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국회에 문서 한 건이 나돌았다.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14년간 일하다 성희롱 피해를 입은 한 비정규직 하청 여성 노동자에 관한 글이었다. 피해자를 ‘남성 편력이 심한’ 것으로 묘사하고, 해당 사건이 금속 노조의 자체 조사를 통해 성희롱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났다는 내용을 담은 이 글은, 현대자동차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중심으로 배포한 것이었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두고 남성 편력이 심했다는 둥, 먼저 문제가 될 행동을 했다는 둥 하는 식의 2차 가해가 일어나는 것은 흔한 일이니 새삼 무어라 할 말도 없다. 오히려 흥미로운 점은, 하청 업체 직원 사이의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해 오던 현대자동차가 직접 ‘해명’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결국 원청 업체가 스스로 책임을 시인한 셈이다.
피해자 이수현 씨(가명)는 현대자동차의 사내 하청 업체인 금양물류에 소속되어, 14년 동안 그랜저와 소나타 등의 검사 업무를 맡아 왔다.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남성 관리직들의 성희롱이야 애초에 흔한 일이었지만, 2008년부터 관리소장과 조장이 가한 지속적인 성희롱은 도저히 참기 힘든 수준이었다.
참다못해 2009년 4월 동료들에게 사실을 알리자, 가해자가 징계위원으로 포함된 징계위원회가 열려 이수현 씨에게 징계처분을 내렸다. 이수현 씨가 부당 징계에 항의하며 인권위원회를 찾아가자 급기야 금양물류는 해고 처분을 내리기에 이른다. 그리고 2010년 11월, 금양물류는 사장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폐업을 선고했다.
이수현 씨가 처음에 취업했던 것은 금양물류가 아니면서 또한 금양물류였다. 회사 이름은 8번이나 바뀌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도 일하는 장소도 그대로였다. 약 1년 전 문을 닫은 금양물류 역시,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가해자를 포함해, 이수현 씨가 함께 일했던 이들은 모두 형진기업이라는 새로운 업체에 고용승계되었다.
현대자동차와 여성가족부, 그 앞의 힘없는 여성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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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노동부 앞 농성 천막 옆에 세워져 있는 피켓.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 문제 해결, 현대차가 나서라” ⓒ 현대차 아산공장 성희롱 및 부당해고 피해 여성노동자 상경농성 지원대책위 |
이수현 씨가 농성을 한지 어느덧 5개월째다. 인권위원회는 회사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강제력이 없는 인권위의 결정에 회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심지어 법원에서도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의 고용주는 현대차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지만, 현대차 역시 모른 체 하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차와 금양물류 사이에는 글로비스라는 도급 업체가 있는데, 현대차에서는 책임을 글로비스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인 현대차가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고 성희롱 피해 당사자를 해고 시킨 것이 억울하고 분노스러워서 싸움을 결심했다”는 이수현 씨는 “투쟁을 시작한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 그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마음을 밝혔다. 십수 년을 참으며 일해 왔다가 하루 아침에 해고 당했지만, “절대 참고 다른 데로 가지는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에 대한 권력 관계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 여성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투쟁함으로써, 알려짐으로써, 힘이 되고 싶기에 멈출 수가 없다”는 그다.
농성을 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여성가족부 청사 앞이다. 회사와 인권위에 문제 제기를 한 데 이어 현대차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해 봤지만 실질적인 힘이 되어 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여성 노동자로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여성가족부다. 물론 여기서도 찬밥 신세기는 매한가지. 건물 1층의 상점에서는 부러 물을 흘려 보내 농성 텐트를 적시기도 했고, 서울시로부터 농성장을 철거당하기도 했다. 여성가족부는 여전히 답이 없다.
이수현 씨는 “청계광장에서 여성가족부 후원으로 성폭력 예방 행사가 열리는 것을 농성하면서 이미 두 번이나 보았다”며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여성가족부 앞에서 도와달라 호소하고 있는데 이것조차 해결 못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사에 후원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필요한 데에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관이 새로 부임했으니, 청사 문 앞에 있는 여성의 인권부터 챙기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혼자서 바라 볼 뿐이다.
직장 내 성희롱은 일상이다
기업에서 관리직 이하, 그러니까 ‘노동자’의 입지는 취약하다. 비정규직, 여성, 하청업체 소속―그 앞에 붙는 수식어가 하나씩 늘어갈수록 그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차별이라는 말로도 모자랄 온갖 수모를 당하지만, 침해당한 권리를 구제받고 보상받을 길은 어디에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수현 씨는 “관리직 남성이 여성 노동자의 엉덩이를 만지는 것은 물론 발로 차는 것까지도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여성을 앞에 두고 음담패설을 일삼는 것으로 모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여성 노동자를 두고 “○○○ 어디 갔어? 뒷물하러 갔어?”와 같은 식으로 말하며 낄낄거리는 일도 그저 일상이었다고.(‘뒷물’은 성기 부위를 씻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관리직 남성은 ‘근무 중에 성행위를 하고 뒤처리하러 간 것 아니냐’는 뉘앙스를 담아 말한 것이다.)
이런 식의 일상적이고 무차별적인 성폭력 속에서 때로 싸우며(관리직 남성들에 맞서 바른 말을 하는 이수현 씨에는 ‘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또 때로 참으며 1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 오던 이수현 씨는 관리직 남성들로부터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거나, “너희 집에서 자고 싶다”는 말을 수시로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소장은 뒤에서 다가와 이수현 씨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몸을 들어올리기도 했고, 또 다른 가해자인 조장은 사건이 공론화 되자 “다른 사람한테는 뽀뽀도 했는데 왜 너만 난리냐”며 오히려 화를 내기도 했다.
이수현 씨가 14년을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전까지는 별 일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참을 수밖에 없었고, 아직은 참을 수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한 곳에서 일하면서, 직접 당하고 또 목격한 성폭력은 셀 수 없이 많다.
“내 싸움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힘이 되었으면”
이수현 씨가 사건을 공론화하고 결국 부당하게 해고 당하자 한 동료는 “참지 그랬냐”며 안타까워했다. 참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하청 업체 소속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활을 유지할 길이 없는 현실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와 여성가족부가 외면하는 것으로 모자라, 함께 일하고 함께 당한 동료들조차 쉽사리 힘을 보태지 못하는 투쟁을 하고 있지만, 이수현 씨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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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인들이 농성 천막 옆에 전시 되어 있는 피켓 문구를 유심히 읽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박종주 |
“힘이 없다고 해서 이런 걸로 해고당하는데, 투쟁함으로써, 알려짐으로써 힘이 될 수 있기에 멈출 수가 없다”는 이수현 씨는 “같이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싸울 수 있다”며 “노조들에서 연대를 오는 것은 물론이고, 행인들 역시 후원금이나 음료 등을 주며 응원해 준다”고 말했다. 기자가 취재를 간 날에서 페미니스트 단체인 ‘붉은 몫소리’ 회원들이 도시락을 싸 와 이수현 씨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전자 회사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다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영문 플래카드를 보고는 찾아와 한참을 이야기 하고 갔다.
이수현 씨는 “워낙 내가 힘이 없다 보니 1년 넘도록 풀리지 않고 있다”면서도 “(상대 기업이)조그마한 데였다면 오히려 빨리 해결됐을지도 모르지만 상대가 워낙 크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 것 뿐이지 결국은 이길 것”이라며, “길고 힘든 싸움이지만 그런 점(대기업을 상대로 싸워 하나의 본보기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 대한 보람이 오히려 크다”고 말했다.
“내 싸움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힘이 되었으면 한다”며, 곳곳에서 차별 받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힘 내라고, 포기 않고 싸워 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는 이수현 씨는 갈수록 추워지는 가운데 농성장에서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요즘은 스티머 대용으로 써서 농성장의 찬 기운을 누그러뜨릴 압력솥을 후원해 줄 사람을 수소문 하는 중이다.
추운 길바닥에서 자기 힘들기도 하고, 연대 오는 이들을 춥게 재우는 것이 미안해 난방 용품을 찾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겨울을 마저 이곳에서 날 생각은 없다. “침낭에 핫팩 두어 개를 넣고 자면 아직은 할 만해요, 추워지면 문제지”라며 웃으면서도 “눈이 오기 전에 현대자동차가 정신 차리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강단지게 말하는 이수현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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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포조선 김석진, 해고 14년만에 임금소송 이겼다대법원 '가산보상금 청구소송' 승소... 1997년 4월 해고, 위약금 지급 사례 남겨
해고된 지 14년만에 임금 소송에서 이긴 노동자가 있다. 현대미포조선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김석진(51) 의장이 대법원에서 또 승소한 것이다.
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청구소송을 냈다가 2005년 7월 대법원에서 복직판결을 받았던 김 의장은 이번에는 '가산보상금 청구소송'에서 이겼다.
3일 현대미포조선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는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판결문을 공개했다.
지난 10월 13일 대법원 제1부(대법관 안대희․김능환)는 '원고 패소' 판결했던 부산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김석진 의장은 현대미포조선노동조합 대의원 활동 등으로 1997년 4월 해고됐다. 그는 해고무효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05년 7월 복직판결했다. 소송을 낸 지 8년3개월만이었다.
당시 그는 빨리 판결해 달라며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현대미포조선은 김 의장을 복직시키면서 해고기간 동안(8년 3개월)의 평균 임금 100%만 지급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단체협약의 내용을 들어 가산보상금(평균임금 100%) 지급을 요구했다.
가산보상금을 해고기간 전체의 평균임금 100%를 인정하게 되면, 김 의장은 2배의 임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현대미포조선 노사 단체협약에 보면, 부당해고시 '평균임금의 100% 가산금 지급'을 규정해 놓았다.
이는 일종의 '위약벌(금)' 차원이다. 회사가 부당해고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단체협약에는 '평균임금의 100% 가산금 지급'이라고만 해놓았지, '해고기간'이라는 수식어가 없었다.
이에 회사는 해고기간 전체가 아니라 한 달 치 평균임금을 추가로 지급하면 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김 의장은 '해고기간'이라는 수식어가 없어도 규정의 취지나 협약 체결 과정의 회의록 등을 들어 '해고기간 전체'라고 맞섰다.
이에 대해 1심 울산지방법원은 원고 승소, 2심 부산고등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 심리 때 전직 노조 위원장·간부들은 법정에서 "평균임금 100% 가산금 지급 규정은 해고 기간 전체가 아니라 1개월로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로 증언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김석진 의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은 "단체협약과 같은 처분문서를 해석함에 있어, 단체협약이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유지·개선하고 복지를 증진하여 그 경제․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목적으로 근로자의 자주적 단체인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에 단체교섭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명문의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 해석할 수 없다"고 판결(2007년 5월 10일)한 바 있다.
또 대법원은 "가산보상금 규정의 내용과 형식, 도입경위와 개정과정, 특히 부당징계를 억제함과 아울러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명되었을 때 근로자를 신속히 원직복직시키도록 간접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것인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미지급 임금 지급시 가산 지급되는 '평균임금 100%'는 근로자가 부당징계로 인하여 해고 등 당시부터 원직복직에 이르기까지의 전 기간에 걸쳐 지급받지 못한 임금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원심(부산고법)에 대해, 대법원 재판부는 "'평균임금의 100%'를 단지 1개월분의 평균임금만을 의미한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가산보상금 청구를 기각하였다"면서 "원심의 조치에는 이 사건 단체협약 규정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최용석 변호사 "가산보상금 지급에 매우 중요한 판결"
김석진 의장의 변론을 맡았던 최용석 변호사는 "현대미포조선의 단체협약에 가산보상금 지급을 규정해 놓았지만, '해고기간'이란 수식어가 없었다. 그래서 회사는 한 달 치 평균임금 100%만을 지급하겠다고 했던 것"이라며 "사측은 당시 노동조합 위원장과 간부 등을 증인으로 내세웠지만, 단체협약 체결 당시 회의록 등에 비추어 볼 때 '한 달'이 아니라 '해고기간 전체'로 봐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은 '간접강제'라고 했는데, 가산보상급 지급은 함부로 부당해고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있어야 한다. 또 해고 기간 온갖 어려움에 대한 위자료의 성격도 있는데, 회사가 신뢰를 저버린 것에 대한 손해배상의 의미도 있다"면서 "전국 많은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에 가산보상금 규정을 두고 있는데, 해고기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논란을 빚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판결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김석진 의장은 "민주노총 산하 많은 노동조합 간부들이 이번 소송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면서 "노동현장에서 많은 동지들이 부당해고를 당하며 어려움을 겪는데, 많은 동지들이 이번 판결로 연대하고 힘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1997년 4월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부당해고됐던 김석진 의장은 이번 '가산보상금 지급' 판결을 받기까지 무려 1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 2011 OhmyNews 11.11.03 18:49 ㅣ최종 업데이트 11.11.03 18:50 윤성효 (cj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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