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세 부담은 전가될 수 있다

조지스트와의 대화

* 헨리 조지 지대조세제의 한계에 대하여 어느 분들과 대화하면서 쓴 글입니다.

 

어떤 사람은, 땅주인들끼리 경쟁하는 것으로 지대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 같은데,
지대는 그런 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지대는 헨리 조지의 분배법칙으로 결정된다.(그의 이론에서 유일하게 계승해야 할 것이 이 법칙이고, 나머지는 사실 허접쓰레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노동자가 노동생산물을 생산한다
이 가운데 얼마가 노동자 몫으로 떨어지고 얼마가 땅주인 몫으로 떨어지느냐, 이게 어떻게 결정되는지 밝혀놓은 게 분배법칙이다

노동자한테 떨어지는 몫을 임금, 땅주인 몫으로 떨어지는 걸 지대라고 부른다
즉, 분배법칙이란 임금과 지대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보여준다.

노동생산물=임금+이자+지대 ...노동생산물은 임금,이자,지대로 분배된다.
(임금은 노동자가 먹고, 이자는 자본가가 먹고, 지대는 땅주인이 먹는다)

따라서, 임금=노동생산물-지대-이자 ...인데,
헨리 조지는 이자 역시 분배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걸 간과했다.
그는 화폐제도 문제에 대하여 무지하여, 이자도 노동자들이 얻는 몫으로 취급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다룰 것임.
지금 다루면 지대 문제가 혼동될 수도 있으므로.)

그래서
임금+이자=노동생산물-지대 ...가 된다
위 등식에 의하면 지대가 0인 곳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생산물은 전부 노동자들 몫이 된다
다시 말하여 지대를 내지 않아도 되는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생산물이,
지대를 내야 하는 땅에서 노동자들이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가 된다.

땅주인들의 땅은 공짜땅을 넘는 이점이 있고,
(그런 이점이 없다면 지대를 낼 필요가 없다.)
그 이점 때문에 공짜땅보다 더 많은 노동생산물이 나온다.
따라서 땅주인은 그 이점에 대하여 반드시 지불받으려고 한다.
노동자들이 땅을 빌리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부분을, 땅주인은 자기 몫으로 청구한다.
이 경계를 헨리 조지는 '지대선rent line'이라고 불렀다

땅주인들끼리 경쟁하여 지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땅주인의 땅'과 '공짜땅'이 경쟁하여 지대가 결정된다.

먼저 위 법칙을 명확히 새겨야 한다.
이게 "지대조세제는 효과가 없다"라는 명제의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기본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조지스트가 혼동하는 문제는,
지대를 세금으로 몰수하여 기본소득으로 분배할 때
땅주인이 그 세금 부담을 세입자와 노동자에게 떠넘길 수 있는가..다.
지대를 세금으로 몰수하여 얻은 수익을,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한다면 떠넘길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지대선을 경계로 하여 임금 쪽을 증가시키게 되니까. 실비오 게젤에 따르면, 이 경우에 땅주인은 두 가지로 공격받게 된다.
첫째, 토지세 부담 (토지세 부담을 떠넘길 수 없으므로, 이 부담은 땅주인이 지게 된다)
둘째,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생산물이,
노동자들이 지대를 내야 하는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이므로)

반면에 지대를 세금으로 몰수하여 얻은 수익을, 땅주인의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한다면 떠넘길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지대선을 경계로 하여 지대 쪽을 증가시키게 된다. 공짜땅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대가가 늘어난 것이 아니므로 땅주인은 더 남겨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비오 게젤에 따르면, 이 경우에 노동자는 두 가지로 공격받게 된다.
첫째, 토지세 부담 (토지세 부담을 떠넘길 수 있으므로 이 부담은 노동자가 지게 된다)
둘째,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 (지대가 늘어났으므로 임금은 줄어든다)

토지세 부담이 전가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조지스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자.
 

"토지세가 어떤 면에서 다른 세금과 다른지 살펴보자.
첫 번째로, 다른 세금은 전가되지만 토지세는 전가가 불가능하다. 즉 토지 소유자가 토지세를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
세금의 전가는 가격에 따라서 수요량과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재화에서나 가능하다. ... 그것은 가격 변화에 민감한 쪽이 덜 부담하게 된다. 만약 연필 소비자들이 연필의 가격 변화에 민감하다면, 즉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연필이 아닌 다른 필기구를 구입한다면 연필 생산업체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
그러나 토지는 가격에 따라 그 양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토지는 공급이 완전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토지세를 부과하면 토지 소유자가 이를 부담할 수 밖에 없다.
...
현실 시장은 토지 또는 상품의 독과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토지세가 얼마간 전가될 수 있다. 토지 이용자 겸 토지 소유자가 토지 생산물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린다면, 토지세의 일부를 수요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물론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서 이윤도 줄겠지만, 토지세를 모두 떠안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면 토지세를 어느 정도 전가할 것이다."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제4장 토지 강화와 조세대체 전략 (109-112쪽)


이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조지스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연필에 세금을 매길 때 연필소비자가 연필 말고 다른 걸로 갈아타면 그 세금을 물지 않고 연필생산자가 물듯이, 땅에 세금을 매길 때 땅주인이 땅 말고 다른 걸로 갈아타면 그 세금을 물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세금을 전가할 수 있다. 하지만 땅을 대신할 대체물은 없기 때문에(그리고 새로운 땅을 공급할 수도 없기 때문에) 땅주인은 다른 걸로 갈아탈 수 없다. 따라서 세금을 남한테 전가할 수 없다.”

조지스트들은 토지세를 직접 전가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위의 비유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조지스트들이 위에 든 비유는 그들이 설명하려고 하는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즉, 땅주인을 연필소비자에 빗대고 세금이 전가되는 사람을 연필생산자에 빗댄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땅주인은 땅을 소비(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땅을 소유한 상태에서, 땅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땅을 공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세금이 전가되는 사람(임차인과 노동자)이 땅을 생산(공급)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은 더욱 분명하니 그를 연필생산자에 비유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이 비유는 토지세가 직접 전가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하지만, 토지세 부담이 간접적으로 전가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기에는 부족하며, 따라서 그 비유는 섬세하지 못하고 매우 부주의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연필소비자는 임차인, 연필생산자는 땅주인에 대응시켜야만 진실을 볼 수 있다.

정부가 땅주인한테 토지세를 부과하고 땅주인이 그 세금을 임차인한테 떠넘기려고 할 때, 그 임차인이 대체재인 공짜땅(지대가 0인 땅)으로 갈아탈 수 있다면 땅주인은 그 토지세를 전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짜땅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토지세 부담은 전가되며, 지대조세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비오 게젤은, 토지세가 전가되지 않으려면 토지세 수익이 공짜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대가를 늘리는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든 땅을 공짜땅으로 만들 것을 주문한다. 즉 땅사유권을 폐지하고, 땅을 국유화하며, 땅을 공공임대로 이용하게 하여 모든 지대를 공공이 회수하여 그것을 복지 재정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것은 땅사유권을 남겨둔 채 진행하는 기존 복지정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같은 “복지”라는 이름을 붙여도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기존 복지정책은 땅사유권이 복지정책의 효과를 무력화한다. 복지정책의 혜택은 모두 지대에 반영되어 그 효과가 상쇄된다. 그것은 지대선을 경계로 할 때 지대 쪽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게젤이 제시하는 방법은 땅사유권을 폐지하므로 복지정책의 효과는 모두 온전히 살아남는다.

조지스트들이 범한 치명적인 오류는, 직접적으로 세금이 전가되지 않는 것만 보고 그 부담이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 전가될 수 있는 다른 경로가 없을 거라고 단정지은 것에 있다. 직접적인 세금 전가는 없으나 그 부담이 지대라는 부메랑으로 임차인과 노동자를 공격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지대조세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곧바로 땅사유권을 폐지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핵심근거는 바로 헨리 조지의 분배이론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논리를 결코 부정할 수 없으며, 부정하려 한다면
헨리 조지의 분배이론을 날려버려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이론과 실천이 모순이 있을 때는
이론을 날려버리든지 실천을 날려버리든지
둘 중 하나는 날려버려야 한다.
아무것도 날려버리기 싫다면
바로 그 어리석은 사람이 날아가게 될 것이다.



추신: 여러분 가운데 이 분배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거나 피상적인 이해에 그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이 토론에 참여할 만한 배경지식이 없는 것이다. 토론에 참여하고 싶다면 먼저 이 이론을 이해해야 한다. 토론은 기본전제를 공유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헨리 조지의 분배이론이다. 기본전제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면 그 때는 토론이 아니라 강의를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론은 이론일 뿐 현실과 다르다며 반론(反論)이 아니라 무론(無論)을 주장하기도 한다. 토론에서 논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궤변에 무슨 얘기를 더해주랴마는,
그런 사회운동가는 이론이 아니라 주먹구구식으로 문제상황을 돌파하려 할 것이고
땅사유제 아래에서는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지겨울 정도로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다가 올바른 길로 돌아오는 데에도 많은 힘이 든다.
하물며 70억 세계인구가 사회운동에서 잘못된 경로로 가다가 올바른 길로 돌아오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소모되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르겠는가.
이런 점을 진지하게 고려해본다면,
고작 며칠간의 토론으로 그 엄청난 삽질을 막은 것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약한 지성은 비판을 견딜 수 없다
나약한 지성은 비판에 직면하면, 겁을 먹고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덮어버리고 쉬쉬하고 토론의 장을 비공개로 처리한다.

하지만 진리는 그런 것들을 다 엎어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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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3 18:41 2016/04/2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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