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시행착오의 시간을 포함시켜야 한다.
원래 진도대로 되면 좋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대로 됐던 적이 없다. 전 날엔 너무나 유망하고 탄탄했던 길이
다음 날 보면 완전히 잘못된 길로 판명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때로는 며칠 동안 간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단 한두 시간만에 독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잘 풀렸던 때를 기준으로 계획을 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을 많이 들인다고 해서 작업이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즉 작업이 선형적이고 단계적으로 진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득 작업의 리듬이 빨라지는 그 순간, 사람들이 흔히 '사건'이라고 부르는,
예견할 수 없고 우발적인, 때로는 아예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과 마주치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물론 들인 시간과 그 순간과의 마주침 사이에는 필연적 관계가 없다.
어떤 이는 하루 만에, 어떤 이는 한 달 만에, 또 어떤 이는 한 해 만에 그 순간과 마주칠 것이며,
여기에는 개인의 능력도 다소간 영향을 미치겠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사실 '운'이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을 많이 허비할 줄 알고, 그동안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알튀세르는 『맑스를 위하여』에서 (아마도 『에밀』의) 루소를 인용하며,
'시간을 잃는(lose time) 방법을 아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대학 시절 선배들에게 들은, '모든 이에게는 방황할 권리가 있다'라거나,
'대학교 1~2학년 때는 뭐를 해도 뻘짓이니 '그때 더 잘할 걸' 같은 생각은 하지 마라'
등의 얘기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들은, 앞서 루소를 언급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넓은 의미의 '미성숙/미성년자'의 교육에 주로 관련된 것들이고,
서른이 넘은 시점에 스스로의 갈팡지팡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기엔 좀 낯뜨겁다.
그렇긴 해도, 적어도 나의 경우엔, 이 같은 미성숙 상태가 일종의 상수인 것 같으며,
따라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시간을 잃어야 할 것 같다.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어쩌면 이게 나에게 있어서는,
시간을 버는 나름의 방식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Posted by 아포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