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메종 드 히미코> 와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들...

"나는 무언가를 완전하게 믿고 있다는 것이 왠지 꺼려진다. 댄디즘이 생겨나는 것 같아서. 댄디즘은 영화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몰아가게 만들고 그런 방식은 영화를 너무나도 재미없게 만든다. 영화는 그런 구차한 것이 아니다." - 이누도 잇신 감독 인터뷰 중에서... <히미코>는 3세기 중반에 일본의 규슈기역(긴키지역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에 있던 마마타이국(일본 최초의 국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의 여왕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일본 최초의 왕이기도 하지오. 그래서 남자이면서 여자이기도 하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옛 여왕의 일음을 빌려서 모종의 유토피아를 민든다는 게 너무 은유적인 설정이 아닌가요? - 씨네 21 블로그, <한 일본사람 눈으로 보는 한국영화> 중에서...


http://blog.cine21.com/trb?22098 씨네 21 블로그, <한 일본사람 눈으로 보는 한국영화>에서 번역해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인터뷰 -- 우선 이 영화가 언제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말해달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기획되기 전에 오시마 유미코(주=일본 만화가)의 "츠르바라츠르바라"를 영화화시키고 싶어서 와타나베 아야씨(주="조제"의 시나리오작가)에게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스토리가 미래를 다루기 때문에 미술부분에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 제2호로 멈쳐보렸다. 그런데 2000년말에 프로듀서인 그보타 오사무씨가 마니라에 있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양로원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이걸로 영화를 찍으면 어떻느냐고 제안해줬다. 나는 "츠로바라츠르바라"를 읽으면서 동성애자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서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오시마 사토코의 다른 만화중에 복권에 당점한 여자애가 아파트를 사니까 그 아파트에는 노인만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이야기의 동성애자판을 찍으면 어떨까 싶었다. 실은 그때 와타나베 아야씨는 따로 늙은 아버지를 간호하는 여자 이야기를 구성했었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한가지로 섞혀서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가 생겼다. 시나리오를 고치다가 먼저 "조제"를 찍게 되었으니 "조제"의 촬영이 끝나고 나서 다시 시나리오작업에 들어갔다. --왜 "츠르바라츠르바라"를 영화로 찍으려고 했느냐? 첫째는 내가 원래 오시마 유리코 팬이라서다. 둘째는 아무래도 내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워낙 "마음에 와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동성애자들이나 "둘이 지껄인다" "오사카 이야기"에서 그린 개그맨들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무슨 "해방된 사람들"처럼 보인다. 여태까지 스스로가 살아온 일반사회나 생활을 포기하고 다른 곳에 발을 내뎌야 한다. 거기는 힘들지만 자유로운 곳이며 동성애자도 그런 장소에 있다고 여긴다. 물론 이건 내 멋대로 상상한 것이지만. 아무튼 "츠르바라츠르바라" 준비 때문에 동성애자에 관한 자료를 많이 읽고 있었고 그것이 자연수럽게 "메종 드 히미코"에 결부되었다. -- 와타나베 아야씨보다 당신이 더 적극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커뮤니티를 무대로 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와타나베 아야씨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는 가족 이야기였으니까. 무대가 동성애자들의 양로원이 되어서 그녀가 처음에 생각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 것 같다. 나는 동성애자들의 자료를 많이 읽어왔기 때문에 그들이 억압당한 역사 같은 것을 다루고 싶었다. 그러나 와타나베 아야씨는 오히려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중요시했던 것 같다. 동성애자들의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가 잘 섞혀 있는지는 실을 영화를 찍는 동안에도 잘 몰랐다(웃음) 그러나 어떤 작품이 되는지 잘 알면서 찍기보다 훨씬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하루히코와 사오리가 성적 관계를 맺는 대목은 어떻게 생겼느냐? 와타나베 아야씨와 상의하면서 이 작품이 무슨 영화인지 모르게 되었을 때 나는 모종의 벽 같은 것을 타고 넘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대목이 필요했다. 진짜 동성애자들은 이 대목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 나와 와타나베 아야씨에게는 있을 수 있어 보였다. -- 크랭크인은 2004년 9월 25일인데 최종고를 쓰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뭐죠? 크랭크인 직전에 사오리의 어머니 이야기를 좀 더 강조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죽은 사람이 한 것이 영화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도 표현하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사오리의 어미니와 아버지가 이혼한 후도 가끔 만나고 있었다는 설정으로 했다. 양로원을 지운 아버지도, 성관계를 맺으려고 한 하루히코와 사오리도, 헤어진 전남편과 만났던 어머니도 "뭔가를 시도하려고 한 사람"이다. 어떤 결과가 되는지 간에 각기 입장에서 뭔가를 시도하려고 한 것이 중요하다는 매시지를 담은 영화라는 컨셉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 캐스팅에 관해서, 먼저 오다기리 조씨와 시바사키 고씨에 대해서 말해달라. 오다기리꾼 이외에 이 역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카르이 미라이(밝은 미래)"속에서의 그의 모습을 보고 너무 섹시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시바시키 고씨는 일전에 티비 프로에서 만났을 때 같이 작업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틀림없이 지금 가장 빛나는 여배우니까. 그런 사람이 사오리 같은 수수한 사람을 연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워낙 오다기리꾼이나 시바사키 고씨처럼 스타성을 가춘 사람이 좋거든. 그들이 지닌 빛이 영화를 리럴리티를 줄일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수수한 리얼리티에 빠지면 재미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스타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니시지마 히데토시씨는? "에일리언"속에서 '그들은 먹는 것도 사는 것을 생각할 뿐이다. 생물으로서 완벽하다'는 대사가 있는데 내 안에서 도장회사 상무는 그런 케릭터였다. 그런 역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니시지마 히데토시밖에 없다고 여겼다. 니시지마 히데토시씨에게는 스스로가 나오는 씬 이외는 대본을 읽지 않아도 관찮다고 했다. 물론 읽었지, 뭐(웃음) 아무튼 상무는, 예를 들어 "메종 드 히미코" 같은 영화가 티비에서 방송되고 있다면 곧 채널을 바꾸는, 그런 캐릭터다(웃음) -- 히미코(사오리의 아버지)역을 맡은 다나카 민씨는 언제 캐스팅했느냐? 가장 마지막이다. 제일 중요한 캐릭터인데 좀처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고민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일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무척 멋진 아저씨기 눈에 뛰었는데 그사람이 바로 다나카 민씨였다. "이것이 운명이다. 절대 거절당하지 않을 것이다"고 내 멋대로 생각해서 제작화사를 통해서 출연요청을 했는데 좀처럼 승낙을 받지 못했다. 다나카 민씨가 나를 만나서 결정하고 싶다고 하니까 야마나시형까지 만나러 갔다. 거기서 2시간쯤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더니 출연을 승낙해줬다. 게다가 다나카 민씨는 한번 동성애자를 맡고 싶었더라. 다나키 민씨는 나에게는 이상적인 배우였다. 카메라앞에서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를 가장 중요시하는 배우니까. --이 영화에는 진짜 동성애자도 출영한다. 양로윈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맡은 사람들이 모두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그중의 몇명은 진짜 동성애자다. "바디"란 잡지에서 공모하거나 동성애자의 배우나 게이 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결정했다. 나로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출연시킥고 싶었다. 만약 일본영화에 자주 나오는 조역배우가 나오면 관객들이 "이 사람은 실은 동성애자가 아니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다. 출연해준 사람들은 모두 다 평상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고생한 적이 없었다. -- 호소노 하루오미씨의 음악과 동성애자들의 의상담당인 기타무라 미치코씨는 당신이 직접 요청했느냐? 그렇다. 호소노 하루오미씨는 애니영화"은하철도의 밤"의 음악을 듣고 아주 마음에 들어서다. 같이 작업하면서 느낀 것은 멜로디뿐만아니라 음색 하나하나에 대해서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많이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호소노 하루오미씨는 거짓말처럼 착한 사람이다(웃음) 내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해줬다. 의상담당의 가타무라 미치코씨는 반대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해줬다. 그녀에 관해서는 그녀가 승낙해줬을 때 모두 잘 할 줄 알았다. -- 무대로 한 양옥집은 원래 레스토랑이라고 들었다. 시나리오에서는 러브호텔이라는 설정이었는데 나는 히미코라는 캐릭터와 건물 분위기가 일치되는 양옥집이라면 호텔이 아니라도 관찮다고 생각했었다. 스탭들이 찾아준 건물을 많이 보러 가봤는데 좀처럼 좋은 것이 없더라. 그래서 프로듀서인 그보타 오사무씨에게 좋은 집이 없다면 촬영을 그만두자고 했곤 했다(웃음) 막바지에 와서 조감독과 제작쪽 사람들이 그 집을 찾아줬다. -- 영화속에서 갑자기 행복감 넘치는 댄스씬이 나와서 놀랐다. 내가 워낙 그런 짓을 하고 싶어져서다. 그때까지의 묘사의 분위기를 거기서 부수려고 했다. 오다기리꾼에게도 시바사키 고씨에게도 춤추는 사이에는 캐릭터를 잊어달라고 했다. 그 장면 이전도 그 장면 이후도 상관없이 거기서 한번 관객들으로 하여금 기분전환시키려고 했다. 그 후에는 무거운 씬이 계속 나오니까.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나서 소감이 어땠느냐? 재미있었다. "조제"를 봤을 때는 실패한 데가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는 그런 부분이 있어도 왠지 마음에 안걸리더라.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이런 영화가 있어도 되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 발표 기사회견 때 당신은 "젊은이들이 봐줬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개인이 각기 뭔가를 시도한다. "메종 드 히미코"는 그런 "도중" 이야기다. 비록 그 시도가 실패해서도 뭔가를 시도했다는 행위가 남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젊은이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싶었다. 촬영의 비교적 후반부에서 "이 양로원은 가짜다"는 사오리의 대사를 새롭게 추가했다. 그 대사에 가짜일지도 모르지만 이 장소를 만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는 매시지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남자들은 조직을 만들어서 사회를 바꾸려고 한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끼리 모여서 집단으로 뭔가를 바꾸려고 하거나. 와타나베 아야씨가 쓴 시나리오속에는 그런 것에 대한 비판 같은 것도 느꼈다. 개개인이 나름대로 스스로의 벽을 타고 넘기 위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한다. 그런 시도가 결국 남의 가슴에 남는 게 아닐까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록이로부터의 전화

아파서 꾸역꾸역 전체회의를 버티고 있는 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잠깐 받았더니, 정록. "회의 중이라 조금 있다 내가 전화할께. 전화 받을 수 있지?"하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 전화 오기 전 확인한 메일을 통해서, 내일 재판 마치고 들어간다는 말을 들으니, 확실히 이제까지와는 다른 마음가짐이랄까. 이제 전화도 못하는 구나, 메신져에서 만날 수도 없구나... 연락 두절,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이 어쩌면 익숙할지도 모르는 동기들인데, 다행이다. "잘 다녀올께"하는 밝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다시 보자는 약속을 할 수 있어서...


․일상적인 유무형의 폭력이 만연한 곳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곳, 따라서 오직 번호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곳 ․생명까지 내맡긴 채, 철저한 위계와 폭압적 권위 속에서 살아야 하는 곳 ․여성에 대한 비하, 성적 대상화가 만연한 남성들의 공간 ․구체적 인간 개개인이 아닌 집단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곳 ․모든 시간이 오직 전투력 강화, 즉 살인기술의 강화를 위한 훈련으로 쓰이는 곳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는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 곳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반복하여 스스로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곳 ․그 결과, 인류 역사에서 있어왔던 수많은 전쟁(살인)의 행위자가 되는 곳 저는 군대를 이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병역을 거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와 같은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벌써부터 비난하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꽤나 극단적이군.” “가보지도 않은 군대에 대해서 안좋은 소리만 들었군.” “그 곳도 사람사는 곳인데...“ “저래가지고 사회생활 어떻게 하겠나.” 그렇습니다. 저는 군대 근처도 가보지 않았고, 사회와 군대는 꽤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민감하고 여린 사람들도 군대를 다녀온 것을 보면 군대가 사람 잡는 곳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군대는 사회의 폭력성, 남성중심성, 권위-위계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는 제 나름의 생활방식을 만들어가고 사회적 불평등, 폭력에 저항할 수 있지만, 군대는 둘 중 하나입니다. 거부할 것인지, 적응할 것인지. 적응하는 것, 익숙해지는 것은 저에게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고된 육체 활동으로 생각은 점점 적어지고, 군대의 살인훈련에 몸은 익숙해지는 것, 선임병이 되어 후임병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하는 것, 종국에는 전투명령에 저항하지 못하고 집단의 부속품처럼 살인의 행위자가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군대에 적응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성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군대의 폭력과 문화가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하고, 생명을 죽이는 어떤 짓도 하지 못할 것 같은 착한 사람이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군대의 폭력때문에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보다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입영영장보다 병역거부를 먼저 만났기 때문입니다. 병역거부를 선언한 저를 국가는 병역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감옥에 가두고 저의 양심을 교정하려하겠지만, 저는 군대를 거부한 저의 양심을 꿋꿋이 지킬 것입니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1만 명 이상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갇혔지만, 그들의 양심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회가 그들을 이단종교라고 매도하고 저와 같은 사람을 사회부적응자라고 비난하겠지만 군대가 존재하는 한, 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나올 것입니다. 비록 병역거부자들 한 명, 한 명의 힘은 미약하지만 제 목소리에 공감하고 군대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40년 전 베트남 파병군인은 멋쟁이 군인이었겠지만, 2005년 자이툰은 그렇지 않습니다. 군대는 남자라면 당연히 경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누구나 꺼려하고 그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집단이 될 것입니다. 2005년 10월 4일 오정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화발전기금 신설...

보도를 많이 접해서 아시겠지만, 영화발전기금이 신설된다고 합니다. 기금은 국고 2,000억 원과 영화상영관 입장료에 5%의 부가모급을 통해 얻어지는 2,000억원으로 조정하며, 국고는 2007년,2008년 2개년에 걸쳐 지원하고 영화상영관 모금은 관련법 개정절차를 거쳐 2007년 1월1일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현재, 문광부 장관의 기자회견문 이외에는 정확한 정보를 알 길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재까지의 정보를 가지고 간단한 분석과 해결해야할 숙제들... 규모와 성격 방송발전기금의 한 해 운용 규모가 2천 3,4백 억원 정도이고, 영화진흥금고가 1994년 부터 2003년 까지 10년 동안 모아 조성되었던 돈이 1,700억원 정도의 규모 (정동채장관이 언급하는 "국민의 정부 시절 지원 1,500억원" 포함)였으니, 4,000억원이라는 규모는 꽤나 큰 것입니다. 기존의 영화진흥금고가 주무 부처에서 관장하고 국회에는 보고만 하는 '금고'의 성격이었던 데 비해, 이번에 신설되는 영화발전기금은 '기금'의 성격이라, 기금관리기본법에 따라 국회를 통해 예결산 심사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익 구조, 기금의 운용 방송발전기금의 경우, 방송사업자들에게서 걷어들이는 법정부담금과 기타 수입을 합쳐 매 년 1,500억원 이상의 수입을 상정하고 있는 반면, 영화진흥금고는 수입 계획이 별로 없이 수 년 간 국고를 통해 조성되는 돈을 매 년 조금씩 쓰고 있는 형국이라 곧 고갈될 것으로 우려했었는데, 이번 4,000억원은 2년 간의 2,000억원의 국고 지원 외에 극장 입장료 수입이 상정되어 있어, 일정한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런데, 이 입장료 수입을 매 년 받겠다는 것인지, 2,000억이라는 숫자는 1년 입장료 수입을 따져서 나온 것인지, 2,000억 까지 모이면 그만 받겠다는 것인지,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극장 입장료에서 5%를 받아서 쓰겠다는 설정 자체가 사회적 합의(?)를 거친 것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난감한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겨레 기사에서는 극장 협회의 반발에 대하여 언급했고, 민노당의 논평은 아래와 같습니다. "문화주권을 얘기하는 영화계 인사들에게 돈다발을 던져 입막음 하겠다는 발상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거니와 미국의 협박에 굴복한 관료들의 무능함 때문에 관객들은 5% 인상된 영화 관람료를 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것 아닌가? 2천억원의 국고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돈이니 만큼, 결국 이 날치기 결정의 충격을 이완하는 가장 천박한 방식의 대책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국민들이 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다른 곳으로 쓰일 수 있었던 사회적 자본 4천억원이 이 억지스런 독단의 미봉책으로 쓰이게 됨으로써, 예기치 못할 불균형이 발생할 것까지 생각하면 그 여파는 일파만파인 셈이다." 극장 입장료에서 일정 퍼센테이지를 문예진흥기금으로 걷어가다가 폐지한 것이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는 어떤 원칙들이 논의되었는지, 이번엔 어떤 원칙과 과정에 의해 이러한 조성 경위가 결정되었는지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상업적 극장의 입장료 (극장과 제작자본의 수익구조)에서 일부를 떼어 기금으로 활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부담이 관객이 아닌, 극장 표를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 지워져야 할텐데요,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문화관광부에서 밝힌 이 기금의 사용처는 "-투자조합에 대한 공적자금 출자확대,저예산영화 제작 전문투자 조합 결성 등 영화산업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비주류 예술영화,독립영화,다큐멘터리에 대한 제작을 지원하고, 시네마테크 활동을 강화하며, 현재 10여개관에 불과한 예술영화 전용관을 100개관까지 늘려나가는 등 예술,독립영화의 제작,배급,상영을 지원함으로써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며 -해외진출 전략 센터 운영,해외공동 영화제작지원 등을 통하여 우리영화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미래 기술 환경에 대응하여 디지털 시네마 기술표준 확립 및 기술기반을 구축함과 아울러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영화 현장인력의 처우개선 및 재교육을 통상 전문성 제고 등 한국영화산업의 건강성과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종합적인 방안을 지원하기 위하여 사용될 것입니다. 재정지원 방안 외에도 제작,배급사와 극장간의 수익분배율 개선,영화제작투자소득에 대한 세제 혜택 부여 등 제도개선을 적극 추진하겠습니다." 위의 과제들은 사실, 영화발전기금이 있던 없던 영진위를 중심으로 추진되었어야 하는 정책입니다. 다만, 영화진흥금고가 고갈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재원의 출현은 반길 만한 일이지요. 하지만, 한겨레에서 인용한 오기민 대표의 지적 대로, "이전의 1500억원은 당시 아임에프 사태로 대기업의 자본이 영화계를 빠져나가면서 휘청거렸던 영화계에 적절한 보완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돈 자체가 아니라 자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가 관건인데 그에 대한 구체적이거나 새로운 내용은 전혀 없어 유감”이라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 같습니다. 스크린쿼터와 영화발전기금 문화부의 기금 신설 정책은, "스크린쿼터 축소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스크린쿼터와는 별 상관이 없는 정책인것을... 영화인회의의 성명은 “문화의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해 마땅히 했어야 할 의무는 이행하지 않은 채 이제 와서 스크린쿼터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의도로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거래(라고 하기엔, 영화계가 파트너로 참여를 못했으니 좀 아닌 것 같지만) 혹은 떡고물의 형태로 이 돈이 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떡고물을 가지고 정말 스크린쿼터와 그를 포함한 무역협상에 임하는 정부의 입장을 '호도'라는 것은 전적으로 반대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스크린쿼터라는 것이 원래 부터 국내 영화 산업의 경쟁력과 합리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던 것이라, 본격적 의미의 '문화다양성'이라던가 '공공성'을 논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발전기금'과 이 기금으로 수행할 수 있는 영화 발전 정책은 훨신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양한 측면으로 진행될 수 있겠지요. 진짜로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책들이 가능할 수 있다, 아니,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제 문화부에서는 " 구체적인 지원방안은 영화계 현장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여 빠른 시일내에 확정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책의 방향과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공공적'인 것으로 강하게 푸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영화발전기금이 정말로 스크린쿼터 축소에 따른 국내 영화자본 달래기 대책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장기적 시야 속에서 안정적으로 공공적인 영화/미디어 정책을 그려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