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음과 모음

아감벤의 말대로 장치들이 항상 주체화 과정을 함축하며 그것들의 주체를 생산한다고 정의된다면 나(아파트) 역시, 독특한 감각과 인지의 공간적 매트릭스로 인간 거주자들의 습속을 분절하면서, 그 결과로 '신중산층'의 독특한 정체성을 생산해냈다. (68쪽)

 

그녀(아내)는 내가 지는 현대적 공간의 질서를 가부장의 권위와 연결해주던 매개자였다. 나, 아파트에서 그 권위는 미처 뿌리 내리지 못했고, 사물들은 언제나 주부의 손길에 길들여졌다. (69쪽)


그녀들은 아파트의 크기가 암시하는 욕망의 한계치 안에서 전력을 기울여 '행복한 미래'를 약속해줄 시각 언어를 고안하고, 교환가능성의 논리가 감히 침투하지 못하도록 거실의 프레임 내부에 '화목한 가정'의 미장센을 연출하려고 애쓴다.


아파트가 하나의 거주공간이 아니라 사고양식이라는 것을 꺠달았다. 그것은 중산층의 사고방식이다. (84쪽)


이 아파트들의 거주집단 상당수는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추동한 민주화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거세지자 점차 급진적인 정치이념으로부터 등을 돌린채 "한국 사회의 이념적 좌경화를 막는 결정적인 방파제 역할"을 떠맡기 시작했다. (95쪽)


조세희는 문부식과 유사한 방향에서 젊은 시절의 우리 세대가 '민주화를 위한 저항'과 '산업화에 대한 순응'이라는 두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런 선택지가 우리 세대 전부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부모를 잘 만나 윤리적 감각을 거세하지 않고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던 이들에게는 그런 양자택일은 '양심'이라고 불리는 반성의 능력을 점검해보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112쪽)


중산층 가정에서 부엌 개량이 더뎌진 이유 중 하나는 값싼 노동력을 주부들의 가사업무를 돕던 식모의 존재였다.(252쪽)


점차 식모가 사라지고 거실 공간과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시스템 키친이 자리 잡자 이 두공간(부엌과 식당)의 분리는 오히려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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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5 22:57 2012/04/15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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