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수습사원과 비정규직2 - 비정규직은 나쁜 제도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직원 자르겠다고?

나는 2012년 9월 말에 보리출판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그 몇 달 전부터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때마다 번번히 나를 말리고 잡는 동료 가운데 한 명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감옥에서보다 회사에서 훨씬 더 많은 모욕을 느꼈어요." 동료는 놀라면서 그 정도냐고 반문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감옥에서는, 교도소장이 자기가 평생을 재소자 인권 운동을 눈 밖에 둔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되니까요." 

 

바로 전 글(http://blog.jinbo.net/stego/605)에서 나는 윤구병 사장이 우리를 공격하는데, 혹은 우리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진보적인 가치를 들먹인다고 쓴 적이 있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이 때문이었다. 맘에 안 드는 직원 징계하고, 못 살게 굴어서 쫓아내고, 수습사원 맘대로 해고하는 거는 나쁜 일이지만, 대한민국 많은 사장들이 하는 짓이다. 물론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윤구병 사장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노동자로서 분노할만한 일이지만, 원래 무딘 성격에 스트레스 잘 안 받는 내가 그것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내가 보리출판사를 다니면서 주로 분노한 것은 윤구병 사장이 하는 나쁜 짓 때문이 아니라, 나쁜 짓을 하면서 자기를 진보적인 사람으로 포장하는 위선과 나쁜짓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진보적인 가치를 들먹이 것이 너무나 역겨웠기 때문이다.

 

자기가 내린 (우리는 납득할 수 없는) 업무지시에 의문을 제기한 직원을 징계위를 열어 해고하려고 하면서, 바로 그때 yes24와 한 인터뷰에서는  "상사가 시키는 것도 바른 일이면 하지만, 바르지 않은 일이라면 하지 않도록 해야죠. 근데…… 상사를 안 두는 게 최고야. 위에도 밑에도 두지 않는 게 제일 좋아요" 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피가 거꾸로 솟아올랐다.  

 

위에 예로 든 사건과 더불어, 이번에 이야기할 것도, 내가 회사를 다니며 가장 화가 났던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을 겪고 난 뒤로, 나는 윤구병 사장에 대해서 모든 판단을 정리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어찌어찌 잘 하면 보리출판사가 좀 더 좋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일이 있은 뒤로는 윤구병이 사장으로 있는 한 보리출판사는 점점 끔찍한 곳이 될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1년 11월 어느날. 직원 한 명이 나를 찾아와서 회사가 비정규직 직원과 재계약을 안 할 거라는 사실을 말해줬다. 이유를 물으니 회사가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그게 비정규직 직원 때문인가? 회사 경영진이 경영을 못해서 어려워진 것을 왜 비정규직 직원에게 책임을 묻는가. 그리고 보리는 일 년 매출이 수십 억인 회사다. 직원 하나 자른다고 회사의 재정이 갑자기 풍부해질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노동조합에서 회사에 공문을 보냈다. 회사가 어렵다는데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모르니, 회사의 재정 상황을 공개하라고 했다. 그리고 재정 상의 어려움은 노사가 같이 풀어갈 방법을 찾자고 했다. 회사는 답이 없었다. 재차 답을 재촉했지만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그 와중에 6시간제 관련한 처음이자 마지막 전체 토론 자리가 잡혔다. 조합원들은 저마다 A4 용지에다 재계약에 나서라는 요구를  담아와서 들고는 토론회에 참석했다. 윤구병 대표이사는 우리와의 자리가 부담스러웠는지 변산으로 도망가고 참석하지 않았다. 노조의 공문에 회사가 왜 답을 하지 않느냐고 조병범 상무이사에게 물었지만, "답이 없는 게 답"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만 들었다. 

 

우리는 회사 밖으로 알리고 직접행동을 준비하기로 했다. 각자가 쓴 손피켓을 사진으로 찍어서 영상을 만들어 SNS를 통해 뿌렸다.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다. 뒤늦게나마 그 당시 마음과 힘을 보태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다. 12월 한 달 동안 어떻게 싸워나갈지 계획도 짜고, 노조 긴급 총회를 열어서 그 내용을 공유했다. 

 

한편 변산으로 도망쳤던 윤구병 사장은 회사 인트라넷에 글을 남겼다. 아마도 윤구병 사장이 다른 사장들처럼, 그냥 해고했으면, 끝까지 회사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으면, 이렇게까지 열이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구병 사장은 그 글에서 끝까지 위선을 부렸다. 자기는 비정규직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비정규직이 50%가 넘는 이 나라는 막 되어 먹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은 나쁜 제도고, 보리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계약을 연장하는 것은 보리에서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회사 살림이 어렵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비정규직이 나쁜 제도기 때문에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기 위해, 비정규직을 해고하겠다는 기막힌 논리였다. 

 

그러면서 책임을 교묘하게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 돌렸다. 보리는 신간 매출율이 낮다고 질책을 했는데, 당연한 게 아닌가. 편집자들에게 기획할 권리를 주지 않고 자기 혼자 꼭 쥐고 있는데, 어떻게 신간이 순풍순풍 나온단 말인가. 보리 재정은 유리처럼 투명한데, 경영진이 대체 어떤 낭비를 더 줄이냐고 했다. 하지만 그 유리창, 노동자들에겐 투명은커녕, 무슨 퇴폐업소 창문마냥 하나도 들여다 볼 수 없는 유리창이었다. 업무상 기밀이라면서 편집자들에게 계약서도 잘 안 보여주려고 하던 회사가 아닌가. 계약직은 나쁜 제도인데, 노조가 계약직으로 계약 연장하자고 주장하면 노조차원에서도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가장 화가 나고 어이가 없는 것은 마치 이 일들이 노동자들이 이기적이어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을 한 것이었다. 6시간제를 토론하자고 했더니 노동자들이 임금삭감을 가장 먼저 걱정한다면서, '비정규직 철폐'가 다 빈말처럼 들린다고 했다. 

 

이 사람과는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합리, 이성, 대화, 토론, 설득, 양보, 타협 이런 말이 들어설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회사의 치부를 밖으로 알리고 드러내는 것에 부담이 있었는데, 더 이상 회사 안에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 밖으로 알리고 적극 행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헌데 이 일은 예상치 못하게 중간 결말을 맞게 되었다. 노동조합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틈을 윤구병 대표이사가 파고 들어왔던 것이다. 때마침 노동조합 집행부 임기가 끝나게 되어 집행부를 새로 뽑는 투표를 했다. 12월 1일로 기억한다. 초대 분회장이었던 내가 임기가 끝나고 새 분회장이 선출되었다. 우리는 새 분회장 임기가 언제부터 시작하는지 아직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날 윤구병 사장이 새 분회장을 불렀다. 그리고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던 그때까지와 다르게 비정규직 직원의 계약을 우선 한 달(12월) 연장하고 그동안 대안을 찾자고 제안을 해 왔다. 노조로서는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만, 그 제안은 내가 분회장일 때 우리가 회사에 했던 제안이었다. 

 

회사와 맞서 싸우려고 모았던 의지들이 한 풀 꺾이게 됐다. 결국 그 의지가 다시 모으긴 힘들었다. 회사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안을 들고 나왔다. 해당 부서를 독립법인으로 만들어 해당 직원과 또 다른 계약직 직원에게 맡긴다는 거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거는 손 안대고 코 풀려는 거였다. 계약직 직원들은 1년 만 더 계약을 하면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이 되는데, 법인을 따로 만들어서 보리가 그 책임에서 벗어나겠다는 속셈이라 생각했다. 법인을 따로 만들어서 운영하면서도, 1년 동안 보리에서 임금을 준다고 하니, 정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생각했다. 보리에서 월급을 받고, 보리출판사 건물에서 영업을 하는데, 보리직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한차례 기세가 꺾인 우리는 이 안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윤구병 사장과 경영진들은 이후 보리는 비정규직이 없는 회사라고 회사 밖에다 자랑을 하고 다녔다. 나는 그 꼴이 너무나 역겨웠다. 

 

이 눈 가리고 아웅이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2011년 11월에 쫓아내려고 했던 그 직원은 1년을 더 계약직으로(법적으로 보리 직원이 아니게 되었으니, 보리 분회 조합원으로 누리던 많은 권리들이 다 사라진 채) 일하다가 2012년 말에 그만뒀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뒤여서 그 직원이 그만둘 때 상황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듣기론 그 직원 입에서 그만두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하려고 꽤나 치졸하게 굴었던 거 같다. 

 

이 일은 굉장히 화가 많이 나고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이기도 하지만, 후회와 반성도 많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 당시 우리가 노동조합 집행부 교체 시기와 임기에 대해 좀 더 대비를 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우리가 그 당시 회사 밖으로 더 알리면서 싸움을 크게 가져갔다면,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다쳤을 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당시 치부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더 상처가 곯았던 것은 아닐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때 회사의 치부를 크게 드러내서 한바탕 싸워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후회가 많이 남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