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항우는 28세에 '패왕'의 자리에 올라 32세에 죽었으며,
제갈량이 삼고초려 끝에 유비를 따라나선 것은 27세였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제2서기장에 오른 것이 30세요,
스피노자의 모든 위대한 저작들은 46세 전에 쓰여졌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쓴 것은 31세,
레닌이 상트페테르부르크 해방동맹을 결성한 것은 26세,
마오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이 된 것은 32세,
박헌영이 조공 결성과 함께 고려공청책임비서가 된 것은 26세였다.
그리고 발리바르가 <'자본'을 읽자>를 출판한 것은 24세였다.

일단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지만
이 목록은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은 나이가 어리다'는 변명이 설 자리를 제거하기 위해서.

추신:
목록을 적고 보니 여성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한두명을 부랴부랴 끼워 넣느니,
나의 사고 안에 있는 저 엄정한 결여를
그 자체로 드러내는 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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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0/22 15:12 2008/10/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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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와 냉소주의

역시 2003년 쯤에 쓴 글.

 

난 지금도 살레츨의 이 분석이 극히 흥미롭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한 번 다시 읽고 싶은 내용이다.

현실 사회주의를 경험한 이들이 그 이데올로기의 실패를 증언하는 내용일 뿐더러

내가 지젝 등에게 관심을 갖게 된 가장 결정적 분석인 '냉소주의' 문제를

역사적 전거를 가지고 논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쳤는데

지금도 내 동료들에게 쉽게 건네지 못하는 질문이 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한편으로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렵고

다른 편으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들을까 봐 두렵다.

전자는, 이제 그/녀들과 정말이지 완전히 이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까 두려워서고

후자는, 내가 그들을 '벌거벗은 임금님'의 백성들과 같은 상황에 몰아 넣었다는

죄책감이 들까 두려워서다.

어느 쪽이든 나에겐 고통을 재생하고 연장하는 일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일 때문에 다시 살레츨의 책을 읽어 보고 싶다.

 

--------------

 

일요일에 하기로 한 스피노자 세미나가 연기된 김에
그냥 이책저책을 떠들어 보다가
슬로베니아 학파의 한명인 레나타 살레츨을 읽기 시작했다.

전부터 생각만 하고 못 읽었던 글,
<'Normalization' in the socialist regime>부터 읽었는데
과연 아주 흥미롭다.
그녀에 따르면 사회주의(사례로서 유고슬라비아)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요체는
공식 이데올로기의 나이브함 + 사적 이데올로기의 냉소주의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도 공식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냉소적 거리두기/위반이 그것을 전복하기는커녕
오히려 필수불가결한 보충물로 기능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목표가 바로 이 냉소주의였다는 점이다.

냉소주의가 정치적 수동화를 낳는 것은 기본이다.
살레츨이 자신의 정신분석적 문제틀로 고유하게 기여하는 것은
이같은 냉소주의가 '죄책감'
(잘은 모르지만 정신분석은 이것이 상징과의 괴리 및 '비일관성'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언젠가 칸트는 누군가 법을 어길 수는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고 말했는데,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즉 법에 대한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그것이 '법'(즉 지배적 상징)인 한, 그것에 대한 위반은 죄책감을 낳는다. 마찬가지로 그것이 아무리 나쁜(물론 법 이전에 이에 대한 기준은 없다) 행동이라 해도 법에 의해 범죄로 지정되지 않는다면 죄책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즉 죄는 법의 사후 효과다)
을 낳고 이에 의해 '초-자아'가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음을 지적함으로써다.
말하자면 이렇다.
누구도 공식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그것을 '속이면서' 각자의 '사생활'을 누린다.
그런데 또한 누구나 공식 이데올로기의 '정상적' 작동이
자신의 '사생활'의 보호와 체계적으로 연루되어 있음을 알고,
또한 '사생활'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즉 공적으로 표명되면)
공식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교란시키고 따라서 결국 '사생활'을 파괴할 것 역시 알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공식 이데올로기의 우산 하에서 '사생활'을 누리는 모두
로 하여금 (그 강도가 어느 정도이건) 죄책감과 위협감을 겪게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녀들은 자신들의 '행복'이
공식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기'에 의해 지탱된다는 것,
어쨌든 사기는 나쁜 것일 뿐만 아니라
이같은 사기가 일반화되면 결국 공식 이데올로기가 붕괴될 것인데
모든 사람이 다 사기를 치고 있음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녀들은 공식 이데올로기를 전혀 믿지 않으면서도
보다 정확히 말하면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공식 이데올로기의 '외양'을 보존하는 데 호들갑을 떤다.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도 신뢰받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외양'마저 위협받으면 체계는 곧장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왕의 권위가 침해되면 왕국이 붕괴한다는 것,
그런데 왕이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 더구나 그 사실을 모두가 다 알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단 한마디의 공적 표명조차 충분히 일으킬 수 있는
엄청난 파급력을 두려워 해 침묵을 지켰던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같은 일반화된 죄책감과 위협감은 '초-자아'의 개입을 쉽게 만든다.
즉 다들 '사기'를 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초-자아적 개입에 강력히 반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심지어 내심 그것을 요구한다.
초-자아가 없으면 공식 이데올로기가 붕괴하고
따라서 자신의 사생활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배계급에게 가장 좋은 상황은 바로 이것이고
따라서 지배계급 역시 공식 이데올로기의 준수가 아닌
냉소주의의 확산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살레츨의 이 같은 분석은
'현실사회주의'의 핵심 모순이 (전체주의적) '광신'이라는
통속적 관념과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즉 실제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냉소주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전혀 믿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외양'을 유지하려 했던 냉소적 실천이다.
(언젠가 홉스봄이 든 유명한 사례에 따르면, 서구의 저널리스트가 동구의 인민에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누구인지 물었더니 레닌의 후배 아닌가 라고 대답했던 것처럼 그/녀들은 전혀 '광신도'가 아니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살레츨의 분석은 사회주의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체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자본주의-자유주의/사민주의를 지탱하는 것 역시 냉소주의이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누군가의 용어를 빌자면 '시장전체주의')는 바로 이것으로부터 나온 초-자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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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0/22 14:48 2008/10/2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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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행복

2003년쯤에 쓴 글.

아마 한창 지젝을 읽던 중에 쓴 것 같다.

얼마 전 한 새내기가 이랜드 노동자들 앞에서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라고 발언하는 걸 들었는데

문득 옛날에 쓴 이 글이 생각났다.

 

지금이라면 약간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젝이 여기서 설정하는 진리/행복의 대당은

결국 칸트의 의무/행복 대당에 기초한 것일 텐데

그것은 본래 '행복'이라는 욕망에 눈이 멀어 봉기를 일으킨 프랑스 혁명의 대중들을

꾸짖기 위한 도식이기 때문이다.

행복과 일상이라는 문제, 대중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고민이다.

내가 지젝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

내가 계몽주의적 경향에 끊임없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후기 알튀세르('이론의 이중적 기입')와 스피노자에게 동의를 보낸 것도 결국 그 때문이다.

 

다만 행복/일상의 언표 역시 계급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내고

상대적으로 지배 계급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은 자들이 저런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대개 반동적이다. 그냥 '착실하게' 살았다면 나에게도 가입 기회가 있었을 지배 계급

의 유혹과 아직 싸우고 있었을 때였으므로

나에겐 저 처방이 필요했다. 물론 앞으로도 '타락'을 막기 위해서는

항상 필요한 처방이기도 할 것이다.

 

------------

 

행복을 얼마간 부정적인 뉘앙스의 '일상'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국한시킨다면,
진리와 행복은 모순적이거나 심지어 적대적이지 않을까.

노동자가 마르크스주의를 배우는 것, 여성이 페미니즘을 배우는 것이
행복이 아닌 것처럼.

2001년(이었나...?)을 뜨겁게 달궜던
대우차 파업의 와중에 있었던 한 해고노동자가
이제 복직이 되어 다시 한 명의 '가장'으로 설 수 있었을 때
그의 가족에 흐르는 그 행복을 TV 다큐멘터리에서 스쳐가듯 목격했을 때
나는 까마득함 같은 걸 느꼈다.

그와 그의 아내, 자식들을 '속물' 따위로 바라봤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다만 진리와 행복 사이에 존재하는 그 거대한 간극 앞에서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다.
그/녀들에게 '진리'를 말한다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에 대해서
내가 너무 고민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럴진대, (쁘띠 이상의) 부르주아와 남성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을 배운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문득 이리가레의 'Speculum'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의 책을 펴들었을 때
나는 남성 및 가부장제에 포섭된 여성에 대한 거의 완벽한 사고가
프로이트와 그의 (이단을 포함한) 후계자들에게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성이 페미니즘에 대해 안다는 것에 대해 나는 그동안 너무 간단히 생각했다.
일반적인 기준에 비추어 별로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서
별로 누리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남성성에 내가 어떤 식으로 포섭되어 있는지를
머리 속에 들어왔다 간 것처럼 꿰뚫는 그/녀들 앞에서
나는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의 진리는 나의 일상과 행복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마 곧, 혹은 이미 지금이나 과거부터
진리에 대한 본격적 저항이 발동할 것 같다는 예감.

진리는 파괴적이다.
진리는 비타협적이다. 따라서 진리는
잔혹하다.
그것은 따라서 행복의 반대편에 있거나
적어도 행복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진리는 그것에 고유한 어떤 행복을 분비하지만
그 행복은 진리를 부인하며 구축된 질서의 그것에 비하자면 너무 미약하다.

따라서 진리에 충실한 사고/정치가
붕괴론(혹은 비극)과 친화적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일 진리를 따른다면 그것은
기존의 행복에 대해 더 '우월한' 행복을 진리가 약속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기존의 행복이 불가능해졌고
새로운 행복을 기초할 수 있기 위해 다시 진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기 때문에.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정치적 진리/사건이었던
10월 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므로 나는 행복을 비웃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것의 붕괴를 재촉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의 불가능성을 가슴 깊이 슬퍼하고
새로운 행복을 기초짓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어떤 잔혹을 거부하려 들지 않기만 할 것이다.
그것이 행복을 해치는 것이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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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8/10/22 14:07 2008/10/2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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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잖아 비가 오면 바다 정도는 생긴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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