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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들이 한미에프티에이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소비자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즉 소고기와 오렌지 등 미국산 값싼 농산물과 이전보다 값이 하락한 미국산 자동차를 소비할 수 있으면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이익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명목소득이 한미에프티에이 체결 전과 동일하게 상승하는 가운데 수입물가가 싸져 실질소득이 체결 전보다 더 많이 상승한다는 것인데... (실질소득증가율=명목소득증가율-물가상승률)
이는 결국 (생산=소득)의 실질성장률의 문제다. 소비자 문제를 생산 및 소득과 따로 독립해서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실질성장률이 체결 이전보다 이후가 더 높아지냐 낮아지냐다.
우리의 판단으로는 국민총생산이 이전보다 더 높아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국민총생산은 물론 국민전체를 한묶음으로 본 것이고 계급계층별로 나눠서 볼 수도 있고, 응당 운동진영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민소비자들은 명목 소득은 줄고 약값이나 다른 서비스요금 증가로 인해 실질소득은 현저히 하락할 것이다. (정부의 피해대책이 얼마나 실효가 있겠는가?)
노동자소비자들도 새로운 이농인구에다가 경쟁격화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실업인구가 많아지면 당연히 임금이 체결 전보다 더 적게 인상되거나 정체되거나 혹은 비정규직화로 임금이 오히려 줄어들거나 아니면 실업자가 되어 아예 임금이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노동자소비자들에게 소고기와 오렌지 등 일부 농산물의 가격하락은 소득의 하락 혹은 정체 혹은 미미한 인상에 비춰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즉 실질 소득이 이전보다 덜 상승하거나 오히려 하락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약값 등 다른 서비스요금 상승도 고려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반면 초민조적 금융자본에 편입된 일부 고소득계층소비자들은 (명목)소득은 소득대로 증가하고 물가는 물가대로 싸져 실질소득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즉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소비자 문제는 독자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질소득 문제고, 더 자세히 보려면 계급계층별 실질소득 문제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실질소득증가율이 이전보다 더 높아지기 힘들어 소비자전체로서 체결이전보다 더 이득을 볼 것이라 장담할 수 없고, 그 중에서도 노동자농민소비자들은 더더구나 그렇다. 한미에프티에이를 두고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고 있는가를 보면 소비자도 단일한 집단이 아님이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소비자문제는 또다른 영역이 있다.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 등이 그것인데 그것은 여기에서 논외로 하였다. 부르주아들이 이야기하는 소비자문제를 주로 살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들이 개방(세계화로의 편입)은 언제나 잘되었다고 하면서 이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런데 아래 구조적 위기 아래에서의 금융세계화와 관련된 것이지만 개방이 어떤 시기에 이루어지는가를 살펴야 한다.
미국주도 세계자본주의가 구조적 위기에 빠진 이후, 즉 70년대 말 이후의 개방,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개방은 그 이전의 개방의 효과와는 다르다는 것을 살펴야 한다. 전자의 경우 금융세계화에서 집적보다는 집중이 이루어지는 시기고, 후자와 관련해서 미국은 일본을 비롯한 한국 대만에게 자신의 시장은 열어주고 이들 국가의 시장개방공세는 자제하는 정책(역개방정책)을 펼쳤는데 이들을 대 사회주의권(중국, 북한) 전시장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암튼 80년대 이후 남미나 90년대 이후 한국의 세계화로의 편입(개방)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야 한다. 한국의 97년 위기가 80년대말-90년대 초반의 관세의 대폭적인 인하 및 금융자유화와 무관하지 않고, 2000년대의 장기불황이 97년 위기를 계기로 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대대적인 편입과 무관할까?
정부과 조중동에서 대원군 시기의 쇄국정책과 현재의 한미에프티에이 반대운동을 유비하는 것은 그래서 터무니없다.
그렇다고 문을 지금수준에서 닫아야 한다, 혹은 적당한 개방을 하자는 것은 아니고 지금시기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한국경제의 위기극복수단이 되지 못하고, 민중들의 삶을 더욱 더 나락으로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며 그래서 다른 수단(생산관계의 변혁)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방과 쇄국(혹은 적당한 개방)사이에 어느 하나를 취사선택해서는 안되고 투쟁과 대안의 세계화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 "한미에프티에이는 퍼주기협상이다"에 대해.
이 말엔 한국 산업이나 시장을 지키고 미국시장을 더 열었어야 한다는 함의가 있다. 그러나 미국 시장은 원래 거의 열려 있고(관세율이 낮고 투자가 자유화되어 있다) 섬유 등 일부에서만 닫혀 있다(관세율이 높다). 그리고 무역은 모르겠지만 투자는 미국 등 중심부 시장에 들어가 봤자 별 이득을 못본다(캐나다 가서 현대자동차가 손털고 나온 사례가 있다). 그리고 대 미국 투자를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본의 주장일수는 있어도 노동자 민중의 주장일 수는 없다. 한국의 대미투자는 기껏해야 미 재무성 증권 사서 싼 이자나 받고 미국 적자나 보충해 준다. 현대차 미 현지공장? 글쎄 성공가능성이 어느정도나 있을까.
또한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보호되고 있는 산업(대표적으로 농업과 일부 서비스업)을 지킬 의사가 없었다. 이것을 포기하고 다른 데 집중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퍼주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농업 및 일부 서비스업을 포기하면 다른 제조업이 새롭게 성장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피해 산업에 대한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해야하지만 비교열위산업 포기해도 다른 부문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사례를 통해 증명해 내야 한다. 그래야 현 지배세력을 결정적으로 패퇴시킬 수 있다. 구조적 위기하의 금융세계화가 단서가 될텐데 더 풍부화해야 할 것이다.
-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기까지는 북한정권의 굴복에 가까운 사태변화가 있어야겠지만 이런 사태가 발생해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는다 해도 그것이 남 북 노동자에게 좋을 것 하나도 없다. 북의 노동자는 저임초과착취를 당할 것이고 남의 노동자는 (중소)제조업 공동화로 고용불안을 더욱 심하게 느낄 것이다.
- 한미에프티에이의 세계적 맥락
한미에프티에이는 일본 중국 EU 등의 지배세력에게 경쟁적으로 미국 한국과 에프티에이를 체결하도록 하는 측면이 있다. 소위 '경쟁적 자유화'! 한 곳에서 에프티에이가 체결되면 상대적으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에프티에이를 체결한다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지역에서 여러 에프티에이가 시도될 가능성이 많다. 특별히 WTO 도하라운드가 거의 좌초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한미에프티에이 체결은 세계화를 열망하는 초민족자본들에겐 생명의 단비라 할 수 있다. 미 국제경제연구소 프레드 버그스텐은 아펙차원의 자유무역협정(FTAAP) 체결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WTO 도하라운드를 살릴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버그스텐은 한미에프티에이가 이를 위한 중요한 초석이라고 판단하고 있지 않을까? 한미에프티에이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강화시켜 주느냐 아니면 목숨줄을 끊어놓는 데 일조를 하느냐와 관련해서 한국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이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겠다.
- 반미 반부시와 관련해서
미주자유무역협정 중단과 이라크전으로 궁지에 몰린 부시(탄핵설까지 있다고 한다)를 한미에프티에이 성공은 결정적으로 살려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반미 반부시의 첩경은 노무현정권을 끌어내리고 한미에프티에이 체결을 막아내는 것이다. 일부 운동진영에서는 여전히 집회장에서 반미만 외치고 반노무현은 여전히 주저하는데 반미의 첩경이 반 노무현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자가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였지요, 아마! 이철 철도공사 사장도 그렇지만요. 암튼 백낙청 교수가 좌파 건달로 칭해지고 있네요. '중도적 변혁주의'를 주장했지요. '중도적 변혁주의'에 찬성하든 안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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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 칼럼] 한나라당식 "나도 중도" ‘중도’ 내세워 변신 꾀하는 낡은 좌파에 아첨하려 해 개방, 자유화, 경쟁 논리로 이들의 허상과 싸워야
한 신문과 여론조사 기관이 최근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나는 보수”라고 답한 사람이 “나는 진보”라고 답한 27.7%보다 많은 36.8%로 나타났다. 반면 “나는 중도”라고 답한 사람은 2004년의 46.2%보다 17.8%나 줄어든 28.4%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는 갔고, 중도와 진보가 대세”라고 하던 그간의 세평과는 한결 다른 것이라 시선을 끈다. 이 조사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범람하던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너무나 잘못 사용돼 왔다는 점이다. 예컨대 김정일을 ‘진보’ 쪽에 놓고서 그에게 호의적이면 ‘진보’, 비판적이면 ‘보수’라고 몰아붙였던 것부터가 심히 병적(病的)인 ‘사회적 스캔들’이었다. 한동안은 ‘용공(容共)’으로 몰릴까봐 전전긍긍하며 살던 이 나라에서 이제는 ‘보수’로 몰릴까봐 심지어는 한나라당 사람들까지 막차를 놓칠세라 “우리는 보수 아닌 중도, 우리도 김정일 환영”이라고 말하게끔 된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의 진풍경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런 엉터리 같은 시류를 상대로 “당신 보수냐, 진보냐, 중도냐?” 하고 묻는 것 자체가 헛발질 같은 우문(愚問)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보수’가 늘어나고, ‘진보’ ‘중도’가 줄어들었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의 패션이 또 한 번 바뀌고 있다는 징표일 수도 있다. 이른바 ‘진보’가 이제는 제대로 먹고 사는 일에 아무런 보탬이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렸다는 뜻일까? 하기야 ‘진보 10년’을 거치는 동안 왕년의 ‘진보 투사’가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 된 마당에 더 이상 “김정일을 포함하는 모든 좌파는 무조건 진보”라고 말하는 것은 철 지난 유행가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보수’ ‘진보’에 관한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은 전면적으로 폐기돼야 한다. 오늘의 시점에서 참다운 ‘진보’는 무엇인가. 한 가지 대표적 척도는 20대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취업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진보’다. 20대 실업률을 대폭 늘려놓은 남한의 얼치기 수구 좌파를 ‘진보’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오늘의 ‘수구’는 무엇인가? 국가 통제, 전체주의, 보호주의, 신판 척화(斥和)사상에 묶여 자유시장, 대외 개방, 글로벌 경제를 반(反)민중, 종속, 반(反)민족이라고 몰아세우며 김정일처럼 쇄국주의와 폐쇄경제(autarchy)로 나가는 것이 마치 진보인 양 우기는 시대 착오적, 교조적 좌파 건달들이 바로 오늘의 진짜 수구 반동인 것이다. 신판 수구 반동, 좌파 건달들은 사이비 민족주의와 계급투쟁을 내세워 젊은이들을 자기네 쪽으로 끌어가거나 그게 잘 안 되면 ‘중도’에라도 붙잡아 두려는 꾀를 부리고 있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우파는 수구, 좌파는 진보”라는 터무니없는 ‘유사종교’에 현혹당해 왼쪽으로 기우뚱했었다. 그러다가 좌파 건달들의 마각이 드러나면서 그들 중 상당수가 ‘중도’로 옮겨 앉았다. 그러자 요즘 와서 좌파 건달들은 ‘진보’ 소리를 입 밖에 잘 내지 않으면서 그저 적당히 ‘중도적 변혁주의’ 운운하며 얼버무리는 전술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중도’조차 2년 사이에 대폭 쪼그라졌다는 것이 이번의 여론조사 결과였던 것이다. 2007 대선(大選)에서 비좌파가 승리할 수 있는 관건은 따라서 이 ‘우경(右傾)하는 중도’를 더욱 더 ‘탈(脫)좌파’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한나라당식으로 ‘나도 중도’라는 따위로 시세에 아부하는 것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다. 오히려 ‘좌파 국가 통제’를 타파할 더 과감한 자유화, 자율화, 개방, 경쟁력 강화만이 더 많은 일자리와 복지와 국부(國富)를 보장한다는 당당한 논리로써 ‘추상만 있지 실체는 없는 중도’를 먹어 들어가는 것이 첩경이다. 승리는 싸우는 자의 몫이지, 주눅 든 자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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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들은 항상 부끄럽지만 이번이 특히 더 그렇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