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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28호>학교 판 범죄와의 전쟁, 학교폭력에 대한 비천한 대응

학교 판 범죄와의 전쟁, 학교폭력에 대한 비천한 대응

 

경찰은 오는 4월까지 학교폭력을 뿌리 뽑겠다고 공언하면서 학교 내 '일진회'에 가입한 학생뿐 아니라, '일진'이나 '짱'으로 불리며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까지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학교폭력에 대한 접근방식이 그 근본원인과 교육차원에서 접근이 아니라, 경찰력과 사법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학교폭력으로부터 피해를 입는 학생을 위한 보호조치는 이루어져야 하지만, 상당수가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인 상황에서 경찰력을 동원한 대응은 모든 학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다스리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가해 학생이 원초적인 악마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적, 이기적 자본주의 사회문화와 교육정책이 폭력의 뿌리이다. 미국의 경우 등교 시 총기류 반입을 막기 위해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마트에서 총알과 총기류를 버젓이 팔고 있다. 정말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경찰청의 태도는 이와 하등 다를 바 없다. 학교 폭력의 예방이 ‘일진회’를 관리하고 ‘학교짱’을 관리하면 가능하다는 발상은 학교폭력을 교육적 차원에서 예방할 것을 봉쇄하는 것이고, 근본원인에 대한 성찰을 막는 것이다. 노태우정권 시절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조폭을 잡아들였고, 그 이전 전두환 정권은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삼청교육대에 사람들을 잡아가두었으나, 이것이 쇼에 지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기생적 폭력의 뿌리가 오히려 이 사회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학교폭력을 우려하면서도 서울시가 최근에 공표한 학생인권조례를 정부가 나서서 가로막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최소한의 학생 인격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또한 이러한 인권 의식의 보호와 성장은 ‘학교짱’을 경찰이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긍정적 인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지탄을 일시 모면하고자, 가장 유치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찾는 정부가 한심하기 그지없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부모가 필요하고, 교사, 그리고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모두 바쁘고, 힘들어서 그런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모는 아이와 눈을 마주칠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의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선생은 많은 학생과 경쟁적 입시 제도로 인해 학생의 하소연을 들어주기가 버겁다. 교사에게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경쟁적 입시를 바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친구와 교우할 시간과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사람 사는 사회이니 크고 작은 학교 내 폭력이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다. 그렇지만 경찰이 학교 안까지 관리하겠다고 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내 아이만 안전하면 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사회적, 교육적 접근 없이 이러한 경찰력의 남용을 방치한다면 바로 내 아이가 희생될 것이다.

 

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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