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1/03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8호> 핵 폐기! 자본주의 폐기!

핵 폐기! 자본주의 폐기!

 

자본의 이윤논리가 자연재해보다 지독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핵없는 미래는
자본주의를 폐기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보이지도 않는 ‘죽음의 재’와 죽음의 공포가 지구를 뒤덮고 있다. 쓰나미가 덮친 이후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었고, 전 세계는 체르노빌 이상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각국은 일본에 있던 지진 복구 구조대는 물론 자국 국민을 소개시켰고, 대사관마저 폐쇄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죽음의 카르텔, 핵발전소
지진이 빈발하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내진설계가 잘 되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하던 일본원전이었지만 쓰나미에 속수무책이었으며, 강력한 쓰나미에 대응하는 시나리오는 아예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일본정부와 원전운영자인 동경전력은 진실을 숨기는 데 급급하여,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초동대응에 실패했다. 원전을 운영하고 있던 각국 정부와 전 세계 원전자본 카르텔 역시 죽음의 침묵에 동조해왔으며, 통제불능의 상태에 이르러서야 자국 국민을 소개시키는데 그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공포는 원자력발전소를 저탄소 청정에너지원으로 둔갑시켰고 한국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미화되었다. 일본 원전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던 GE의 노동자가 이미 그 불완전함을 지적한 바 있으며, 2002년 일본원전의 내부 균열을 폭로하던 노동자는 직장에서 쫓겨났다. 더구나 비용절감을 위해 수명이 다한 원전을 계속 가동한 결과는 단지 일본만이 아니라 지구적 재앙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처럼 수명이 다한 고리 원전 1호기가 버젓이 가동되고 있고 월성 1호기는 수명연장을 계획하고 있다.
원전기술의 불완전, 불안정함은 세계 원전자본 카르텔에 의해 묵살되었다. 지금 일본원전 폭발에서 노심용해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용 후 핵연료’ 즉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문제는 전 세계 어느 국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단층이 가장 발달해 있어 지진에 가장 취약하다는 경주지역이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확정된 바 있으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조차 불안정성을 얘기하고 있다.
지금 폭발이 진행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일본의 재무장, 핵개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그 역시 묵살되었다. 핵폭탄은 고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으로 제조되기 때문에 경수로의 연료인 농축우라늄을 만드는 농축기술과 경수로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기술은 그대로 핵폭탄 제조기술로 연결된다. 이처럼 원자력이 지닌 기술의 양면성은 원자력 발전을 사용하고 미화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다.
위험은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죽음의 재가 피어올라도 원전을 살리기 위한 얄팍한 속셈은 초기 대응을 무력화시켰다. 일본정부와 전 세계 원전자본의 침묵 속에서 희생되는 자들은 ‘영웅’이란 찬사 아래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음으로 다가갈 죄 없는 노동자와 자위대 군인들이며, 이는 1986년 체르노빌사태 때도 그러했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에도 31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이후 타임즈는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했는데 대를 이어 계속되는 피폭의 후과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의 몫이며 이는 지금 일본 원전폭발에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의 재’, 방사능 물질은 이미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에 다달았고 그 공포는 오염치료제뿐만 아니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한 사재기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체르노빌원전 폭발 당시에도 안전하다고 떠벌리던 일본원전이 폭발하는 이 시점에, 아랍에미리트 원전 기공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원자력발전소 안전성 측면에서 한국 원전이 최고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죽음의 재가 하늘로 피어올라도 편서풍에 기대어 안전하다고만 노래부르며,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한 그날 죽음의 공포를 UAE에 팔아넘기며 이를 치적으로 자랑하고 있고 도지사 선거에서는 원전건설을 공약으로까지 내놓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한국은 원전 21기가 가동 중이고, 2024년까지 국내 원전 13기 추가건설, 80기 수출을 예정하고 있다.
핵폐기, 지금부터 시작하자!
건설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위험하다는 이유로 원전과 관련한 모든 정보는 격납용기 안에 갇혀버린다. 그러나 일본 원전폭발사고는 단순히 정보의 공개나 기술적인 수준에서의 원자력 발전소 유지, 운영, 건설에 반대함을 넘어서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인류를 절멸시키는 핵 없는 세상을 위해 그러하지만, 동시에 저탄소 청정에너지로 둔갑한 원자력 신화가 계속되는 한 신재생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태양광,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에 의존하는 노력을 다함으로써 기후변화를 넘는 실마리를 찾아나가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기후변화를 포함한 생태위기는, 생태위기를 유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 세대에게 핵 없는 미래를 열어내고 지구와 지속가능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폐기함으로써 가능한 유일한 길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이종회

 

핵없는 미래는 자본주의를 폐기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보이지도 않는 ‘죽음의 재’와 죽음의 공포가 지구를 뒤덮고 있다. 쓰나미가 덮친 이후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었고, 전 세계는 체르노빌 이상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각국은 일본에 있던 지진 복구 구조대는 물론 자국 국민을 소개시켰고, 대사관마저 폐쇄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죽음의 카르텔, 핵발전소

지진이 빈발하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내진설계가 잘 되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하던 일본원전이었지만 쓰나미에 속수무책이었으며, 강력한 쓰나미에 대응하는 시나리오는 아예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일본정부와 원전운영자인 동경전력은 진실을 숨기는 데 급급하여,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초동대응에 실패했다. 원전을 운영하고 있던 각국 정부와 전 세계 원전자본 카르텔 역시 죽음의 침묵에 동조해왔으며, 통제불능의 상태에 이르러서야 자국 국민을 소개시키는데 그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공포는 원자력발전소를 저탄소 청정에너지원으로 둔갑시켰고 한국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미화되었다. 일본 원전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던 GE의 노동자가 이미 그 불완전함을 지적한 바 있으며, 2002년 일본원전의 내부 균열을 폭로하던 노동자는 직장에서 쫓겨났다. 더구나 비용절감을 위해 수명이 다한 원전을 계속 가동한 결과는 단지 일본만이 아니라 지구적 재앙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처럼 수명이 다한 고리 원전 1호기가 버젓이 가동되고 있고 월성 1호기는 수명연장을 계획하고 있다.
원전기술의 불완전, 불안정함은 세계 원전자본 카르텔에 의해 묵살되었다. 지금 일본원전 폭발에서 노심용해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용 후 핵연료’ 즉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문제는 전 세계 어느 국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단층이 가장 발달해 있어 지진에 가장 취약하다는 경주지역이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확정된 바 있으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조차 불안정성을 얘기하고 있다.
 
지금 폭발이 진행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일본의 재무장, 핵개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그 역시 묵살되었다. 핵폭탄은 고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으로 제조되기 때문에 경수로의 연료인 농축우라늄을 만드는 농축기술과 경수로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기술은 그대로 핵폭탄 제조기술로 연결된다. 이처럼 원자력이 지닌 기술의 양면성은 원자력 발전을 사용하고 미화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다.
 

위험은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죽음의 재가 피어올라도 원전을 살리기 위한 얄팍한 속셈은 초기 대응을 무력화시켰다. 일본정부와 전 세계 원전자본의 침묵 속에서 희생되는 자들은 ‘영웅’이란 찬사 아래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음으로 다가갈 죄 없는 노동자와 자위대 군인들이며, 이는 1986년 체르노빌사태 때도 그러했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에도 31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이후 타임즈는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했는데 대를 이어 계속되는 피폭의 후과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의 몫이며 이는 지금 일본 원전폭발에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의 재’, 방사능 물질은 이미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에 다달았고 그 공포는 오염치료제뿐만 아니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한 사재기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체르노빌원전 폭발 당시에도 안전하다고 떠벌리던 일본원전이 폭발하는 이 시점에, 아랍에미리트 원전 기공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원자력발전소 안전성 측면에서 한국 원전이 최고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죽음의 재가 하늘로 피어올라도 편서풍에 기대어 안전하다고만 노래부르며,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한 그날 죽음의 공포를 UAE에 팔아넘기며 이를 치적으로 자랑하고 있고 도지사 선거에서는 원전건설을 공약으로까지 내놓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한국은 원전 21기가 가동 중이고, 2024년까지 국내 원전 13기 추가건설, 80기 수출을 예정하고 있다.
 

핵폐기, 지금부터 시작하자!

건설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위험하다는 이유로 원전과 관련한 모든 정보는 격납용기 안에 갇혀버린다. 그러나 일본 원전폭발사고는 단순히 정보의 공개나 기술적인 수준에서의 원자력 발전소 유지, 운영, 건설에 반대함을 넘어서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인류를 절멸시키는 핵 없는 세상을 위해 그러하지만, 동시에 저탄소 청정에너지로 둔갑한 원자력 신화가 계속되는 한 신재생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태양광,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에 의존하는 노력을 다함으로써 기후변화를 넘는 실마리를 찾아나가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기후변화를 포함한 생태위기는, 생태위기를 유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 세대에게 핵 없는 미래를 열어내고 지구와 지속가능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폐기함으로써 가능한 유일한 길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이종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8호> 리비아의 내전

[편집자 주] 제국주의 군대가 개입함으로써 리비아 내전이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고, 각국의 태도 역시 다양하다. 사노위 내에서도 리비아 내전에 대해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를 가지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이러한 시각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전, 카다피와 제국주의의 본질을 폭로하다

오디세이 새벽(Odyssey Dawn)

제국주의 연합군은 리비아를 공습했다. 리비아의 새벽은 피로 물들었다. 미국은 이라크나 파키스탄에서처럼 민중을 피로 물들이면서도 자신들 또한 수렁에 빠졌던 악몽과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를 떠올리며 개입을 망설였다. 그들이 한편으로는 ‘중동의 미친 개’ 카다피를 비난하면서도 혁명이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 리비아의 석유로부터 뿜어져 나올 오일 머니를 잃을지도 몰라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였다. 이 동안 리비아의 반란군들은 생사를 거듭 다투고 있었다. 혁명이냐, 반혁명이냐! 그런데 서방 제국주의 나라들에서는 그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것은 분명했다. 따라서 그들의 “인도주의적 개입”은 두말할 것 없이 명백히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서방 제국주의는 방공망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결국 지상군을 투입하여 리비아를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공격은 카다피로 하여금 서방의 “식민주의 형태”를 비난하는 것을 정당화하면서 더욱 잔인하게 혁명을 고무하기보다 질식시켜버릴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제사회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즉각 취하라”는 최근 진보신당의 논평은 리비아 민중과의 혁명적 연대가 아니라 피로 물든 제국주의에 리비아의 운명을 내놓아도 좋다는 참으로 ‘위험한’ 견해이다.
 

혁명과 내전

이처럼 리비아혁명이 카다피의 친위대와 용병은 물론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전투기 그리고 군홧발에 짓눌려 질식당할 위기에 놓여 있지만 이는 혁명의 교과서가 되었다. 이는 혁명이 과연 어떠한 길로 나아가게 될지를 예시해준다. 40여년 독재체제에서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리비아민중의 대단결을 성취해냈다. 부족들 사이 ‘복잡한’ 분쟁 정도로 축소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착각과 달리 혁명이 진전될수록 “부족주의”라는 분열 또한 대중 자신의 힘으로 끝장내기 위해 나아갔다. 이러한 성취를 바탕으로 혁명이 승리한 지역들에서는 투쟁의 지도기관이자 미래 정부의 맹아들이 태어났다. 그 곳에서는 사회주의적 변혁을 향한 조치들이 취해지기도 했다. 이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왕정’이나 오랜 독재체제 아래서도 민주적 과제의 완수만이 아니라 사회주의로의 연속혁명이 그리고 혁명적 이행을 위한 요구들이 올바른 변혁의 길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혁명은 계급투쟁의 발전과 격화가 계급간의 전쟁 곧 내전으로 필연코 나아간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혁명이 그리고 참여자들이 살아남고 온전히 승리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비폭력 무저항과 평화적 이행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주었다.
 
세계 노동자들은 서방 제국주의의 “인도주의” 가면 뒤에 숨겨진 위선들이 가차 없이 발가벗겨졌고, 쿠바의 카스트로나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와 같은 가짜(fake) 사회주의 나라에서 오히려 독재자를 옹호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이들 체제에 대한 그 어떤 방어논리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혁명이 생사를 다투는 상황에서 카다피와 같은 독재자를 ‘친구’로서 옹호하는 체제는 노동자계급의 것이 아니다.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 그리고 중동의 여러 나라들에서의 혁명과 반란, 최근 미국 위스콘신에서 공공 노동자들의 투쟁은 지금이 진정 혁명적 이행의 시대임을 보여주고 있다. 혁명의 현실성은 살아 있다. 이제 우리가 그것을 단단히 부여잡고 전진해나갈 때이다! 리비아혁명 만세!
김해기
 

 

제국주의에 맞서 리비아를 방어하자!

 
제국주의의 군사적 개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그러했듯이, 항상 이들의 명분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인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무시하지 않지만, 이에 앞서 제국주의를 패퇴시키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설사 악마와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내전에서의 각 세력들

부르주아 언론들은 리비아에서의 각 세력들간의 각축을 카다피 진영과 반카다피 진영으로 양분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이렇게 구분선을 설정하는 것이 리비아, 그리고 리비아를 주시하는 세계의 인민들을 기만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선/악의 대결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일단 이 대결의 한 축에 제국주의 세력과 이들의 후원을 받는 왕정 복고 세력, 한때 카다피 정권의 일원이었던 각료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공식 언론들에 의해서, 그리고 혼돈에 빠진 인민들에 의해서 카다피 독재에 대항하는 투사로, 반정부군의 지도부로 추앙되고 있다.
 
그 반대편 진영에 반제투사(?) 카다피 일가와 그의 용병단이 있다. 카다피는 나세르로부터 영감을 얻어 자국의 왕정을 타도하고 제국주의 자본을 몰수하는 등 반제·반봉건 개혁을 추진하였다. 카다피는 자신의 선배로부터 “사회주의” 수사를 사용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나 나세르의 이집트가 결국 자본주의 국가였듯이, 카다피의 리비아 역시 자본주의 국가였다. 그나마 이루어진 반제국주의적 조치들도 다시 제국주의에 뒷문을 열어줌으로써 퇴색되었다. 리비아 인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무기들은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들여온 것이다.
 
그리고 리비아의 노동자 계급이 있다. 내전의 와중에서 리비아의 노동자 계급은 놀라운 대담함, 전투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노동자 계급이 리비아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노동계급의 전위당이 혁명강령으로 노동자 계급을 정치적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그러나 리비아의 노동자들에게 이것의 결여로 말미암아 상당 수준 달성한 물리적 무장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정체되어 있으며, 이는 상당수 대중들이 제국주의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는 것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제국주의 개입을 분쇄하고, 노동자 혁명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제국주의 군대의 리비아 무력 침공에 대해 우리는 명확하게 리비아를 방어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이것은 살인귀 카다피와 일시적으로 제휴해야 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는 제국주의 개입을 지지하는 진보신당의 개량주의자들을 규탄한다.
 
그러나 우리는 카다피를 진정한 반제투사로 추앙할 생각도 없다. 민노당의 스탈린주의자들은 카다피를 미제에 맞서는 투사로 추켜세우지만, 카다피는 제국주의에 투항하는 노선을 꾸준히 실행해왔으며, 리비아에서 포성이 멎고 나면 언제라도 제국주의의 품에 안길 것이다. 리비아 노동자 계급은 제국주의를 패퇴시키고, 카다피마저 타도하는 것을 통해서 진정으로 제국주의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투쟁으로 수립된 리비아 노동자 국가는 중동/북아프리카 사회주의 연방의 첫 걸음이 될 것이고, 지중해 연안 유럽을 뒤흔들 것이다. 제국주의 군대에 패배를! 노동자 혁명으로 제국주의 사슬을 영구적으로 끊어내자!
이원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8호> 대중교통의 사회화를 위한 버스 완전공영제를 즉각 실현하자!

대중교통의 사회화를 위한

 

버스 완전공영제를 즉각 실현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가 자본주의를 효율적이라고 하는가? - 버스 노동자 파업과 완전공영제

전북 버스파업은 많은 것을 드러냈다. 외부 감사보고서 한 장 없는 버스자본에 대한 연간 150억원이 넘는 재정투입, 자본?어용노조?국가의 상상을 초월하는 유착관계! 썩을 대로 썩은 대중교통운영체제에 대한 우리의 요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버스자본가들의 사업권 환수와 노동자민중의 대중교통 통제에 기반한 완전공영제를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주장에 대해 당장 ‘완전’공영제는 어려우니 ‘준’공영제를 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준공영제 하에서 소유권은 버스자본에게 있고 임금 등 소요재정은 국가가 부담하여 자본가의 절대이윤까지 보장한다. 이렇듯 ‘준’공영제는 공공성과 아무 상관도 없다. 더군다나 전북은 이미 엄청난 보조금을 지급받고 있으며 그 금액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미 ‘준준’공영제 쯤 된다.
 
재정지원을 제외하면, 전북의 모든 버스업체는 적자로 보고된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버스요금으로 들어오는 현금수입을 착복하고 있으며, 재정지원 근거인 운송원가는 제멋대로 산정된다. 무급승무정지 등 일상화된 징계, 광범한 비정규직 사용, 사고비용전가, 재생부품 사용, 유류사용금액 과다책정 등으로 원가를 부풀리고 있다. 운송원가의 약 50%를 차지하는 인건비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정년이 지난 기사들을 1년 단위로 사용하는 촉탁직 및 한시계약직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으며 이들은 상여금, 연차수당 및 근속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운송원가에 이들은 모두 ‘정규직’으로 계산된다. 썩어도 너무 썩었다. 잔인한 노동탄압, 엄청난 재정지원, 썩어빠진 경영, 국가와의 노골적 유착! 온갖 더러운 방법으로 배가 터져라 이윤을 착복하고 있는 버스자본의 사업권을 보장해야 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통제 하에 완전공영제를 실현하자!

완전공영제의 첫 번째 단계로, 우리는 버스자본가의 버스 소유권과 면허권을 무상으로 환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버스파업으로 시청, 도청, 노동부를 비롯한 국가기관과 자본가들의 노골적 유착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았는가? 직접적 서비스 생산자인 버스노동자, 이용자인 시민이 운영을 주도해야 한다.
백해무익함이 증명된 버스자본가들 대신 대중교통 서비스 생산자인 노동자, 서비스 소비자인 시민이 함께 ‘대중교통관리위원회’를 구성하자. 이를 통해 버스운영을 통제하고, 인간적인 노동에 기반한 교통체제를 운영하자. 운영 및 통제의 권한을 생산자인 노동자와 소비자인 시민에게 이양하고, ‘대중교통의 사회화’에 대한 요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껏 버스자본가가 착복한 엄청난 지원금을 감안하면, 더 많은 버스노동자를 고용해 하루 16시간에 이르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도, 교통약자들을 위해 버스노선을 증편하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다. 대중교통관리위원회를 통해 교통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야 하며, 버스노동자의 인간적인 노동, 편리한 운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영버스의 기능 또한 규정되어야 한다.
 
4개월째 진행 중인 전북의 버스파업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극명히 드러냈다. 이미 완전공영제는 전북버스파업이 만들어낸 사회적 요구가 되었다. 그것의 방법과 경로를 더욱 구체화시키자. 자본가와 국가의 추악한 본질과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생산을 통제해야 한다!
이삼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8호> 무엇을 위한 상설연대체인가

무엇을 위한 상설연대체인가

 

민주당에 연연하는 연대체는 노동자계급에게 필요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월 17일 오전에 출범하기로 했던 상설연대체 준비위 ‘민중의 힘’이 출범을 연기하였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는 건설 논의를 함께 해온 노동전선, 사회진보연대, 사회당, 다함께 등의 8개 단체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안을 제출하였는데, 이 안은 논란이 됐던 민주당과의 연대 연합 문제를 명확히 문구로 정리하자는 것이다. 평통사가 제출한 수정안은 기존에 운영 원칙으로 정한 ‘신자유주의 세력과는 계급연대를 하지 않는다’를 ‘민주당 등 신자유주의 세력과는 계급연합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당 관련 문구를 넣은 것이다.
 
과거 ‘민중연대’ 이후 상설공투체의 기치를 들고 출범한 진보연대는 하나의 단체 이상의 위상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명실상부하게 투쟁연대 전선의 중심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 주요한 이유는 당시 민족운동 진영의 패권적 담합에 반발하는 좌파 단체가 이탈하였기 때문이며, 실천 역시 상설 연대체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시금 제기되는 상설연대체 논의는 과거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이러함에도 민족운동 진영은 민주당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명실상부한 전국적 상설연대체를 만드는 데 스스로 걸림돌을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패악은 이미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이에 맞서는 전선에 본질적으로 이명박 정부와 다를 바 없는 민주당과의 연대, 연합을 열어놓는 것은 상설연대체를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세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모양세는 최근의 진보대통합-민주대연합의 흐름과 다를 바 없고, 이미 4.27 재보선에서 선거구 나눠 먹기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의 ‘노동 품기’, 복지 담론 ‘선점’의 행위는 민주당의 변화의 조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민중진영의 무력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MB와 신자유주의 세력에 맞서는 투쟁이 난항을 겪었던 것은 상설연대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투쟁의 시기, 결정적 시기에 운동진영이 민주당을 포함한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애매한 줄타기로 인해 투쟁 전선이 붕괴,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촛불항쟁,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등 노동자 투쟁국면에서 확인된 것이다.
 
상설연대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향한 투쟁인가가 중요하며,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어떻게 세우는 가가 중요하다. 준비되는 상설연대체가 여전히 민주당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고, 실제로 민주대연합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가지지 않는다면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성과를 결국은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력에게 넘기는 것이다. 전주버스 투쟁을 보라. 전북에 패권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의 작태를! 이러한 현상을 뻔히 목도하면서 민주당과의 연합이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현재에 추진중인 상설연대체의 계급적 나약함, 현실에서 투쟁의 동력이 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김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8호> [강령논쟁] 이미 차지한 진지를 방어하지 못하면, 새 진지를 정복할 수 없다

[강령논쟁]

 

[편집자 주] 사노위는 강령안을 마련하기 위해 3개의 초초안을 놓고 토론중이다. 이에 3가지 견해를 전국의 노동자 동지들과 함께 하려 한다. 독자들의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
 
이번 주제는 "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성격규정과 태도, 평가에 근거한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 방향"이다. 3개 의견은 일부 중복되기도 하지만, 견해의 차이는 분명하다.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판단은 단순한 비평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교훈을 얻어 생동감 있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고자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1.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성격 규정과 태도, 평가에 근거한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 방향

2. 혁명의 주체형성 전략
3. 여성, 생태, 소수자 대한 태도
4. 전쟁, 한반도에 대한 태도

 

 

이미 차지한 진지를 방어하지 못하면,

새 진지를 정복할 수 없다

 

노동계급적 소유형태가 존재하는 한,

소련은 여전히 노동자국가인 것이다.

 

퇴보한 노동자 국가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확립하였고, 그 독재는 사적소유를 철폐하였다. 하지만 볼셰비키가 그토록 기다린 유럽혁명은 유산되었고, 소련은 고립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국사회주의 노선에 기초하여 소련 방어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혁명세력을 제압하고 소련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반동이 소련을 혁명 이전으로 돌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 건설의 주요한 물질적 기초인 집산화된 소유형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 소유형태를 바탕으로 공업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 무상 의료/주택/교육의 제도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관료집단이 혁명세력을 제압하고 노동자민주주의를 박탈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 계급적 소유형태가 존재하는 한, 소련은 여전히 노동자국가인 것이다. 트로츠키와 제4인터내셔널은 이러한 소련을 “퇴보한 노동자국가”로 규정했다. 트로츠키와 제4인터내셔널은 제국주의 침탈로부터 10월 혁명의 남은 성과인 퇴보한 노동자국가 소련을 방어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치혁명을 통해 관료집단을 타도하고 노동자민주주의를 수립하는 노선을 채택했다.
 

기형적 노동자국가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적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들에서, 그리고 그 후, 중국·쿠바·베트남 등지에서의 반제 투쟁의 승리 속에서 스탈린주의 소련과 유사한 체제가 수립되었다.
 
이들 나라들은 소련과 달리,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혁명을 통해 수립된 국가가 아니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국가권력은 소련과의 관계 속에서 스탈린주의 관료가 장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들의 소유형태는 소련에서 존재하는 노동계급적 소유형태와 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전 사회의 봉건적 또는 자본주의적 불평등과 물질적 후진 상태를 현격히 개선하였고, 의료·주택·교육·여성의 지위향상 등 사회 전 분야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내었다. 이러한 나라들을 트로츠키주의 전통에서는 ‘기형적 노동자 국가’로 간주한다.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역사적으로 노동자국가들은 후진국에서 수립되었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들은 산업발전에 있어 비약적인 성과를 달성하였고, 인민의 복지를 그들에게 주어진 생산력의 한계 속에서 크게 향상시켰다. 이것은 사적 소유 철폐, 국유화된 생산수단이 얼마나 중요한 성과인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소유체제는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기도 하다.
 
관료집단은 그들 나름의 이해를 위하여 혁명의 성과를 방어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이 제국주의자들의 호의를 얻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영국, 스페인, 칠레, 인도네시아에서 혁명을 팔아먹는 노선으로 직결되었다. 한편으로 혁명의 일국적 고립은 노동자 국가의 경제를 파탄내고, 정치체제를 더욱 기형적으로 만들고 있다. 세계혁명은 규범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

소위 ‘현실 사회주의권’을 평가하는 문제는 결코 흥미로운 역사논쟁이기만 하지 않다. 이 문제는 인접해있는 중국, 북한에 대하여 남한 노동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를 정하는 문제로 직결되므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소련·중국·북한 등을 ‘국가자본주의’로 간주하는 입장은 제국주의와 자본가들을 편드는 것으로, 동유럽과 러시아의 인민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노선을 지지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기회주의적 태도와 분명히 단절하고 기형적 노동자 국가를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관료집단은 제국주의와 타협하려고 하면서 그들 자신이 서 있는 지반, 즉 집산화된 계획경제체제를 침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 나라들을 진정으로 방어하고자 한다면 노동자 국가 내의 반동세력인 관료집단을 분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1956년 헝가리 혁명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시 헝가리 노동자들은 관료집단에 맞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복원하고자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자본주의 복귀 세력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우리는 자본주의로 복귀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 나라에서 자본가와 지주들은 결코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비록 패배했지만 이 영웅적인 투쟁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장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8호> [강령논쟁] 가짜 사회주의에 대한 입장

 

[강령논쟁]

 


[편집자 주] 사노위는 강령안을 마련하기 위해 3개의 초초안을 놓고 토론중이다. 이에 3가지 견해를 전국의 노동자 동지들과 함께 하려 한다. 독자들의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
 
이번 주제는 "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성격규정과 태도, 평가에 근거한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 방향"이다. 3개 의견은 일부 중복되기도 하지만, 견해의 차이는 분명하다.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판단은 단순한 비평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교훈을 얻어 생동감 있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고자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1.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성격 규정과 태도, 평가에 근거한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 방향

2. 혁명의 주체형성 전략
3. 여성, 생태, 소수자 대한 태도
4. 전쟁, 한반도에 대한 태도

 

 

가짜 사회주의에 대한 입장

 

스탈린주의 반혁명을 거친 30년대부터는

혁명의 주체였던 노동자계급에게 더 이상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 대한 단호한 지지, 그리고 혁명 패배의 교훈과 이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의 조건을 찾아내는 것은 혁명 강령의 필수요건이다.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로의 이행

1917년 러시아에서 탄생한 사상 초유의 노동자국가에서는 1920년대 후반까지는 노동자권력 아래 국유화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시도들이 수행되었다. 하지만 스탈린주의 반혁명을 거친 30년대부터는 혁명의 주체였던 노동자계급에게 더 이상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의 러시아는 1차 대전의 패배와 내전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혁명 이후 형성된 국가 관료주의는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들이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라 착각했던 국가자본주의의 형식을 통해 이행을 추구했다. 테일러주의의 재도입과 1인경영의 강제, 짜르 관료의 재고용, 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인센티브 재 부과는 생산과 정치에서 노동자계급의 실질적 권력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은 3년간의 내전 동안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죽음으로 더욱 고착화되었다. 또한 세계혁명의 실패는 러시아의 볼셰비키를 고립시켰고, 결국 이모든 것은 후진적인 저개발 경제의 책임으로 돌려졌다. 이 상황을 이어받은 스탈린은 5개년 계획의 도입과 농업의 집산화로 소련이 사회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지만, 오히려 일국사회주의와 반 노동자계급적인 당 독재의 강화를 초래한다. 당이 곧 계급이라는 잘못된 판단 속에 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 당이 노동자계급을 대신하는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스탈린주의 반혁명과 국가자본주의 경향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단순히 사유재산과 ‘시장의 무정부성’에 근거한 이윤추구체계로 보는 맑스주의에 대한 거친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자본의 사회적 관계의 지배이다. 노동의 소외는 생산수단과 생존수단 모두로부터 직접생산자를 분리시키는 임노동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노동자국가라는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필요를 생산하기 위해 일하지 않았고 임금을 받기위해 일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그들의 노동을 소외시켰고 자본을 생산했다. 자본주의에서처럼 사기업에 노동력을 파는 대신, 단순히 국유화기업에 그들의 노동력을 팔았다. 러시아는 이러한 자본과 임노동의 사회관계가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으며, 스탈린주의 옹호자들이 생산수단의 국가소유가 전 국민에 의한 소유였다고 주장하는 것이 허위임을 증명했다. 결국 국가와 그 관료조직에 의한 생산의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의 폐지를 향한 진전이 아니라 착취강화를 위한 한 수단에 불과했다. 이와 같이 소련은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의해 국가자본주의 형식을 취하면서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로 이행 했고, 이것은 사회주의의 건설이라는 미명하에 민족경제를 살리는 것으로 둔갑하였다. 이런 과정은 그 후 중국, 동유럽,쿠바, 북한 등등에서 추진되었고, 이들 국가들에서는 사회주의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계급적인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사회주의라는 위대한 사회를 참칭하며 타도해야 될 대상인 자본의 독재가 가장 쇠퇴한 형식으로 지배할 뿐이다.
 

소련 실패의 교훈

소련의 경험은 우리에게 일국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국사회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가 대신 국가의 이름으로 자본을 축적한 것일 뿐인데, 오히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가 폐지되고 부르주아지가 축출되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일국사회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스탈린주의이론 및 소위 사회주의 국가들이나 퇴보한 노동자국가에 대한 허구는 이러한 은폐에 모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러시아 혁명의 교훈에서 피할 수 없는 사실은 국가가 반혁명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강령은 소련과 같은 이행기 사회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올바른 과정을 반드시 명기하고, 혁명의 시작에서 완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계급 전체를 포괄하는 계급의 집단적 권력이자, 새로운 사회의 실제적 표현인 ‘노동자평의회 체제’에 대해 확고한 전망을 제시하는 강령이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계급과 혁명당 그리고 국가권력사이의 관계를 혁명의 시기가 오기전인 지금부터 확실하게 밝혀주는 강령이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노동자혁명도 존재하지 않았던 북한 같은 최악의 착취체제에 대해서는 노동자혁명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체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북한을 모종의 노동자국가나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사회주의 선전선동과 노동자혁명 전략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이들 체제에 대해 ‘가짜 사회주의’, ‘가짜 노동자국가’임을 분명히 하고, 노동자혁명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체제라는 실천적 결론을 명확히 하는 것은 절대로 회피해선 안 된다.
이형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8호> [강령논쟁] 빛과 그늘을 균형 있게 보자!

[강령논쟁]

 

[편집자 주] 사노위는 강령안을 마련하기 위해 3개의 초초안을 놓고 토론중이다. 이에 3가지 견해를 전국의 노동자 동지들과 함께 하려 한다. 독자들의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
 
이번 주제는 "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성격규정과 태도, 평가에 근거한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 방향"이다. 3개 의견은 일부 중복되기도 하지만, 견해의 차이는 분명하다.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판단은 단순한 비평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교훈을 얻어 생동감 있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고자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1.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성격 규정과 태도, 평가에 근거한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 방향

2. 혁명의 주체형성 전략
3. 여성, 생태, 소수자 대한 태도
4. 전쟁, 한반도에 대한 태도

 

빛과 그늘을 균형 있게 보자!

 

 

소련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어버리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실패한 탈자본주의 국가’로 되었다.

 

러시아혁명의 빛과 그림자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운동은 20세기 들어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는 데까지 나갔다. 첫 번째가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탄생한 러시아(이후 소련)다. 소련은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자본-임노동관계를 철폐하여 노동해방 사회를 추구했다. 당시 그 어떤 자본주의국가도 이루지 못한 혁명적인 여성해방 정책을 추진해, 여성해방의 획기적 진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혁명은 변질되었다. 소련은 유럽 노동자혁명의 패배로 고립되었고, 제국주의 간섭전쟁과 구 지배세력의 반란으로 내전기를 거쳐야 했다. 내전은 혁명세력의 승리로 끝났지만, 경제는 붕괴되었고 선진노동자 다수는 희생되었다. 이 난관 속에서 소련은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을 우선시하는 사회주의 건설로 나갔다. 취약한 노동자계급의 역량과 노동자계급의 단결권과 정치적 자유가 봉쇄되면서, ‘당의 지도 아래 국가 관료층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건설’ 노선이 정착되었다. 그 결과 소련은 자본가계급의 지배와 착취는 없어졌지만, 당과 국가 관료층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고, 노동자계급은 정치와 경제에서 수동적 객체가 장정되었다. 소련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동력을 잃어버리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실패한 탈자본주의 국가’로 되었다.
 
그래서 소련에서는 혁명의 성과를 지키되, 변질되고 타락한 부분(당-국가 관료층의 지배계급화)을 타도하는 노동자 주체의 새로운 혁명이 필요했다. 그리고 소련의 몰락을 원했던 국제자본가 진영에 맞서 소련을 비판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소련은 새로운 노동자혁명을 맞이하지 못했고, 1990년대 초 붕괴하였다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입장은 소련이 이룩한 성과는 보지 않고, 실패만 부각시키면서 역사적 사실을 균형감 있게 보지 못한다. 게다가 혁명의 성과부분까지 모조리 파괴하는 ‘체제 그 자체의 타도’를 주장하고, ‘그 어떤 비판적이고 조건부적인 변호와 방어’도 반대함으로써, 소련의 붕괴를 바랐던 국제자본가계급의 이해와 그 실천적 귀결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소련을 제외한 국가들

소련 외의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과 구식민지지역 및 제 3세계에서 등장하였다. 이들은 혁명의 주체와 구체적 추진경로가 러시아와 달랐다. 중국은 농민과 홍군이 주력군이 되어 반제국주의투쟁을 거쳐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갔다. 북한은 해방 직후 노동자민중의 자치기구인 ‘인민위원회’가 전국에 건설되고, 소련군의 지원 아래 인민위원회가 공식 국가권력이 되면서 반제반봉건변혁을 거쳐 사회주의 건설로 나갔다.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중국혁명과 북한의 인민공화국 수립이 노동자계급이 주체가 된 혁명이나 투쟁이 없었다는 이유로, 반제반봉건변혁에 불과하다고 본다. 또 이들 국가를 국가자본주의로 본다.
 
그러나 이는 역사 왜곡이다. 중국은 산업노동자의 봉기를 동반하지 못하고 공산당과 홍군의 군사력에 근거한 ‘위로부터의 혁명’이라는 한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개혁개방 전까지 급급진적인 사회주의 혁명조치를 추진하였다. 북한 역시 그 어떤 나라보다 급속하게 토지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추진하면서 사회주의 건설로 나아갔다. 북한에서 그 어떤 노동자투쟁도 없었다는 것도 틀렸다. 인민공화국 수립과 사회주의 조치의 도입은 해방 전부터 이어져온 사회주의운동과 노동자민중 투쟁과 밀접히 결합된 것이었다. 물론 북한은 소련에서 나타난 당-국가 주도의 사회주의 건설노선이 주체사상과 수령 숭배라는 최극단까지 왜곡되어 나타난 사회이며, 소련과 같이 노동자혁명이 필요한 사회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남한 노동자계급의 태도는 북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주체형성을 지원하는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국가의 실패를 딛고서는 사회주의운동

이미 붕괴했든 북한처럼 남아있든, 현실사회주의국가의 실패는 우리가 전개할 사회주의운동에게 다음을 요구한다. 첫째, 일국의 사회주의혁명이 고립되고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동자국제주의?세계혁명의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다. 둘째,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해방이라는 관점이다. 이는 노동자권력을 수립하기 위해서도 노동자권력 수립 이후 사회주의 혁명이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도 사회주의운동이 견지해야 할 제1원칙이다. 셋째, 사회주의정당은 노동자계급을 대표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계급을 대신해선 안 된다. 대중과 호흡하면서 자신의 오류를 정정하고 혁신하는 당,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일하고 투쟁하는 당이어야 한다.
장혜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8호> 부분 파업을 넘어 전면 파업으로!

 

부분 파업을 넘어 전면 파업으로!

집단교섭 투쟁 승리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승리해왔지만…
2000년대 이후 학교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고려대, 연세대, 동덕여대 등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이들이 학교 내에서 ‘우리는 노동자다!’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올해 1월 49일 간의 점거 농성을 진행한 홍익대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단순히 우리 어머님 같은 분들이 너무 어려운 환경에서 일한다는 동정심이 아닌, 지금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이 사회에서 차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함께 이루어진 과정이었다.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은, 힘들긴 했지만 대부분 승리의 깃발을 올렸다. 학내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관심과지지가 있었고, 무엇보다 투쟁하는 주체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들을 열심히 만들어 나간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 투쟁의 승리에는 한계들도 존재했다. 이 사회에서 딱 최저임금 언저리를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어느 정도 오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턱없이 낮은 액수라는 점, 매년 용역업체의 재계약에 불안해해야 하는 비정규직 인생은 끝장내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이제는 단결 투쟁이다!
그래서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고려대 분회 네 개 사업장은 집단으로 교섭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생활임금 5,180원 쟁취, 휴게실 개선, 진짜 사장 총장 고용이라는 세 가지 요구를 갖고 작년 10월부터 집단 교섭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용역 회사는 자꾸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고, 학교는 용역회사와 이야기 하라는 틈새에서 교섭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결국 12차 교섭을 끝으로 네 개 사업장 노동자들은 3.8 총파업에 들어갔고, 이후 공공노조 서경지부와 네 개 사업장은 부분 파업, 태업 등을 진행하며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진짜 사장 대학 총장이 책임져라!
이제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은 최저 임금 몇 백 원을 올리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의 근본적 문제인 간접고용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 책임을 지고 있는 학교 당국과 간접고용 확산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에 맞서는 투쟁이다. 때문에 사측에서 제시하는 ‘최저 임금보다 몇 백 원 더 높게’로 우리의 요구안을 낮추거나 파업 투쟁의 움직임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최저 임금보다 100~200원 많은 돈’과 ‘불안정한 일자리’를 용납할 수 없고, 학교 당국이 정말로 우리의 고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와 분노들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간접고용이 만연해 있고, 많은 노동자들이 이를 박살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2010년에는 동희오토 투쟁, GM대우 비정규직 투쟁,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직 이 투쟁에서 진짜 사장이 직접 나선 적은 없다. 총자본이 지금 똘똘 뭉쳐서 간접고용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접고용 문제는 한 사업장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지금 집단교섭을 통해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 대학 총장이 고용하라!’는 요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이 무엇보다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들림 없는 파업투쟁으로
간접고용 철폐투쟁의 전선을 구축하자!!
또한 서경 지부는 주저 없이 전면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 청소 노동의 특성 상 부분 파업, 태업이 큰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3.8 총파업 이후 투쟁의 열기가 올라오고 있는 지금, 전면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 부분 파업이나 태업의 전술로는 노동자들 또한 투쟁에 대한 긴장감, 열기 등이 떨어지기 쉽고 학교 당국에 대한 압박도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나위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승리해왔지만…

2000년대 이후 학교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고려대, 연세대, 동덕여대 등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이들이 학교 내에서 ‘우리는 노동자다!’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올해 1월 49일 간의 점거 농성을 진행한 홍익대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단순히 우리 어머님 같은 분들이 너무 어려운 환경에서 일한다는 동정심이 아닌, 지금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이 사회에서 차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함께 이루어진 과정이었다.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은, 힘들긴 했지만 대부분 승리의 깃발을 올렸다. 학내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관심과지지가 있었고, 무엇보다 투쟁하는 주체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들을 열심히 만들어 나간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 투쟁의 승리에는 한계들도 존재했다. 이 사회에서 딱 최저임금 언저리를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어느 정도 오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턱없이 낮은 액수라는 점, 매년 용역업체의 재계약에 불안해해야 하는 비정규직 인생은 끝장내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이제는 단결 투쟁이다!

그래서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고려대 분회 네 개 사업장은 집단으로 교섭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생활임금 5,180원 쟁취, 휴게실 개선, 진짜 사장 총장 고용이라는 세 가지 요구를 갖고 작년 10월부터 집단 교섭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용역 회사는 자꾸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고, 학교는 용역회사와 이야기 하라는 틈새에서 교섭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결국 12차 교섭을 끝으로 네 개 사업장 노동자들은 3.8 총파업에 들어갔고, 이후 공공노조 서경지부와 네 개 사업장은 부분 파업, 태업 등을 진행하며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진짜 사장 대학 총장이 책임져라!

이제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은 최저 임금 몇 백 원을 올리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의 근본적 문제인 간접고용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 책임을 지고 있는 학교 당국과 간접고용 확산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에 맞서는 투쟁이다. 때문에 사측에서 제시하는 ‘최저 임금보다 몇 백 원 더 높게’로 우리의 요구안을 낮추거나 파업 투쟁의 움직임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최저 임금보다 100~200원 많은 돈’과 ‘불안정한 일자리’를 용납할 수 없고, 학교 당국이 정말로 우리의 고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와 분노들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간접고용이 만연해 있고, 많은 노동자들이 이를 박살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2010년에는 동희오토 투쟁, GM대우 비정규직 투쟁,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직 이 투쟁에서 진짜 사장이 직접 나선 적은 없다. 총자본이 지금 똘똘 뭉쳐서 간접고용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접고용 문제는 한 사업장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지금 집단교섭을 통해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 대학 총장이 고용하라!’는 요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이 무엇보다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들림 없는 파업투쟁으로

간접고용 철폐투쟁의 전선을 구축하자!!

또한 서경 지부는 주저 없이 전면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 청소 노동의 특성 상 부분 파업, 태업이 큰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3.8 총파업 이후 투쟁의 열기가 올라오고 있는 지금, 전면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 부분 파업이나 태업의 전술로는 노동자들 또한 투쟁에 대한 긴장감, 열기 등이 떨어지기 쉽고 학교 당국에 대한 압박도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나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8호> [기고] 농협법 개정, 농협이 금융자본의 먹이감이 되다

 

[기고]
 
농협법 개정, 농협이 금융자본의 먹이감이 되다

 

[기고]
 

농협법 개정,

농협이 금융자본의 먹이감이 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농협은 1961년 설립된 이후 지속적으로 개혁이 요구되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적어도 17년간 지속된 농협개혁과 관련된 쟁점을 간단히 무시하고 지난 3월 11일 임시국회를 통해 급히 농업협동조합법을 개정하면서 농협의 근본적인 변화를 재촉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투자은행 설립에 있다.

 

산업은행민영화를 통해 이미 볼 수 있었듯 이명박 정부는 자본시장을 통합하고 금융시장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금융시장 자율화조치로 금융과두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제 총자산 229조 달하는 농협마저 집어삼키면서 금융자산 부양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농협은 농민인 조합원이 출자하여 조합원간 금융거래와 농업생산물에 대한 산지생산, 출하, 유통과 같은 농업기반 사업을 통해 회원들의 실익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동조합이라는 점에서 농협의 자산은 사실 반세기에 걸친 상당수 농민 조합원들의 자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명박 정부는 이마저 금융자본화 시키는 법안을 밀어붙인 것이다.
때문에 이번 법률처리에 대한 이해 당사자인 농민들의 반발은 클 수밖에 없다. 농업자산을 금융 자본화시켜 결국 투자은행을 설립하는 기본 계획에는 농민조합원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농협개혁의 목적에 대해서 정부가 농업회생을 위한 농협개혁이라고 주장해 온 것과는 달리 농협의 총자산 13조 8천억원의 자본배분과 농협구조개혁이 진행되는 방식을 보면 맥킨지 컨설팅을 통한 롤모델로 리만 브라더스나 맥쿼리 워런트와 같은 사모펀드들의 수익운용방식에 따른 대형 투자은행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의 자산이 금융시장의 봉으로
게다가 농협생명보험과 농협손해보험을 새로 설립하면서 경쟁업체와의 경쟁에서 유리하도록 방카슈랑스 적용을 유예하고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관련 법률에 대한 비상식적인 특혜까지 쥐어주도록 법률에 꼬박꼬박 적어 놨다. 심지어 농협은행 및 모기업이 되는 농협금융지주회사는 다른 금융지주회사와는 다르게 사모펀드에 대한 의결 주식 보유의 보고 의무도 없으며 은행 설립 인가 조건이 실제와 다를 경우 은행설립을 취소할 수 있는 조항마저도 예외로 두고 있다. 농협은행이 증자과정에서 투기자본에 먹힐 수도 있지만 농협은행 스스로 공격적인 M&A로 국내외 자본시장에서 황소개구리 마냥 먹튀자본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가진 채 태어나게 생겼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농업의 자산이 주주자본주의의 한 떨기 꽃으로 다시 피어난 것이다.
이 법안의 파장은 곧 구조조정이다. 농업 전체의 구조조정이기도 하고 10만 명에 달하는 협동조합 종사 노동자와 1,200개에 달하는 협동조합 기업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최소한 5년간 급박하게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 과실은 농협금융지주라는 투자은행의 몫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농민도 협동조합 노동자들도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국축협노조 최석주
농협은 1961년 설립된 이후 지속적으로 개혁이 요구되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적어도 17년간 지속된 농협개혁과 관련된 쟁점을 간단히 무시하고 지난 3월 11일 임시국회를 통해 급히 농업협동조합법을 개정하면서 농협의 근본적인 변화를 재촉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투자은행 설립에 있다.
 
산업은행민영화를 통해 이미 볼 수 있었듯 이명박 정부는 자본시장을 통합하고 금융시장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금융시장 자율화조치로 금융과두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제 총자산 229조 달하는 농협마저 집어삼키면서 금융자산 부양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농협은 농민인 조합원이 출자하여 조합원간 금융거래와 농업생산물에 대한 산지생산, 출하, 유통과 같은 농업기반 사업을 통해 회원들의 실익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동조합이라는 점에서 농협의 자산은 사실 반세기에 걸친 상당수 농민 조합원들의 자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명박 정부는 이마저 금융자본화 시키는 법안을 밀어붙인 것이다.
 
때문에 이번 법률처리에 대한 이해 당사자인 농민들의 반발은 클 수밖에 없다. 농업자산을 금융 자본화시켜 결국 투자은행을 설립하는 기본 계획에는 농민조합원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농협개혁의 목적에 대해서 정부가 농업회생을 위한 농협개혁이라고 주장해 온 것과는 달리 농협의 총자산 13조 8천억원의 자본배분과 농협구조개혁이 진행되는 방식을 보면 맥킨지 컨설팅을 통한 롤모델로 리만 브라더스나 맥쿼리 워런트와 같은 사모펀드들의 수익운용방식에 따른 대형 투자은행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의 자산이 금융시장의 봉으로

게다가 농협생명보험과 농협손해보험을 새로 설립하면서 경쟁업체와의 경쟁에서 유리하도록 방카슈랑스 적용을 유예하고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관련 법률에 대한 비상식적인 특혜까지 쥐어주도록 법률에 꼬박꼬박 적어 놨다. 심지어 농협은행 및 모기업이 되는 농협금융지주회사는 다른 금융지주회사와는 다르게 사모펀드에 대한 의결 주식 보유의 보고 의무도 없으며 은행 설립 인가 조건이 실제와 다를 경우 은행설립을 취소할 수 있는 조항마저도 예외로 두고 있다. 농협은행이 증자과정에서 투기자본에 먹힐 수도 있지만 농협은행 스스로 공격적인 M&A로 국내외 자본시장에서 황소개구리 마냥 먹튀자본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가진 채 태어나게 생겼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농업의 자산이 주주자본주의의 한 떨기 꽃으로 다시 피어난 것이다.
 
이 법안의 파장은 곧 구조조정이다. 농업 전체의 구조조정이기도 하고 10만 명에 달하는 협동조합 종사 노동자와 1,200개에 달하는 협동조합 기업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최소한 5년간 급박하게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 과실은 농협금융지주라는 투자은행의 몫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농민도 협동조합 노동자들도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국축협노조 최석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8호> [생활의 파문] 우리 아이 정말 안전합니까?

 

[생활의 파문]
 

우리 아이 정말 안전합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학생안전강화시스템 = 학교출입통제?

3월이 되어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각종 서류를 준비하다보니 눈길을 끄는 가정통신문이 있었다. ‘학생안전강화학교 출입통제시스템 1학년 지문 등록 안내’ 알고 보니 2010년 연이어 아동성폭력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교내 성폭력 등을 막겠다며 학생안전강화학교로 선정된 전국1000곳의 초등학교에 한 곳당 2750만원씩의 안전시설비를 내려 출입문 자동보안 시스템(지문인식, 얼굴인식, 카드키 등)을 설치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휴대전화로 자녀들의 등하교 상황을 알리는 ‘안심알리미’ 서비스와 이 자동보안 시스템을 연결하도록 해 정보유출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학생들의 신체정보와 학부모의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 정보가 함께 대기업으로 넘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조치로 인해 아동성폭력 발생률이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 자체가 안전하지 않은데, 학교에 다시 담장을 쌓고 CCTV를 설치하고 출입을 통제하는 등 감시와 통제를 통해 학생 안전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학생안전을 위한다는 ‘지문인식’ 정말 안전한가?

전자카드에서 시작된 시스템은 지문, DNA, 홍채 등 개인의 신체적·행동적 특성을 통해 신원을 인증하거나 식별하는 생체인식정보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생체인식정보는 몸 자체에 ‘내장’된 것이어서 타인에게 유출되거나 도난 가능성이 없는 데다 최고의 정확성까지 갖췄다는 찬사를 받으면서 정맥·음성·필체 인식 등 더욱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기술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되며 관리되고 있나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몇 년 전 일부 학교에서 급식비를 안 내고 밥을 먹는 아이들을 가려내려고 급식소에 지문인식 장치를 설치했다가 인권침해라는 비판 여론에 부닥쳐 철회하는 등 논란이 된 바 있다. 웃기는 건 논란이 되어 철회됐던 지문인식 장치가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생체정보이용에 대한 문제점 및 관리방식에 대한 그 어떤 고지도 없이 안전하게 학교를 다니기 위한 방법으로 다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학부모들 또한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아이의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생체정보를 부모의 동의하에 내주고 있다. 정말 안전할까? 누구로부터 안전한 것인가?
 

노동자 민중 스스로 생체정보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

‘간첩 색출’ 명분으로 박정희 정권 때 도입한 전 국민 대상 열손가락 ‘지문날인’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다. 국가에 의해 의무적으로 수집된 지문날인 정보는 ‘전자주민증’으로 전환되어 다른 개인정보와 함께 집중 관리되고 있고 이제 범죄예방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다양한 행정시스템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과정은 지문날인을 당연한 국민의 의무로 인식하게 했고, 정보인권 문제에 무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문과 같은 생체정보는 개인의 신체 일부이고, 개인의 고유성이 매우 강한 정보로서 보호되어야 할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기본권이다. 개인의 동의와 안전이라는 명목 하에 개인의 고유한 생체정보가 수집되고 관리·통제되며, 우리도 모르게 상품화되고 있다. 개인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누가 관리하며 결정할 것인가? 누군가 나의 신체의 일부를 보유하고 이용한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이 노동자 민중을 관리 통제하고 이윤을 확보하기 위한 방식으로 국가와 자본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생체정보에 대한 관리와 통제에 대한 관심은 이제 별난 사람의 몫이 아닌 인권과 노동자 민중의 통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유현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