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노동자와 과학철학 IV
- 해민
- 2017
-
- 4차 산업 혁명 관련 자료
- 해민
- 2017
-
- 왜 양자역학에서 봄(Bohm...
- 해민
- 2016
-
- 무기력...
- 해민
- 2016
-
- 맑스가 사랑한 미분(수학)
- 해민
- 2014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Last Update 05 05 30
* 변증법
* 수학
1. 수학에서의 변증법 (강추)-변역중
양자역학의 시작
빛과 함께 당시 물리학자들 연구 대상은 물질의 구성과 관련된 원자의 구조였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가 원자라고 생각했었다. 원자는 영어로 아톰( Atom)이라하고 이 말은 그리스어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존재’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1911년 러더퍼드(Rutherford Birchard Hayes)는 알파입자를 금 박막에 충돌 시키는 실험을 통해서 원자 중심부에 양전하를 띈 원자핵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실험결과에 따르면 놀랍게도 원자는 99.9999999999%가 비어 있었다. 이것은 축구 경기장에 모래 알 크기와 유사하다. 이러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러더퍼드는 마치 태양계 행성과 같이 원자가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돌고 있는 모델을 제안한다(그림 참조).

그러나 이 모델에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러더퍼드 원자 모델에서는 전자가 핵 주위를 원운동 하고 있는데, 원운동을 하려면 전자가 지속적으로 운동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속도는 크기와 방향을 갖는 벡터(vector)양이므로, 크기는 같더라도 방향을 바꾸면 속도는 변한 것이 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속도가 변했다면 가속도 운동을 했다는 뜻이 되는데, 전자가 가속도 운동을 하면 전자기파가 발생해 운동 에너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운동에너지를 잃어버린 전자는 원자로 끌려들어가 붕괴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다.
원자 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보어(Neils Bohr)는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전이론과의 단절을 시도하였다. 그는 양자 개념이나 에너지 불연속의 개념을 원자 모형에 적용하기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정을 제안했다. 우선 원자에서 전자는 특정한 불연속적인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고 이 궤도에 있는 전자는 전자기파 방출과 같은 에너지 방출은 없다. 그리고 전자가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옮겨 갈 때는 궤도사이의 거리에 의존하는 에너지를 방출하거나 흡수한다. 이 모델로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여러 실험결과들을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가정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전자가 원자핵과 충돌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해답을 주지는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은 바로 프랑스 귀족출신의 과학자 루이 드브로이(Louis de Broglie)였다. 그는 박사논문(1924)에서 전자도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는 혁명적인 물질파이론을 내놓았다. 그의 지도교수는 당시만 해도 황당했던 이 박사 논문에 대해 학위를 주기 어려웠다. 지도 교수는 귀족 출신인 점이 껄끄러워 직접 거부하지는 못하고 당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아인슈타인에게 논문 평가를 부탁했다. 그러나 이 논문을 본 아인슈타인은 오히려 드브로이의 업적의 중요성을 단번에 높게 평가하였다. 바로 다음해에 미국의 실험 물리학자 데이비슨(Clinton Joseph Davisson)은 전자도 광파와 마찬가지로 회절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해 드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물질파 개념은 보어의 원자모델에서 전자가 원자핵과 충돌하지 않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전자도 파동의 특성을 가지므로 원자핵 주의에서 '정상파'(standing wave)의 조건을 만족하고 있다면, 에너지를 잃어버리지 않고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서 원자 모형에 대해 안정적인 이론적인 틀이 완성되어 갔다.
그러나 당시에 고전역학에는 일반적인 입자와 파동의 운동을 기술하는 뉴턴의 운동방정식과 맥스웰의 파동방정식이 있었지만, 원자세계의 운동들을 기술하는 일반적인 운동방정식은 없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는 드브로이의 전자에 대한 물질파와 관련된 파동을 설명하기 위한 공식을 제안했는데, 이것이 양자역학의 본격적인 시작을 여는 유명한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다. 이 수식으로 원자 주의에 전자가 존재할 수 있는 에너지 준위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도 원자에서 빛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여러 가지 패턴을 설명할 수 있는 양자 형식주의(formalism)에 대해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 결과로 추상적인 수학적 형식주의를 통해 슈뢰딩거의 방정식에서와 같은 행렬역학을 발표하였다. 이후에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은 수학적으로 동일함이 증명되었다.
수학적 형식주의는 수학을 완전히 형식화하자는 태도 즉, 수학에 쓰이는 모든 표현을 의미가 없는 기호에 의해 어떤 규칙에 따라 나열한 묶음으로 보자는 태도이다. 형식주의는 공리를 세우고 그 공리계가 완전히 모순이 없다는 것을 기호조작을 통해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완전 무모순성에 대한 증명은 1931년 괴델에 의해 깨지고 만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형식주의를 무척 싫어했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참고)
사람을 구분짓는 것은 나쁜 짓이지만, 양자역학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양자역학에는 두가지 흐름으로 나누면,
(원래 나뿐넘과 착한넘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면 이해하기는 좋다..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렇게 구분하는 것은 나쁜 짓이며,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점을 꼭 기억해 두자. 암튼, 한번 나누어 보자.)
우선 한쪽은 Max Plank-Einstein-de Broglie-Schrodinger로 이어지고 (실재론)
나머지 한쪽은 주류쪽으로 Niels Bohr-Heigenberg-Born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증주의)
이들 두 경향의 대립은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있다.
/* 이 글은 [현장에서 미래를]에 실린글이며, 정보운동포럼에 발제할 글입니다.
읽어 보시고 의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자본주의를 넘어선 반-저작권 투쟁을 위해서
현장에서 미래를 107호
개작1) 김영식
저작권법이 전면 개정된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부는 개악을 하고 노동-사회단체는 반대 성명서를 낼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또 개악을 할 것이고, 그리고 노동-사회단체들은 또 성명서‘만’ 낼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될까? 정부나 자본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자기네들 세상이니까 자기들 이로운 대로 하는 것은 논리에 모순이 없다. 그렇다면, 정부나 자본이 그 짓을 못하게 할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난 노동-사회단체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1, 2년도 아니고 매 해 분위기가 이렇다면, 혹시 아직도 저작권법에 미련이 남아 있어서가 아닐까? 만약 그 미련이 (민중가요를 떠올리며) 저작권법이 없어진다면 무명의 창작자들이 그나마 있던 법적 보호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우려에서, 그리고 또 저작권법 반대 투쟁 대신에 불법복제 마구하는 것이 더 나은 반자본주의 투쟁이 아닐까라는 좀 더 색다른 고민에서 나왔다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발전적이다. 사실 고민이 없거나 여기서 무관심으로 끝내 버리것이 더 큰 문제이다. 아무튼 우리는 이런 고민을 더 확장해야한다. 저작권법이 아니라면 무명의 창작자를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창작자를 보호하면서 공유(분배)를 하는 방법은 없을까? 또 불법복제를 마구하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이 나올까?
1) 이 글은 참고문헌 중 ‘Copyright/Copyleft :The Myth of Copyright‘의 글 일부를 번역하여 재구성한 글이다.
권위(authority)적인 낭만적 저자(romantic author)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 저술활동은 매우 지엽적인 활동이었다. 복사를 한다는 것이 원본보다 대부분 부정확했기 때문에, 널리 퍼질 수가 없었다. 강호의 고수들이 최신 권법이 적혀있는 원본을 두고 싸운 이유도 바로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쇄술은 많은 부분에서 혁신을 가져다주었다. 복사는 더 쉬워지고 정확해졌고, 복사된 책들은 활발하게 대중들에게 배포되었다. 또 인쇄술은 정보를 저장하고 복사하고 사용하는 것에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이렇듯 인쇄술을 통해 과거 정보가 축적됨에 따라 사회의 각 발전은 확실한 과거의 토대위에 건설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가 오래된 것 보다 더 개선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거의 것을 개정하고 개선하여 더 높은 발전이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인쇄술은 새로운 읽을거리를 찾는 대중들의 공간을 형성하게 했다. 인쇄술의 발달은 예술이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신비적인 분위기를 소멸시키면서 대중의 비판적 수용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독서 대중들은 원본이든 복사본이든 정보를 요구했고, 정보의 소유자와 주요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저작권 역사학자 마크 로즈(Mark Rose)에 따르면 “지적재산권이 공식적인 제도가 되기 전에도 문화 생산의 상업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도서 시장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당시 시장은 길드(guild)의 조직인 영국 도서출판조합(the Stationers' Company)에 의해 독점되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지방 출판사들을이 출현했고, 이들은 독점 조합을 위협하였다. 또 증가하는 독서 대중들을 위해 값싼 복사본을 편찬하며 산업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지방 출판사의 범람에 대해 문학계와 예술계는 ‘산업혁명의 병’이라 부르며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저자의 개념을 독특하고 초월적인 존재, 창의적 영혼을 갖는 존재로 묘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념을 흔히 낭만적 저자(romantic author)라고 하는데, 예술가들은 상품화할 수 없는 가상의 자아 속에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예술가의 독창성은 외부와의 관계없이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 끄집어 올려지는 것이다. 예술가 개인은 독창적인 개성과 정신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예술가들이 창조한 작품이기에 독창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대중 상품이 확대되는 속에서 그들의 개성을 구별하였다. 그리고 이 낭만적 이론은 당시 널리 퍼져 있는 재산권 교리와 합쳐진다.
존 로크(John Locke)는 개인은 노동을 통해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부터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한다고 했다. 이 이론은 왜 토지를 포함해서 공유지를 개인이 전유해야 하는지를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론으로 중요하게 주목받았다.
런던에 있는 출판사는 이 ‘소유권을 갖는 현대적 저자’ 개념을 지방 출판사와의 분쟁에서 무기로 사용했다. 즉, 런던의 출판업자들이 지방 출판업자들의 출판행위를 견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법률상 영구 권리를 갖는 ‘저작자’라는 법적 개념을 창안한 것이다. 이 경우 저작자의 권리와 그들 사상의 개별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조장되었다. 이것은 1774년에 유명한 Donaldson v. Beckett 판결에서 절정에 이르렀는데, 이 판결에서 모든 주장이 저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실재 저자는 관여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루어 졌다.
이 판결은 당시 개인적인 후원에 의지했던 저자를 독립시켜, 저자의 저작물을 자유시 장에 자유롭게 팔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모든 저자는 출판하기 위해 출판사에 권리를 양도해야 했기때문에 저자권의 원초적인 수혜자는 출판업자들이었다. '소유권을 갖는 현대적 저자‘개념은 사실 출판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완곡한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개념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로 나타났는데, 사회가 지식의 소유권을 인식하는 방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저자상의 성과는 개인의 기여가 공동체 지식의 개념을 훼손하고 개인의 개념을 소유자로 알리는 그런 지식생산의 특별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재산권 이론에 구겨 넣어 버린 지적 생산물
당신과 내가 사과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서로 교환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나와 당신은 각각 하나의 사과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과 내가 하나씩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서로 교환 한다면 우리는 두개의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버나드쇼
지적 생산물에 대한 재산권은 많은 부분 로크의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로크의 이론에는 세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첫 번째로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소유한다. 두 번째로 자연 상태에 있는 모든 것-아직 소유되지 않고 공유지로 남아 있는 것-은 신이 소유하라고 준 것이다. 세 번째로 노동으로 자연 상태의 것을 소유한다. 그것은 노동으로 사물에 가치를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크에 따르면, 만약 A가 자연 상태에 있는 것에 그의 노동을 가한다면 그 것은 A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저작권에 대해서 말하자면, 작가가 공유지에 있는 생각을 가져와서 그것에 노동을 더해 작품이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공유지에 있는 아이디어들에 노동을 더했을 때, 왜 그 결과가 작가의 재산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로크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의 이론은 단지 재산권은 단순히 노동에 대한 보상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할 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자기 자신은 노동의 산물이 아닌데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크의 이론에는 다른 전제가 있어야 한다. 로크 이론의 핵심에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개념이 있다. 국가권력도 개인의 자유 보호에 제한된다. 이것과 관련해서 그는 다시 자기 자신의 소유를 가정하고 있다.
반면에 헤겔은 인간이 자연적으로 자유롭고, 그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고 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사람이 자유롭고자 하는 자기-모순적 과정과 객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자기 신체와 정신의 발전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자신을 자유로운 것으로 자각하고 이해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두 이론 모두에서 우리 자신의 소유권이 우리 신체를 자연적인 사물에 동화시켜 소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대이론이 제기되었다.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흥미있는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내가 가지고 있는 한 접시의 방사선 물질이 담긴 스프를 바다에 쏟아 부어 버린다면 그리고 이 방사선 물질이 전체 바다에 고루 혼합되어 퍼진다면 나는 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가?
헤겔은 그 바다를 소유할 수 없다고 답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인격(개성)의 표현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헤겔의 재산권의 중심 개념에는 인격(개성)의 발전시킬 수 있는 필수 요소이고 실제 인격(개성)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헤겔은 18세기에 문학작품을 쏟아져 나오게 했던 낭만주의 운동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
헤겔에 따르면 노동이 아니라 점유가 외부 사물을 재산화하는 행위이다. 이 점유, 혹은 점유하는 것은 3가지 방법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로 직접 물리적으로 붙잡아 버리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것을 만드는 것이고 세 번째로 자기 것이라고 표시하는 것이다. 이중 두 번째 방법이 우리가 관심있는 소유방식이다. 헤겔의 언급에 따르면, 재산은 인간이 스스로 세상에 알리는 하나의 표현으로, 개인의 의지와 인격을 객관화한 산물로서 그 소유주의 인격과 존재를 내포한다고 보고 있다. 즉, 재산은 곧 자기의 일부이며 자기표현의 수단이 된다. 이 것은 작품이 변질되거나 조각내어 훼손했을 때 저작권상의 작가의 권리를 반영하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저작권법에서는 ‘조각내어 훼손하는 행위’를 작품을 통해 보여준 저작의 인격(개성)을 침해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헤겔 역시 그런 행위가 어떻게 작가의 ‘인격(개성)’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게다가 낭만적 저자의 개념은 창작물에 대한 외부적 영향을 설명하지 못한다. 인간의 의지의 표현이라는 헤겔의 재산권 개념은 이 ‘작품’이 다른 여러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화가, 음악가, 작가 모두는 그들의 기술을 배우고 장르와 형식으로 구분된다. 예술가들은 모든 장면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작가들은 잡담 속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는 앞선 프로그래머들이 남겨놓은 모듈, 라이버러리에 크게 의존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작품’이 그들의 영혼의 표현으로 말할 수 있을까?
로크는 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에서 공유지를 재산권화하려는 욕망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자원이 공유지에 있다면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때로는 무시해버려서 그 유용성이 점차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양들을 지나치게 많이 방목하거나 혹은 전혀 관리하지 않으면 불모지로 될 것이다. 로크는 일단 자원을 공유지에서 가져와 사적으로 소유하면 그 재산의 주인이 그 가치를 보존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가정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재산권화의 필요성에 대한 이 이론이 무형의 아이디어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아이디어를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무시해 버린다고해서 사용가치가 떨어지는지 의문이다.
버나드쇼의 지식공유에 대한 인용은 단순하지만 효과적으로 정보 상품과 지식의 본성을 표현하고 있다. 정보는 고전적인 ‘실 자산’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유포시킨다고 하더라도 사용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정보는 정보의 특정 부분을 이용할 때 그 정보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비 경합2)’적인 상품이다. 그리고 어떤 정보의 일부를 사용할 때 그 정보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비-배제적’인 특성을 갖는다.3).
소프트웨어도 이러한 특성을 갖는데, 어떤 사람이 소프트웨어를 복사할 수 없게 하는 방법은 그 사람이 소프트웨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일단 접근이 허용되면 거의 비용 없이 복제할 수 있다. 게다가 복제를 해도 소프트웨어의 유용성 자체에는 어떤 영향도 주지 않고 또 원 소유자가 그 소프트웨어를 사용을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디지털 콘텐츠는 그것을 서로 나눈다고 해서 그 상품의 질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확실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재산권에 대한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저작권은 정보 기술의 발달에 의해 만들어지는 접근성을 통제라는 새로운 괴물을 키우는 쪽으로 고집스럽게 추동되고 있다.
저작권과 인센티브
저작권법에 대한 주요한 논리중 하나는 이 제도가 없으면 창작자들이 창작활동의 동기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가들은 경제적인 인센티브 없이는 새로운 작품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적재산권법에 의해 새로운 작품에 시간과 돈의 투자가 촉진되고 또이 법에 의해 많은 저자들이 작품 출판으로부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저자의 작품을 보호하는 저작권이 없다면 경쟁자는 상대방의 작품을 아주 낮은 비용으로 복사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작품을 직접 생산하기보다 타인의 작품을 규제 없이 ‘훔치’려고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려는 작가의 동기는 크게 줄어든다. 경쟁자가 타인의 작품을 복사하고 가격을 내려버리기 때문에 창작자는 그들의 노력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비용만 발생한다. 창작자가 그들의 투자를 복구할 수 있는 희망이 없다면 작품을 생산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 이익은 줄어들 것이다.
인센티브 없이는 작자가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도 살펴봐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저작권법이 그런 인센티브를 충실히 제공해 주는지를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작권법이 인센티브와 동의어도 아니고 또 창작자는 저작권법 없이도 창작을 한다.
우선, 출판할 시장을 형성할 희망이 아주 적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저작권은 가치가 없어 보이는 많은 작가들이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계속 집필하고 있다.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 그리고 동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위해서 작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도 저작권법칙과 인센티브는 관련이 없음을 나타내주는 많은 사례들이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는 저작권의 의미 있는 보호 없이도 문학작품에서 풍부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저작권은 있었지만 그들의 작품에 대해 초기에 한번 사례금을 받는 것 말고는 저자들에게는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당시 사례금은 작품의 교환가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익의 대부분은 출판사로 돌아갔으며, 심지어 작가는 출판비용까지 일부 요구받기도 했다. 또 거의 모든 작가들은 출판사 없이 출판할 수 없기 때문에, 저작권 보호는 대부분 출판사에 이익이 있지 저자들에게는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작권이 작가를 보호하기에는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더욱이, 지속적인 저작권법 개정에 따라 그나마 존재했던 저자들을 보호하기위한 조항은 축소되었다. 영국에서 1814년 이전에는 작품에 대한 저작권은 일정 기간 후 다시 저작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었다. 저자는 그의 작품에 대해 전유권을 갱신할 수 있고 저작권을 다시 양도하므로 써 확실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1814년 이후 그런 갱신기간은 사라졌고 저자는 저작권의 기구로부터 그 위치를 잃어 버렸다. 대부분 저자들은 한 번의 대가를 받고 저작권을 출판사에게 양도한다. 그 이후 저자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고 그리고 앞으로 판매에 대해서 어떤 보수도 받을 수 없다.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작품 저작권을 영화사에 양도했을 때, 영화사 측에서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인터넷에 자신의 작품을 올릴 때 대부분 자신의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다.
또 저작권과 다른 대안적인 형태의 인센티브의 존재한다면 저작권 보호만이 인센티브를 준다는 주장은 근거는 약해진다. 개인적 만족과 인정받는 것 등은 금전적이지 않는 인센티브에 해당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금전적 이익 없이 작품을 생산한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네루의 편지는 저작권 보호를 통한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니다.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작품으로 인식되면 그 명성과 가치는 책을 집필할 때마다 항상 따라 다닌다. 이러한 인센티브는 작가가 그의 작품에서 독점적 권리를 갖고 있든 없든 항상 가지게 된다.
실험: Street Performer 프로토콜
실제 저작권은 대부분의 저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데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저작권 없이도 작가에게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창작물은 공유할 수 있는 시도들이 있다. 대부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 Street Performer 프로토콜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많은 경우 시장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새롭게 재구성한다면 그 이상도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은 앞으로의 과제로 돌릴까 한다. 아무튼 좀 더 자세히 소개해 보자. Street Performer 프로토콜에서 저자(생산자)는 자신이 창작할 작품(소설, 음악, 소프트웨어 등)과 계획(시간)을 알리고, 적절한 기부액을 공표한다. 그러면 그 작품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요구된 금액에 필적하는 충분한 자금을 자발적으로 기부한다면 저자는 작품(생산물)을 생산한다. 그리고 창작된 작품(생산물)은 저작권의 제한 없이 디지털 형태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책을 집필하려할 때 책이 출판되기 전 혹은 집필하기 전 출판사 없이 다음과 같은 주문서를 자신의 웹에 올린다. '1천만원 기부를 받으면 다음 작품(생산물)을 공개할 것이다' 독자들은 작가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현재 얼마나 모금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 또 일정액을 기부할 수 있다. 작가는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봤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이 목표한 1천만원의 금액이 모였는지 여부이다. 그 액수가 다 모였다면 그는 책을 "출판"하거나 집필한다. 이때 "출판"은 단순히 "이용 가능"하다는 의미이지 서점을 통해 책으로 묶어 배포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렇게 출판된 책은 모든 사람들이 무료로 볼 수있다.
이 시스템에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개념의 '출판사' 즉 믿을 수 있는 제 3자가 개입할 수 있다. 즉, 출판사는 기부금을 예탁하여 적절한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 기부자들에게 다시 기부금을 돌려 줄 수 있게 보장한다. 이때 출판사는 디지털로 출판된 책을 off-line으로 팔 수 있다. 물론 이때 책값에는 제본비 등만 포함되므로 아주 낮은 가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출판사 Web 페이지에 제일먼저 디지털 책이 공개될 수 있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얻어진 평판(지명도)로 광고 등의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02년에 소프트웨어회사 NaN Technologies BV라는 회사가 부도났을 Blender라는 소프트웨어의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NaN Holding BV라는 회사를 새롭게 만들었다. 이 회사는 Street Performer 프로토콜과 같이 100,000유로(약 1억 3천만원)를 모금했다. 실제로 1,300이상의 이용자들이 각각 50유로(약 6만 5천원) 이상씩 기부하였고, 무기명 이용자, 비회원, 개인 회사 등 다양하게 기부되었으며 2002년 10월 13일 자신의 프로그램을 자유소프트웨어 규약으로 공개했다.
저작권과 무명의 작가
저작권에 왜곡된 이미지는 바로 가난하고 고군분투하는 저자들 즉 무명의 저자들의 작품을 해적질(무단복제)하고 표절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명확하게 정보공유를 주장하는 우리는 창조적 노동자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창조적 노동자들이 더욱 많이 인정받고 보상을 받는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기를 더 원한다. 그러나 저작권 시스템은 그렇지 않다.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저작권법이 정말로 무명의 저자들을 보호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가난하고 고군분투하는 저자를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계속 가지고 있는가? 그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작품을 생산한 원작자(노동자, 작가)와 그것을 소유한 사람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보지 못하는데서 나온다.
저작권법 학자 피터 자스지(Peter Jaszi)에 따르면, 저자권법은 현 경제 구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낭만적 저자와 같이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저작권법은 개인주의인 낭만적 저자의 개념과 정 반대되는 법률 즉 저자와 작품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법률을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일종에 아이러니이다고 말한다. 바로 '업무상 창작(work-for-hire)'라는 저작권법의 교리가 그러하다. 이 교리에 따르면 작품을 창작한 사람은 원저작자가 아니라 돈을 지불한 사람(회사)가 저자권자의 실질 소유자 즉 저자로 간주된다. 현재 저자권이 있는 많은 작품(생산물)들은 대부분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같은 직장내 한 부서에 앉아 낭만적이지 않은 저자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한 작품이 ‘업무상’ 만들어졌다고 할 때, 노동의 소외는 공식적으로 법적으로 완성된다. ‘작품’의 ‘저자’는 그것을 창조한 사람이 아니다. 법적으로 고용주의 권리는 창작한 노동자들에게 일정액의 보상금을 주고 그 창작물을 양도받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용주는 낭만적 저자 개념으로 합리화되고 있다.
두 번째로, 만약 출판사와 저자 사이의 계약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유명한 저자가 아닐 경우 계약자체가 절대적으로 일방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저자 개인은 전혀 협상력이 없기 때문에 출판사에 유리하게 모든 권리가 출판사로 넘어간다. 보통 해적질이라는 말은 저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말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 않다. 음악 판매 사이트인 T-Series에서, 무명의 가잘(ghazal, 인도의 고전음악) 음악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해적-유통망을 통해 풀어 줄것을 요구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음악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최대 음반회사 HMV가 그들의 작품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들의 작품이 대중 공간에 활동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해적질(불법복제)는 시장의 요구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책들이 해적판이 도는 것은 아니다. 해적판이 돌기 위해서는 특별하게 인기가 있거나 어떤 가격 한계에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해적판의 돌만큼의 위상에 도달했다면 그 저자는 더 이상 가난하지도 힘들게 발버둥치지도 않을 것이다.
최근에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이자 이 작품을 통해 가난을 탈출하고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된 J. K. 롤링은 해적판에 대응하여 그녀의 저작권을 강력하게 행사해서 화제가 되었다. 한 때 가난했던 그녀는 여러 가지 의미로 저작권 집행자로 그려졌다. 고군분투하는 이혼모(single-mother)로서의 그녀의 위상은 저자권이 가난한 무명의 저자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강력하게 심어주고 있다.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롤링은 모두를 기쁘게 한다. 그러나 그녀가 6번째와 7번째 해리포터 책을 낸 이후에도 그러한 이미지가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시기에 그녀는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저작료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돈나 역시 생계수단을 앗아 갔다고 불법복제를 비난하는 TV광고를 냈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소유한 많은 섬과 빌라들을 마음속에 떠올리기 때문에 그리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자본이 조절하는 불법복제
저작권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불법복제 때문에 발생한 경제적 손실의 통계치에 대한 것이다. 미국에 있는 소프트웨어 출판 연맹(Software Publishers Association)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 컴퓨터 응용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 때문에 거의 전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과 비슷한 액수를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60% 이상은 불법다운로드를 한 경험이 있다고 했고 이를 바탕으로 영상물이 2000억, 음반이 6000억대의 경제적 손실을 추산한다. 이러한 통계치는 하나같이 단서 조항이 붙는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의 정도와 그 불법복제에 의한 손실을 정확한 수치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들은 보통 아주 신빙성이 떨어지는 경제학적 가정에 의존한다. 불법복제물을 구입한 사람들이 불법복제가 없다면 모두 합법적인 복사본을 살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XP와 오피스의 불법복제 본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특히 대안적인 자유소프트웨어도 있는데도 모두 합법적인 복사본을 산다고 가정할 수 있을까?
하버드 경제학자 카를로스 오소리오(Carlos Osorio)는 좀더 면밀한 연구에서 불법복제 현상을 실험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비-경합적이며 준 비-배제적인 상품의 특성을 갖는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제3자가 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의 새 버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다. 일단 접근이 허용되면 그 소프트웨어는 거의 0의 비용으로 복제될 수 있다. 일단 복제가 쉽게 이루어지면 다른 이용자들이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 못하게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앞서도 지적했듯이 이러한 불법복제는 모든 자본가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다. "이렇게 불법 복제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집․간접적으로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전체 네트워크에 가치를 더한다."
그리고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자. 과연 소프트웨어 불법복제가 전체 소프트웨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어떤 소프트웨어 회사는 그들의 지적재산권을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하는가?
자본의 입장에서 해적질은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불법이든 아니든 이용자들이 매번 증가할 때마다 그 상품의 인기는 증가한다는 것이다. 카를로스 오소리오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확산과정에서 불법 사용자의 중요성을 설명하는데 직 간접적으로 네트워크 효과를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장이 미 성숙된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는 불법복제를 직간접적으로 도와주는데 역할을 했고 그것으로 인해 인센티브를 얻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체 이용자 관점에서 보면 소프트웨어의 불법 이용자들은 모든 이용자들에게 가치를 더하고 입에서 입으로 소프트웨어 확산을 촉진하는 대리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효과는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간접적으로 소프트웨어 회사에 부과적인 긍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
자본가들은 네트워크 효과를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예를 들어 [아래아 한글]과 [MS 워드]는 유사하지만 사용방법이 많이 다르다. 이렇게 사용방법을 서로 호환되지 않게 하면 어떤 한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면 다른 프로그램/시스템을 이용하기 힘들어 진다. 이것을 잠금 효과라고 한다. 여기서 해적질(불법복제)은 미개발된 시장에서 새로운 시장과 이용자 기반을 만드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그 기간 동안 잠금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개도국에서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지적재산권을 일괄되게 행사하지 않는다. 또 학교 내에 불법복제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의 죽음 : 자본주의를 넘어선 반-저작권 투쟁을 위해서
해적질(불법복제)은 분명 분배측면에서 진보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불법복제는 자본주의 사회에 일탈행로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자본주의 내에서 통제 조정되고 자본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여기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저작권을 둘러싼 투쟁에서 분배적 측면, 즉 이용자 측면에서만 본다면 자본주의를 넘어선 투쟁(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자(노동자)들의 투쟁과 결합되어야지만 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산자(노동자)가 단순히 결합한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는 말은 아니다. 앞의 글에서 대안적인 인센티브의 예로 생산자(노동자) 개인적 만족과 인정받는 것(명성을 쌓는 것)을 들었다. 여기에 함정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명성이 쌓이면 대부분 자동적으로 자본으로 이어져, 십중팔구 지배계급에 포섭된다.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 사회라면 접근권에 대한 차별로 나타나, 역시 새로운 형태의 지배계급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롤랑 바르트는 올바른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1968년에 「저자의 죽음」이란 글에서 문학 작품이란 완벽하게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선조들과 문화가 남겨놓은 것을 조립한 것에 불과하다며 저자의 권위(명성)를 허물어 버린다. 그리고 저자와 독자는 일방적인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니라 텍스트 속에서 서로를 찾고 만나고 텍스트를 즐겨야 할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민주적’ 결합을 강조한다. 맑스는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기존 계급질서의 전복과 함께 계급 자체를 소멸시켜야 된다고 했다. 이 말을 저작권 시스템에 적용한다면, 새로운 창작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현 저작권 시스템을 폐지함은 물론이고 저자를 소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저작권 폐지 운동이나 다양한 대안 운동에서 지향해야할 점일 것이다.
2)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있어 어느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의미
3) 배제성(excludability)이란 소유자에게만 사용이 제한될 수 있는가, 네 것 내 것이 구분이 되는가를 따지는 것이고 경합성(rivalness)이란 내가 사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양이 줄어드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참고문헌
1. Lawrence Liang, Atrayee Mazmdar and Mayur Suresh ‘Copyright/Copyleft :The Myth of Copyright’ Infochangeindia.org (2005)
http://www.countercurrents.org/hr-suresh010205.htm
2. 임상수, ‘지적재산권의 정당화에 관한 정보윤리학적 접근’ 한국비블리아 제 12권 (2001)
3. John Kelsey and Bruce Schneier, "The Street Perfomer Protocol and Digital Copyrights", First Monday, Vol. 4 No. 6 (1999)
양자역학의 좌파적 이해를 위해
노동자의 힘 77호
소문에 의하면 양자역학이 모든 결정론을 부정하고 있으며, 또 모든 물리 현상은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고 한다. 이러한 양자역학으로 일부 논자들은 맑스주의를 결정론으로 몰아세우기도 하고, 모든 인과론을 부정하며 맑스주의의 종말을 선언하기도 한다. 물론 그 선언 뒤에 남는 것은 ‘자본주의여 영원하라’는 이데올로기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양자역학에서 부정하는 결정론은 맑스주의에서도 끊임없이 부정해온 뉴턴식의 기계론적 결정론이다. 더욱이 맑스주의는 우연과 필연의 문제를 상호 배타적인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맑스 자신도 박사학위 논문에서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그의 후계자 에피쿠로스의 미묘한 차이가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는 신에 의해 창조된 완벽한 존재였고, 그것이 물질을 근본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에피쿠로스의 원자는 우연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기에 불완전했다.
또 다른 소문에 의하면 양자역학에서 진리는 오직 그것을 관찰한 때만 알 수 있어 자연의 객관적 실체가 부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해석을 추종하는 일부 물리학자들은 인간의 ‘주관적’ 의식 없이는 물질적 실체를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정확하게 레닌이 그의 책 [유물론과 경험 비판론]에서 포괄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바로 그 주관적 관념론의 관점이다.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양자역학은 오랜 기계론적 결정론을 파괴하였지만 여전히 정교한 예측과 결과를 만들어 내면서 80년대를 극소전자혁명을 21세기에도 지속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 양자역학의 해석을 둘러싸고 나오는 철학적 견해는 맑스주의를 근거 없이 부정하며 노동자-민중에게 유해한 관념론으로 이끌고 있다. 우리는 이 늪에서 맑스주의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맑스주의를 복원하고 싶지만 그 어려운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맑스주의 철학을 복원까지 한단 말인가? 난감할 뿐이다. 그래서 쉽진 않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과 같이 시도해 보고 싶다. 앞으로 관련 글을 필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jinbo.net/yskim) 혹은 노동자의 힘 기관지 홈페이지(www.pwc.or.kr)에 지속적으로 올릴 것이며(물론 지금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자 한다.
양자역학의 태동 : 빛에 대한 부정의 부정
빛이란 무엇일까? 기존의 물리학이 위기를 맞는 시기마다 빛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뉴턴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18세기 동안 빛이 작은 알갱이(미립자)로 구성되어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1678년에 호이겐스(Christian Huygens)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인 “빛에 관한 논문”에서 뉴턴의 ‘미립자’이론에 맞서 빛이 마치 파도처럼 전파되는 파동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 논문은 뉴턴의 그늘 아래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100년이 지나 토마스 영(Young)의 빛의 회절/간섭실험을 거쳐 맥스웰에 의해 빛이 전자기파임을 증명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19세기말 다시 빛에 대한 논란이 붉어져 나왔다. 과학이 막다른 길에 도달했을 때, 더 이상 그 사실을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토대는 혁명을 준비한다. 그리고 새로운 과학이 나타난다.
1890년대에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Max Plank)는 흑체에서 나오는 빛(black body radiation)의 독특한 물리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모든 물질은 자신이 온도가 높을 때는 빛을 내고 낮을 때는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물체(검은 물체)는 반대로 모든 파장의 빛을 내놓기 때문에 흑체 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방사하는 물질은 없다. 이러한 생각으로 물리학자들은 빛을 모두 흡수하게 고안한 검은 상자를 흑체라고 불렀다. 아무튼 프랑크는 흑체의 온도에 따라 내보내는 빛의 스펙트럼을 관찰하였는데, 흑체의 온도가 증가함에 따라 그에 비례해서 빛의 색이 변하지 않았다. 고전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1900년에 막스 플랑크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빛이 특정 크기를 갖는 다발(꾸러미, packet)로 가정 했고 이것을 '양자(quanta)‘라 불렀다. 이 이론은 뚜렷한 물리학적인 근거 없이 '운좋게 선택된 것'이었기에, 그는 그 근거를 찾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이론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905년 당시 24세였던 젊은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빛(전자기파)은 입자와 같은 에너지 다발로 구성되어 있다는 플랑크의 이론을 받아들여 금속판에 빛을 쪼였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자 현상을 정확하게 해석하여 발표하였다. 이후에 이 빛의 다발을 빛의 양자(quanta)화로 광자(photon)라고 불렀다. 이로서 빛이 다시 입자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빛에 대한 뉴턴의 입자 이론은 맥스웰의 파동이론에 의해 부정되었고 다시 이것은 막스 프랑크와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새로운 입자 이론으로 부정되었다. 처음 보기에는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듯 보이지만 다시 구식의 뉴턴 이론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질적인 도약으로 과학에서 진정한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댓글 목록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아... 이제 다음편은 언제 업데되나요? 기다리다가 눈 빠지겠슈... 포럼 끝나고 운전하신다더니 잘 다녀오셨나요? 언제 또 뵈야죠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그날 반가왔습니다. 술한잔해야 하는데..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사진속의 위인들,모두 좋은인이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나쁜넘이 될수있다.
요즘 정비공장에서 일하는데 차보다 사람을 더 정비하고 싶어진다.
아니 과학사 그 개념도 정비공장에서,다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은 편리함을 주었으나 오히려 계급역사의 가장 첨단의 지배의 수단이 아닌가?
과학의 증명에 대한 이론적 증명 그것이 수학이라면 그 공식이 인간의 머리에서 나왔을때 그것은 자연의 관계적 실재의 구성은 아니다.
요즘 세계경제의 금융정책의 과학성들을 보면 여러가지 이론적 모형이 수학이다.
이런측면에서 수학의 기본기 수학정석을 읽어보려고 했다.
나쁜넘들의 과학을 소멸하기 위한 필요한 과학 그리고 그것이 좋은넘들로 다시 기호화 하여 대안적으로 형성하는 과학주의 그 편에서 줄서기의 과학적 행세도 모두 나쁜넘들이 아닌가?
잠시 정비공장에 있다고 과학적 진리 그것마저 부정할수 있을까?
요즘 이러한 착각을 하면서 05년이 2011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