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노동자와 과학철학 IV
- 해민
- 2017
-
- 4차 산업 혁명 관련 자료
- 해민
- 2017
-
- 왜 양자역학에서 봄(Bohm...
- 해민
- 2016
-
- 무기력...
- 해민
- 2016
-
- 맑스가 사랑한 미분(수학)
- 해민
- 2014
오늘 모처럼 술을 마셨으니.. 한마디 해야쥐~~
우연히 회사 사람과 이런 저런애기하다가 문득 "그래도 자본주의가 효율적이다"는 말을 들었다. 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효율적이라고 느낄까?
대충 함 따져 보자 정말 그런지..
DRAM을 개발한다고 해보자. DRAM은 과거 IBM도 했고 TI도 했다.. 그리고 삼성도 하고 하이닉스도 하고 STMicroelectronics, 하타치, NEC, 도시바.. 요기다 대만업체까지 더하면 수도 없이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각자 숨어서 개발한다. 여기에 엄청난 연구비가 투자되는데, 먼저 개발한 넘들이 안 갈켜주기 때문이다. 감추는 비용은 상당하다. 각 기업마다 CIA와 같은 보안 그룹이 있고.. 마치 비행기 탑승장과 같은 x-ray투신기도 있다. 각 컴퓨터 마다 보안프로그램이 깔리고, CCTV나 RFID, 엑티브벳지 등 노동자 감시 기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 이런 쓰잘떼기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은 말하기 조차 싫다.
그래서 때로는 먼저 개발된 기술을 몰래 빼끼기도 하고(빼끼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빼긴 기술을 감추기 위해 여러가지 트릭을 쓰기도 한다(역시 많은 비용이 든다). 특허를 피하기 위한 기술은 또 어떤가? 쉽게 애기하면 쓰잘때기 없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자본과 노동자들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에 수백개의 기업들에서 이렇게 중복 투자와 함께 노동자들의 자유시간이 투자된다. 단지 쓰잘때기 없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이 게 효율적인가?
부가적으로 한마디 더 하면, 국내에는 국가과제를 좀먹는 날 파리들이 많이 있는데.. 물론 대학교에 많다. 이들은 우수한 두뇌를 가졌다고들 한다. (그 이유는 우수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지.. 지 잘나서가 아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정부 관료의 눈을 속여서 중복투자인 것을 숨기기 위해 과제의 제목을 머찌게 뽑는 일들을 한다. 제목을 머찌게 뽑으면 전문가가 아니면 중복투자인 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중복투자는 그렇다치고.. 이들 날파리들이 수행하는 연구 과제가 거의 모두 성공을하고 있단다.. 물론 그 성공이 거의다 거짓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눈감아 준다. 그것마져 없다면 대학교 교육은 완전 파산직전에 가기 때문에...
문제는 성공했다면서 .. 실제로 실패한 경험담을 숨기는 것에 있다. 수백억의 국가 연구비로 연구한 연구 결과(실패한 사례도 .. 그 연구에 진정성이 있다면 아주 훌륭한 결과이다) 중 가장 소중한 진정성 있는 연구 결과를 숨긴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연구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연구 윤리"어쩌고 하면서 날파리들을 욕하지 말자는 뜻임) 암튼, 수백억원의 국가 연구비가 투자 되지만 진정성있는 결과 하나 남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또한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다 아는 애긴데..) 지금 이 사회가 효율이라는 걸 따질때 빼 먹는 것이 있다. 두 기업이 경쟁해서 중복투자 해가며 기술 개발을 했고 한 기업이 승리해서 독점했다고 해보자. 이때 다른 한 기업의 노동자들은 쪽빡을 차고 서울역 한 귀퉁이에서 잠을 자야된다. 이 비용.. 이들 노동자들이 공교육, 사교육 해가며 들어간 비용도 있을 것이고 그동안 살기 위해 먹고 마신 비용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용이 모두 서울역 한 귀퉁이에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비용은 자본주의 효율성에 고려 대상에서 빠진다. 물론 패배한 기업에 들어간 연구비며 다양한 비용들도 다 고려대상이 아니다.
누가 반문을 할지 모른다. 그래도 자본주의에는 "경쟁"이라는 것이 있어 기술이 발전하지 않느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가 사회주의나 기타 대안 사회에서 "경쟁"이라는 것을 도입하지 말라고 한적이 있나? 맑스가 그런말을 한적있었나? 레닌이? 뜨로가? 내가 지식이 짧아서 인지 몰라도 없는 것 같다. 다른 사회(대안사회, 사회주의)에서도 경쟁하면 되지 않냐? 재미있는 경쟁도 많이 있다. 그러한 경쟁은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잘알 듯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효율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단 한가지.. 성공한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소유한 극 소수 자본가들만 보기 때문이며.. 자기도 그 자본가가 될 수 있다는 환상때문이다. 일종에 감정이입......
명확하다.. 자본주의에서 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 효율성이란 일종에 "구성된 효율성(만들어진, 각색된 효율성)인 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자...
미국 노동자들이 개발한 기술을 한국 노동자들이 그 기술을 이어 받아 다양한 곳에 적용해서 다시 공개하면 얼마나 좋은가?. 기존에 개발된 기술을 왜 또 개발해야 하나? X신 육갑트는 것도 아니구.. (술이 올라오니까 점점 본성이...) 이 짓이 비 현실적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그누 리눅스가 그러했고.. "과거"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러했다.
경쟁?
맘에 안맞는 넘들하고 같이 기술개발할 필요가 있을까? 따로 팀을 꾸려 맘에 안맞는 넘들 보다 먼저 개발해서 그 넘들 코를 납작하게 할 수도 있다.
날파리?
자신이 이 땅의 주인이고, 그 주인이 자신의 돈을 사용한다고 해보자.. 중복투자할 필요도 없고.. 중복투자를 받기 위해 날파리 짓을 할 필요도 없다. 또 실패를 숨길 필요조차 없다.
무임 승차와 보상(동기부여) 문제? 또 공유지의 비극?? (술깨고 추가함)
음.. 또 자본주의에서는 "무임승차" 문제와 "보상(동기부여)"문제가 없기 때문에 혹은 대안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효율적이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무임승차는 오히려 자본가들이다.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땅, 부동산 부자들이고 또 금융자본가들이다. 그들의 보상은 정당하며 효율적인가?
보상문제(동기부여)와 무임승차 문제 그리고 공유지의 비극이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유는
첫째로
개인의 본성을 이기적이라고 '선험적'(몰역사적, 자본주의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이기적이다라는 주장)으로 규정해 버리고.. 그 잘못된 규정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혹은 과학(?) 적으로 주입시켜.. 무임승차와 보상 그리고 공유지들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기적유전자.. 등등)
둘째로
"분배"라는 문제만을 보기 때문이다. 분배의 문제만 보면 어떻게 생산했는지는(또 생산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생산된 것을 어떻게 나눌 건지만 생각한다. 그러면 한정된 파이만 보이게 되고 이 파이를 찾이하기 위한 경쟁만을 생각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문제로 보인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도 문제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도 문제가 된다... 공유지도 문제고, 무임승차도 문제고 보상을 못받아서 담에 생산안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결국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자본가들(혹은 국가관료들)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일만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체로써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를 같이 참여하고 결정을 했다고 하면.. 그 속에서 혁신을 일으킨 사람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물론 여기에 관료주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동기부여가 보상으로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교환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사회가 아닌, "필요에 의한 생산"이 주가 되는 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한다. "필요" 자체가 동기 아닌가? 물론 개인 개인이 필요한 것을 각자가 생산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때 개인과 집단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주체들이 민주적으로 논의하는 그 과정은 개인과 집단을 (변증법 적으로<-- 사실 이 말이 쉽게 와 닿지는 않는다.. ) 묶어줄 수 있다고 본다.
또 공유지의 비극은 사라진다. 완전히 격리된 개인들에게 공유지를 맡긴다면 공유지의 비극이 있을 것이지만, 공동관리하고 계획하는 그런 공유지라면 공유지의 비극은 없어진다. 그리고 단 하나의 문제.. 노동자가 주체로 설 수 없게 하는 단 하나의 문제 "노동자와 자본가와의 문제"만 남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주인이라면.. 생산하든 하지않든 "굷어 죽지 않을 권리가 있는" 그러한 사회여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뭐 이만하자.. 글 적다 보니 화가나네.. (술먹은 다음날 다시 추가했음)
댓글 목록
앙겔부처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와 공유지의 비극 따위 날려버릴 수 있는.. 너무 잘 읽었어요!진철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http://en.wikipedia.org/wiki/Tragedy_of_the_commons (위키피디아)http://dieoff.org/page95.htm (1968년 Science지에 발표된 원문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용어는 1968년도에 Garrett Hardin이 The Tragedy of the Commons 이라는 윗 링크 글을 발표하면서 생겨난 개념이라고 알고 있어요. 글 자체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저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일단 하딩은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사유화가 아니라 공공영역에서의 통제라고 생각했구요, 몇몇 나라에서 자신의 글이 공공지의 사유화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깊은 우려와 반대를 표현했었어요. 하딩의 글은 sustainability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며 미국의 1960, 70년대 환경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구요.
'공유지의 비극'이 조작된 것이라는 말 뒤에 가지신 생각이 궁금해서 이렇게 댓글 남겨요. 물론 이 짧은 칼럼에서 더 깊은 고민을 보여주기는 어렵겠지요. 그렇지만 소유와 점유를 구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서 하딩이 글에서 보여준 농토 경작을 예로 들어 논리 전개를 시작한 공유지의 비극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실제적인 반론 없이 그의 의견을 '무조건 황폐해진다'는 식으로 몰아부치고 사실 조작된 것이라는 말은 억지 같아서요. 노동자 집단의 소유와 통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뭐랄까요.... 그냥 레토릭으로 들린다고 할까요.
더 배우고 싶어서 시비를 겁니다. 궁금합니다.
지각생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오우~ 반가운 목소리로군요 :)해민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글이 대문에 걸렸군요. 부끄~. 진철/자세한 comment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공돌이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 하시면 안됩니다. ㅎㅎ그런데..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애기는 사실, 공장이나 연구소에서
생산 및 기술 개발(생산)의 계획단계부터의 '민주적 결합'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자는 취지로, 이미 사유화 된 공장과 연구소 환경속에 이데올로기화 한 "공유지의 비극"의 논리를 깰 필요가 있을 듯해서 적은 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공유지의 비극에서 언급되는 기본적인 가정에 불만이 있습니다. "목동이 자신의 양을 최대화 하려고 한다는 점", "목동들은 서로 어떤 논의도 하지 않는다는 점" 이 두가지의 가정은 결론을 미리 전제한 한 듯한 느낌이 들고, 당시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중립적 과학을 가장한 <의식적/무의식적> 편들기?)
또 그 대안으로, 노동자 (민중) 집단의 소유(?)와 '민주적' 통제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요. 그러나 '개별적 주체'의 판단보다 공유지의 비극을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는 생각하며, (당연한 애기지만) 그러한 합의 구조가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들사람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진철님이 날카롭게 지적한 대목이 성가신 물어뜯기를 대비해ㅋ 보완할 여지가 분명 있다손 쳐도, 전체적인 논지는 두고두고 살찌워가야 할 만큼 소중하다고 봅니당.^^ 진철님의 지적성 질문도 아마 그래서 이뤄진 걸 텐데, 좀 딴 얘기지만 공돌이라고 하시니 더더욱 반가운 주장이군요.ㅋ사실 역사적 사회주의 블럭의 국가 소유가 사적 소유의 철폐라기보단 바로 그 사적 소유의 '집중화된 형태'와 별다르지 않았다고 본다면, '노동자들의 집단소유'란 말은 진철님 지적마따나 듣기좋은, 그래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레토릭이 되기 십상이다 싶어요. 이렇듯 국가소유가 사적 소유의 변종이자 형태적 연장이나 마찬가지였다면, '민주적 통제'라는 건 그 방법상의 실효성을 떠나 정작 토지와 건축물 등 기존 생산수단의 '사용'이 뜻하는 바와 관련해 (인식론적, 존재론적 단절을 수반하는) 노동자들의 '자기변화'란 어떤 것인지를 공백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돌아가야 할 기본 원칙' 같은 것도 확실히 아니지 싶어요. 때문에 설사 기본원칙이라 한들 막상 텅 빈 무엇에 불과할 테구요.
아무래도 중요한 건, (이미 자본화된) 현존하는 여러 생산수단들에 대해, '내 소유(혹은 특정 법인/문중의 소유)'라고 해서, 더군다나 그게 영속적인 이윤 창출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수다한 누군가에겐 당장 필요한데도 사용이 금지, 제한돼야 하는 식의 준칙이 적용될 수 없도록 하는 '사회적 힘'을 육성하는 일일 텐데요. 이러자면 우선 사적 소유와는 엄연히 구별되는 '개별적 소유'가 '필요에 의한 생산'을 장려하는 점유 개념과 병존할 수 있는 사용(과 활동)의 준칙을 '사적 소유'화된 생산수단들에 대해 적용, 개입시키는 집단적인 실천 기술과 의제들이 (아무래도 현장의 이른바 '생산직'/'기술직' 노동자들의 중지를 바탕으로) 고안돼야겠지요.
이런 관점을 따를 경우, 예컨대 쌍용차 집단해고 사태 같은 경우도, 실은 오래 전부터 과잉생산 조짐이 완연했던 자동차산업자본(가들)의 입지이전 및 노동유연화 전략에 대해 "자르지 마라!" 식의 수세적 총고용보장 요구를 넘어서서, 기존 생산수단/사업장의 용도를 이윤의 축적에서 살림살이의 축적으로 변환시킬 '급소'들을 건드리고 요구하는 식으로 주도권을 잡아간다는 '전망'도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았을까요? 쌍용차 사태가 끝난 게 아니라 앞으로도 도래할 상황을 암시하는 진행형인 사건이라고 하면, 이게 단순 가정일 수만도 없겠다는 생각입니다만.
해민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진철,들사람 모두 감사합니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만, 저의 욕심이겠지요? 아무튼 저의 생각도 조만간에 남기겠습니다.(입에 풀칠하느라.. 요즘 좀..ㅎㅎ) 지각생, 앙겔부처님도 반겨 주셔서 감사~紅知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와아~ 정말 정말 좋은 글 그리고 덧글 잘 읽었습니다...>.<쓰신 글을 의약품 쪽과 관련해서만 소화해 읽었습니다만...지난 2년간 푸제온 투쟁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것이, 의약품 운동이 이미 만들어진 약에 대해 가격 또는 공급량을 정하는 시점에서 시작되었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강제실시 청구 과정에서 국내에서 푸제온의 물질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 개발이 이뤄졌었고, 그러나 시장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해 사장된 사실을 알고 나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구요.
결국 약이 시장에서 나오는 시점이 아니라('분배'의 문제), 시장에서 나오기 전부터 개입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배분'의 문제?)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그 대안으로서 언급되는 국영제약회사 뭐 이런 것들, 거기에 왠지 심정적으로 동의가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무엇인지 본문 글과 덧글에서 잘 설명을 해주시네요. 여하튼 좋은 글과 논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