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정부는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부동산 정책을 쏟아낸다. 정책의 내용들이 오락가락해도 문제가 됐겠지만 초지일관 똑같은 내용이라 더욱 문제다. 건설경기 부양과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한 각종 규제 완화.
역대 정권이 그랬듯 이명박 정부 역시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주택을 공급한다는 립 서비스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땅 파는 걸 좋아한다는 건 누구나 알기 때문에 여느 때처럼 잠깐이라도 속아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근본적으로, 주거권의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뜯어봐야 한다.
모든 사람은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집이 필요한 사람은, 건강을 해치거나 불편하지 않을 적당한 수준의 집을, 적절한 주거비 부담으로, 안정적으로 점유(소유 혹은 장기임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주거권의 실현을 위해 직접 주택을 공급하거나 시장을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살만한 집에 살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어느 방향인지는 평가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각종 규제를 완화하면서 공급을 늘리겠다는 주택들이 누구에게 돌아갈 지 보자. 주택 공급 계획에 포함된 주택 중 40%는 일부 고소득층만이 구입할 수 있는 중대형 평형 아파트다. 반면, 5천만 원 미만의 임대보증금으로 세 들어 사는 481만 가구나, 자기 집이지만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에서 살고 있는 약 120만 가구가 들어가 살만한 집은 전체 주택의 20%도 안 된다. 종부세와 양도세 기준의 완화라는 고소한 소스까지 곁들여지다보니, 이명박 정부의 계획에 따라 공급되는 주택의 70% 가량은 이미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집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지어지는 집들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집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으면서 지어질 집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커진다. 최근 뉴타운 개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개발을 통한 공급량의 증가는 거의 없다. 그만큼 많이 짓기 위해서는 개발구역을 많이 지정해야 한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던 저렴한 주거지가 더욱 많이, 한꺼번에 쓸리고 아파트단지로 바뀐다는 얘기다. 가난한 사람들은 적절한 세입자대책을 제공받지도 못하고, 가진 돈으로는 살던 곳과 가까운 곳에 사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개발사업의 기간을 단축시키려고 한다. 현재의 개발 사업은 소유주들의 의견만을 반영하기 때문에, 기간 단축은 그 곳에 살지도 않는 소유주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세입자들을 더욱 빨리 내쫓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내쫓길 세입자들이 걱정됐기 때문일까. 이명박 정부는 도시 근교나 외곽의 그린벨트를 해제해 8만 호의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한다. 보금자리주택 계획이다. 이와 같은 ‘격리’의 문제점은 이미 충분히 지적된 바, 웬만한 정부는 시도하지도 않을뿐더러, 요즘 유행은 사회적 통합인데 참 후졌다. 그린벨트의 해제만으로도 문제다. 생태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새롭게 만들어지는 지역이 기존의 지역과 어떤 관계망을 맺을 것인지,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경제구조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에 대한 전망이 없이 무분별하게 추진되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통해 자가소유율을 높이겠다고 장담한다. 자가소유율이 높아지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닐 테지만 무조건 좋은 일도 아니다. 가난할수록 ‘내집마련의 꿈’이 절박한 것은 사실이다. 집세 올려달라는 말과 방 빼라는 말에 늘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가 소유만을 유일한 답으로 상정하고 정책을 펼쳐온 결과는 지금의 주거불평등이다. ‘내집마련의 꿈’은 재산증식 욕구에 번번이 저당 잡혀, 새롭게 지어지는 집들은 대부분 집이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주거권은 소유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소유 여부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임대기간을 보장하고 부당한 임대료 인상을 금지하는 것이 자가소유율 촉진보다 시급하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내버려둔 채 정부는 초지일관 거래 활성화, 공급 확대를 외치고 있다. 다 지어놓고도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는 미분양 아파트가 증가한다면, 공급 확대 기조를 점검이라도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정부는 앵무새마냥, 규제가 심해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반복한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주택건설이 줄어들면 중장기적 불안 요인이 될 거라며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
이렇게 비상식적일 때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건설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고 수준인 나라다.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도 OECD 평균의 1.6배나 높은 19.22%(1995년부터 2006년까지 평균)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떨어질락말락하는 집값이 어느 정도 잡히다 못해 폭등하는 ‘쾌거’를 이뤘으나 지금의 전 세계적 경제위기는 그와 같은 결과를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건설업체를 살리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9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미분양 주택 매입과 건설사 보유 토지 매입 등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이 풀리면 문제도 풀릴 것이라는 착각은 위험하다. 현재 한국 경제의 불안 요소 중 하나는, 개발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만들어졌던 프로젝트파이낸싱이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를 허물며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들이 확산되어 왔고 그만큼 많은 돈이 풀린 결과는 ‘위기’일 뿐인 것이다. 부동산 거품에 기대어 더욱 거품을 부풀리는 투자는 부실한 건설산업을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 고질적인 부패와 무능력만을 성장시킨 것이다.
건설자본이 위태로워지는 일차적 원인은 대규모 미분양 사태다. 돈이 많이 남는다고 너도나도 중대형 평형 아파트를 지어대는 데다가 높은 분양가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아돌 수밖에. 주택 공급이 주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적인 과정이 아니라 건설자본 저마다의 경쟁과 욕심과 아집으로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것, 즉 건설자본이 위태로워진 원인은 건설자본 자체다.
올해 들어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도 상당 부분 주택담보대출 등 부동산 관련 부채다. 집을 마련하려고 누리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참았던 이들은 집값은 내려가고 대출 금리는 올라가는 탓에 애간장만 태우고 있고, 참을 것도 없었던 이들은 더 쪼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지원은 늘 “마련해 나갈 계획”에만 머물러 있다. 이제 공급과 개발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찬양을 접을 만도 하건만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공적자금으로 급전을 돌려 건설자본에 밑돈을 대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위기가 확산되는 시기에 오로지 부동산 거품이 다시 부풀어 올라야 한다는 투지만으로 각종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건 모험이라고 보기엔 너무 위험하고 도박이라고 보기엔 너무 결과가 자명한, 악수(惡手)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집이 필요한 것이지, 집을 위해 사람이 살아서야 쓰는가. 역대 정권은 집을 사고팔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만 충실했다. 모든 사람이 살만한 집에 살 권리는 그것과 다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거권의 관점에서 짜이는 정책들이다. 누구를 위해 집이 지어져야 하는지 묻자. 정말 낙후했으나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운 좋게도’ 건설사로부터 내팽개쳐진 동네의 사람들, 쪽방과 고시원에서 한 평 방에 몸 뉘는 사람들, 반지하에서 곰팡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성정체성·인종 등의 이유로 집을 구하기 힘든 사람들, 독립을 꿈꾸는 젊은이들. 집이 필요한 사람은 너무나 많다.
이 모든 집을 새로 건설할 필요도 없고 정부가 모두 공급하라는 것도 아니다. 기존 주택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모든 지자체가 장기 임대가 가능한 사회주택을 최소 20% 이상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비영리기구의 주택공급도 활성화해야 한다. 행여 개발을 하게 되면 강제퇴거를 금지하고 순환식 개발을 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빈곤의 늪으로 빠져드는 상황은 없도록 해야 한다.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원이 확보되어야 한다. 돈도 많이 들지만, 주거권 실현을 위해서는 역시 땅이다. 토지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 개인의 토지 소유에 상한선을 두는 것은 재산권의 침해가 아니라 인권의 보장이다. 세제도 강화해야 한다. ‘징벌적’이더라도 걷을 돈은 걷어야 한다. 한정된 땅과 집을 두고 누군가 더 가져가고 있다면 누군가는 빼앗기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의도된 것이며 정치적인 것이다. 가져간 자들이 그만큼 더 돌려놓는 것은 당연하다. 건설사들도 통제해야 한다. 고질적인 다단계 하도급 착취 구조나 각종 비리, 도박경영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며 필요한 집을 지을 수 있는 생산구조로 재조직되어야 한다.
경제위기의 한가운데서 부동산·건설 경기를 살리겠다며 이명박 정부가 고집스럽게 두고 있는 악수(惡手)는 물러져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명박 정부를 무르는 수밖에.
(연대 대학원신문에 보낸 글)
* 집값 땅값이 떨어지는 시기에... 거품이 빠지고 나면,
전세값에 소유권을 세입자에게(99년 정도 지나면 공동체로 귀속) 넘기는...
히, 그런 정책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세금 내기 싫으면 집을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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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달 2008/12/12 00:5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우리는 어찌 부자들의 세상이 우리의 세상이라 착각할까요?
착각은 달콤한 솜사탕 같지만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을...
뉴타운에 열광하며 이명박을 지지하는 소위 서민이라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미류 2008/12/13 23:3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늦달// 눈에 보이는 세상을 쫓아가는 것 외에는 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쫓아가게 되는, 그래서 더욱 빼앗기게 되는, 그런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mong 2008/12/20 15:0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 근데 우리 나라에서는 왜 일본식 민간임대공동주택이 불가능한 거에요? 제가 잘 몰라서리..
http://www.hani.co.kr/section-021003000/2008/03/021003000200803130701048.html
요런 식이나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281196.html
요런 식 말이죵.
미류 2008/12/21 22: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몽// 왜 불가능하냐는 질문은 ㅜ,ㅜ 못할 이유는 없어. 그 기사 내용은 진보복덕방에도 소개한 적 있는데, 그런 고민들이 한국에서도 쭉 있어왔어. 근데 워낙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다 보니 웬만해서는 시도하기가 어려운 거지. 일본은 전반적으로 '사회복지'랄까 그런 거에 대한 마인드나 투자가 한국이랑은 많이 다른 나라지. 주택이나 개발 문제도 일본은 여기랑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하는 나라야. 힝...
mong 2008/12/22 14:5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 진보복덕방에 관련 내용도 있네요.
http://www.culturalaction.org/webbs/view.php?board=houseagent&id=184&page=1&category2=7
헤헤 제가 잘 몰라서리;; 답변 고마워요!
미류 2008/12/22 17:3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맙기는~ 같이 계속 고민하면 좋겠어~ ㅎㅎ 한국도 이제 1인가구 주거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야. 한나라당은 임대주택 지을 때 고령자용 주택을 일정 비율 짓게 하는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하는데, 이게 자꾸 고령자의 문제로 가면 안될 것 같아. 쨌든 주거권 관련해서 해야 할 건 많은데... 어떻게 관심을 모아가야 할지... 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