다.
이때 지난번 집회때 보다 훨씬 많이 등장한 예비군복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이 집회에서 항상들어서 거슬렸던 이쯤 되면 나오는 어김없는 외침,
 "여자분들 뒤로 빠져주세요. 위험합니다. 다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여자분들은 빠져주세요"

예비군들은 조직적으로 1조 2조 조도 나누어서 나왔나보다.
아무튼 그들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붙잡으면서 뒤로 나가란다.
아 , 이게 무슨 소리야. 순식간에 대오는 해산되고 있었다.
"여기 있으면 모두 연행됩니다. 그러면 내일은 누가 여기나옵니까?" 라는 소리를 지르면서
해산을 종용했다. 다*께가 없으니까 이제 예비군이냐.
경찰이 해산하라고 하면 바로 해산하려면 우리는 왜 거리를 점거했나.
아무튼 나는 거부하고 왜 당신들이 나가라 마라 하냐. 나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라고 한뒤 계속 있었다.  그러다 ,,, 경찰이 밀고 들어와 인도쪽으로 밀리게 되었는데, 갑자기 경찰이 사람을 밀고 때리고 있어서 "하지마! 그만해!"하면서 악다귀를 썼고. 그 와중에 어디선가 나타난 예비군 " 그만하세요. 흥분하지 마세요. 여자분 나가세요." 라고 하면서 내앞을 가로막고 나를 밀쳐 냈다.
너무 황당해서 "내가 알아서 해요. " 라고 했더니
다른 사람들
"언니, 흥분하지 마세요. 언니 보호할려고 하는거잖아요"
"누가 누굴 보호해요? 나는 내가 보호할수 있어요."
"흥분하지 마세요. 그러다 다른 사람이 다치니까 하는 말이에요. 당신때문에 누구 다치면 책임질수 있어요?"
"싸우지 마세요."
"고생하신 분들입니다. 보호하려고 그러는거에요."

나는 어쨌든 밖으로 들려 나왔고. 배제 당했다. 그 기분은 정말...
"난 갈래.자기 권력을 왜 저들에게 양도하는거야!"

분해서 눈물이 다났다.


왜 여기까지 나왔다고 생각하는거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려고 나왔는데 스스로의 힘을 강요에 의해 포기하고 뒷전으로 피해야하는거지? 여자라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 나를 딱 하나 "여자"라는 틀로만 가둬 버리면서!
난 누구의 도움도 안받겠다는 게 아닌데. 그건 내가 결정하고 내가 할일이며 서로 협의하고 공감하면서 해야 할일이라고 생각하는데..그런 기회조차 빼앗아 버리는 웃기는 짓이라는것 그것을 왜 모르는거지?


그러다 인도를 배회하면서 구경꾼이 되어버린 것을 참을수 없어서, 다시 인도 아래에 내려갔다. 사실 인도 바로 코 앞이라 뭐가 다를게 없지만 그것 나에게 큰 차이였다. 소모적으로 전경과 싸우러들어간것도 아니고 내 선택에 의해서 움직이고 싶었다. 누구에 의해서든 그게 전경이든 국가든 예비군이든 그 누구에게도 명령받지 않고 내가 서있고 싶은 곳에 서있기 위해서 나는 그 집회에 나간거였거든. 그 시간까지 소리 지르고 있었던거거든.

근데 또 전경들이 밀고 들어오면서 작은 실갱이가 생겼다. 그러다 왠 남자가 또 오병을 밀쳐내고 (오병은 전경이 밀어서 밀리지 않으려고 밀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아저씨 밀지 마세요" 하더니 내 옆에 섰다. 그러고는 하는 말 . " 여자분 나가세요." 그리고 승욱에게 " 남자분이시죠? 저랑 스크럼짭시다"  나를 사이에 두고 이딴 소리 하고 있다 , 나는 "그냥 저랑 짜요. 저 안나가요. 왜 나가라고 해요?" 라고 했더니 "버틸 수 있겠어요" 하면서 하는 수 없이 나랑 스크럼을 짜더라. 그러더니 전화때려주신다 "예, 여기 예비군 몇명 보내주세요"  뜨악.


예비군 - 군대 -국가 -남성 이들이 전경과 시민 사이에서 시민을 지휘하고 통제하도록 내버려 두는것은 결국 그틀에 들어가지 못하는 소수자들은  절대 스스로를 지키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저항할수 없음을 인정하는 꼴이된다.사실 이 집회 판에는 여러가지 배제의 정치가 슬슬 작동하고 있다. 여성, 장애인, 노인, 아이, 외국인, ....

예비군들의 협조로 집회는 해산되었고,사람들은 바로 옆의 청계천으로 갔다.
예비군들은 청계천에 모여 스스로의 행동에 자부심을 가지고 목소리들을 높이고 있었다.


30일 오후 5시 8분 추가
이부분은 팩트라기보다 어제 저의 (분함에 의한) 주관적 인식(객관적 인식이니 팩트가 존재하냐 안하냐는 떠나서)이라는 점에서 지웁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과 이야기 할것을 생각 하지 않고 썼기때문에.. 앞에서 부터 읽어보고 왜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을 비난이라고 볼까 하고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이 부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하고 좋은 논의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게 아닐까 하고 지우는 겁니다. 


이에 대해 어떤 대항 액션을 준비해야 할 거 같다.
그냥 나가서는 나는 집회를 즐길 수 없다.
뭘하면 좋을까? 재미있는거 생각해보자.

5월 30일 오후 7시 추가
어떤 분 블로그에 "유성"이라는 분이 덧글 남기신건데 퍼와서 붙여 놓습니다.
저도 "제 몸은 제가 지킨다" 라는 의미가 나혼자 할수 있다 도움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었음을 덧글에서 여러번 밝혔지만, 이미 덧글은 잘 보기도 힘들고, 뭐 원글에서 잘 전달될 만큼 풍부하게 이야기 된것은 아닌거 같아요. 아마도 제가 "제가 알아서 합니다"가 아니라 "아니요. 그냥 저는 여기서 함께 하고 싶습니다" 라고 다르게 말했다면 다를수도 있었겠죠. 예비군들의 진심문제랑은 다른겁니다.제가 그들의 진심을 폄훼하는것도 아니구요. 실제로 저것이 하나의 퍼포먼스가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보호, 사수-이 그들에게만 부과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순간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아무튼 유성이라는 분이 쓰신 덧글 퍼옴니다.

유성님 덧글
사수대의 역할은 경찰의 압력으로부터 집회 공간을 지켜내는 것이겠지요?

어 제 인도로 경찰이 밀고 들어올때 예비군 아저씨들은, 다른 사람들은 연행되지 않도록 자기들이 앞에서 시간을 벌테니 다른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빨리 빠지라고 화내면서 소리지르더군요. -_-; 별로 그 자리를 사수할 생각도 없던 사람들이 "보호"를 가장하여 정작 그 곳을 사수하고 싶었던 사람들을 밀어낸 겁니다. 결국 경찰은 10여명 되는 예비군 아저씨들 슬슬 밀어내면서 아주 손쉽게 인도를 점령했지요.

"완장"찬 사람 없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할 거 없이 달라 붙어 완강하게 우리의 공간을 지켜내려 저항했던 도로진출 첫날의 박력과 끈질김과는 극과 극의 대조였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은 이날 정말 애먹었죠. 이날의 사람들은 왜 그 공간을 그렇게나 완강하게 지키려고 했을까요?

사수대가 필요하냐 아니냐, 혹은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보다는 "어떤" 사수대고 "어떤" 폭력/비폭력이냐가 중요하다고 보이네요. 위계가 있는 공간보다, 평등하고 "서로 돌보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원문 주소 :http://blog.jinbo.net/commun/?pid=13



비슷한 취지의 글들 : 제글보다 좋은글들이니 읽어보시길.
촛불소녀를 지키는 예비군 오빠들?

[블러그 자유발언] 나를 보호하지 마십시오

예비군복과 국가안보

촛불집회의 예비군들이 이랬으면 좋겠다

시위가 뭔데?

보호라는 권력관계

촛불집회 예비군복 퍼포먼스에 반대합니다.

군복입고 집회나가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나는 오늘 군복입은 예비군들에게 제지당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30 14:32 2008/05/30 14:32

자발성과 조직

from 너에게독백 2008/05/29 12:43
대중의 흐름은 자기 조직화 되고 있고 자기 지도 하고 있는 중 아닌가.
왜 정치조직/ 대중이 이분법적으로 대립되고 있는건가.

난 정말 놀랐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자유발언을 하고 토론을 하는 것을 보면서.
늘상 그런것을 꿈꾼다고 했지만 실제로 꿈꿨는지 모를 정도로, 신기했는데.
그리고 그 앞에서 나는 말문이 열리지 않고 마음에서만 움쩍거리는것이 답답하고 슬펐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 너무 굳어버린거 같아서, 유연성, 다양한 얼굴들, 열기를 잃어버린것 같아서.
물론 다 마음에 꼭 맞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암튼 어떤 집회보다 즐거웠는데~

조금만 그냥 두면 우리는 스스로 길을 찾을거같다.
뭐 그냥 둬라 말아라 할것도 없이, 찾고 있다. 실패를 하던 말던.
꼭 어떤 목표와 성공지점을 고정시키지만 말아라.

지금 이상태 자체로 즐기면 될것!


운동권 - 시민 구도는 저들 권력자들 통치자들이 만든것.
그리고 그것은 탈법하는 저항하는 사람은 시민에서 분리시키겠다는 의도,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버린자들.지금도 조중동의 입을 빌려 거리에 나선 시위대와 (촛불든)시민으로  분리 시키고있다. 또 시민권을 박탈당하는 사람들 발생. 물론 그들은 자진해서 버리고 불복종을 택했다. 그 불복종이 다른 삶들을 다시 감동시키고 반응하게 하고 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디까지 인지는 제각각이겠지만, 이러한 경험에 사건에 속해 있었다는것 만으로도 사람들은 힘을 얻었을것이다. 그것만이 너무 아름답고 벅찬것.
몸에 눈에 귀에 각인된 자신의 자발성, 운명을 결정하는 힘, 반복하고 반복해서 움직이는 힘.
고시철회 협상무효 구호에 가두어지지 않고,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라고 까발리는 우리들. 와 멋진데! 자유란 바로 이런것.




그나저나 오늘은 고시해서 최대 인원이 모인다는데.. -_-
아놔 진보넷 집들인거 알았냐.. 엠비..
진보넷에서 밥먹고 막걸리 후딱 먹고 2차는 집회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29 12:43 2008/05/29 12:43
옥션 사태.
완전 큰사고라서 와 드디어 주민등록번호 없어지는건가 했는데, 금방 이슈가 쏙 들어가 버렸다.
행안부는 뭐 클린캠페인같은 같잖은거 가지고 생색내고 있고...
유출방지로만 문제가 쏠려서는 안된다. 근본적으로 이런 개인 식별 번호를 부착시키고 있다는것이 문제라는 것 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간단하게 유출 방지해야하니까 아이핀쓰면되고, 신용정보회사에 내 인증정보 조회해보면되고 (이게 클린캠페인이냐!),  비밀번호 바꾸면 되는게 아니잖아.

배너 달아주삼. 그리고 뭔가 해보자요.


배너 소스 1.


배너소스2: 내 블로그 우측 상단에 있는거 같은거.


저 소스를 진보블로그의 경우 메뉴관리화면에서 내가 만드는 메뉴 창에 복사해 넣으면 됨.
자세한 내용은 요기 참고



아래는 인권오름에 기고했던 글. 제목 또 바꿔봤다.
근데 매우 추상적이라. -_- 내가 하고 싶은말은 더 많았는데 , 
왜 이렇게 구체적인 서술에 떨어지는지..
사실 주민번호이야기만 하려고 한게 아니라, 신분증명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음


주민등록번호-변신을 허용하지 않는 주문

"넌 누구니?"
"난……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요.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여러 번 바뀐 것 같아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알아듣게 설명을 해!"
"설명할 수가 없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나는 내가 아닌걸요."

위 사진:루이스 캐럴의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넌 누구니?"라고 묻는 쐐기벌레와 앨리스.
루이스 캐럴의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부분. 앨리스가 이상한 약물을 먹고 커졌다 작아졌다가를 반복하다가 버섯 위에 앉아 있는 쐐기벌레를 만나 나눈 대화의 일부야. 앨리스는 왜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걸까? 넌 누구냐는 질문을 “나는 누구인가?”로 바꿔봐. 이건 정체성이나 본질을 묻는 질문 같지 않아? 사전을 찾아보면 정체성이란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되어있어. 영어로는 “identity”, 동일성, 본질, 신원, 독자성을 의미하지. 정리해보면 너는 누구냐는 것은 다른 사물들 혹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으로 구별되는 독자적인 존재로서의 너를 밝히라는 질문이야. 그건 “변하지 않는” “본질”, 그리고 자기“동일성”을 전제하지. 그러니 불과 몇 시간 사이에 키가 몇 미터가 되었다가 몇 십 센티미터가 되는 변화/변신의 경험을 한 앨리스는 불변하는 자신, 자기 동일성을 확신할 자신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습관적인 질문과 대답 - 너는 누구냐

우리는 앨리스보다 좀 더 나가서,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을 넘어서 그것이 확실한 정보인지까지 확인할 것을 요구받고는 하지. 만약 다시 쐐기벌레 씨가 “네가 누군지 증명해”라고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이 질문은 “신분증명”을 하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지. 신분(身分)이라는 말은 한자 뜻 그대로 보자면 몸을 구별한다는 뜻이니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자성 정체성을 요구하는 거야.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의미잖아. 이쯤해서 우리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혹은 학생증 혹은 여권을 내보이고 있지 않을까? “이것 봐요. 여기 제 이름이 이렇게 쓰여 있잖아요? 제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신분증이에요. 제 지문도 이렇게 찍혀 있답니다.”

아, 이건 앨리스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한 끝에 내놓은 저 대답에 비하면 얼마나 비루한지! 그렇지만, 이건 정말 일상적이고 습관적으로 “강제당하는”, 정해진 우리의 대답이야.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것은 국가/시스템이 도맡아서 해주고 있거든. 나와 당신은 끼어들 틈이 도무지 없어.

국가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나를 정보화해서 일련의 번호로 번역한 후 국가/시스템에 등록하지. 이 과정은 나의 정보가 국가/시스템에 단순 등록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국가/시스템이 허용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어떤 한 자리의 데이터 공간에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해. 등록의 순간 그때서야 나는 존재하게 되는 거야. 국가/시스템 안에 말이지. 국가/시스템에는 외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야. 그러므로 등록되지 않은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삶이 불가능해. 나의 자율성, 자립성은 이 시스템에서 이미 파괴되어있어. 내가 내 정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등록되고 유통되고 처분되는지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할 수 없고 개입도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내가 대답하기 전에 국가/시스템은 대답을 준비해놓았어

그리고 이 사회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국가/시스템를 소환해오지. 그리고 국가/시스템에게 물어. 이 자가 국가에 등록된 자입니까? 뭐라고 등록된 자죠? 그 대답은 번호로 나타나기도 하고 플라스틱 카드로 나타나기도 하지. 그리고는 죽을 때 까지 바꿀 수 없는 “불변의 정보”, 나의 고유성이자 정체성이라고 등록된 숫자를 확인해줘. “네, K씨는 *01*1*-2****** 랍니다”라고. 이 번호는 친절하게도 다른 누군가와 겹치는 일 없이 나에게만 부여된 번호고 그래서 다른 사람과 나를 확실히 구분해주지. 어머나, 나의 독자성이 이렇게 이미 ‘부여’되어 있었네. *0년 1*월 1*일생, 성별 2, 처음 등록한 지역은 **으로 검증되었음. 내가 구성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틀/기준”에 의해 수치화된 정보 그것이 내 정체성이 되고 나는 거기 서류철에 숫자로 고정 되는 거지. '정보(information) 즉, “in-form-ation”은 어떤 틀에 집어넣어 형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정보는 이미 있는 것의 기록이 아니라, 그 존재 외적으로 주어진 형식 속에서 매개되고 정리되는 내용'(유토피안 8호 "숨김과 드러냄" 중에서)이라고 얘기되기도 해.내 정체성은 국가/시스템이 선택한 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거지.

위 사진:박정희가 1968년 11월 21일 발급된 제1호 주민등록증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는 앨리스처럼 생각해 볼 기회도 없이, 나만의 독자성, 정체성이라는 것을 부여 받았어. 유일무이한 번호로. 역시 주민등록번호는 단순한 번호가 아니었어! 나의 독자성을 이렇게 쉽게 증명해주다니! 나와 너를 이렇게 쉽게 구분해주다니! 근데 이상하지 않아? 우리 모두 번호라는 게. 결국 모두 똑같아지는 거 아닌가? 무수한 번호들. 번호들 사이의 차이를 발견했어? 나이의 차이? 성별의 차이? 국가가 만들어준 정체성의 형식은 동일해. 13자리 숫자 그 안의 값의 미세한 차이가 존재할 뿐이야. 그것은 차이가 아니지. 동일성이라고 불러야 마땅해. 우리는 모두 똑같아져 버렸어. 무수한 차이들은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지. 그 자리를 그냥 다른 번호/존재가 대체해도 아무런 상관없지. 고유하고 유일한 번호들로 우리는 좀 더 획일화되고 통제되고 있는 것 아닐까?

‘살아있음’은 플라스틱 카드의 숫자로 굳어버렸어

그 정체성이라는 것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아. 내 신체 정보들은 태어나자마자 고정되어 버렸어. 성별 정보는 끔찍하게 폭력적이야. 나는 여자일까 남자일까 혹은 다른 무엇일까. 나를 탐구해 볼 시간도 없이, 변화/변신할 가능성도 배제당한 채 다수의 기준인 여/남의 구분법 안으로 집어넣어졌어. 정보의 형틀 안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나. 표준이 아닌 것들은 탈락되거나 그냥 그 안으로 우겨 넣어짐으로써 죽은 것이 되어버려. 차이들이 사멸되거나 고정되는 거지. 그것이 바로 통제의 핵심인 것 같아. 보편적인 기준 안으로 들이거나 내치거나 하는 것. 그리고 이런 정보들과 나와의 개연성을 좀 더 부여하기 위해서 이 국가/시스템은 지문정보까지 채집했어. 관념적 정보가 아니라 구체적 물질성까지 획득한 거야. 종신고유번호 - 물질적/육체적 고유 정보의 결합으로 완성도 높은 낙인이 되었지. 나는 국가/시스템 안에 종속된 무엇, 그리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무엇으로 내 존재와 분리 되어버렸어.

국가가 발행한 플라스틱 카드에 박힌 13개의 숫자 앞에서 나의 구체성들, 존재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려. 시스템이 누구냐고 물을 때 그것은 내 삶의 구체적인 서사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특정 기준에서 결함 없는 존재인가 혹은 결함 있는 존재인가를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일 뿐이야. 즉 그는 표준이라는 것에 어긋나는 사람인가 부합하는 사람인가, 혹은 미래에 범죄를 저지를 위험인물인가 아닌가, 혹은 미래에 그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그를 추적하기 위한 값을 받아 놓는 것뿐이잖아.

시스템 밖을 상상해야 할 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존재하면서부터-자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힘을 국가 혹은 시스템에게 빼앗겼어. 변화/변신을 전제하지 않는 존재론 그 자체에 기반을 둔 것이 신분증명이 아닐까? 시스템 밖에서 살 수 있는 삶, 다른 삶을 구성할 힘은 태어남과 동시에 시스템에 속박되어버렸어. 이미 프로그래밍 된 삶의 틀 속에 있는 거지. 신분증명의 문제는 시스템의 핵심에 닿아있어.

옥션 해킹 사고로 이 나라 인구의 4분의 1인 1081만 명의 주민등록정보가 유출 되었다고 해. 주민등록번호는 유일한, 죽을 때까지 안 바뀌는 종신형!이라 한번 유출된 정보는 평생 공개된 것으로 봐야지. 그렇지만 국가/시스템은 이 문제의 핵심인 주민등록번호/주민등록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비껴나가고 있어. 주민등록번호가 대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다시 나오고 있는데 말이야. 주민등록번호를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문제인지 그들도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 주민등록번호가 대량으로 유출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량으로 자신의 살아있음을 잃어버린 게 문제 아닐까?

이 문제는 시스템의 붕괴, 적어도 시스템 밖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우리에게 돌려줄 자그마한 힌트가 되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봐. 물론 상황이 이 정도까지 왔는데도 침묵하고 자신의 존재를 구출하지 않는다면 시스템의 붕괴는 헛된 망상이겠지만 말이야.


*원문보기

뭔가 실수로 주석이 빠져있었다.  괄호로 인용한 부분 표기했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22 19:50 2008/05/22 19:50
이름을 바꾸고 싶다.
달군이라는 이름 너무 오래 써서 , 재미가 없다.
실명 같이 되어버렸고 말이야.

다른 이름 생각해봤는데 , 좋은게 딱히 없다. 이름 바꿀수 있을까..


복수 :
복수라는 이름 좋은데,  그리고 고복수(네멋에서 양동근이 했던 역할)도 좋고.  사람들이 안불러 줄거 같아서 ...

삼 :
3이라는 숫자도 좋고. 그냥 삼이라는 발음도 좋고.

간다:
~에 간다,

에이 다 그렇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14 15:32 2008/05/14 15:32
얼마전에는 이랜드 투쟁 300일 이었고, 오늘은 KTX 투쟁 800일 이고 5월 20일은 기륭 투쟁 1000일이다. 300일이면 1년이고, 800일이면 2년이 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1000일이면 3년이 다되어간다는 이야기다. 정말 긴시간들





 

① "5월 20일" 기륭 1000일 집중투쟁(1박 2일)에 힘을 모아 주십시오.

② 1000인 지지 선언과 공동투쟁 주간에 함께 해 주십시오.

③ 조합비 5000원을 내주시면 비정규철폐 촛불탑에 촛불을 꽂아 드립니다.

5.14  서울 남부지역 시민사회단체 비정규직 철폐 선언
           노동운동 선배님들과의 만남(70민노회)

5.15  1000일 위로 연대의 자리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유가협, 추모연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농민회 자매결연식(전농)

5.16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인권보고대회 및 지식인 행동(인권단체연석회의 /
           민교협 / 민변 / 비정규여성투쟁사업장)

5.17 기륭전자분회 1000일 투쟁 승리! 여성노동권 쟁취를 위한 선언자대회(3시)
           비정규직 철폐 문화예술인 연대의 밤(천막미술관 및 비정규철폐기원탑 개관식)

5.18  광주민중항쟁 참여

5.19  범종교계 비정규노동철폐 염원 합동 기도회(6시. 천주교, 기독교, 불교, 원불교)

[모두 집중] 5.20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1000일(기륭주최 : 1박 2일)
                                투쟁승리대회 (금속노조)

5.21  열사정신계승, 비정규직 1000일 투쟁 승리를 위한 해방문화제
           (제12회 서울남부지역 노동열사문화제) 

5.14-21 비정규철폐 공단 거리문화제(남부문예연대)

 

기륭비정규직 1000일 투쟁 연대기금마련 미술전(6월중)
주관 : 민족미술인협회, 문화연대

 

* 5월 14일부터 21일까지 매일 기륭 정문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립니다.

* 진행 과정에서 약간의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철의노동자1 / 기륭전자비정규노동자들이야기 (민중의소리)  

    

2. 2005년 10월 17일 공권력 투입 당시 (참세상)  

3. 1년짜리 파견노동자의 현실 (참세상)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불법파견산업단지?

(참세상) 
최저임금 실현과 불법파견 근절을 위한 서울남부공대위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인력공급업체를 통한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30일 오전 관악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을 냈다.
이들에 따르면, 신규채용 여성 생산직의 경우 70%가 불법파견 노동자다.
(기륭전자의 경우 근 3년간 99%)

 

사랑의 열매를 맺은 기륭 투쟁 500일
노동자 연대의 힘으로 2007년을 여는 기륭전자노동자

(참세상) 
돼지 해, 그것도 황금돼지의 해. 새해를 맞이하며 희망이라는 말을 자신의 가슴 속에 한번쯤 새겼으리라. 오늘 남다른 황금돼지를 꿈꾸며 새해를 맞이한 이들을 만났다.
지난 1월 12일, 몹시도 추운 날. 손이 꽁꽁 언 날. 1월 5일로 투쟁 500일을 맞이했다는 기륭전자노동자를 만났다. 500일 투쟁 결의대회 현수막을 마주하자 마음마저 꽁꽁 언다.

 

"병원에 실려 가든 죽어나가든, ‘오기’로 가는 겁니다"
[인터뷰] 무기한 단식 선택한 기륭전자분회 강화숙 부분회장

(민중의 소리 )
서울디지털산업단지 한 쪽 귀퉁이에 자리한 기륭전자.
지금으로부터 1년 전 50일을 넘기는 공장 점거농성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질 당시 기륭전자는 굳게 닫힌 철문과 철조망, 용역경비의 폭력으로 유명세를 치러야만 했다.
기륭전자가 유명세를 타게끔 만든 장본인은 바로 기륭전자분회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문자메세지로 보내진 비인간적 해고통보에 이들은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하고 노동자임을 선언했다.

 

물대포·소화기 뚫고 공장으로 들어가다
12일 기륭전자 투쟁승리 결의대회…조합원 13명 집단단식 돌입

(레디앙)
피눈물을 토하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이 소화기와 물대포의 아수라장을 뚫고 꿈에 그리던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쫓겨난 지 1년만의 일이었다. 12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구로구 기륭전자 앞에서 열린 기륭전자 투쟁승리 금속노동자대회에 참가한 500여명의 노동자들은 좁은 공장 앞 길목을 가득 메웠다. 비정규직의 설움은 비정규직이 안다고 했다. 이날 집회에는 하이닉스매그나칩과 KTX에서 쫓겨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함께 했다.

 

"내 머리, 내가 깎고 울었다. 하지만 내일은 아니다"
기륭분회 김소연 분회장, 강한 투쟁과 연대 부탁하며 '삭발' 

(민중의 소리 )
머리깎는 기계를 든 그녀는 동료의 머리를 잡고는 눈물을 흘렸다. 삭발을 위해 앉아있는 동료는 담담한 얼굴로 빨리 자르라고 재촉했지만 흐르는 눈물이 그치진 않았다.
결국 동료는 다른 이를 불렀지만 그녀는 한사코 자신이 하겠다며 손사레를 쳤다. 울음이 나온다고 다른 이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앉아있던 동료는 구호를 외쳤다. "투쟁을 오래하다 보니 다들 마음이 많이 약해졌다"는 설명과 함께.

 더 많은 사진 보기

 

 

 

 

 

 

 

 

 

 

 

 

 

 

 

 더 많은 사진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09 12:24 2008/05/09 12:24

현실적 감각

from 너에게독백 2008/04/30 13:28
이 오인과 몰각에는 운동에 대해 통상적으로 퍼져있는 '현실적 감각'도 한 몫 한다. 운동이 자신의 성과를 얻어낼 곳이라고는 현실적으로 법률적 공간 외에 없다는 감각이다. 이 감각에 의하면, 개인의 자율성은 자신의 강화라는 맥락에서가 아니라, 행정적 권력의 규모의 제한에 의해 상대적으로만 가능해지는 것, 즉 결과로서만 주어지는 것이다. 자율성이 결과로 주어질 때, 그 결과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은 법률의 제정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 법률적 체계의 형성을 위해 시민적 '운동'을 요구하더라도 마찬가진데, 시민적 운동이란 그 자체의 자율성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법률 체계의 수정 혹은 형성이라는 목적에 대한 하나의 유력한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합리적 법률 체계 속에서 개인은 안정적으로 자신의 자율성을 보호 받을 것이다. 그러나 주체가 아니라, 정보의 산출에서 와 마찬가지로, 대상으로서 말이다. 이러한 구도에 따른다면, 개인은 자신이 요구하는 바 내용 뿐만아니라, 그 요구를 관철시키는 방식에 있어서도 숨겨지고 만다. 이러한 사태는 운동 자체의 정치적 생명력에 있어서 치명적이다.



찝집하고 고민되고 이상했던 그 느낌을 이렇게 풀어주니 시원하다해야 할까.

누가썼는지는 모르겠고,
지음이 복사해준 U topian 제 8호 <숨김과 드러냄>이라는 문서 중에서 옮겨왔다.
이 외에도 옮겨오고 싶은 문장이 꽤 있지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4/30 13:28 2008/04/30 1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